개혁주의와 공회의 대속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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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와 공회의 대속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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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2 1

고신 출신으로 공회 소속입니다. 연구소가 좋은 분이라고 소개한 자료를 보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 없이 불택자를 심판할 수 있는가?


요한일서 3장 7-8절을 보면 쉽게 깨달을 수가 있는데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만 보고 있고 거기는 이런 내용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불택자의 심판에 대해 장로교회 교인들이 알지를 못한다는 표현은 사실관계를 몰라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공회의 모든 좋은 점이 이런 표현 하나 때문에 오해를 받고 가려질까 염려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담당 2025.06.13 15:19  
> '고신 출신으로 공회 소속입니다.'
지금은 고신과 공회가 다른 교회처럼 보이나 공회는 고신이 출발할 때 고신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진리의 노선에 함께 출발을 할 때는 사람이 많았으나 중간에 바꿔 탄 분들은 합동으로 갔고, 고신은 첫 정거장으로 다시 돌아 갔으며, 노선을 바꾸지도 않고 또 첫 정거장에 내리지도 않고 진리 노선을 고수하다 보니 공회는 한 정거장을 더 간 정도입니다. 몇 정거장을 더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연구소가 좋은 분이라고 소개'
이 곳은 만물은 하나님이 선하게 지었으니 모두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발은 발이어서 좋고, 하늘은 하늘이어서 좋고 땅도 그 역할이 있고 고신도 사회의 압박을 막아 줄 때가 있어 늘 고마운 곳입니다. 이 곳에서 좋은 분이라고 소개한 곳은 2025년 기준으로 전국 공회 2백개 중에 저 정도를 지켜 가는 교회가 이 곳을 제외하면 5개는 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굉장한 분이라 하겠습니다.



> '대속의 역사 없이 불택자를 심판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2천 년 역사의 초대교회를 대략 초기 5백년으로 잡을 때 초대교회에서 이미 다 검토 된 이야기입니다. 세계 교회사의 상식입니다. 천주교 1천년을 거치며 구원론은 어두워 졌지만 16세기의 칼빈은 '대속'과 '불택자'와 '심판'의 문제를 명확하게 간파했고 교리서로 확정했습니다. 공회는 1950년대 고신의 초기 건전할 때 백 목사님이 교회사 교리사를 통해 이런 면은 잘 파악했습니다.



> '웨민고백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이 곳에서 소개한 목회자의 훌륭한 점은 세계 신학이나 장로교의 역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식견이나 공회와 비교 때문이 아니라, 공회에 주신 노선과 교리와 교훈과 역사가 소중한 줄 알고 견지해 내는 면이 너무 귀하여 부럽게 소개했습니다. 이 곳 역시 1980년대부터 직원으로 평생을 매진하는 분들이 그 분처럼 귀한데 이 분들 역시 교회사 교리사에는 다 어두운 분들입니다. 



> '대속과 불택자의 심판에 대해 장로교회 교인들이 알지를 못한다'
우리가 불교는 지옥 가는 타종교라고 지목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석가의 생애나 설법 내용이나 불교 교리사를 세세히 다 알지는 못합니다. 총론으로 한번씩 불교를 난타합니다. 말하는 분도 또 듣는 분도 세세한 것을 알고 실수하지 않으려면 불교 하나만 파악해도 평생이 부족합니다. 유교도 철학도 알미니우스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경도 잘 모르면서 입에 담는 것도 우습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가 서로 조금 아는 것, 좀 많이 아는 것, 아예 모르는 것이 엉망으로 섞여 있으니 약3장 말씀에 따라 평소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주변에 유혹이 있고 접촉으로 혼선이 있으면 불교도 철학도 알미니안도 그리고 웨민 고백과 역사적 장로교를 전부라 생각하고 공회를 함부로 치는 이들을 상대할 때 '대속과 불택과 심판도 모르면서'라고 방어에 나서기도 해왔습니다.

불교의 오래 된 교리 중에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습니다. 개혁교회 장로교인 또 오늘의 정통 신학자들이 모르는 구원론의 이런 세계를 한국의 중들은 수백 년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로 대결해 왔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불교는 대속도 심판도 모른다'고 난타할 때 돈수와 점수를 모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는 너무 많아서 조심해야 합니다.

이 노선의 정말 소중한 것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 것'과 '마음은 물질'이라는 점과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이 성화되는 과정'이 하나로 이어 지면서 성경의 해석 전부가 명쾌해 지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성경과 교리의 난제가 해결된다는 점입니다. 설교자는 이런 점을 다 아시면서도 그 교회의 예배 시간에 출석한 교인들에게 평소 이런 점을 다 설교를 했을 터인데 일반 장로교와 공회의 차이점을 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거나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런 배경 때문에 어느 설교 중에 웨민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고 했으나 설교자가 '대속'과 '불택'과 '심판'이 웨민에 없더라며 책을 들고 보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 분의 식견과 평생의 걸음과 부산의 목회연구소를 맡고 있다면 이런 부분은 상식이기 때문에 그 설교의 표현은 생략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공회의 삼분설과 중생 교리와 마음의 범죄와 성화 과정을 두고 고신은 단어 몇 개를 뽑아 내어 원하는 소설을 적은 다음에 이단으로 참 오랜 세월 맹타를 했습니다. 실은 교계가 다 그러했습니다. 작정하고 죄를 지은 것인데 문제는 듣는 이들은 우리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기억한 다음에 짖어 댔습니다.



> '오해를 받고 가려질까 염려'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나의 선의와 나의 주장 전부를 잘 파악하고 비판을 할 때는 조심하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것은 그들이 할 일이고, 우리는 상대방이 나의 설명을 왜곡하려고 작정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정하고 왜곡하면 막을 도리는 없고, 또 신학의 강좌가 아니라 매일 매새벽마다 매예배마다 꼬박꼬박 출석하는 교인들에게 많은 면을 고려하면서 한 말씀씩 가르치는 '목회' 설교라는 것은 했던 말도 반복하고, 지나칠 정도로 강조도 하고, 앞뒤를 방어하며 강의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회의 설교는 항상 '목회' 설교를 강조합니다. 해당 교회의 설교도 '목회' 설교를 하실 분이지 강해나 강의나 신학을 하실 분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분은 잘 알지 못하나 함께 근무했던 형제 분보다 우수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메모2'를 작성한 형제 분의 경우를 보면 이런 수준을 넘어 선 분입니다.

신학을 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하지 않았다면 공회 목회자다운 분이고, 신학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잠깐 보면 전체를 파악하실 분이라는 점에서, 그 분과 그 분의 평소 설교는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공회의 아주 귀한 말씀을 잘 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 번 질문을 통해 여기에 문답을 남김으로 공회 우리의 오해, 공회 우리의 오해 소지, 공회의 우리의 공회 강조 과정에 일어 나는 외부의 오해, 공회 우리가 확고하게 생각을 했는데 실은 아주 크게 오판이 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기 딱 좋은 우리의 약점까지 전부 담겨 졌으니 이 정도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개한 분이 부공1인데 그 분 외에 그 쪽의 목회자 거의 전부는 이 곳이 출간한 설교록이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다고 목숨을 내대는 분들이고, 위에서 지시가 떨어 지면 각목을 들고 수백 명이 무술 중들처럼 난타를 하다가 또 위에서 지시가 떨어 지면 각목 대결했던 분들과 한 잔 마시며 형제라고 흥정도 하는 분들입니다. 세상이 보면 좀 미쳤거나 사이비라고 생각하기 딱 맞을 만큼 하는 분들인데 아마 유일하게 이 곳에서 소개한 분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구의견 2025.06.13 20:49  
신앙고백에 대해서, 일반적인 지식 수준으로 추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신학은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등으로 구분을 합니다. 교리는 그 교회, 교단, 교파가 믿는 원리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교리는 조직신학의 내용인데, 이 교리에 따라 성경신학이 달라지고,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니, 실천신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교리는 역사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발전하여졌습니다. 이것 연구, 정리한 것을 역사신학이라고 합니다.

그 역사 속에서 타종교와 구분, 혹은 이단과 구분, 혹은 종교개혁시대 천주교와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가 믿는 신앙은 이것입니다”라고 표현한 것을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역사 속에 신앙고백은 무수히 많이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앙고백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신앙고백의 특징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만 말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리, 모든 성경신학, 모든 조직신학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믿는다. 이것과 다르다면 우리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잘 정립된 신앙고백은 교단과 교파를 넘어서서 공통으로 사용됩니다. 교리적 해석, 성경의 이해는 달라도, 신앙고백만큼은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도신경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천주교 개신교는 교리적으로 완전히 다르지만, 사도신경 하나만큼은 같은 신앙고백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사도신경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겁니다. 사도신경은 이교와 기독교를 구분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그 역사적 배경을 보자면,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오늘날 천주교가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기독교에서 수많은 교파들이 정통의 신앙고백으로 인정하고, 특히 장로교는 “역사상 가장 완성적인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 내에 수많은 교파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자신들의 교리 기준으로 인정합니다.

이렇듯, 신앙고백은 기본 전제를 말합니다. 이후 교리적 해석과 발전은 교파마다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이 전부이다” 혹은 “신앙고백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은 교계와 신학에 대해서 오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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