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와 교회 운영, '노소원위원회' 연령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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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7 12:53
공회와 교회를 운영하는 '노소원위원회'의 연령 문제
총공회는 공회의 운영을 이원화 된 위원회로 구성했습니다. 미국식의 상하원이 연상됩니다. 1988년 기준으로 노소원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55세를 기준으로 그 이상은 노원이고, 그 이하는 소원으로 이원 구성을 했습니다.
제 질문은 당시 55세라면 노령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65세도 청년입니다. 공회는 만사 옛것을 고수한다는 입장으로 볼 때 이것도 고수를 해야 할 사안인지 아니면 변경을 할 수 있다면 그 적절선이나 기준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각 공회 별로 연령 적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현황까지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편에 따라 바꿀 수 없는 것은 '신앙의 노선'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해석과 교리와 신조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형편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은 '목회적 결정'이거나 '개별 순종'이라고 합니다.
<공회의 교회 결정>
크게 보면 '공회' 전체가 되고 범위를 줄이면 각 교회를 두고 여러 회원이 한 몸이 되어 하나를 결정할 때 '천주교'는 교황 1인의 결정에 맡기고,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의 '당회'에 맡깁니다. 공회는 각 교회의 경우 '권찰회'에 맡기고 공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역자회에 맡깁니다. 공회가 권찰회나 교역자회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이유는 '목회적' 결정이 교회 결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교회는 '공동의회'를 개최하고 공회는 '총공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세상이 볼 때나 교계가 볼 때 '하나의 단체'라면 전 회원이 모여 결정하는 사안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것을 무시하게 되면 오해가 너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각 교회는 연초에 공동의회를 열고 한 해의 결산 보고를 하고 임명직을 발표하며, 공회는 안수와 한 해 보고를 견지하는 편입니다. 타 교단은 이 부분이 대단히 엄격하게 지켜 지고 공회는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보니 어느 한 기간만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마치 법처럼 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또 어떤 분들은 공회가 무슨 단체냐며 법원에까지 가서 온갖 억지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불리를 떠나 옳고 그른 것은 구별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좀 나은 사람이고 눈 앞에 이익을 위해 성경과 교리와 노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모조리 올려 놓는 이들은 도박에 빠진 분들입니다.
<노소원 위원회>
백 목사님 혼자 공회를 인도하고 만사를 결정해 오다가 1960년대에 총공회를 한 번씩 개최했고 1970년대가 되면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백 목사님의 결정을 배우도록 했으니 외형은 위원회고 내부는 공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목사님의 행정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인원도 조직의 구성과 역할까지 공회는 행정에 관하여는 뭐든 지속하지 않고 늘 더 나은 대처를 위해 면밀히 살피면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주일학교도, 중간반 제도와 구역 제도 등의 기본은 늘 동일하나 구체적인 대처는 늘 개선을 노력해 왔습니다. 마찬 가지로 공회 운영도 그렇게 늘 노력해 왔고 변화가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백영희 1인 결정의 초기와 여러 제자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배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외모는 달라 졌으나 내용은 늘 백영희 1인 결정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너무 뛰어 난 점이 있었고 배우는 이들의 수준이 너무 하찮았기 때문에 이런 시기가 오래 지속 되었습니다.
1988년, 백 목사님은 1 년 안에 돌아 가실 것을 아셨고 이미 탈퇴가 시작 되었으며 잔존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탈퇴를 할 사람이거나 목사님 사후에 공회 자체를 내부에서 바꿀 인물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르치거나 인도할 시기가 끝 났음을 알았고, 그냥 그대로 가게 되면 후임을 자처하는 1인이 앞에 서거나 또는 그 1인을 앞에 세워 놓고 공회 자체를 통째로 바꾸고 싶은 그런 부류들이 공회 전체를 뒤집는 과정에 소수의 고수파들까지 요절을 낼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으로 공회의 모든 운영을 변경하여, '운영위'가 실권을 가지는 체제로 바꾸고 각 교회에게는 목회자 선택권을 100% 가지게 했습니다.
각 교회는 권찰회를 중심에 두든 재직회를 그렇게 하든 타 교단처럼 당회가 하든 천주교처럼 한 목회자가 독단을 하든 각 교회가 알아서 하되, 2 년에 1 회의 시무투표 제도만은 확고히 만들어 각 교회에게 제공했습니다. 1989년 목사님이 돌아 가시고 1990년에 3분의 2 교회는 시무투표 제도 자체를 폐기했습니다. 그 3분의 2에 해당하는 목회자들은 좋아서 그랬을지 몰라도 교인들까지 시무투표 제도를 없애는 데 동참한 것은 참 기이한 일입니다. 목회자들조차 자기가 불리한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싫어 했을 듯하나 이 나라 백성은 불신자나 신자나 공회 사람이나 분위기에 따라 울컥 하면 벌컥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성향이 있다고 보입니다.
질문과 관련하여, 공회는 운영위원회라는 과도기를 거친 다음에 '노소원 위원회'를 공회의 향후 제도로 채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백영희 정도의 지도자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지도자 1인의 결정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고,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되어야 좋습니다. 백영희 정도의 지도자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라는 과도기도 필요하지 않고 노소원 위원회가 필요합니다. 공회는 법적 단체가 아니고 전원일치라는 특별한 노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소원 위원회 체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체제, 어떤 이름, 어떤 구도라야 한다고 못을 박지는 못합니다. 각 교회와 각 공회의 여러 형편에 따라 각자 가장 좋은 형태를 가지면 됩니다. 백영희 1인 지도 체제가 더 나은 공회가 위원회에게 실권을 주면 훌륭한 지도력은 사장 되는 것이고, 백영희 정도의 지도력도 없는 인물이 흉내를 내려 하면 그냥 둬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어떻게 하려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분화 되며 자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부공1의 경우, 백영희 사후에 백영희 자리에 앉아 흉내를 낸 분이 있고 모두가 생전처럼 따르다가 현재 자멸하여 조직이 유지조차 어렵습니다. 서부교회의 4층은 와해가 되었고 부공1의 공회는 결국 참 우습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보통 서영호라는 인물을 탓하는데 제가 볼 때는 자멸일 뿐입니다. 부공2와 대구공회는 내부적으로 몇몇의 실권들이 눈치껏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여 외부로는 위원회 체제로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교권을 적절히 행사해 왔다고 보입니다. 그 공회들 내부에 발생한 별별 일들은 그 세력들의 실력과 오판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부공3의 경우는 연구소를 통해 온갖 내부 상황을 전부 공개해 왔으니 각자 판단하면 될 듯합니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철저히 내부 이야기를 덮고 온 공회들은 대략 짐작할 뿐이고 부공3은 지나치게 세세히 공개했다고 생각합니다.
<노소원위원회의 구성>
소위원회의 변경은 항상 가능합니다. 다만 조심해서 바꾸는 것이 공회 노선입니다. 소위원회의 인원 조정도 그렇습니다. 100개 교회의 150여명 정도의 공회원을 가지고 노원 3명씩 5부서 15 명 위원이 있었고, 소원은 부서 별 5 명이어서 25명이며, 합해서 40명으로 기억하나 숫자는 자료를 확인해야 합니다. 당시 노원은 55세 이상입니다. 공회는 만 나이가 아니라 출생연도를 1년으로 치는 셈법입니다. 당시 노원은 연로한 분들입니다. 서영호 송종섭 목사님이 모두 소원이었습니다. 지금 이 분들은 80대 중반을 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노원의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인원도 조절할 것인지는 각 공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공회의 역사를 잘 알고 공회가 처리해 온 모든 것이 세월 속에 자기 목회와 인격과 신앙에 배어 든 사람으로서 공회의 만사를 과거 지향적으로 고수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을 노원이라 합니다. 꼭 같은 신앙을 가졌다 해도 배우는 입장이며 시작하는 단계이며 뭔가 달리 추구해 보고자 하는 열심과 노력과 그런 시야를 가졌다면 그가 바로 소원입니다. 공회원 전체의 구성을 놓고 볼 때 이 기준을 가지고 노소원을 나누는 것이 '노소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입니다. 1988년 기준으로 보면 백 목사님의 지도에 매사 빼딱하게, 뒤로 불평을 해 대고 온갖 불만을 쏟아 내던 이들이 55세 이하들이었습니다. 연령이 전부는 아니나 정00, 이00, 김00, 김00. 서00, 송00 ... 그리고 아주 소수인 성씨는 표시가 쉽게 드러 나서 생략하겠습니다. 이들의 별별 뒷소리 때문에 그 소리를 진압하자는 원로들에게 너희들이 부추겨 놓고 무슨 짓이냐며 차라리 소원위원회에 포함을 시켜 드러 내고 앞에서 발언을 하게 하자 한 것이 노소원입니다. 원래 공회의 운영위원회는 훗날 출발하는 노소원을 기준으로 보면 전부 노원이었습니다. 노원은 역사적으로 목사님께 순종한 것처럼 보이나 백태영 백영익이라는 성함부터가 극단적 반발 세력이지만 그래도 처신이 좀 나을 것이고 또 노원에는 백 목사님이 계시니 그 면전에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면이 있어 전체적으로 이렇게 구성을 했습니다.
<답변을 결론한다면>
이런 역사와 상황을 가지고, 각 공회가 알아서 결정하면 됩니다. 각 교회도 노소원을 둘 상황이면 두는 것이 좋고, 둔다면 노소원의 분류 기준도 이렇습니다. 현재 대구공회는 과도기였던 '운영위' 체제이며 노소원을 섣불리 배척하는 바람에 34년이 지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우나 그들이 1989년에 그렇게 결정을 했고 이후 관성에 따라 그냥 떠 내려 가고 있습니다. 아마 내용적으로는 노소원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겉으로 노소원을 엄하게 분류한 부공2보다는 차라리 좋으나, 겉도 좋고 속도 좋으면 더 나을 뻔했습니다. 대구공회는 원로 대접을 받는 소수가 노원은 아니나 마치 노원처럼 역할을 좀 하는 듯합니다. 연세로는 노소원의 노원이나 실제로는 소원적인 성향을 가지고도 노원보다 더 건전한 분들이 잘못 된 노원을 바로 잡는 역할까지 하는 듯 보입니다.
부공2는 거의 대부분이 대구공회에 설 뻔했거나 대구공회에 섰다고 황급히 돌아 온 분들이어서 그런지, 겉으로는 마치 노소원을 교리처럼 결사 수호하는 듯이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엉망입니다.
<공회의 교회 결정>
크게 보면 '공회' 전체가 되고 범위를 줄이면 각 교회를 두고 여러 회원이 한 몸이 되어 하나를 결정할 때 '천주교'는 교황 1인의 결정에 맡기고, 장로교는 목사와 장로의 '당회'에 맡깁니다. 공회는 각 교회의 경우 '권찰회'에 맡기고 공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역자회에 맡깁니다. 공회가 권찰회나 교역자회에게 모든 결정을 맡기는 이유는 '목회적' 결정이 교회 결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교회는 '공동의회'를 개최하고 공회는 '총공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세상이 볼 때나 교계가 볼 때 '하나의 단체'라면 전 회원이 모여 결정하는 사안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것을 무시하게 되면 오해가 너무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각 교회는 연초에 공동의회를 열고 한 해의 결산 보고를 하고 임명직을 발표하며, 공회는 안수와 한 해 보고를 견지하는 편입니다. 타 교단은 이 부분이 대단히 엄격하게 지켜 지고 공회는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보니 어느 한 기간만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마치 법처럼 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또 어떤 분들은 공회가 무슨 단체냐며 법원에까지 가서 온갖 억지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불리를 떠나 옳고 그른 것은 구별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좀 나은 사람이고 눈 앞에 이익을 위해 성경과 교리와 노선과 자신의 모든 것을 모조리 올려 놓는 이들은 도박에 빠진 분들입니다.
<노소원 위원회>
백 목사님 혼자 공회를 인도하고 만사를 결정해 오다가 1960년대에 총공회를 한 번씩 개최했고 1970년대가 되면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백 목사님의 결정을 배우도록 했으니 외형은 위원회고 내부는 공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목사님의 행정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인원도 조직의 구성과 역할까지 공회는 행정에 관하여는 뭐든 지속하지 않고 늘 더 나은 대처를 위해 면밀히 살피면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주일학교도, 중간반 제도와 구역 제도 등의 기본은 늘 동일하나 구체적인 대처는 늘 개선을 노력해 왔습니다. 마찬 가지로 공회 운영도 그렇게 늘 노력해 왔고 변화가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백영희 1인 결정의 초기와 여러 제자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배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외모는 달라 졌으나 내용은 늘 백영희 1인 결정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너무 뛰어 난 점이 있었고 배우는 이들의 수준이 너무 하찮았기 때문에 이런 시기가 오래 지속 되었습니다.
1988년, 백 목사님은 1 년 안에 돌아 가실 것을 아셨고 이미 탈퇴가 시작 되었으며 잔존 지도자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탈퇴를 할 사람이거나 목사님 사후에 공회 자체를 내부에서 바꿀 인물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르치거나 인도할 시기가 끝 났음을 알았고, 그냥 그대로 가게 되면 후임을 자처하는 1인이 앞에 서거나 또는 그 1인을 앞에 세워 놓고 공회 자체를 통째로 바꾸고 싶은 그런 부류들이 공회 전체를 뒤집는 과정에 소수의 고수파들까지 요절을 낼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으로 공회의 모든 운영을 변경하여, '운영위'가 실권을 가지는 체제로 바꾸고 각 교회에게는 목회자 선택권을 100% 가지게 했습니다.
각 교회는 권찰회를 중심에 두든 재직회를 그렇게 하든 타 교단처럼 당회가 하든 천주교처럼 한 목회자가 독단을 하든 각 교회가 알아서 하되, 2 년에 1 회의 시무투표 제도만은 확고히 만들어 각 교회에게 제공했습니다. 1989년 목사님이 돌아 가시고 1990년에 3분의 2 교회는 시무투표 제도 자체를 폐기했습니다. 그 3분의 2에 해당하는 목회자들은 좋아서 그랬을지 몰라도 교인들까지 시무투표 제도를 없애는 데 동참한 것은 참 기이한 일입니다. 목회자들조차 자기가 불리한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싫어 했을 듯하나 이 나라 백성은 불신자나 신자나 공회 사람이나 분위기에 따라 울컥 하면 벌컥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성향이 있다고 보입니다.
질문과 관련하여, 공회는 운영위원회라는 과도기를 거친 다음에 '노소원 위원회'를 공회의 향후 제도로 채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백영희 정도의 지도자가 나온다면 언제든지 지도자 1인의 결정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고,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되어야 좋습니다. 백영희 정도의 지도자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운영위원회라는 과도기도 필요하지 않고 노소원 위원회가 필요합니다. 공회는 법적 단체가 아니고 전원일치라는 특별한 노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소원 위원회 체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체제, 어떤 이름, 어떤 구도라야 한다고 못을 박지는 못합니다. 각 교회와 각 공회의 여러 형편에 따라 각자 가장 좋은 형태를 가지면 됩니다. 백영희 1인 지도 체제가 더 나은 공회가 위원회에게 실권을 주면 훌륭한 지도력은 사장 되는 것이고, 백영희 정도의 지도력도 없는 인물이 흉내를 내려 하면 그냥 둬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어떻게 하려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분화 되며 자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부공1의 경우, 백영희 사후에 백영희 자리에 앉아 흉내를 낸 분이 있고 모두가 생전처럼 따르다가 현재 자멸하여 조직이 유지조차 어렵습니다. 서부교회의 4층은 와해가 되었고 부공1의 공회는 결국 참 우습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보통 서영호라는 인물을 탓하는데 제가 볼 때는 자멸일 뿐입니다. 부공2와 대구공회는 내부적으로 몇몇의 실권들이 눈치껏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여 외부로는 위원회 체제로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교권을 적절히 행사해 왔다고 보입니다. 그 공회들 내부에 발생한 별별 일들은 그 세력들의 실력과 오판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부공3의 경우는 연구소를 통해 온갖 내부 상황을 전부 공개해 왔으니 각자 판단하면 될 듯합니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철저히 내부 이야기를 덮고 온 공회들은 대략 짐작할 뿐이고 부공3은 지나치게 세세히 공개했다고 생각합니다.
<노소원위원회의 구성>
소위원회의 변경은 항상 가능합니다. 다만 조심해서 바꾸는 것이 공회 노선입니다. 소위원회의 인원 조정도 그렇습니다. 100개 교회의 150여명 정도의 공회원을 가지고 노원 3명씩 5부서 15 명 위원이 있었고, 소원은 부서 별 5 명이어서 25명이며, 합해서 40명으로 기억하나 숫자는 자료를 확인해야 합니다. 당시 노원은 55세 이상입니다. 공회는 만 나이가 아니라 출생연도를 1년으로 치는 셈법입니다. 당시 노원은 연로한 분들입니다. 서영호 송종섭 목사님이 모두 소원이었습니다. 지금 이 분들은 80대 중반을 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노원의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인원도 조절할 것인지는 각 공회가 결정할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공회의 역사를 잘 알고 공회가 처리해 온 모든 것이 세월 속에 자기 목회와 인격과 신앙에 배어 든 사람으로서 공회의 만사를 과거 지향적으로 고수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을 노원이라 합니다. 꼭 같은 신앙을 가졌다 해도 배우는 입장이며 시작하는 단계이며 뭔가 달리 추구해 보고자 하는 열심과 노력과 그런 시야를 가졌다면 그가 바로 소원입니다. 공회원 전체의 구성을 놓고 볼 때 이 기준을 가지고 노소원을 나누는 것이 '노소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입니다. 1988년 기준으로 보면 백 목사님의 지도에 매사 빼딱하게, 뒤로 불평을 해 대고 온갖 불만을 쏟아 내던 이들이 55세 이하들이었습니다. 연령이 전부는 아니나 정00, 이00, 김00, 김00. 서00, 송00 ... 그리고 아주 소수인 성씨는 표시가 쉽게 드러 나서 생략하겠습니다. 이들의 별별 뒷소리 때문에 그 소리를 진압하자는 원로들에게 너희들이 부추겨 놓고 무슨 짓이냐며 차라리 소원위원회에 포함을 시켜 드러 내고 앞에서 발언을 하게 하자 한 것이 노소원입니다. 원래 공회의 운영위원회는 훗날 출발하는 노소원을 기준으로 보면 전부 노원이었습니다. 노원은 역사적으로 목사님께 순종한 것처럼 보이나 백태영 백영익이라는 성함부터가 극단적 반발 세력이지만 그래도 처신이 좀 나을 것이고 또 노원에는 백 목사님이 계시니 그 면전에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면이 있어 전체적으로 이렇게 구성을 했습니다.
<답변을 결론한다면>
이런 역사와 상황을 가지고, 각 공회가 알아서 결정하면 됩니다. 각 교회도 노소원을 둘 상황이면 두는 것이 좋고, 둔다면 노소원의 분류 기준도 이렇습니다. 현재 대구공회는 과도기였던 '운영위' 체제이며 노소원을 섣불리 배척하는 바람에 34년이 지나면서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우나 그들이 1989년에 그렇게 결정을 했고 이후 관성에 따라 그냥 떠 내려 가고 있습니다. 아마 내용적으로는 노소원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겉으로 노소원을 엄하게 분류한 부공2보다는 차라리 좋으나, 겉도 좋고 속도 좋으면 더 나을 뻔했습니다. 대구공회는 원로 대접을 받는 소수가 노원은 아니나 마치 노원처럼 역할을 좀 하는 듯합니다. 연세로는 노소원의 노원이나 실제로는 소원적인 성향을 가지고도 노원보다 더 건전한 분들이 잘못 된 노원을 바로 잡는 역할까지 하는 듯 보입니다.
부공2는 거의 대부분이 대구공회에 설 뻔했거나 대구공회에 섰다고 황급히 돌아 온 분들이어서 그런지, 겉으로는 마치 노소원을 교리처럼 결사 수호하는 듯이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엉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