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과 89년 공회 회의록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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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과 89년 공회 회의록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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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원 4 1
2018년 1월까지 운영하던 구 사이트에 총공회 문건 중 어떤 것은 원본 회의록이 있고 어떤 것은 녹취록만 나온 것도 있었습니다. 1988년 9월 총공회와 이후 교역자회의록과 총공회록의 경우 대구공회는 정본 회의록을 가지고 있는데 연구소는 녹취록만 제공했었습니다. 설교록에서 당시를 설명한 내용을 보면 얼추 짐작은 가능한데 정본 회의록을 공개하실 수 있을지요? 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1988년 10월 회의록파와 12월 회의록파가 서로 맞서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공개적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모두가 수군거립니다.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담당 2025.05.25 20:05  
* 1988년의 공회를 읽는 시각
<공회를 바꾸고 싶은 이들>
1988년 2월에 송용조 목사님의 사직동 탈퇴 건 이후 백 목사님은 송 목사님보다 공회를 먼저 탈퇴해야 할 사람이 때를 기다리며 잠복하는 것은 진실이 없는 행위니 공회를 당당하게 떠나라 했습니다. 또 공회 내에 있기를 원하면 앞으로는 교회를 가지고 나가려는 절도 행위를 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훗날 대구공회로 나갈 주력들은 환호를 했고 '사모들의 모임'을 하자, 공회 외부 강사를 모시고 부흥법 등의 '세미나'를 개최하자 '찬송가'를 교체하자 '공회' 간판 때문에 부흥이 되지 않으니 이름을 바꾸자는 등 공회 비판에 봇물을 쏟았습니다. 당시 백태영 백영익 등이 앞에 섰고 40대가 주력이 되어 이제 때를 만났다며 환호를 했습니다.

<공회를 지키고 싶은 이들>
목사님은 공회를 바꾸고 싶은 이들이 공회를 바꿀 때 공회를 지키고 싶은 이들에게 공회를 지킬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 주셨습니다. 백 목사님은 이미 1989년에 별세를 예고했고 목사님이 없어 지면 백태영 백영익 등이 주도하여 공회는 단체 차원에서 만사가 바뀔 것인데 그럴 때가 와도 원래 공회를 고수할 이들을 위해 총공회적으로는 백 목사님이 20여년 만사를 지원해 준 백태영 목사님이 현장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교인과 동역자들에게는 백 목사님의 이름을 내세워 권위를 잡았는데 이제는 노소원 45명을 선출하여 몇 사람의 운영위원이 장악한 지도부를 젊은 사람들과 심지어 공회를 반대하는 이들까지 전부 위원이 되어 자유롭게 알아서 활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소원' 제도로 백태영 등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하고

그리고 시무투표를 공회 파송으로 유지하면 목사님 사후 백태영 등이 전국을 장악하게 될 것이므로 각 교회에게 시무투표를 통해 현직 목회자를 내보내고 누구든 자유롭게 모실 수 있게 인사권을 해제시켰습니다. 그러자 백태영 목사님은 목사님이 곧 돌아 가시면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눈 앞에 왔는데 총공회 = 교역자회 = 지도부의 교권을 무력화 시키는 것에 적극 반대를 했고 백태영을 앞세워 공회의 예전 분위기를 모두 없애고 싶은 훗날의 대구공회가 될 분들이 백태영과 함께 백 목사님의 '시무투표 강제 이동' '파송제를 청빙제로 변경' '노소원위원회가 운영위를 대신'하는 조처에 강하게 반발을 했습니다.



<1988년 9월>
목사님은 1988년 11월의 시무투표에 앞서 9월에 총공회의 지도부를 과거 운영위에서 노소원위로 변경 시켜 버리고, 10월에는 공회의 파송제를 교회별 청빙제로 변경하면서 시무투표를 무조건 사임제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되자 백태영을 중심으로 대구공회가 될 분들은 회의  때마다 목사님의 뜻이 그렇지 않다며 변경을 시도하거나 서기부의 기록을 바꾸는 등으로 집요하게 저항을 했고 목사님은 1989년 1월에 평생 지도해 온 총공회장 직분을 사면하는 차원으로 8개안을 남기고 퇴장을 해버립니다. 1988년 11월의 시무투표 이후 청빙제가 처음 도입 되자 목회자도 어리둥절했고 교회들은 설마 자신들의 손에 목회자 결정권이 정말 왔는지도 의아했고 또 어떻게 행사를 할지 몰라 일대 혼란이 벌어 지자, 1989년 12월 교역자회를 목사님은 일부로 나오지 않았고 그 기회에 대구공회로 나설 분들이 목사님의 시무투표 제도를 '참고'용으로 변경하고 교역자회가 지도를 하자고 시도를 했는데, 이런 시도는 '노소원'을 운영위로 대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교여자회마다 이의를 하고 반대를 했는데 그 기록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회의 때마다 반복이 되고 목사님의 마지막 총공회인 1989년 3월 회의 때 목사님은 이런 안건은 두번 다시 제안도 하지 말자고 결의를 주도해 버립니다. 그런데 목사님 가시고 나자 1989년 9월부터 대구공회로 나갈 분들은 목사님 생전의 마지막 모든 조처를 전부 무효화 시켜 버립니다.


* 공회는 다수결이다.
* 공회는 법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한다.
* 노소원은 없애고 과거 운영위로 돌아 간다.
* 시무투표는 아예 없애 버린다.
* 찬송가를 통일로 바꾼다. 이유는 편집실이 찬송가를 번 돈으로 백태영 반대 운동을 하니 자금을 차단하자..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자극적인 논리를 앞에 세웁니다. 재독은 우상 숭배라고..
그리고 오늘까지 이 모든 일은 명확하게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의 노선 차이로 드러 났는데, 부산공회는 대구공회와 나뉘는 순간 대구공회 논리가 필요할 때마다 또 등장합니다. 지겹지도 않은가? 또 공회 만민이 이렇게도 바보고 멍청해서 말 하나에 흔들거리나.. 이런 낭패와 함께 이 곳은 이 노선을 연구하고 전하는 데 주력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여 더 이상 내부 논쟁을 하지 않고 이 곳에서 할 일만 해왔습니다.
담당 2025.05.26 08:21  
(총공회의 기록에 대한 평가)
오늘 우리가 가진 성경과 천주교가 가진 성경은 갯수가 다릅니다. 구약만 인정하는 유대교와 몰몬교도 우리와 성경의 갯수가 다릅니다. 성경이 다르면 종교가 달라 집니다. 성경의 해석이 다르면 교파나 신학을 달리 하는 정도로 그칩니다.

1989년 3월의 총공회록에서 시무투표에 불신임이 되면 목사는 무조건 사직이 되지만, 장로들도 함께 직을 걸도록 의결이 되었습니다. 당시 전국의 장로들은 일제히 저항을 했지만 목사님의 부탁으로 결의가 되었으나 회의록에는 부결로 적힙니다. 1988년 12월부터 회의록의 기록 자체에 문제가 계속 되어 회의 전체를 녹음하며 목사님께 보고하던 연구부에서 1989년 3월의 총공회록만은 공식으로 정정을 건의했고 목사님은 5층에서 직접 최후 1명의 반대자로 거명된 동문교회 석기정 장로님께 확인을 받고 총공회 서기에게 정정을 시켰습니다.

이후 생전 마지막 교역자회가 되는 1989년 7월까지의 교역자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훗날 대구공회가 될 다수와 부산공회가 될 극소수 두세 명의 대치로 어떤 교역자회는 폐회조차 하지 못하고 목사님 면전에서 난동을 야기한 분들이 8월에 목사님이 가시자 9월부터 대구공회가 형성되는 주력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9월의 첫 교역자회가 개최되자 교학실장 이재순 목사님과 백도광 장로님이 목사님의 남긴 유훈이라면서 '공회 헌법 제정'을 발표합니다. 연구 부장은 그 문건 조작이라고 바로 이의를 했고 이후 양측 공회는 분리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일정 기간을 두고 1988년 9월 이후의 총공회와 교역자회의 회의록, 결의, 당시 기억을 두고 만사 반대가 되었습니다. 대구공회는 이후 서울공회와 분리할 때 과거 부산공회의 주장을 대폭 수용했고 서울공회는 과거 주장을 고수했으며 현재 대구공회는 노소원과 찬송가 정도 외에는 내면으로 대부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공회의 회의록 인정)
1988년 9월 회의록부터는 부산공회가 당시 대구공회 측 기록 서기의 입장이 반영된 역사 자료로만 인정하고, 당시 공회의 실제 회의록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런 상황은 목사님 생전인 1979년에도 훗날 대구공회의 출발을 주도하던 분 때문에 1979년의 여러 기록이 사실상 부정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연들 때문에 1989년 9월 양측 공회가 대치하며 분리해 나가는 과정에 대구공회로 가게 될 교학실에서는 과거 회의록과 자료 일체를 대구로 옮겨 갔고 이후 소송까지 진행 되면서 비공개 극비 서류로 취급을 해오다가 서울공회와 분리를 하고 현재 대구공회를 형성하는 주류 지도자들이 2009년경부터 과거 총공회 기록 전체를 본 연구소에 제공함으로 이제는 기록에 대한 문제는 함께 공유하되 해석은 대구공회와 부산공회가 각자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부산공회에 있는 자료들은 2009년 이전에 연구소가 별도 확보했던 자료를 1990년과 1991년에 훗날 부공2의 창설자이며 교학 행정의 실권자께 '부공2 자료 일체를 연구소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연구소가 직접 제공한 것입니다.

현재 부공2에서 한번씩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과거 대구공회처럼 자료를 왜곡하거나 문건 형성 자체를 가감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교회가 정치를 하면 바로 속화되는 것이고, 목회자가 정치를 하면 개인적으로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이 공회 입장입니다.
거창 공회원 2025.05.26 13:13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보니 시무투표는 목회자가 무조건 사임하게 만드는 제도가 아니라
교회가 신앙적인 판단을 통해 목회자에 대해 평가해보는 절차였군요.백영희 목사님이 살아계셨을 때도  시무투표에서 불신임이 나왔다고 해서 곧장 목회자가 사임하게 된다는 공식적인 결정은 없었다고 하니,
단순히 시무투표 결과만 보고 사임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건 원래 총공회가 의도했던 뜻과는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그제야 저도 시무투표 제도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목회 2025.05.26 17:40  
1986년까지는 이동에 참고.
1988년부터는 불신임이 되면 무조건 사직 처리.

사직 처리를 시킨 교회가 후임을 찾을 때
교회는 새로운 목회자를 찾아도 되고 사직 된 분을 다시 임명하는 전권을 행사.

목회자에게 너무 가혹하게 되자
1988년부터 훗날 대구공회가 될 목회자들은 시무투표 제도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다 목사님 사후에 폐지
1988년부터 부산공회가 될 목회자들은 오늘까지 제도를 유지했으나 대구공회 목회자 입장으로 선회한 경우도 존재



1992년 서영호 목사님의 경우는 제도가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고 폐지, 그 외 교회들은 지금까지 시행 중이었고
2020년 부공3에 부산의 교회 한 곳이 1986년까지 참고만 하던 시절이 현재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고
2024년 부공2의 수도권 교회 한 곳도 1986년까지 참고만 하던 시절로 현재까지 이어 왔다고 주장을 하는 중이나

40년의 시행 과정을 부인하기에는 그 동안 쌓여 진 자료가 너무 많아서 달리 해석할 수는 없고
서영호 목사님처럼 이 제도는 그렇게 시행을 했으나 애초부터 제도가 잘못 되었다고 치고 나오는 것이 양심일 듯.
과거를 지켜 낸다는 명분도 가지고, 또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자료를 찾다 보면 숱한 거짓말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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