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릴 때 사용하는 이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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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릴 때 사용하는 이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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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석목사 2 1

글을 올릴 때 본명을 사용해야 합니까? 아니면 다른 명칭으로 사용해야 합니까?

담당 2025.02.28 04:08  
질문하는 분이 자기 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름을 적어야 하는 경우)
1. 신앙의 자세는 진실이라야 합니다.
요3:1에서 니고데모가 질문을 할 때 밤에 몰래 왔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손해를 볼까 싶어 그랬습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유명한 교파에서도 선생이었습니다. 남에게 묻는 것은 선생으로서 창피한 일로 생각했고 또 예수님이 위험 인물로 기피 대상이어서 자기도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담대하게 아무데서 아무 것이라도 물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실명으로 묻는 것 때문에 나 외에 출석하는 교회나 가족이나 다른 분에게 곤란하면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꼭 알아야 하겠다는 것을 진지하게 진실을 가지고 묻는 것이 중요하나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데 나 때문에 연관 되는 것은 타인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2. 모두에게 도움 됩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순간부터 자기와 함께 주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는 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질문자가 누군지 알려지면, 대략 짐작이라도 된다면 물어 보시는 내용의 배경을 파악할 때 도움이 됩니다. 주교생이 물어 보면 주교생이 저런 것도 묻는구나 라고 다른 사람에게 자극도 되고 촉구도 됩니다. 또 대학생이 시시한 것을 물어 보면 아직도 저 것을 몰랐구나 참고도 됩니다. 또 신학자가 물어 보면 사람이 다 아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저런 분도 그러니 나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물어야 하겠다고 용기를 북돋게 됩니다.

한국의 대학과 신학교의 교수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감추는 성향이 너무 극단적입니다. 미국의 신학교에서 질문을 해보면 교수들이 애매하거나 모를 때는 '몰랐다' '알아 보고 다시 알려 주겠다' '연구해 보자'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그 나라는 발전을 하는 것이고 그 나라보다 우수한 우리 나라의 인재들이 어느 한계쯤 가다 멈추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백 목사님은 세계 10대 교회에 국내 5대 교회, 여기에다 합동교단과 침례교단에서 성경과 설교의 최고라는 학자들이 '칼빈과 백영희'를 함께 놓으라며 소개하던 시절에도 설교 중 실수가 있으면 다음 설교 때 직접 공개적으로 정정했고, 평소 주교생 하나에게도 배우는 노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그 자세마저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이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백 목사님은 고신 시절, 당시 고려신학교에는 훗날 한국 교회의 정통 보수계의 중심이 될 인물들이 대량으로 있었는데 누구에게든지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도 고분고분 물어 보는 자세와 횟수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원래 잘 알거나 배운 것이 많아서 위대해 진 것이 아니라, 초등 5학년에 중퇴한 자신을 평생 자랑하고 배웠습니다.

현재 이 곳의 답변을 책임 진 연구부장은 백 목사님 생전에 목사님께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인물입니다. 1등 2등 3등 중에서 1등이 아니라 연구 부장은 예배가 마치면 그 시간에 궁금한 것을 출입구 밖에 섰다가 바로 질문했고 평소 업무 중에 궁금한 것도 메모했다가 질문을 했는데 그 큰 교회에서 수도 없는 이들이 줄을 서서 물었어야 하는데도 질문을 한 사람은 거의 그 1명뿐이었습니다. 모두가 아는 척했으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서부교회 출신도 아닌데도 외부에서 온 인물이 부지런히 여쭙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혼자 아는 것은 가르쳐 주신 분에게 마치 횡령한 것처럼 죄책감을 느껴 이 곳을 개설하고 아는 대로 성실하게 안내해 왔습니다. 이 것이 이 연구소의 개설 이유고 사명입니다. 그 과정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얼마나 잘 안다고 자기를 선전하느냐는 질책이고 자책인데, 여기서 안내하는 것은 백 목사님께 배우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닫고 가르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입니다. 연구 부장과 또 함께 하는 직원들이 원래 학벌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고, 또 안다는 것은 다 틀렸던 사람들입니다. 배웠고 알게 되었고, 이후에 어떤 질문이든 최선을 다해 먼저 받아 가진 것을 전달할 책임을 사명으로 가졌을 뿐입니다.

총공회에는 이 곳보다 먼저 알았고 더 많이 알았고 심지어 여기 있는 이들이 주일학교 학생일 때부터 목회자로서 가르친 분들이나 선생님을 했던 분들이 아직도 현직에 계신 분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가르치거나 안내를 하다가 하나라도 실수가 나오면 창피한 일을 당할까 싶어 자존심 때문에 함구해 버리는 경우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자신이 깨달은 것이 너무 소중해서 혼자만 알고 있어야 희소성의 원칙으로 자기가 높아 지고 경쟁력을 가지기 때문에 영업 비밀이라 숨기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딱 1명 전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 놓고 늘 두렵고 떨기 때문에 바깥 대화를 하지 않아서 그런 분도 계시기는 합니다.


3.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 하나라도 배우고 고치고 가는 것만 세상을 사는 이유입니다. 신학자 목회자 어른 선생님 등이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아끼려다 숨어서 배우다 보면 평생 늦어 집니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이 자기 속에 자기를 죄 짓게 하는 옛사람인데 그 옛사람을 공개해 버리는 것이 옛사람을 죽일 때 가장 빠릅니다. 또 이름을 공개하면 진지한 자세 때문에 빨리 배울 수 있습니다.



(실명을 적지 않는 경우)
1.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
함께 도적질을 했고 친구는 공개하기 싫은데 내가 죄를 공개하여 친구가 잡히거나 창피하게 된다면 나의 자유로 남의 신앙과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2.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때문
남편 몰래 연보를 했는데 남편이 함께 보거나 말이 전달 될 수 있는 경우, 가정 불화가 날 수 있습니다. 뒷 감당에 자신이 있으면 공개해도 되지만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자기에게 주신 실력 형편 신앙의 단계가 다르고 수준이 각각 다른데,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마치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흉내를 낸다면 이는 외식이며 교만이 됩니다.

3. 답변하는 담당들이 비실명인 것
1998년부터 이 곳은 답변자가 실명으로 2018년까지 수만 개의 글을 적었는데, 그 글을 가지고 수백 건으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이 곳을 폐쇄 시키려고 혈안이 된 경우가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진실' 때문에, 또 '모두'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보다 답변하는 사람도 답변에 문제가 있을 때 그 어느 분에게라도 '배우기' 위해 실명을 적었습니다. 이제는 이 곳이 운영되지 않는 것보다 운영이 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때문에 '실명'을 적지 않고 있습니다. 또 경찰에 고발을 하는 경우 답변자의 이름이 특정 되지 않으면 수사가 진행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곳을 고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데 세상 법만 지켜야 한다는 죄인들이 죄를 짓도록 도와 주는 것도 저희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2018년 이전의 yilee라는 답변자는 1982년부터 연구소 연구부장으로 평생을 바치고 있는데 그 한 사람 외에도 이 곳은 최소 10여 명, 조금 범위를 넓히면 수십 명의 연구원들이 계시고 질문에 따라 그 분들도 실명으로 답변하면 연구부장이 지켜 보면서 보충을 해주면서 더 나은 문답이 될 수 있었으나 연구부장의 글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모두가 적지 않고 평생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배울 수가 없기 때문에 '담당'이라는 이름을 답변자들의 '공용 실명'으로 삼고 '담당1, 2, 3' 등으로 연번을 붙인 다음 답변이 적절하면 그냥 지나 가고 답변에 보충이나 지적이 필요하면 다른 분들이 함께 지켜 봅니다. 때로는 분야 별로 여러 분들이 함께 답변에 나서기도 합니다.
장정석 목사 2025.02.28 20:4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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