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단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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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A
3
1
2025.03.08 10:16
1열왕기에서, 채찍.전갈 .빈장 .후비 다른성경번역를 열람하여 보고 개정성경도 국어사전도 서로가 다르게 표현 하고 있어 말씀드립니다 오타가 있으면 이해하시고
2성경를많이 읽어라 하시고 또많이읽어면 교만사람이 된다고 하니그 차이점은 대강은 알게는데
먼저 읽고 묵상하여 말씀 꺠닫는대 힘쓰라고 하면 좋은데 읽지말아라 하는것 같아
성경읽는데 힘이 주어 지지 않 습니다 또 읽어 갈수록 의문점이 생겨 알여고 여려성경를 대조 하고 국어 사전도 보고 하는데(300독)이시점에서 어떦게 믿음에 ?지면에 표헌이 되지 않습니다
1. 성경의 번역
답변자는 개역 개정을 제대로 번역된 성경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국어사전도, 주석도, 개역 개정도 참고는 할 수 있으나 ‘성경’으로는 지금까지 읽어온 ‘개역 성경’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개역 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질문하신 단어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또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알아야 하므로 사람의 언어로 기록해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사람의 글도 권위 있는 사람의 글은, 아는 사람은 함부로 쉽게 손을 대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화가의 그림을 초등학교 미술을 배우는 학생이 제 수준에서 잘못되었다고 손을 대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림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전문 서적을 함부로 손을 대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물며 믿는 사람의 영원을 두고 영생과 영멸의 길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이 번역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필요하면 번역도 하고 인쇄도 해야 하지만, 참으로 조심스럽게 신중해야 합니다. 고대에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은 성경을 적어 나가다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때마다 그때까지 적던 붓을 씻어서 깨끗한 붓으로 적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성경에 대해서 조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과학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인간의 모습은 타락의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한 만큼 인간의 인성도, 도덕성도, 종교성도 향상이 되어 더 많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은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도덕은 바닥을 치고 있고 종교성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극과 극으로 갈라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세상이 그런 모습인 것과 같이 기독교의 신앙 또한 그렇게 보입니다. 세상이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도덕이 바닥을 치고 종교성이 점점 없어지더라도 기독자의 신앙은 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하나님과 천국을 향하여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 되어 기독교 신앙도 갈수록 세상과 같아지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교회는 많은데 교회다운 교회는 드물고, 믿는 사람은 많은데 참 믿는 사람은 보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어두워진 시대에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밝고 깨끗한 상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성경 번역을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성경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함부로 번역하고 있으니 번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이 답변자의 생각입니다.
2. 성경 읽기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은 일단 좋은 것입니다. 다만, 읽으면서 읽는 그 말씀대로 실행하여 실제 생활과 자체가 읽는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가야 하는데, 읽어서 아는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지식만 많아지는 것을 조심시키는 취지로 ‘교만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하신 그대로입니다. 필요하면 다른 서적들을 참고할 수 있지만, 최대한 성경은 성경에서 답을 찾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고 성경적입니다.
읽어 갈수록, 알아갈수록 의문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돋보기로 보면 더 잘 보이고, 현미경으로 보면 더 세밀하게 보입니다. 보이면 알게 되는 동시에 처음 보는 것이 보이면 그것이 무엇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니 의문은 당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면서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인데 역시 문제는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한입니다. 성경 내용 자체는 66권의 1,75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으나 그 성경 진리 속에는 무한한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재해 계십니다. 성경에는 빠진 것이 없다고 하셨고,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성경에는 영계와 물질계, 하나님과 피조물, 모든 존재와 활동과 과정과 결과 전부가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한입니다. 그래서 읽고 실행하여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 또한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천국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유한하고 하나님과 천국과 진리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읽고 또 읽고, 읽어서 아는 대로 실행하고 또 실행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의 구원을 다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가 평생을 두고 노력할 일입니다.
답변자는 개역 개정을 제대로 번역된 성경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국어사전도, 주석도, 개역 개정도 참고는 할 수 있으나 ‘성경’으로는 지금까지 읽어온 ‘개역 성경’을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개역 개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질문하신 단어들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또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사람이 알아야 하므로 사람의 언어로 기록해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사람의 글도 권위 있는 사람의 글은, 아는 사람은 함부로 쉽게 손을 대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화가의 그림을 초등학교 미술을 배우는 학생이 제 수준에서 잘못되었다고 손을 대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림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전문 서적을 함부로 손을 대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물며 믿는 사람의 영원을 두고 영생과 영멸의 길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이 번역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필요하면 번역도 하고 인쇄도 해야 하지만, 참으로 조심스럽게 신중해야 합니다. 고대에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은 성경을 적어 나가다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그때마다 그때까지 적던 붓을 씻어서 깨끗한 붓으로 적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성경에 대해서 조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과학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인간의 모습은 타락의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한 만큼 인간의 인성도, 도덕성도, 종교성도 향상이 되어 더 많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은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도덕은 바닥을 치고 있고 종교성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극과 극으로 갈라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세상이 그런 모습인 것과 같이 기독교의 신앙 또한 그렇게 보입니다. 세상이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도덕이 바닥을 치고 종교성이 점점 없어지더라도 기독자의 신앙은 갈수록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하나님과 천국을 향하여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이 되어 기독교 신앙도 갈수록 세상과 같아지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교회는 많은데 교회다운 교회는 드물고, 믿는 사람은 많은데 참 믿는 사람은 보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어두워진 시대에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밝고 깨끗한 상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성경 번역을 가장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성경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함부로 번역하고 있으니 번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이 답변자의 생각입니다.
2. 성경 읽기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은 일단 좋은 것입니다. 다만, 읽으면서 읽는 그 말씀대로 실행하여 실제 생활과 자체가 읽는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가야 하는데, 읽어서 아는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지식만 많아지는 것을 조심시키는 취지로 ‘교만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하신 그대로입니다. 필요하면 다른 서적들을 참고할 수 있지만, 최대한 성경은 성경에서 답을 찾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고 성경적입니다.
읽어 갈수록, 알아갈수록 의문점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돋보기로 보면 더 잘 보이고, 현미경으로 보면 더 세밀하게 보입니다. 보이면 알게 되는 동시에 처음 보는 것이 보이면 그것이 무엇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니 의문은 당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면서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인데 역시 문제는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한입니다. 성경 내용 자체는 66권의 1,75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으나 그 성경 진리 속에는 무한한 하나님이신 성령이 내재해 계십니다. 성경에는 빠진 것이 없다고 하셨고,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성경에는 영계와 물질계, 하나님과 피조물, 모든 존재와 활동과 과정과 결과 전부가 다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한입니다. 그래서 읽고 실행하여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 또한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천국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유한하고 하나님과 천국과 진리는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읽고 또 읽고, 읽어서 아는 대로 실행하고 또 실행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의 구원을 다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가 평생을 두고 노력할 일입니다.
1. 채찍은 그냥 가죽 끈입니다.
행22: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줄의 재료가 많으나 고대 사회는 가죽이 만사 제일 흔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 가죽에 쇠를 박았는지는 성경에 기록 되지 않은 이상 '신학'이 됩니다. 혹 쇠를 박았다고 말을 하면 그렇겠다고 읽으면 되는 정도이지 그렇다고 단정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오늘의 형벌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다고 모두들 말합니다.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형벌이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응징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좀 강하게 혹독하게 다뤘겠다고 보면 맞습니다. 다만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으면 단정은 피해야 합니다. 묶는 것을 가죽으로 했다면 때리는 줄도 기본적으로 가죽입니다.
2. 전갈은
계9:5,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왕상12:11,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이런 말씀으로 비교해 볼 때 '전갈'이란 채찍보다 더욱 아프고 혹독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나라 사슴은 강아지나 염소 정도입니다. 북극의 사슴은 소보다 무섭고 큽니다. 따라서 성경의 '전갈'은 한국의 전갈로만 비교하면 곤란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성경의 표현을 항상 먼저 생각하면 좋습니다.
3. 빈장과 후비
왕상11:3,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이 말씀에서 왕의 여자를 나눌 때 '후비'가 앞에 있고 '빈장'이 뒤에 있습니다.
황후 왕후... 이렇게 붙일 때 '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황비 왕비... 이렇게 붙일 때 '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후 + 비 > 후비가 됩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왕의 이름이 여러 가지입니다. 보통 왕보다 대왕이 더 높고 황제가 더 높습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하다 보니 우리는 성경에서 '후비'와 '빈장'을 왕상11:3에서 읽었으니 왕의 여자 중에서 순서로 '후' '비' '빈장'이란 후비 다음에 왔으니 왕의 아내들 중에서 순서대로 가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부터 왕의 아내들은 많았습니다. 우리는 순서대로 나오면 그렇게만 알지만 그 아내들의 등급과 수준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 중국과 한국의 경우는 복잡하게 층층이 이름을 붙입니다. 서양은 그냥 대충 붙입니다. 중동과 이스라엘은 서양처럼 그냥 여러 아내들을 거느리면서 그렇게 세세히 나누지는 않은 듯합니다.
따라서 '후비'는 아내 정도로, '빈장'은 첩 정도로 알면 되겠습니다. 첩이라는 말을 왕에게 사용할 때는 후궁이라고 합니다.
행22: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줄의 재료가 많으나 고대 사회는 가죽이 만사 제일 흔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 가죽에 쇠를 박았는지는 성경에 기록 되지 않은 이상 '신학'이 됩니다. 혹 쇠를 박았다고 말을 하면 그렇겠다고 읽으면 되는 정도이지 그렇다고 단정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오늘의 형벌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다고 모두들 말합니다.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형벌이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응징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좀 강하게 혹독하게 다뤘겠다고 보면 맞습니다. 다만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으면 단정은 피해야 합니다. 묶는 것을 가죽으로 했다면 때리는 줄도 기본적으로 가죽입니다.
2. 전갈은
계9:5,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왕상12:11,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이런 말씀으로 비교해 볼 때 '전갈'이란 채찍보다 더욱 아프고 혹독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나라 사슴은 강아지나 염소 정도입니다. 북극의 사슴은 소보다 무섭고 큽니다. 따라서 성경의 '전갈'은 한국의 전갈로만 비교하면 곤란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성경의 표현을 항상 먼저 생각하면 좋습니다.
3. 빈장과 후비
왕상11:3,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이 말씀에서 왕의 여자를 나눌 때 '후비'가 앞에 있고 '빈장'이 뒤에 있습니다.
황후 왕후... 이렇게 붙일 때 '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황비 왕비... 이렇게 붙일 때 '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후 + 비 > 후비가 됩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왕의 이름이 여러 가지입니다. 보통 왕보다 대왕이 더 높고 황제가 더 높습니다. 그러나 워낙 다양하다 보니 우리는 성경에서 '후비'와 '빈장'을 왕상11:3에서 읽었으니 왕의 여자 중에서 순서로 '후' '비' '빈장'이란 후비 다음에 왔으니 왕의 아내들 중에서 순서대로 가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부터 왕의 아내들은 많았습니다. 우리는 순서대로 나오면 그렇게만 알지만 그 아내들의 등급과 수준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 중국과 한국의 경우는 복잡하게 층층이 이름을 붙입니다. 서양은 그냥 대충 붙입니다. 중동과 이스라엘은 서양처럼 그냥 여러 아내들을 거느리면서 그렇게 세세히 나누지는 않은 듯합니다.
따라서 '후비'는 아내 정도로, '빈장'은 첩 정도로 알면 되겠습니다. 첩이라는 말을 왕에게 사용할 때는 후궁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