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교재 질문) 인용 성구와 표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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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참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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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6 15:26
(대리질문)
2022. 8. <하나님의 주권> 집회교재 79쪽
에서는 택자인데 왜 불택자처럼 표현되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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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교재 79쪽
절대주권론
불택자 예정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 택과 불택
기본적으로 택자와 불택자는 전적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에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면 단정도 할 수 있고 짐작도 할 수 있습니다. 택자는 반드시 중생하게 되어 있고, 요3:8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신 말씀처럼, 중생의 시점이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과 생활의 모습을 보면 중생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가인, 에서, 이스마엘이 그러하고, 가룟 유다나 홍포 입은 부자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영과 마음과 몸으로 구분하는 삼분론에 바탕을 두는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들은 다 지옥 갈 불택자로 볼 수밖에 없으나,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바로 깨닫고 나면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2. 노아의 아들 함의 경우
함은 노아의 아들입니다. 시대를 심판한 노아 홍수에서 함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인구가 200억쯤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8명만 구원을 받았고, 함은 그 8명 중에 들어갔습니다. 벧전3:20에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셨습니다. 함을 포함한 8명입니다. 이 성구를 근거할 때 함이 구원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홍수 후에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냄으로 노아로부터 자손 대대에 이르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4-25). 함의 탈선으로 인하여 그 후손들 대부분은 탈선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였고, 가나안 점령 때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은 전멸을 시켜버립니다.
전인류를 심판한 홍수에서 함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천국 간 택자라는 말입니다. 홍수 후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은 지옥에 갔을까? 방주에서 구원받은 함과 홍수 후 저주받은 함은 같은 인물입니다. 함은 불택자일까? 함이 불택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후의 함의 행위는 지옥 갈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후손들은 거의 대부분 자손 대대로 저주받은 길을 갔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삼분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가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3. 에서와 이스마엘은 택자인가?
에서와 이스마엘의 행위를 보면 택자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고 아버지의 축복으로 내려오는 아브라함의 신앙 계통의 축복을 빼앗겼으며, 그 이후에도 세상으로 나가서 탈선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특별히 잘못된 행적이 나와 있지 않으나 처음부터 곁가지였고, 세상으로는 잘나가지만 신앙적인 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 다 신앙의 걸음은 걸은 행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불택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인은 아담 하와의 아들인데도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최악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였고, 의로운 동생을 시기하여 쳐 죽였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모른다고 부인하며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인은, 잘못된 제사일지언정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생애와 행적이 잘못된 것이지 그렇다고 지옥 갈 불택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구약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혈육의 계통에 있습니다.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일단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의 백성이고, 택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친손자입니다. 이삭의 장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원을 받은 택자로 볼 수 있습니다.
에서가 택자이니 그 후손도 모두 택자일까? 그것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먹었고 실질적으로도 장자의 모든 권리와 내용을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빼앗겼지만 실상은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아들로 아브라함의 손자였지만 탈선의 길을 걸어 세상으로 나갔고, 따라서 그 후손들까지 택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예외는 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 역시 택자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곁가지였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었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받았다고 다 택자라고 하기는 곤란하지만 ‘아브라함의 아들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도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것입니다.
하갈이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다가 쫓겨나서 광야로 도망쳤을 때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셨고 하갈은 자기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 집에서 쫓겨나 들에서 방황할 때도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사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고, 창21:13에는, 이삭과 같은 의미의 구원 계통의 씨는 아니지만, 아브라함에게 ‘여종의 아들도 네 씨’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역시 에서의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택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마엘이 곁가지이면서 신앙의 길을 걷지 않고 세상으로 나간 탈선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나 이스마엘이 부모나 조상들의 덕을 봤다면, 에서와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그 부모며 조상인 에서와 이스마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집회 교재는
집회 교재는 내용 전부를 기록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최대한 간추려 놓고 설교 때 참고하는 생략형 교재입니다. 이번 문답에서 ‘집회 참석’ 이름으로 질문하신 부분은 누구나 의문을 가지고 그렇게 지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함이나 에서, 이스마엘 같은 인물의 택과 불택에 대한 공회의 입장은 일반 교계와 달리 아주 체계적이면서도 복잡해서 그 내용을 교재에 다 실을 수도 없고 또 집회 중 설교를 충분하게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질문하신 교재의 해당 부분은 수정이나 보충이 가능한 데이터 부분부터 ‘에서는 택자, 그 자손은 불택자’라는 뜻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택자와 불택자는 전적 하나님의 선택이기 때문에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면 단정도 할 수 있고 짐작도 할 수 있습니다. 택자는 반드시 중생하게 되어 있고, 요3:8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신 말씀처럼, 중생의 시점이나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과 생활의 모습을 보면 중생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는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인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가인, 에서, 이스마엘이 그러하고, 가룟 유다나 홍포 입은 부자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영과 마음과 몸으로 구분하는 삼분론에 바탕을 두는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들은 다 지옥 갈 불택자로 볼 수밖에 없으나,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바로 깨닫고 나면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2. 노아의 아들 함의 경우
함은 노아의 아들입니다. 시대를 심판한 노아 홍수에서 함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인구가 200억쯤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8명만 구원을 받았고, 함은 그 8명 중에 들어갔습니다. 벧전3:20에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하셨습니다. 함을 포함한 8명입니다. 이 성구를 근거할 때 함이 구원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홍수 후에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냄으로 노아로부터 자손 대대에 이르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4-25). 함의 탈선으로 인하여 그 후손들 대부분은 탈선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였고, 가나안 점령 때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은 전멸을 시켜버립니다.
전인류를 심판한 홍수에서 함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천국 간 택자라는 말입니다. 홍수 후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은 지옥에 갔을까? 방주에서 구원받은 함과 홍수 후 저주받은 함은 같은 인물입니다. 함은 불택자일까? 함이 불택자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후의 함의 행위는 지옥 갈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후손들은 거의 대부분 자손 대대로 저주받은 길을 갔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삼분론,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교리가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3. 에서와 이스마엘은 택자인가?
에서와 이스마엘의 행위를 보면 택자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고 아버지의 축복으로 내려오는 아브라함의 신앙 계통의 축복을 빼앗겼으며, 그 이후에도 세상으로 나가서 탈선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특별히 잘못된 행적이 나와 있지 않으나 처음부터 곁가지였고, 세상으로는 잘나가지만 신앙적인 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 다 신앙의 걸음은 걸은 행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불택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인은 아담 하와의 아들인데도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최악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였고, 의로운 동생을 시기하여 쳐 죽였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모른다고 부인하며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인은, 잘못된 제사일지언정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의 생애와 행적이 잘못된 것이지 그렇다고 지옥 갈 불택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구약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혈육의 계통에 있습니다.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일단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의 백성이고, 택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친손자입니다. 이삭의 장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원을 받은 택자로 볼 수 있습니다.
에서가 택자이니 그 후손도 모두 택자일까? 그것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먹었고 실질적으로도 장자의 모든 권리와 내용을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빼앗겼지만 실상은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아들로 아브라함의 손자였지만 탈선의 길을 걸어 세상으로 나갔고, 따라서 그 후손들까지 택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예외는 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 역시 택자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곁가지였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었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받았다고 다 택자라고 하기는 곤란하지만 ‘아브라함의 아들로’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도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것입니다.
하갈이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다가 쫓겨나서 광야로 도망쳤을 때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하셨고 하갈은 자기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 집에서 쫓겨나 들에서 방황할 때도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사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고, 창21:13에는, 이삭과 같은 의미의 구원 계통의 씨는 아니지만, 아브라함에게 ‘여종의 아들도 네 씨’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역시 에서의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택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스마엘이 곁가지이면서 신앙의 길을 걷지 않고 세상으로 나간 탈선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나 이스마엘이 부모나 조상들의 덕을 봤다면, 에서와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그 부모며 조상인 에서와 이스마엘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집회 교재는
집회 교재는 내용 전부를 기록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최대한 간추려 놓고 설교 때 참고하는 생략형 교재입니다. 이번 문답에서 ‘집회 참석’ 이름으로 질문하신 부분은 누구나 의문을 가지고 그렇게 지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함이나 에서, 이스마엘 같은 인물의 택과 불택에 대한 공회의 입장은 일반 교계와 달리 아주 체계적이면서도 복잡해서 그 내용을 교재에 다 실을 수도 없고 또 집회 중 설교를 충분하게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질문하신 교재의 해당 부분은 수정이나 보충이 가능한 데이터 부분부터 ‘에서는 택자, 그 자손은 불택자’라는 뜻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