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회 참여 문제, 개혁주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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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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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9 12:52
교회의 사회 참여는 아주 대세가 되었습니다. 개혁주의의 대표적 인물을 통해 제기되는 가장 일반적인 이론을 소개합니다. 총공회의 입장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1900년 전후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로 유명한 바빙크와 카이퍼의 입장을 소개한다. 이들의 입장은, 사회가 급속하게 세속화하여 도덕적 혼란까지 극심한 상황에서 개혁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세상 모든 곳에 미치기 때문에 교인은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실천을 해야 한다. 부름 받았다고 보았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소개하면서 종교 개혁이란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정치와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칼빈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상이 급격하게 자유주의로 나가는 것을 비판했다. 개혁주의 신앙으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카이퍼는, 국가와 교회는 다르지만 국가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따라 설립되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모든 것이 부패되었으나, 일반 은총으로 세상의 질서만은 유지를 시키기 위해 국가를 주셨다. 국가의 의미와 존재 목적이 사회를 정의롭게 그리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좀 넓게 본다면 국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 교육 경제는 물론 정치에 이르기까지 질서를 잡고 정의를 실현하며 악을 눌러서 선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그렇게 만들고 운용되어야 한다. 국가가 구원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세상대로 돌아 가게 하는데 하나님이 사용하는 섭리의 도구이다.
카이퍼는 만일 국가가 타락하여 부패와 폭정과 혼란을 야기하면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을 벗어난 것이니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버린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교회의 복음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고,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 서게 된다. 이런 시대가 되면 교인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를 박해할 때 저항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불의하고 혼란스러워지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복음에 방해 될 때만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의롭고 평화롭지 못할 경우에도 교인이 나서야 한다. 카이퍼는 평소 그렇게 말을 했고 실제로 스스로 언론 일도 했고 정치가로 살았다. 1901년에는 네덜란드 수상이 되어 신앙의 가치로 정책을 폈다. 다만 카이퍼는 '교회 기관과 유기체'라는 구분을 통해 교회와 성직자는 복음운동만 하고 교회가 직접 정치나 사회 문제에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그대신 교인은 자기 위치에서 나설 수 있다고 봤다.
교회 단위가 아니라 교인이 각자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에게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생활을 보여 줘야 한다.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세상에서 교인이 세상을 외면하고 신앙만 전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목회자와 교회는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 교인을 가르치고, 그 교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믿는 사람으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다.
1900년 전후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신학자로 유명한 바빙크와 카이퍼의 입장을 소개한다. 이들의 입장은, 사회가 급속하게 세속화하여 도덕적 혼란까지 극심한 상황에서 개혁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세상 모든 곳에 미치기 때문에 교인은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실천을 해야 한다. 부름 받았다고 보았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소개하면서 종교 개혁이란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정치와 사회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칼빈은 프랑스 혁명 이후 세상이 급격하게 자유주의로 나가는 것을 비판했다. 개혁주의 신앙으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카이퍼는, 국가와 교회는 다르지만 국가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따라 설립되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모든 것이 부패되었으나, 일반 은총으로 세상의 질서만은 유지를 시키기 위해 국가를 주셨다. 국가의 의미와 존재 목적이 사회를 정의롭게 그리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좀 넓게 본다면 국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 교육 경제는 물론 정치에 이르기까지 질서를 잡고 정의를 실현하며 악을 눌러서 선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그렇게 만들고 운용되어야 한다. 국가가 구원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세상을 세상대로 돌아 가게 하는데 하나님이 사용하는 섭리의 도구이다.
카이퍼는 만일 국가가 타락하여 부패와 폭정과 혼란을 야기하면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을 벗어난 것이니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버린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교회의 복음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고,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 서게 된다. 이런 시대가 되면 교인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를 박해할 때 저항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불의하고 혼란스러워지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복음에 방해 될 때만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의롭고 평화롭지 못할 경우에도 교인이 나서야 한다. 카이퍼는 평소 그렇게 말을 했고 실제로 스스로 언론 일도 했고 정치가로 살았다. 1901년에는 네덜란드 수상이 되어 신앙의 가치로 정책을 폈다. 다만 카이퍼는 '교회 기관과 유기체'라는 구분을 통해 교회와 성직자는 복음운동만 하고 교회가 직접 정치나 사회 문제에 나설 수 없다고 했다. 그대신 교인은 자기 위치에서 나설 수 있다고 봤다.
교회 단위가 아니라 교인이 각자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에게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생활을 보여 줘야 한다.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사는 세상에서 교인이 세상을 외면하고 신앙만 전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목회자와 교회는 강단에서 설교를 통해 교인을 가르치고, 그 교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믿는 사람으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다.
1. 전반적으로
공회가 추구하는 정신과 같습니다. 교회나 교회의 직책을 가지고 교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안 됩니다. 시청에 갔을 때 교회 건이고 목사인 줄 알기 때문에 직원이 '목사님'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사회 생활에 일반적인 호칭일 뿐입니다. 선거나 사회 활동의 곳곳에 교회 이름과 교회 직책을 표시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 대신 개인이 학생으로, 가족으로, 직장인으로, 마을 주민으로, 국민으로 활동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의 결정입니다. 목사처럼 교회 일만 하겠다고 조건이 걸린 사람은 생존 생활에 관련 된 것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청소나 관리인은 교회가 직장이지만 일반 직장과 같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회직은 개인 활동을 조심해야 하고, 교회의 관리직은 보다 자유롭다 하겠습니다.
2. 항상 오해가 되는 것은
바빙크와 카이퍼 같은 인물들이 세상에 나가서 활동을 했다는 사례와 그들이 가르친 글 때문입니다. 서구 사회는 국가에서 국교를 정하든 말든 오랜 세월 기독교 사회입니다. 교회와 신앙과 가정과 개인을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야 우리 나라도 좀 달라 졌지만 역사적으로 불교와 유교가 생활에 워낙 깊게 배어 있어 국가 행사나 사회 생활에 별 뜻도 없이 그냥 섞여 있었습니다. 칼빈의 제네바나 당시 유럽은 물론 카이퍼나 바빙크라는 1백 년 전의 인물들이 살던 그들의 사회와 국가는 정치학이나 법학에서는 국교가 기독교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의 사회와 그들의 국가는 맡겨 놓는 것이 신앙의 자유성에서 옳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불교의 나라였다가 유교가 점령을 했고 이후 종교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이 나라 백성과 제도와 역사와 사회가 각각 다른 종교가 있고 종교 반대자도 있습니다. 교회가 주변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골목에 나가서 스피커로 전도를 하려면 사회의 소음법은 지켜야 합니다. 동성법을 막으려면 교인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는 의사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얼마든지 함께 따라 다닐 수도 있고 대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나 교회 직책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면 교회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개입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순간 다른 종교나 종교 반대론자들이 교회를 억압할 때 억울하다 말하면 곤란합니다. 내가 떠들 자유가 있다면 남들도 떠들 자유가 있는 법입니다.
3. 평화와 정의라는 단어
교회가 국가의 폭정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은총을 떠난 것이니 이런 때는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하고, 또 공산 혁명이나 난민이나 대량 살상의 전쟁 등에 대해서는 막고 나서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단어의 정의와 범위를 세상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모든 식물은 햇볕을 먼저 받고 다른 주변을 억누르기 위해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대자연의 질서라고 합니다. 토끼들이 풀을 아삭아삭 뜯어 먹는 것을 우리는 아름답다 합니다. 그러나 식물들은 이를 아파합니다. 사자 늑대라는 맹수가 사냥에 나선다면 우리는 타락한 세상의 피치 못할 자연으로 봐야 하듯이 국가 사이에 전쟁을 하고 또 기업이 작은 월급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유조선이 좌초되어 바다가 오염되는 것도 타락한 세상의 본질인데 이를 두고 교회나 목회자가 나설 일은 아닙니다.
중국은 아시아 전부를 다 지배해야 세상이 평화롭고 조화로워 진다면 그 일을 추진합니다. 평양은 접하는 나라들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노조 운동하는 사람들도 공의를 하수처럼 흘리자며 성경을 먼저 꺼내들고 뿌려 댑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교회 주변에게 '결과적으로' 뭔가 더 나은 존재가 됩니다. 당장에 세상이 좋도록 해 주려면 모든 교회가 재산을 다 팔아서 그들에게 줘 버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됩니다.
공회가 추구하는 정신과 같습니다. 교회나 교회의 직책을 가지고 교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안 됩니다. 시청에 갔을 때 교회 건이고 목사인 줄 알기 때문에 직원이 '목사님'이라고 부른다면 이는 사회 생활에 일반적인 호칭일 뿐입니다. 선거나 사회 활동의 곳곳에 교회 이름과 교회 직책을 표시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 대신 개인이 학생으로, 가족으로, 직장인으로, 마을 주민으로, 국민으로 활동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의 결정입니다. 목사처럼 교회 일만 하겠다고 조건이 걸린 사람은 생존 생활에 관련 된 것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청소나 관리인은 교회가 직장이지만 일반 직장과 같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목회직은 개인 활동을 조심해야 하고, 교회의 관리직은 보다 자유롭다 하겠습니다.
2. 항상 오해가 되는 것은
바빙크와 카이퍼 같은 인물들이 세상에 나가서 활동을 했다는 사례와 그들이 가르친 글 때문입니다. 서구 사회는 국가에서 국교를 정하든 말든 오랜 세월 기독교 사회입니다. 교회와 신앙과 가정과 개인을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야 우리 나라도 좀 달라 졌지만 역사적으로 불교와 유교가 생활에 워낙 깊게 배어 있어 국가 행사나 사회 생활에 별 뜻도 없이 그냥 섞여 있었습니다. 칼빈의 제네바나 당시 유럽은 물론 카이퍼나 바빙크라는 1백 년 전의 인물들이 살던 그들의 사회와 국가는 정치학이나 법학에서는 국교가 기독교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그들의 사회와 그들의 국가는 맡겨 놓는 것이 신앙의 자유성에서 옳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불교의 나라였다가 유교가 점령을 했고 이후 종교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이 나라 백성과 제도와 역사와 사회가 각각 다른 종교가 있고 종교 반대자도 있습니다. 교회가 주변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골목에 나가서 스피커로 전도를 하려면 사회의 소음법은 지켜야 합니다. 동성법을 막으려면 교인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는 의사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얼마든지 함께 따라 다닐 수도 있고 대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나 교회 직책 이름으로 그렇게 한다면 교회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개입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순간 다른 종교나 종교 반대론자들이 교회를 억압할 때 억울하다 말하면 곤란합니다. 내가 떠들 자유가 있다면 남들도 떠들 자유가 있는 법입니다.
3. 평화와 정의라는 단어
교회가 국가의 폭정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 은총을 떠난 것이니 이런 때는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하고, 또 공산 혁명이나 난민이나 대량 살상의 전쟁 등에 대해서는 막고 나서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단어의 정의와 범위를 세상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모든 식물은 햇볕을 먼저 받고 다른 주변을 억누르기 위해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대자연의 질서라고 합니다. 토끼들이 풀을 아삭아삭 뜯어 먹는 것을 우리는 아름답다 합니다. 그러나 식물들은 이를 아파합니다. 사자 늑대라는 맹수가 사냥에 나선다면 우리는 타락한 세상의 피치 못할 자연으로 봐야 하듯이 국가 사이에 전쟁을 하고 또 기업이 작은 월급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유조선이 좌초되어 바다가 오염되는 것도 타락한 세상의 본질인데 이를 두고 교회나 목회자가 나설 일은 아닙니다.
중국은 아시아 전부를 다 지배해야 세상이 평화롭고 조화로워 진다면 그 일을 추진합니다. 평양은 접하는 나라들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노조 운동하는 사람들도 공의를 하수처럼 흘리자며 성경을 먼저 꺼내들고 뿌려 댑니다. 교회는 교회다울 때 교회 주변에게 '결과적으로' 뭔가 더 나은 존재가 됩니다. 당장에 세상이 좋도록 해 주려면 모든 교회가 재산을 다 팔아서 그들에게 줘 버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