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성전 다듬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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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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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2:58
집회 설교 중 질문이 있습니다. 안 뜰로 들어가는 북문 안 현관에 상이 4개 있고, 또 계단 양쪽에 상이 4개가 있는데, 계단 양쪽 상 4개는 다듬은 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왜 밖에는 다듬은 돌로 상을 만들었고, 왜 안에는 다듬은 돌로 만들지 않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 내용과 성경 기록상의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성경 기록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기록을 자세히 살펴주시고, 답변에 착오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 기록을 먼저 살피고, 답변을 안내합니다.
1. 상의 숫자
1) 8개의 상(겔40:39~41)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2) 다듬은 4개의 상(겔40:42)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1척 반이요 광이 1척 반이요 고가 1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2. 상들의 위치
1) 8개의 상
위의 상들이 있는 곳은 성소로 들어가는 2차 북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현관이 있고, 그 현관 양쪽에 상이 2개씩, 문 입구에 상이 2개씩, 전체로 말하면 문 입구 양쪽에 상이 4개씩, 합이 8개라고 했습니다. ‘안과 밖’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2) 다듬은 4개의 상
그리고 42절에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라고 함으로 8개의 상 외에 4개의 상이 별도로 있는데 이것은 다듬은 돌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 또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 다듬은 돌상 위에 ‘번제 희생을 잡을 때 쓰는 기구가 놓여’ 있고 43절에 ‘현관 안에는…’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보면 이 다듬은 돌은 현관 안에 있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3. ‘다듬은 돌상’의 의미
1) 다듬지 말라는 성경 말씀
출애굽기 20장에는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을 때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하셨는데 이유는,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20:25), 신명기 27장에도 같은 말씀이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외벽과 기초석은 ‘크고 귀한 돌을 다듬어서’ 세웠습니다. 이에 왕이 영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왕상5:17), 출애굽기에 돌로 다듬지 말라는 것은 ‘단’을 말씀하신 것이므로 솔로몬 성전의 기초석을 다듬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자연 계시적으로 생각해도 큰 성전의 외벽과 기초석을 다듬지 않고 자연석으로 구해서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 ‘다듬지 말라’는 의미
돌을 다듬는 것은 정으로 쪼아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전을 만들 때 외벽과 기초석은 다듬은 돌로 허용하셨는데,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제단은 다듬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단은 자신을 제물로 바쳐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잡아서 드리는 희생, 충성이며 수고입니다. 그 충성과 수고, 최종은 잡아서 바치는 희생인데 그 희생에 인간의 생각, 인간의 주관을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 때 인위적, 주관적으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 있고 그 법칙에 따라서 드려야 하는데, 그 법을 어겨서 인간의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계산, 자기의 주관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고 ‘돌을 다듬지 말라, 정으로 쪼지 말라 부정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다듬은 돌’의 의미
그런데, 에스겔 성전 북문의 현관 안에 있는 4개의 상은 ‘다듬은’ 돌상입니다. 이 돌상 역시 ‘번제에 쓰는 상 넷’이라 했으니 제단입니다. 이 제단은 왜 ‘다듬은’ 돌상인가? 여기서 다듬는 것은 인위적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으로 ‘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만드는 것은 ‘삣고 깎고 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다듬지 않으면 자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만들어지지 않는 자기는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바칠 때 자기 주관, 인위적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자기를 다듬어 만들어서 바쳐야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님을 예표 합니다. 따라서 모든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전적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으로 하신 것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이것이 다듬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다듬어 하나님께 전적 순종으로 제물로 드렸습니다. 에스겔 성전의 다듬은 돌상은 이것을 가르친 것이고, 우리를 드릴 때도 이렇게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성경의 양면성
성경은 늘 양면성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짝이 있다고(사34:16) 하셨습니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 동시에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그러합니다. 세상을 사랑치 말라(요일2:15) 하셨는데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요3:16)하셨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출20:12) 하셨는데, 부모와 처자를 미워하지 않으면 주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눅14:26)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말씀이 이렇게 양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동기, 목적, 주체, 근본, 각도에 따라서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동시에 반대인데 하나를 가르치는 말씀들입니다.
성전에 사용되는 돌 제단 역시 같은 원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듬지 말아야 할 이유도 있고, 다듬어야 할 이유도 있는, 양면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양면성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에 타락한 인간의 자기중심의 면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
1. 상의 숫자
1) 8개의 상(겔40:39~41)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2) 다듬은 4개의 상(겔40:42)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1척 반이요 광이 1척 반이요 고가 1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2. 상들의 위치
1) 8개의 상
위의 상들이 있는 곳은 성소로 들어가는 2차 북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현관이 있고, 그 현관 양쪽에 상이 2개씩, 문 입구에 상이 2개씩, 전체로 말하면 문 입구 양쪽에 상이 4개씩, 합이 8개라고 했습니다. ‘안과 밖’이라는 설명은 없습니다.
2) 다듬은 4개의 상
그리고 42절에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라고 함으로 8개의 상 외에 4개의 상이 별도로 있는데 이것은 다듬은 돌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 또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 다듬은 돌상 위에 ‘번제 희생을 잡을 때 쓰는 기구가 놓여’ 있고 43절에 ‘현관 안에는…’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보면 이 다듬은 돌은 현관 안에 있는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3. ‘다듬은 돌상’의 의미
1) 다듬지 말라는 성경 말씀
출애굽기 20장에는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을 때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하셨는데 이유는,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20:25), 신명기 27장에도 같은 말씀이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외벽과 기초석은 ‘크고 귀한 돌을 다듬어서’ 세웠습니다. 이에 왕이 영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왕상5:17), 출애굽기에 돌로 다듬지 말라는 것은 ‘단’을 말씀하신 것이므로 솔로몬 성전의 기초석을 다듬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자연 계시적으로 생각해도 큰 성전의 외벽과 기초석을 다듬지 않고 자연석으로 구해서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2) ‘다듬지 말라’는 의미
돌을 다듬는 것은 정으로 쪼아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전을 만들 때 외벽과 기초석은 다듬은 돌로 허용하셨는데,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제단은 다듬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단은 자신을 제물로 바쳐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잡아서 드리는 희생, 충성이며 수고입니다. 그 충성과 수고, 최종은 잡아서 바치는 희생인데 그 희생에 인간의 생각, 인간의 주관을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 때 인위적, 주관적으로 하지 말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 있고 그 법칙에 따라서 드려야 하는데, 그 법을 어겨서 인간의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계산, 자기의 주관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고 ‘돌을 다듬지 말라, 정으로 쪼지 말라 부정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다듬은 돌’의 의미
그런데, 에스겔 성전 북문의 현관 안에 있는 4개의 상은 ‘다듬은’ 돌상입니다. 이 돌상 역시 ‘번제에 쓰는 상 넷’이라 했으니 제단입니다. 이 제단은 왜 ‘다듬은’ 돌상인가? 여기서 다듬는 것은 인위적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으로 ‘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만드는 것은 ‘삣고 깎고 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다듬지 않으면 자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만들어지지 않는 자기는 하나님께 바칠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바칠 때 자기 주관, 인위적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자기를 다듬어 만들어서 바쳐야 하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님을 예표 합니다. 따라서 모든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전적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으로 하신 것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이것이 다듬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다듬어 하나님께 전적 순종으로 제물로 드렸습니다. 에스겔 성전의 다듬은 돌상은 이것을 가르친 것이고, 우리를 드릴 때도 이렇게 드려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성경의 양면성
성경은 늘 양면성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짝이 있다고(사34:16) 하셨습니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는 동시에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그러합니다. 세상을 사랑치 말라(요일2:15) 하셨는데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요3:16)하셨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출20:12) 하셨는데, 부모와 처자를 미워하지 않으면 주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눅14:26)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말씀이 이렇게 양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동기, 목적, 주체, 근본, 각도에 따라서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동시에 반대인데 하나를 가르치는 말씀들입니다.
성전에 사용되는 돌 제단 역시 같은 원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듬지 말아야 할 이유도 있고, 다듬어야 할 이유도 있는, 양면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양면성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생활에 타락한 인간의 자기중심의 면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