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막으면 설교 말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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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막으면 설교 말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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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2 1
(원제: 차별금지법이 막으면 설교 말씀도 막혀야 하는가? - 관)



차별금지법이 현재 국내 상황으로 보면 당장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곡절을 거치면 결국 그렇게 되어 온 것이 인류사였고 우리 사회의 흐름이 그랬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전도를 금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공장소에서 성경 읽기를 금지하는 경우,
설교 시간에 동성애 비판을 금지 시키는 경우,
교회 화장실에 남녀 칸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현재 미국과 서구에서 실제 집행 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질문합니다. 우리 나라에 어느 날 이런 규정이 코로나 때처럼 강제 시행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고 대처하면 좋겠습니다.
담당 4 2024.12.13 15:43  
믿는 사람은, 나라는 둘이지만 법은 성경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는 사람의 법입니다. 우리의 현실인 나라는 이 세상이고, 본향은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사는 현실의 나라이지만 나그네로 사는 곳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세상을 나그네로 우거하였듯이 믿는 사람에게 세상은 임시로 사는 곳일 뿐입니다. 세상 나라에 우거하지만 우리의 법은 하늘나라 법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만 우리의 법입니다.


롬13:1 말씀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은 세상 권력에 대항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정한 법을 다 지킵니다. 교육도 받고, 근로도 하고,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갑니다.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것은 다 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법이라도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하라 하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자가 세상 권세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성경법에 어긋나는 것을 시키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이므로 믿는 사람은 거기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전도를 금지하면 거기 따를 수 없습니다.

성경은 믿는 사람의 법입니다. 구원의 도리이며 길입니다. 길을 모르면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굳이 공공장소에서 일부러 읽을 것은 없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공공장소든 어디든 성경을 읽지 말라는 것은 따를 수 없습니다.

태초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입니다. 차별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개가 귀여워도 개는 개이지 개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일 뿐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태생이 다르며, 다른 것을 다르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면 그 말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죄는 죄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화장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로 따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마귀가 임금인 세상이 교회에 대해서 우호적일 리는 없습니다. 성경 역사와 신앙의 역사가 다 그러합니다. 세상은 늘 교회를 미혹하거나 핍박했고, 교회는 세상의 핍박을 받으며 왔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됩니다.
담당 2024.12.13 17:44  
61.84.205.124
New 1. 상기 안내가 신앙의 원칙입니다.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을 말씀으로 잘 안내해 주셨습니다.


2. 몇 가지 현장 문제를 두고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전도 금지법
타 종교는 지옥 가고 기독교만 천국을 간다고 말하면 타 종교를 차별한 것이 된다 합니다. 그렇다고 타 종교나 무 종교나 반신론자를 그냥 두지 못합니다. 전하다, 죽으면 죽는 것이 선교요 복음 운동입니다.

* 그런데, 평소에는 전도를 하지 않다가
차별금지법이 나오니까 그 때 광화문에서 전도를 한다면 이 분은 '전도'가 목적이 아니라 좌파에게 정치적으로 '응전'을 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앞에 세워 세상 정치를 하는 사람이니 우리는 이렇게 나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10.27의 광화문에 결집한 운동은 목이 터지도록 신앙의 자유라고 했으나 아무리 봐도 기독교 정치주의였습니다. 그 주장 그 말이 모두 맞는 말이었으나 교회와 성직의 이름으로 주일에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 평소에, 교회를 한 번씩 결석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교회를 탄압하니까 갑자기 매일 교회를 나오면서 신앙의 자유를 외친다면 신앙 때문이 아니라 정권이 밉상인데 세계의 여론과 훗날을 고려해서 자기를 홍보하거나 자기의 사상을 관철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정말 코로나 때에 평소 교회를 멀리 한 자기를 회개하고 또 전도 금지법이 나오는 상황을 보며 전도가 애절하여 나섰다면, 그리고 그 인도가 성령의 참된 인도였다면 그는 그렇게 하면 됩니다.

* 그러나, 그럴 때마다 방북 선교사를 떠올립니다.
중국까지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어 방문했고 국경 주변에 탈북자들이 몰리고 전도의 기회가 열려서 그 주변까지 갔다면 그리고 선교를 했다면 정말 목숨 걸고 잘 한 것이고, 우리야 부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북중 국경선을 넘어 가서 잡혔거나 방북을 했다가 걸려서 잡힌 분들에게는, 참으로 죄송하나 우리는 상황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주님의 인도를 따라 갔는지, 미국 시민권을 믿고 설마를 따라 갔는지. 6.25 점령기의 수 많은 순교자들 중에는 설마를 믿었다가 억울하게 당한 분들이 많은데 그들은 순직이지 순교는 아닐 듯합니다.

차별금지법, 평소에 전도를 하다가 죽을 때까지 한다고 서원을 하여 눈길에도 하고 발이 부러져도 목발을 짚고 하던 분이 그 법에 상관 없이 한다면? 고귀한 분입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발효되자 드디어 한 건을 하듯이 또는 이제야 물 만난 고기처럼 반발심으로 설칠 기회를 만났다면, 그런데 믿는 사람이니 열심히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고 나선다면? 그 것은 그 분이 홀로 갈 길이지 우리가 함께 할 길은 아닐 듯합니다. 순교와 연보와 헌신도 어려운 것이지만 그 과정 그 배경 그 이전의 걸음이 그렇게 아낌 없이 바칠 만큼 미리 준비하고 걸어 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흠있는 재물이어서 제단에 함부로 올려 놓지 못합니다.



(2) 남녀 화장실
* 평소 7계명이 금하는데도
예배당 안의 예배실에서 예배 시간에 남녀가 섞어 앉고 앞뒤좌우로 손을 맞추고 댄스를 하고 군무를 하며 성도의 남녀 교제가 좋은 것이라고 하던 교회나 교인들은 남녀화장실을 섞으라는 법이 나오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남녀 화장실 분리를 두고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 한국이 유교 사회라는 미신의 시절에도
남녀 문제는 자연의 법과 양심의 법과 인생의 경험 때문에 엄하게 막아 뒀는데 이 칸막이를 모조리 없앤 것은 공산당이 아니고 정부도 아니며 학교도 아닙니다. 선교사와 교회들이 들어서 모조리 다 섞어 버렸습니다. 강단을 섞었고 예배 시간도 비빔밥을 만들었고 출입구도 찬양도 성가대도 다 섞었으니 이제 솔직하게 화장실만 섞으면 될 듯합니다. 공회처럼 오늘까지 나누어 온 곳은 남녀 화장실의 격벽 해체를 두고 고민이라도 해야 하지만 그 외 교회들이야 해수욕을 하다 소나기가 온다 해서 달라 질 것이나 있을지요?

* 국가가 법으로 금지를 한다는데
이미 온 국민이 남녀를 뒤섞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고 국민의 대부분이 그런 법을 만드는 대표를 세워 놓았으니 그들은 섞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혹 반대하는 이들은 괜히 엄살이지 않을까? 그들의 평소를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또 남들이 평소 좋아서 혼용하는 것을 우리가 따라 다니며 공회식으로 살라고 떠든다면 이는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우리는 나만 지킵니다.

* 교회 화장실을 섞어 사용하라 한다면?
이는 건축법처럼 들어 오는 제한입니다. 시설 법은 지켜야 합니다. 예배당 건축에 계단, 화재, 건폐율 등등은 우리의 신앙으로 결정하지 않고 세상법이 요구하는 대로 맞춥니다. 우리는 장애자 주차 공간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고 박해하는 것이어서 피하고 싶으며 장애자라는 말도 싫어 합니다. ㅂㅅ이라는 우리의 옛말이 있는데 영어를 이상하게 번역해서 사용하는 외래어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저런 제한을 교회가 수용해 왔습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 문제로 싸울 정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절대 가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려면 아껴 둬야 할 것도 있고 그런 지혜도 필요합니다.

공회는 일제 때 일제식이 싫었으나 신발 옷차림 일본어 사용까지 전부 다 싸우다 보면 신사참배처럼 정말 중요한 문제에 김이 샐 수가 있어서 누가 보면 친일파나 된 것처럼 했고, 인민군의 점령기에도 예배나 주일 때문에 죽기 위해서는 그들이 오라 가라 하는 것을 사사건건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것은 조국에서도 그렇게 이민 간 외국에서도 그런 것이고, 불신 가정에서 믿다 보면 평소 그런 일은 허다 합니다. 모든 사회 생활이 다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말한다면, 공회 교회가 평소 남녀 문제를 매사에 조심했다면, 그리고 화장실에 남녀 표시를 하지 못하는 법이 있어서 표시판을 뗐다면? 그로 인해 남녀 화장실이 혼용될까? 표시판을 떼는 순간 여기 저기 헤집고 다니는 인간들은 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기회를 엿보던 도적이 때를 만난 것입니다. 법을 핑계대지만 자기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공회 교회라면, 지금 그런 법이 없는 때지만 실수로 남녀 표시가 잘못 되었거나 없어 졌다 해도 화장실을 갈 때는 좌우를 보고 남반용인지 여반용인지 두 번 세 번을 살피는 것이고, 좀 이상하면 큰 소리로 자기를 알리고 들어 갑니다.

교회들이 개척의 첫 순간에는 경제 문제로 거의 다 화장실을 공용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만사 남녀를 조심하다 보니 공회 교회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탈이 난 수는 없었습니다. 남녀 화장실이 분리가 되어 있는 예배당 건물에서 표시판이 없다고 혼선이 있다면 법 때문이 아니라 저변에 깔린 심리 문제입니다.


평소 바르게 가르친 교회의 바른 교인이라면?
알아서 남반은 男쪽에 여반은 女쪽 화장실을 사용할 것이고, 화장실 앞에 남녀 표시를 없애라 하면? 표시가 없어도 1번 화장실과 2번 화장실이 있을 것이니 알아서 할 것이며, 화장실 현관을 하나만 두라 하면? 남자가 들어 갈 때 여자들이 알아서 기다리고, 여성이 들어 갈 때 알아서 남자들이 기다릴 것입니다.



* 더 자세한 사례는
코로나 때처럼 한 단계씩 대처하면 됩니다. 미리 다 적어 놓으면 이런 자료를 보고 우리가 갈 걸음을 끝까지 막을 것이니 미리 알릴 것은 없으나, 마가복음 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라는 말씀으로 평소 만사 애매할 때 성령의 인도로 걸음걸음 걸어 간다면 그 때도 걸어 가게 됩니다.



(3) 설교 시간의 경우
예수님에게 세를 바치는 것을 질문할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면서 신약을 여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친 곳은 가정이든 그 어떤 상황이든 항상 예배 시간과 같고 그 말씀은 예배의 설교였습니다. 설교 정도가 아니라 정확무오한 성경이며 진리였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가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데 잡아 가라고 화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의 법정에서도 심문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왕이라는 말씀은 죽는 말씀이 되는데도 하셨고, 다른 말씀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도 하신 말씀이 있고 하지 않은 말씀이 있습니다.

설교란, 세상이 설교를 하라 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이 하지 말라 한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 가지로 세상이 덪을 놓고 잡으려는데 그들의 덪에 빠지는 것도 설교는 아니면 덪에 빠져 당할까 싶어서 해야 할 설교와 표현을 피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예를 들어 공회에는 이런 논법이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때마다 '일본의 황제는 하늘이 내려 준 천왕이고 지금도 하늘의 직계라든데 종교 자유를 준다 하고 조선을 가져 갔는데 신이라는 분이 인간처럼 거짓말을 했을까? 그 귀하고 높은 하늘의 태양신이 거짓말 하셨을 리는 없고 그 밑에 신하들이 천왕을 위한다는 것이 참으로 무지하게 무례하게도 불경죄를 범하는 것이다. 일단 내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부터 해 보시라'

그리고 6년의 신사참배 고난기를 아무런 고초도 없이 그냥 지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싸워 보자, 세상이 저런 싸움을 해 보자 라고 할 때 따라 다니는 것은 마4장의 3대 시험에서도 공회는 이미 주교생도 아는 정도로 대처 방향을 알고 있습니다. 너는 네 싸움을 하고, 나는 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 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봐라.. 마귀는 중얼거리는 것이고 주님은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4) 공공장소에서 성경 일기
내 대문 앞에 중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으면 그 것은 포교의 자유가 아니라 기독교인을 들들 볶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서로 그렇게 해도 서로 양해를 했습니다. 그 시절에 공회는 스피커를 켜고 온 마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다가 확성기 사용 금지법이 나오기 전에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집집마다 들어 가는 호별 전도만 했습니다. 이 방법은 상대가 피할 수도 없어서 더 괴로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불법 침입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교회의 전도법에 호별 전도라 한다 하여 상대방과 싸우면서 전도지를 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열린 문은 들어 가고 싫다고 문을 닫은 쪽은 우편함에 넣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에 목사님이 1년 안에 돌아 가실 것을 확정한 다음 그해 12월 말까지 부산시의 시민 전체 숫자에 해당하는 350만장의 전도지를 인쇄하고 온 부산의 골목에다 가득 쌓게 했습니다. 항의가 빗발 쳤지만 전도지를 잘 전한다는 뜻으로 감사히 생각했고 또 그 때만은 주님의 직접 개별적 구체적 인도라고 생각해서 했습니다. 그렇다 해서 평생 그랬던 것도 아니고 1989년에도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전시에도 전쟁이 났으니 이제야 전도하러 단니다고 나선 것도 아닙니다.


지금 휴전선이 막고 있습니다. 죽어도 전도하고 싶다면 지금도 휴전선을 돌파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다고 말은 해도 오늘도 성령이 확실하게 인도하신다면 그 사람은 오해 소지에도 불구하고 또 생사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평소 많이 읽어 두면 공공장소에서 따로 펴서 읽을 정도의 기회란 사실 별로 없을 듯합니다. 공공장소에서 통성기도를 한다? 1970년대 미국 이민이 많아 지면서 당시 김포공항 이주 대합실에는 교회마다 환송 예배를 드린다고 그 불신자들 속에서 단체로 찬송을 하는 등의 행사가 참 많았습니다. 공회는 원래 남 앞에 그렇게 나팔을 불며 전도하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것은 체질적으로 피해 왔습니다.

인민군 속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제로 했고
인민군 속에서 예배만 지킬 때는 그렇게 했으나

전반적으로 투쟁 대 투쟁으로 신앙을 지켜 온 적은 없습니다. 그냥 늘 우리가 평소처럼 지켜 오던 것을 세상이 이상하게 갑자기 막고 나설 때, 별 것도 아닌데도 할 수 없이 우리는 평소처럼 국기에 경배를 하지 않았고 주일에 시험을 치지 않았고 주일에 각종 행사나 노력 동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수밤 금밤의 저녁 예배 때문에 또는 새벽 예배 한 번 때문에도 목숨 건 분도 있고 정작 목숨을 걸 만큼 위급한데 오히려 피한 분도 있었습니다.

공회의 흔한 오해 중에 하나가 백 목사님은 죽을 자리를 찾아서 다닌 것처럼 평생 산 줄 아는데, 주변에서 지켜 보면 살기 위해 피한 적이 더 많았다고 보일 만큼 했습니다. 평시에도 침소를 옮겨 다니며 구약의 다윗처럼 대처한 때도 있었고, 정작 최후의 칼을 맞을 때는 강단에 그렇게 서고 그렇게 표현하면 칼에 죽는다고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담대히 외치다 장렬하게 가셨습니다.


어떤 환란도
알고 보면 미리 준비할 기회를 주셨고, 평소 걸음걸음 작은 일에 잘 구별하고 잘 대처하고 잘 순종하는 사람은 고비 때 기적으로 지켜 주시든 아니면 최후의 순간을 영광스럽게 맞든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결정합니다. 그냥 대충 살다가, 평소 이런 논쟁이나 주제에 관심만 가지는 분은 실제 그런 상황이 오면 신앙으로 지킬 수도 없고 지켜 지지도 않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십니다.

이 글은 아직은 평안한 때여서 상식 차원에서 설명했습니다.
원칙에 원칙은 '담당4'의 첫 답변입니다. '담당'의 두 번째 답변은 적지 않아도 신앙의 세계, 특히 공회 신앙에서는 상식입니다. 공회를 조금 아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 모두 아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 것인데 이제 세월 속에 설교록 시대를 아주 지내 버린 분들 때문에 어제의 백영희를 오늘의 백영희, 이 곳에서 소개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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