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17장의 미가 집의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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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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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03.22 22:53
위 본문말씀에서 가르치는 구원도리가 무엇인지 알고싶습니다
저 내용이 왜 나오는지 읽을때마다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사사기 1~16장)
출애굽 후 가나안에 들어 올 때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가 지도자였고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나누고 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사사시대가 진행 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나라가 타락하면 이방 민족에게 핍박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사사를 보내 구원을 합니다. 살 만하면 또 죄를 짓고 또 핍박을 받으면 부르짖고 다시 사사를 보내며 옷니엘 에훗 삼갈로 이어지다가 사사기 13장에 삼손이 나타났고 16장까지 이어집니다.
(사사기 17장)
* 사사기 전체의 흐름
사사시대의 사사들의 이어 지는 기록은 시대의 순서를 따라 1~16장까지 진행이 되었고 17장부터는 시대 순서가 아니라 사사시대에 있었던 사건 2 개를 기록합니다. 질문하신 미가 집의 사건이 17~18장에 기록되었고, 베냐민 지파가 멸족을 당할 뻔한 기록이 19~21장까지 이어지며 사사기 기록이 끝납니다.
* 미가 사건의 경우
사사 시대는 사무엘까지로 보면 약 4백 년이고 성경의 사사기로 잡으면 약 350여 년입니다. 이 기간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왕 이상의 인물이 없었고 또 사울 이후의 왕정 국가도 아니었으니 삿21:15에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350여 년 정도의 사사기를 시대 별로 흐름을 기록해 주시면서 미가의 사건 하나를 추가함으로 사사 시대의 일반적인 성향, 내면, 상황, 분석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신 17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미가 집의 제사장)
* 미가 가정
1절,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 불신 가정이 아니라 믿는 가정의 일입니다.
2절,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 돈 문제로 아들을 저주했습니다.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 만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절,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 다른 신을 생활 속에 예사로 섬겼습니다.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 너무 큰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사기의 모두가 그랬습니다.
4절,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 살 만하면 또 세상 신을 섬깁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신당이 있으므로 - 모세와 여호수아 때는 오직 하나님이었으니 사람마다 교회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5절,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 신앙과 세상을 섞는 것이 평소 우리들입니다.
한 개인이 자기의 생각과 생활을 송두리째 뺏길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아 믿는 데만 전력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모세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때와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않고 대개는 평온한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잘 보이지 않으나 이미 주신 말씀이 있으니 자기가 자기를 말씀으로 잘 붙들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과 섞여 살다 보니 평일에는 세상 사람 하는 짓을 다하고 주일에 교회 와서는 믿는 사람으로 또 충실합니다. '에봇' '제사장'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신당' '신상' '드라빔'은 불신 세계의 절대 가치를 말합니다. 믿는 사람도 평소 진학과 취업과 아파트에 인생 전부를 걸고 전력하는 모습이 불신자와 사실 같은 정도면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시대 그 세상과 사실 다를 바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의 미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다 그러했고 그 때는 구약이어서 눈에 보이는 귀신을 함께 섬겼다면 오늘은 신령한 신약 시대여서 굳이 절에 가지 않고 신상을 따로 모셔 놓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전력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과 말씀인가, 아니면 교회와 예배 때는 그렇고 또 이웃과 친구와 주변 사람이 함께 공부하고 취업 시험을 준비하고 아파트에 마음을 가질 때는 실제 꼭 같은 우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 속에 특별한 은혜를 받는 순간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지도하듯이 온전히 신앙에 전력하는데 일반적일 때는, 또는 자기 교회 목회자가 시대적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일반 목회자라면 그 교회 전체가 주일도 예사로 없애 버려 현재 거의 모든 교회의 모든 주일이 주일과 휴일이 뒤섞여 주일에 예배 마치고 식당을 가는 일이 흔할 듯합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 미가 가정의 제사장
7절, 유다 베들레헴에.. 레위인으로서 -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는 레위인은 전국에 분산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8절,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 주신 위치를 지켜야 하는데 먹고 살기 위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9절,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 개척도 목회자가 된 이유도 선교까지도 먹고 살기 위한 생업입니다.
10절,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교인이 교회와 목회자를 택할 때 자기를 위해 비품처럼 마련합니다.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벌과 식물을 주리라 - 세상의 거래처럼 신앙도 주고 받고 이해관계로 해결합니다.
11절,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 목사도 교인도 서로 좋고 은혜롭다 하나 모두 자기 위해 타협합니다.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 교회가 가족처럼 지낸다면 모두 성공한 줄 압니다.
12절,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교회와 예배와 목회자를 깍듯이 섬기지만 자기를 위한 자기 방식입니다.
13절,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착각은 자유입니다.
구약은 이야기를 많이 기록했고 신약은 곳곳에 신앙의 이치를 간단히 요약해 놓았습니다. 구약을 읽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어려우면 구약을 자꾸 많이 읽다 보면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흐름 파악은 했지만 그 뜻이 애매할 때는 신약에 정답, 요점, 핵심이 기록 되어 있으니 찾아 보면 됩니다. 또 신약의 간단한 표현이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면 구약의 이야기로 펼쳐 보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읽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구약을 맞춰 봐도 잘 모르겠다면 그 때는 오늘의 우리 상황을 가지고 성경과 나란히 비교를 해 보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의 어떤 교인의 만사를 모두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불이 붙어 펄펄 뛰는 사람, 또는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 김현봉 백영희처럼 정말 말씀과 능력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 그 시기 그 교인들은 모세나 여호수아 시기처럼 무조건 순종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일반 시대 일반 교회 일반적인 우리들은 거의 다 사사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그래도 우리의 마음이 대개 신앙적입니다. 또 성경을 읽는 우리의 자세도 건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애굽기를 알고 여호수아를 읽었는데 막상 사사기가 시작 되니 강퍅과 회개와 복과 징계가 이어지는데 너무 반복이 심하니 그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참 강퍅하다고 속에서 욕이 나옵니다. 그 인간들이 당해도 싸다고.. 그런데 그들이? 바로 그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질문하신 '교인'께서 그런 분이고, 답변 하는 '담당'도 그런 인간입니다.
도저히 말도 되지 않을, 믿는 가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며, 귀신과 제사장을 함께 뒤섞어 가며 횡설수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단들이 세상 정치를 한다고 광화문에서 설치고 전국은 박수를 치고 또 그들이 얼마 전까지는 그 반대쪽에 앞잡이가 되어 민주와 인권을 위해서 데모한다고 설쳤던 분들입니다. 교회의 주일 예배가 노래방인지 찬송인지 뒤섞였고, 교회가 세상 사교 모임인지 예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만큼 뒤섞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가정 단위로 보면 신앙에 필요해서 결혼을 하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아이를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 가고, 그들이 평생 교회에 충성하고 신앙으로 진실하게 산다면 이 것이 출애굽한 이유가 되고 가나안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를 마련해서 주일을 끼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세상의 음악과 세상의 유행에 따라 정신 없이 살고 있습니다.
미가의 집을 이리 보면 신앙에 진실한데 저리 보면 귀신 무당 굿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지파가 이 가정을 휩쓸고 갑니다. 미가의 집이 작은 도둑이면 이 집을 털고 간 단 자손들은 강도떼들입니다. 그런데 참 가슴 아프게도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되는 삿18:30에서야 이 미가 집에 제사장의 이름이 나옵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떼강도 단 지파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따라 나선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주 때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렇다면 시기적으로 사사기의 초기입니다. 어느 인물 어느 지경의 어떤 신앙이라도 바로 내일, 바로 그 집안의 안방에서 어떤 귀신이 나올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2:12,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마태복음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 함께 끝까지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되 외부나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내면 우리 자신을 먼저 단속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에 들어 올 때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가 지도자였고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나누고 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사사시대가 진행 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나라가 타락하면 이방 민족에게 핍박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사사를 보내 구원을 합니다. 살 만하면 또 죄를 짓고 또 핍박을 받으면 부르짖고 다시 사사를 보내며 옷니엘 에훗 삼갈로 이어지다가 사사기 13장에 삼손이 나타났고 16장까지 이어집니다.
(사사기 17장)
* 사사기 전체의 흐름
사사시대의 사사들의 이어 지는 기록은 시대의 순서를 따라 1~16장까지 진행이 되었고 17장부터는 시대 순서가 아니라 사사시대에 있었던 사건 2 개를 기록합니다. 질문하신 미가 집의 사건이 17~18장에 기록되었고, 베냐민 지파가 멸족을 당할 뻔한 기록이 19~21장까지 이어지며 사사기 기록이 끝납니다.
* 미가 사건의 경우
사사 시대는 사무엘까지로 보면 약 4백 년이고 성경의 사사기로 잡으면 약 350여 년입니다. 이 기간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왕 이상의 인물이 없었고 또 사울 이후의 왕정 국가도 아니었으니 삿21:15에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350여 년 정도의 사사기를 시대 별로 흐름을 기록해 주시면서 미가의 사건 하나를 추가함으로 사사 시대의 일반적인 성향, 내면, 상황, 분석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신 17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미가 집의 제사장)
* 미가 가정
1절,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 불신 가정이 아니라 믿는 가정의 일입니다.
2절,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 돈 문제로 아들을 저주했습니다.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 만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절,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 다른 신을 생활 속에 예사로 섬겼습니다.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 너무 큰 일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사기의 모두가 그랬습니다.
4절,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 살 만하면 또 세상 신을 섬깁니다. 오늘 우리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신당이 있으므로 - 모세와 여호수아 때는 오직 하나님이었으니 사람마다 교회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5절,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 신앙과 세상을 섞는 것이 평소 우리들입니다.
한 개인이 자기의 생각과 생활을 송두리째 뺏길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아 믿는 데만 전력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모세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때와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않고 대개는 평온한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잘 보이지 않으나 이미 주신 말씀이 있으니 자기가 자기를 말씀으로 잘 붙들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세상과 섞여 살다 보니 평일에는 세상 사람 하는 짓을 다하고 주일에 교회 와서는 믿는 사람으로 또 충실합니다. '에봇' '제사장'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신당' '신상' '드라빔'은 불신 세계의 절대 가치를 말합니다. 믿는 사람도 평소 진학과 취업과 아파트에 인생 전부를 걸고 전력하는 모습이 불신자와 사실 같은 정도면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시대 그 세상과 사실 다를 바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의 미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다 그러했고 그 때는 구약이어서 눈에 보이는 귀신을 함께 섬겼다면 오늘은 신령한 신약 시대여서 굳이 절에 가지 않고 신상을 따로 모셔 놓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전력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과 말씀인가, 아니면 교회와 예배 때는 그렇고 또 이웃과 친구와 주변 사람이 함께 공부하고 취업 시험을 준비하고 아파트에 마음을 가질 때는 실제 꼭 같은 우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 속에 특별한 은혜를 받는 순간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지도하듯이 온전히 신앙에 전력하는데 일반적일 때는, 또는 자기 교회 목회자가 시대적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일반 목회자라면 그 교회 전체가 주일도 예사로 없애 버려 현재 거의 모든 교회의 모든 주일이 주일과 휴일이 뒤섞여 주일에 예배 마치고 식당을 가는 일이 흔할 듯합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 미가 가정의 제사장
7절, 유다 베들레헴에.. 레위인으로서 -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는 레위인은 전국에 분산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8절,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 주신 위치를 지켜야 하는데 먹고 살기 위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9절,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 개척도 목회자가 된 이유도 선교까지도 먹고 살기 위한 생업입니다.
10절,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 교인이 교회와 목회자를 택할 때 자기를 위해 비품처럼 마련합니다.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벌과 식물을 주리라 - 세상의 거래처럼 신앙도 주고 받고 이해관계로 해결합니다.
11절,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 목사도 교인도 서로 좋고 은혜롭다 하나 모두 자기 위해 타협합니다.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 교회가 가족처럼 지낸다면 모두 성공한 줄 압니다.
12절,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 교회와 예배와 목회자를 깍듯이 섬기지만 자기를 위한 자기 방식입니다.
13절,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 착각은 자유입니다.
구약은 이야기를 많이 기록했고 신약은 곳곳에 신앙의 이치를 간단히 요약해 놓았습니다. 구약을 읽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어려우면 구약을 자꾸 많이 읽다 보면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흐름 파악은 했지만 그 뜻이 애매할 때는 신약에 정답, 요점, 핵심이 기록 되어 있으니 찾아 보면 됩니다. 또 신약의 간단한 표현이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면 구약의 이야기로 펼쳐 보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읽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구약을 맞춰 봐도 잘 모르겠다면 그 때는 오늘의 우리 상황을 가지고 성경과 나란히 비교를 해 보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의 어떤 교인의 만사를 모두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불이 붙어 펄펄 뛰는 사람, 또는 주기철 주남선 손양원 김현봉 백영희처럼 정말 말씀과 능력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 그 시기 그 교인들은 모세나 여호수아 시기처럼 무조건 순종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일반 시대 일반 교회 일반적인 우리들은 거의 다 사사 시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그래도 우리의 마음이 대개 신앙적입니다. 또 성경을 읽는 우리의 자세도 건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애굽기를 알고 여호수아를 읽었는데 막상 사사기가 시작 되니 강퍅과 회개와 복과 징계가 이어지는데 너무 반복이 심하니 그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참 강퍅하다고 속에서 욕이 나옵니다. 그 인간들이 당해도 싸다고.. 그런데 그들이? 바로 그 말씀을 읽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질문하신 '교인'께서 그런 분이고, 답변 하는 '담당'도 그런 인간입니다.
도저히 말도 되지 않을, 믿는 가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며, 귀신과 제사장을 함께 뒤섞어 가며 횡설수설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단들이 세상 정치를 한다고 광화문에서 설치고 전국은 박수를 치고 또 그들이 얼마 전까지는 그 반대쪽에 앞잡이가 되어 민주와 인권을 위해서 데모한다고 설쳤던 분들입니다. 교회의 주일 예배가 노래방인지 찬송인지 뒤섞였고, 교회가 세상 사교 모임인지 예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만큼 뒤섞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가정 단위로 보면 신앙에 필요해서 결혼을 하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아이를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길러 가고, 그들이 평생 교회에 충성하고 신앙으로 진실하게 산다면 이 것이 출애굽한 이유가 되고 가나안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를 마련해서 주일을 끼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세상의 음악과 세상의 유행에 따라 정신 없이 살고 있습니다.
미가의 집을 이리 보면 신앙에 진실한데 저리 보면 귀신 무당 굿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 지파가 이 가정을 휩쓸고 갑니다. 미가의 집이 작은 도둑이면 이 집을 털고 간 단 자손들은 강도떼들입니다. 그런데 참 가슴 아프게도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되는 삿18:30에서야 이 미가 집에 제사장의 이름이 나옵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떼강도 단 지파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따라 나선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손주 때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그렇다면 시기적으로 사사기의 초기입니다. 어느 인물 어느 지경의 어떤 신앙이라도 바로 내일, 바로 그 집안의 안방에서 어떤 귀신이 나올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2:12,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마태복음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 함께 끝까지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되 외부나 먼 곳이 아니라 우리 내면 우리 자신을 먼저 단속하는 것이 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