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예배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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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예배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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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 4 1
공회 교회의 예배 전반을 보배롭게 생각합니다. 다른 교회 다녔던 분들도 인정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 교인도 장년반 예배에 집중하지 않으면 설교를 중심으로 찬송과 기도와 예배의 제반 순서가 늘 지켜오는 면이 있어서 마음이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중고교생은 물론 주일학생들도 장년반에 모두 참석합니다. 어릴 때는 이상하게도 예배를 잘 드리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슬금슬금 흐트러집니다. 자세가 흐트러지는 학생도 있고 자세는 그렇지 않은데 몸만 앉아 있고 마음은 멍한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현상 때문인지 타 교단은 소년부 중고등부를 따로 떼어 마음을 기울이도록 여러 형태로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람의 심리를 맞춰가는 속화라면서 거부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생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분명히 세상이 되어버리겠고 그렇다고 현재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가면 20세를 전후로 조용히 사라지거나 더더욱 안쓰러운 모습으로 맥없는 교인이 됩니다.
공회교인 2025.03.30 19:00  
제가 경험으로나 주변을 볼때에
주일학교를 지나 중간반부터는 어린신앙이라도 믿음의 자녀를 맡기고 기르다보면 신앙은 절로 자라는 것같습니다.
옛날에는 나이가 어려도 부모가 되면 자녀를 낳아 길렀고 어른이 되어갔는데
지금은 30-40이 되어도 결혼은 물론 자녀도 낳아기르지 않으니 나이는 먹었으나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는 세상의 자연계시와 같이  갈수록 험해지는 세상에서 말씀이 들어갈 수 있다면 허락되는 선에서는
1. 믿음의 부모가 생활속에서 챙기고 지도하고
2. 한명이라도 맡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3. 예배시간 몇줄이라도 필기를 해보도록하고 예배마친 후 새김질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이 3가지가 같이 이루어지면 좋고 안되면 한가지라도 더 어린나이에 시작해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질문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공회교인 2025.03.30 19:01  
이렇게 하다보면 어릴수록 어른들이 듣는 것과는 또 다르게 하나님이 은혜 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당 4 2025.03.31 19:54  
백 목사님 생전 서부교회 교인은 절반이 존다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던 일입니다. 절반까지는 좀 과장이었다고 해도 많이 졸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워낙 설교가 성경 중심으로, 말 그대로 말씀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주일학생은 장년반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중간반도 많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장년반들이 그렇게 많이 졸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 밤새도록 설교하니까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문에 걸터앉아 졸면서 듣다가 결국 떨어져서 죽은 것을 바울이 살린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의 설교로 유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설교해도 말씀만 전하니까 졸게 됩니다.


주일학교나 중간반 학생들의 예배 시간 말씀 듣는 것을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옛날은 집에서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을 키워 먹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시루에 물을 줍니다. 물을 주면 물은 전부 밑으로 다 흘러내려 가 버립니다. 물은 다 흘러내려 가버리지만, 흘러내려 가면서 콩나물을 적시면 그 적시는 물을 먹고 콩나물은 자라는데, 자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오래지 않아서 먹을 수 있을 만큼 다 자라게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학생들이 장년반 예배 시간에 앉아있으면, 주일학생은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중간반은 주일학생보다는 좀 더 알아들을 수 있는데 잘 듣지를 않습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은 주일학생 때보다 못하게 됩니다. 이들의 신앙이 자라지 않고 그대로 대학생이되고 20대 청년이 되면 정말 예배는 형식으로 앉아있거나 심하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지는 않아도 그중에는 신앙이 잘 자라서 교회의 기둥이 되는 일꾼들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떤 교회는 주일학생 때부터 예배에 참석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교회의 기둥이 되어 있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모든 학생을 다 건지면 좋겠고, 그렇게 못해도 많은 학생을 끝까지 신앙으로 기르면 좋겠지만, 아쉽지만 말씀만 전해서 이 정도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학생들을 붙드는 것이 목적이면 방법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고 염려하시는 대로 학생들을 붙드는 위주로 조금 세상으로 나가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므로 많은 학생을 우선 잃더라도 말씀 중심의 예배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세계 제일이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전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견학을 왔었습니다. 오는 분들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한 층이 수백평이 되고 그 넓은 공간에 수많은 반들이 있는데 분반공부를 하면 수천 명이 앉은 자리에서 수백 명의 반사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고함을 지르면서 가르치게 되고 학생들이 따라하기도 하면, 와글와글하여 처음 가서 보는 분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학생들은 자기 반 선생님의 가르치는 것은 다 알아듣습니다. 토요일 심방 가서 물어보면 가르친 내용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반 편제는 학년별로 되지 않고 학년과 나이에 상관없이 전도한 선생님 반이 됩니다. 서너 살부터 6학년까지가 다 한 반에 속해 있고, 그 학생들을 전부 한 자리에 한 선생님이 가르칩니다. 이것을 보는 분들마다 묻습니다. 유치원 학생과 6학년 학생들을 한자리에 놓고 가르치면 교육이 제대로 되느냐고. 그럴 때 백 목사님의 설명은 간단합니다.

장년반에는 수천 명이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거기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여 글도 잘 모르는 분도 있고, 대학 교수나 박사들도 있는데, 정작 설교하면 깨닫는 것은 공부 많이 한 유식한 사람이나 박사들보다 무식한 분들이 더 잘 깨닫는다고. 말씀을 전하면 성령의 역사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설명하면 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합니다.


공회의 예배 모습도 같은 원리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다 흘러내려 가도 결국 그 물을 먹게 자라게 되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말씀을 바로만 전하면 말씀 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언젠가는 그 말씀을 듣는 학생들이 신앙의 사람이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얼마나 말씀의 사람이 되어서 전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당 2025.04.01 05:19  
(추가)
교훈은 앞에서 끌고 나가고, 행정은 뒤에서 밀고 나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훈은 앞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저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교훈입니다. 교훈이 현재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자라 가야 할 사람이 안주하면 그냥 있지 않고 부패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야 할, 더 올라가야 할, 더 고쳐가야 할 길을 가르치는 것이 설교입니다. 더하기를 겨우 배웠는데 이번에는 빼기를 가르치니 골치가 아프고 가감을 배우자 이번에는 구구단을 외우라 하고, 81계단을 겨우 외우니 이번에는 곱셈을... 이렇게 한 걸음씩 새로 가르치는 것이 설교입니다. 재미 있게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새로 배우고 깨달아 나가는 길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배운 것만 가지고 우선 재미 있게 해 주려면 방법은 많으나 배울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합니다. 또 재미에 맛을 보면 이후에는 몸이 따라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교는 기도하여 은혜 주시라고 노력하고 또 잘 가르쳐 보려고 하지만 별별 사람이 한 자리에 있으니 한계가 있습니다.

행정은 뒤에서 밀고 가라는 말은 교훈이 앞에서 끌어 가지만 싫증 난 사람, 화가 난 사람 또 배우고 싶다 해도 안일욕이 그냥 주저 앉자는 사람, 또 주변과 어울리며 옆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뒤로 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냥 두지 말고 기준을 벗어 났다고 야단부터 치지 말고 가장 뒤에 있는 처진 사람보다 더 뒤로 가서 한 사람이라도 달래고 밀어 주고 또 설명을 잘 해서 가야 할 길을 가게 해 주도록 심방을 하고 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함께 해결을 찾아 보는 것을 행정이라 합니다. 이런 세계를 가정이라 하고, 가정 교회를 확대하면 이런 세계를 교회 생활이라 합니다.

사람의 취향에 맞추려고 시작하는 순간 탈선은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따라 오든말든 혼자 달려 간다 하면 목자가 아닙니다. 함께 앉아 놀면 놀이터가 됩니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기도로 말씀의 능력을 구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꾸 생각을 하는 것이 '마음에 품어' 기른다는 공회의 반사 수칙입니다. 일단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도해도 방법이 없다면, 이미 설명한 앞 글처럼 콩나물에 부은 물이 맹탕으로 없어지는 듯하나 돌아 보면 자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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