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이신칭의 인용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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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이신칭의 인용 성경구절

분류
염현우 24 1
제목 : 루터가 이신칭의의 핵심 내용으로서 인용한 성경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했나요?


루터는 이신칭의의 핵심 내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루터가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한 것인가요? 아니면, 오해하고 인용한 것인가요? 왜 아무도, 이것을 경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루터나 루터의 이신칭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서 이 "믿음"을, 말씀을 듣거나 읽은 후에, 마음에 생기게된 믿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하시며, 믿음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계셨습니다. 처음 믿음과 나중 믿음의 정의가 다른데, 과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에서, 이 "믿음"이, 루터와 여러분이 생각하던, 그 믿음이겠냐는 것입니다. 이 두 믿음에 대한 설명은 야고보서 2장 21~24절에 있습니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대충 읽지 않았다면, 루터가 말하는 이신칭의가 잘못되었음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루터가 인용한 성경 구절에는 이상이 없으나, 루터가 자신이 인용한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개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기 2023.02.20 23:31  
내일까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신학생 2023.02.21 03:26  
그러면 행함으로 칭의가 종국에 완성된다는 의미인가요?
염현우 2023.02.21 06:49  
성경에는 "행함으로"가 아니라, "믿고 행함으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이 믿고 행한 후에 완성된다는 의미냐고 물으신 거라면,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0장 9절]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0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은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체이나, 지체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우므로, 이것을 행위와 따로 분리시키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입술로 말하는 행위가 행함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체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므로, 특별히 입술을 사용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차원에서, 더 강조하시기 위하여 사용한 기교일 뿐입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눈 또한, 다루기 어려운 지체 중 하나 입니다.

9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구원의 조건은,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9절 만으로는, 믿음이 선행되는 것인지, 행함이 선행되는 것인지, 그 순서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10절을 보면, 그 순서가 자세히 나와 있고, 마음으로 믿는 것은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행하는 것으로 [구원에 이른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의문이 들어야 합니다. "의에 이르는 것"과 "구원에 이르는 것"은 같은 의미인가? 다른 의미인가? 이 의문을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찾아서 답을 해야만 합니다.

답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게 아니듯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도 비유로서 그렇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증거를 제게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믿음을 보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동천 정동진 2023.02.21 06:44  
제 개인적인 소견을 몇 마디 적어봅니다.

'이신칭의교리'를 간단히 말하면,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입니다.


교리란 성경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진리에 입각하지만, 그것만 놓고 보면 단편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교리를 공부하면 인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인성에 대한 공부만 하면 신성을 잊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교리는 진리에 대한 일부를 설명하는 부분 정도로 이해를 하고 항상 넓게 보고 있어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루터의 인용과 '믿음'에 대한 정의만을 놓고 본다면, 루터가 이 말을 잘못했네, 저 말을 잘못 이해했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신칭의'는 전체 진리에 대한 일부분을 설명한 교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리란 역사성을 가집니다. '교리사'라는 표현을 쓸만큼 교리는 역사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단의 역사와 같이 흘러갑니다. 신앙에 대한 오해가 있을 때마다, "이것이 바른 것입니다."라고 나타난 것들이 교리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역사 속에서 진리를 하나씩 더 깨우쳐 가고 있습니다.


루터의 당시 천주교는 "행위구원"적이였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착하게"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수도사들은 죄를 행위로 벗어버리기 위해서 수많은 고행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양심적으로 보면, 천국에 갈만한 수준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연옥, 면죄부 등과 같은 교리들이 있던 시절입니다.

아마,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면서 내놓은 공식적인 첫번째 문서는 95개조 반빅문일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연보궤에 떨어지는 동전소리가 연옥에 있는 사람을 천국으로 옮겨간다는 것" "사제에게 죄를 고백함으로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 "면죄부를 돈으로 사면 천국에 간다는 것" 등에 대한 반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신칭의'교리는 당시 천주교의 '행위구원론'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여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 논의해보자"는 것이였지, 종교개혁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루터의 이신칭의"와 "과거 천주교의 행위구원"을 놓고 보면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잘 압니다. 이것은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순교자들과 참배자들 중에 누가 옳은 길이였는지를 구분하는 것 만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루터를 내쳐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종교개혁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리와 역사를 항상 함께 생각해서 보신다면, 그리고 그 교리가 진리는 아니므로, 단편적인 교리만으로 진리의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생각해서 보신다면, 루터의 이신칭의교리는 그 시대에 참으로 탁월한 설명이였고, 꼭 필요한 말씀이였고, 시대를 감당했던 사명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염현우 2023.02.21 07:21  
"그래서 교리는 진리에 대한 일부를 설명하는 부분 정도로 이해를 하고"

루터가 주장한 이신칭의라는 교리가 진리에 대한 일부분을 설명했다고 하셨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루터가 그 진리의 일부분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가 개혁을 위해서 주장된 것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개혁이 필요합니다. 천주교의 행위구원론이 각종 문제를 불러 일으킨 것처럼, 루터의 이신칭의도, 진리의 일부분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루터의 이신칭의를 근거로 삼아,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으니, 마음껏 범죄하고 돌아와서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제가 개혁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시기는, 루터의 이신칭의를 접하기도 전이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나 하고 대화를 해보니, 이신칭의에 그 근간을 두고, 벌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신칭의를 접하기 전에, 이미,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주장하는 듯 보였으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깊게 연구하다 보니, 오늘과 같은 결론을 얻은 것 뿐이지, 이신칭의를 반박하기 위하여 연구했던 것이 아닙니다.
신학생 2023.02.21 08:33  
염현우선생님, (무례하게 들릴 지 모르겠으나) 선생님의 구원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을 많이 합니다.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요 다만 아버지의 뜻데로 행하는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나옵니다. 또 계2:11 "이기는 자마다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바른 행위가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구원관은 현재 기독교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믿고있고, 역사적으로도 믿어 왔습니다. 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내용은 그렇게 특별한 내용이 아닙니다.
신학생 2023.02.21 08:34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 급하게 생각 마시고..앞으로 찬찬히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학생 2023.02.21 08:36  
염현우선생님이 언급하신 구원관에 대하여 여기홈페이지의 "발언연구방"에서 함께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이니 그렇게 안하셔도 됩니다.
신학생 2023.02.21 09:42  
루터가 1517년에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교 정문에 붙일 때(당시에는 서로 신앙토론을 할 때,  본인의 주장을 벽 같은곳에 붙였었습니다) 루터는 단 1%도 "개혁-종교개혁"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염현우선생님처럼 루터도 본인의 신앙의 고민하고 성경을 보다가 깨달음 것들이, 당시의 중세교회의 신앙과 달랐기에 논의토론을 해보려고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루터 본인스스로 먼저 개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루터 개인의 신앙의 개혁이 조금씩 본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퍼져가며..종국에는 전유럽이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여기 홈페이지의 표어가 있습니다.
""인류 모든 사람들이 짓는 죄보다 내게는 내가 알고 짓는 죄 하나가 나와 내 가정에 해악이 더 크고, 내가 알고 짓는 모든 죄보다 내가 모르고 짓는 죄 하나가 나와 내 가정에 해악이 더 크다.

여기 홈페이지의 교회들은 한국교회개혁을 이야기 하기전에, 우리교단 먼저 개혁..우리교단 개혁을 먼저 말하기 전에 우리교회 개혁..우리교회 개혁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정 개혁..우리가정 개혁을 말하기 전에 나 개인의 개혁을 가장 우선시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홈페이지와 여기 홈페이지에 소속된 교회들이 좋습니다.
신학생 2023.02.21 09:54  
염현우 선생님이 언급하신 구원관의 방향은 현재 "감리교 순복음 성결교 다수의 침례교"가 염현우선생님 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고, 당연히 선생님도 성경을 보면서 발견 하셨듯이, 역사적으로 2000년 기독교사에 수많은 분들이 염선생님처럼 믿어 왔습니다.

장로교는 선생님과 반대방향으로 믿구요.

문제는 선생님이 언급하신 구원관의 방향과 "루터와 장로교의 구원관의 방향"이 성경에  두 방향이 모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논쟁을 예수님이 오셔야 해결된다고 말할정도로, 2000년 기독교역사에서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신학생 2023.02.21 12:09  
로마카톨릭은 "구원 = 의화(예수님 믿고 점점 의로워 져가야 구원이 완성됨)" 으로 봅니다.  로마카톨릭의 "의화"구원관 때문에 중세교회는  공로주의 선행 칠성례전 등을 통하여 구원을 얻으려는 내용들이 점점 더해졌고, 결국 면죄부판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중세교회의 구원관(의화 = 예수님 믿음 + 칠성례전 + 공로 + 선행 + 면죄부)을 깨뜨린 것이,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입니다. 그러면 구원받고 나면 끝인가? 이 부분에 대하여 개혁주의노선 중심으로 "성화"교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성경에 있는 내용이구요.

루터는 성화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안하고, 구원받은 자에 대하여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예수님 믿고나서 의인이 되었지만(이신칭의) 여전히 죄가 잔존하고 있기에 그 죄를 죽여가야 한다 보았습니다.
염현우 2023.02.21 13:04  
"문제는 선생님이 언급하신 구원관의 방향과 "루터와 장로교의 구원관의 방향"이 성경에 두 방향이 모두 나온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2000년 기독교사에 수많은 분들이 염선생님처럼 믿어 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바의 요점은, 루터와 장로교의 구원관의 방향이 성경에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염선생님의 구원관은 특별한게 아니라고 하시니, 이것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왜 이 논쟁이 끝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이 논쟁이 해결된다고 말할 정도라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 하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주셨던, 말씀에 대한 해석을, 이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해주고 계시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성령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지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한 분 하나님 뿐이십니다. 저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못하십니다. 그렇게 부르시는 것이 민망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깨달음 받은 것으로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읽고,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해서, 답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학생 2023.02.21 12:32  
그런데 염선생님이 언급하신 "행함으로 의로워 진다"는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사실 로마카톨릭에서 "의화 구원관"을  분명 성경에 나오기 때문에 주장한 것이거던요. 염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야고보서2장 24절처럼요.

제 기억으로 개혁주의노선에서 성화과정을 통하여 의로워진다고 한 것 같습니다.(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윗글들에 이야기 했듯이,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노선에서는 루터와 장로교의 "칭의 - 성화" 보다는  로마카톨릭의 "의화"구원관으로 좀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구도 이구요.

그래서 제 생각으론 염선생님이 문제제기 하신 내용들을 앞으로 함께 연구하며 나누며 풀어 갔으면 합니다. 저와 여기홈페이지는 염선생님의 구원관의 방향의 내용을 1960년대부터 고민하고 답을 찾아온 노선 이거던요.
엡4:13 말씀처럼 함께 대화연구토론하며 하나되어 가길 소망합니다.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염현우 2023.02.21 13:21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노선에서는 루터와 장로교의 "칭의 - 성화" 보다는 로마카톨릭의 "의화"구원관으로 좀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구도 이구요."

이처럼, 확고한 구원관을 갖지 못하고 있으므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관이 애매모호 하다는 것은,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자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담당 2023.02.21 15:04  
(구원 - 믿음과 행위의 관계)
공회는 질문 내용에 이런 입장을 가집니다.

* 루터에 대하여
기록은 많이 남아 있으나 루터의 정확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세월 속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루터보다 장로교는 칼빈 계열인데 칼빈이 했던 말과 기록과 해석은 한이 없습니다. 저희는 역사의 선배로 우리를 위해 크게 수고한 분들을 늘 감사하지만 그 분들의 가르침과 역할은 당대에 치열하게 연구해야 했고 오늘 우리에게는 사실 관계를 다시 조사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은 일반 신학에 맡기고 우리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정도의 간략한 요약만 가지고 있습니다. 루터 > 종교개혁의 첫 장을 열어 주신 분.. 이 정도입니다.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저희가 일반 학생처럼 듣는 입장이지 자신 있게 공회의 입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칼빈의 의도나 수 많은 논제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6.25? 인민군의 남침만은 틀림 없습니다. 미군이 도와 겨우 휴전선에서 끝이 났습니다. 인민군 중공군은 우리의 원수이며, 미국이 일본에 본부를 두고 우리를 살려 줬습니다. 그 의도는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미국이 유도를 해서 남침이 일어 났다.. 그런 분은 북에 가시라고 말합니다. 어떤 자료를 봐도 직접 겪은 수많은 분들의 이야기, 모든 것을 떠나 한 번 생각하면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남침이 성공했다면 지금 북한 꼴이 났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간추려 버리고 이 이상은 세상 그들이나 그 쪽 전문가의 논쟁으로 미뤄 둡니다. 만일 세상 전부가 공회 아는 것과 다를 정도가 되면 그 때 가서 들여다 보고 공회 입장을 바꿀 정도인지 살펴 보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늘 한 발 떨어 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공회식이라 합니다. 세상뿐 아니라 신학계에 대해서도 저희 입장이 비슷합니다.

삼위일체? 역사에 상관 없이 우리가 오늘 성경을 읽으며 역사의 정리와 하나가 됩니다. 그 교리의 형성 과정에 발생한 별별 일은 세계의 모든 신학계에 맡겨 놓고 있습니다. 저희 깨달음과 맞은 결과가 나오면 반갑고, 그들의 모든 깨달음이 저희와 다르면 그 때는 성경으로 그 차이점을 다시 진지하게 맞춰 봅니다. 66권의 성경, 삼위일체, 신인양성일위의 예수님 등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의 이신칭의 >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이 의롭게 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 간다는 구원론에 대해서는 기본 방향은 동의를 하고 맞습니다. 그런데 첫 질문을 제기하신 '염현우'님께서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희가 별도로 오랜 세월 살펴 왔습니다.


* 질문에 대한 안내
루터가 실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의도는 무엇일까? 이런 면은 이 곳에서 사실 일반 신학교의 일반 학생 정도의 상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앞에 몇몇 글을 적어 주신 분들이 한 눈에 봐도 저희보다는 훨씬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앞에 적은 글을 다 맞다는 것이 아니라 저희보다 훨씬 잘 파악을 해 왔다고 보입니다. 루터의 이신칭의에 대해 첫 질문을 하신 분과 다른 글을 적은 분이 적은 내용의 사실 관계와 평가에 대해서는 공회가 사실 아는 것이 없어 그 자체를 두고 말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이 점은 깊이 양해를 구하고, 그런데 기독교와 천주교가 나뉘는 이런 중대한 일을 두고 설마 공회가 문외한이거나 남의 일로 보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한 공회 입장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이 소개를 가지고 루터의 기록과 실제 비교를 한다면 이후 대화는 방향이 조금 달라 질 듯하나, 첫 질문을 하신 분이 원하는 실제 연구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루터, 칼빈, 종교개혁시기의 이신칭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표현 자체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다만 믿음에 말과 생각을 포함하느냐는 문제로 항상 복잡하게 이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천주교는 행위로 천국 간다고 가르쳐 저렇게 되었고 기독교의 종교 개혁은 천주교와 반대 입장입니다. 그 반대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이 루터와 칼빈을 비롯해서 오늘까지 별별 시도가 다 있었습니다.

공회는
1. 죄로 사람이 죽었고 죽은 사람은 생각이든 눈빛이든 말 하나든 어떤 면으로든 의를 할 수 없습니다.
2.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고 죄인은 무조건 다 지옥으로 가는데 주님의 대속으로 구원이 마련 되었습니다.
3. 주님이 마련한 이 구원은 누가 노력해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면 그냥 받아 가질 뿐입니다.
4. 택한 사람이 중생하기로 예정 된 때가 되면 성령이 무조건 살려 냅니다. 그러면 의인이고 천국을 갑니다.
5. 성령이 살려 내는 순간 영이 살아 나고 영이 살아 나면 마음을 말씀으로 살도록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영이 마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순간 마음은 혼동도 하고 돌아 서기도 하고 노력도 하고 별별 일이 벌어 집니다. 중생 된 사람이 자기의 중생을 느끼는 순간은 죽었던 영이 중생 되는 순간이 아니라 이미 살아 난 영이 자기 마음을 말씀으로 인도하려고 시도하고 마음이 피동이 되고 움직여 지는 바로 이 순간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신앙에 관련 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이미 그 전에 중생은 되었고 마음이 신앙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움직이는 시작입니다.
6. 지옥 갈 죄인이 천국을 가는 구원, 모든 중생된 교인에게 공통적으로 무조건 주어지는 이 기본구원은 인간의 어떤 노력도 수고도 믿음도 생각도 말 하나도 더해지거나 심지어 알아 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 이루어 지니 '전적 은혜' '절대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성경에서 은혜로 표현할 때도 있고 '믿음'으로 적을 때도 있습니다. 공회는 성경의 '믿음'을 읽을 때 앞뒤 문맥에서 불신자가 처음 중생 되는 순간을 표시했거나 전적 은혜로 구원 받는 순간에 해당 되면 그 믿음은 '기본 믿음 = 기본 구원을 받는 순간'으로 읽습니다. 반면에 사람이 노력을 해서 좀 나아지고 배워 가고 자라 가며 또 실수를 하거나 다시 일어 서는 데 관련 된 표현의 '믿음'은 천국에 가게 되는 성도가 심신의 신앙이 자라 가는 성화의 과정에 관련 된 구원 > 건설구원에 관련 된 믿음으로 읽습니다.

성경에 아버지를 호적상 친부를 말할 때도 있고 아버지 역할이나 조상을 표시할 때도 있습니다. 단어로 따지지 않고 앞뒤를 읽어 보고 눅16장에 홍포 입은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불렀을 때 아버지는 이삭과 이스마엘 외에도 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던가? 이렇게 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할 때 그 단어는 출생의 전후에 있는 부친이 아니라 그냥 조상과 그 후손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단어는 사전으로 해석할 수가 없게 되어 있고 성경으로 성경 단어를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한글의 우리식 믿음으로 인지하고 나서 성경을 한글 단어의 믿음에 맞추기 시작하면 다 틀어 질 수 있다고 봅니다.

* 공회 신앙
좀 무식하고 미개하고 말이 통하지 않은 듯 보여 교계에서 늘 논란의 대상이었으나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났고 공회의 수 많은 입장이 수 많은 세월 속에 잘 전해 졌기 때문에 현재는 교계적으로 공회가 초기의 오해를 벗고 지금은 크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공회는 그냥 늘 이런 식입니다. 성경 하나 외에는 세상 것도 신학도 교계도 일반 교인의 수준 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성경 하나만 가지고 살핀다면 늘 집중해 왔기 때문에 별로 혼란은 없었습니다.

죄로 죽었던 사람이 구원을 주시는 성령에 스스로 호응하고 나설 수 없습니다. 이 것을 우리는 기본구원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기본구원을 받아 이제 믿는 사람이 되었다면 죽는 날까지 늘 말씀으로 살려고 마음과 눈빛 하나까지 또 말씀하신 입까지 붙들기를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 적용되는 '믿음'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말씀의 인도를 '따른다' '순종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생 2023.02.21 15:17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8~9)
 
선생님이라 불러서 안되면, 집에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염현우 2023.02.22 07:59  
외식하지 않고, 겸손하게 물어봤더라면,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하기를 더디하고, 듣기를 속히하라 하셨는데,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평상시에 선을 행하기 보다, 악을 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시며,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던져준다 한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으면, 당신이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은 당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당신의 말을 요약하면, 누가 너를 우리 위에 세웠느냐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신다는 것을 믿었더라면,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믿겠노라 하는 태도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학생 2023.02.22 09:20  
요한1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1.먼저 제 글들이 무례하게 비추어 졌다면 미안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여기 홈페이지는 저희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을 처음 하는 분들부터 여러분들이 함께 보시기 때둔에, 제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기독교내의 구도를 이야기 하려 했던 것입니다.

염형제님 말씀처럼 요일2:27말씀처럼 모든 성도안에는 성령하나님이 내주하시기에 성경 한권만 있으면 가장 바른 구원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일면식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니 오해가 서로 있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토론하면 어느정도 논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호세아 2:2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도 어제밤과 오늘아침에도 염형제님이 문제제기 하신 부분과 약2장 말씀 덕분에 유익이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신학생 2023.02.22 09:27  
마음이 안내키시면 염형제님 구원관의 전체 방향을 안 알려주셔도 됩니다. 신앙은 자유성이 중요 하니깐요. 성령님이 마음주시면 언제든 여기 홈페이지에 알려주세요.
신학생 2023.02.22 09:32  
혹시라도 염형제님 구원관을 알려주시면..여기 홈페이지에 발언연구방에 올리면..모두가 함께 연구하고 대화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연구라는 표현은 행17:11의 말씀처럼 염형제님 구원관이 성경적으로 맞는가? 그러한가 "상고"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신학생 2023.02.22 12:54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주셨기에 그래서 사람은 자기 외에 모든 사람에게 배우게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안 나온 할아버지가, 초등학교4학년 손자가 학교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을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하면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배우는 모습은 너무나 좋은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염형제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한 이유중에 큰 이유중에 한 가지가 염형제님께 배우려는 마음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신학생 2023.02.21 15:55  
염현우형제님이 제 글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해했을 수도 있구요.

1.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염형제님 구원관은 제 주변에 많은 분들이 믿고 있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15년전에 염형제님 구원관을 가지고 한국에서 대히트를 치신 목사님도 계시구요.
제가 속했던 교회에 청년들 집사님들 대부분이 염형제님이 이야기 하신 내용으로 믿으셨어요.
그분들도 장로교와 칼빈의 구원관이 굉장히 잘못 되었다고...칼빈의 구원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염형제님 구원관의 내용을 제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 그러면 염형제님 구원관을 모두 이야기 해 주시면, 정말 한국교회를 개혁할 구원관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3. 염형제님은 루터와 장로교의 구원관이 성경에 없다는 것은, 염형제님이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장로교에선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4. 예수님 오셔야 해결 된다는 의미는, 1500여년 두 구원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신학생 2023.02.21 16:23  
장로교와 감리교가 논쟁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구원을 "기본구원"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며, 인간론에서 이분설(영혼과 육체)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구원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구별하고 인간론을 삼분설로 보면...성경에 나와있는 장로교의 구원관은 기본구원에 적용하고, 성경에 나와있는 감리교의 구원관을 건설구원에 적용하면 모든 논쟁은 종식될 수 있는데...

염형제님의 구원관도 성경에 모두 나오니 옳은 방향입니다. 그런데 염형제님의 구원관을 기본구원에 적용하면 저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염형제님의 구원관이 옳으면 사도바울을 포함한 12사도 모두 지옥에 갔고 모든 인류가 지옥에 가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 2023.04.03 19:40  
'이신칭의의 완성'이라는 책을 보면 그냥 해결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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