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왕은 택자인가요 불택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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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 왕은 택자인가요 불택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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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 왕에 대해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느부갓네살은 택자인가요, 아니면 구원을 위한 이용물인가요?

담당 4 2022.02.22 20:50  
1.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느부갓네살이 택자인지 불택자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불택자라면 어느 한 곳도 택자로 보이는 부분이 없어야 하는데, 느부갓네살은 택자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택자일 가능성은 높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 성경에서 느부갓네살의 행적을 살펴보면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나라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최종으로 멸망시킨 장본인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했고, 남은 이스라일인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망했는데 그때의 왕이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많은 사람을 바벨론으로 잡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신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느부갓네살은 불행하게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신상의 꿈을 꾸고 바벨론 나라의 모든 박사와 술사들을 불러서, 자기가 꾼 꿈이 무슨 꿈인지 알면 그 해석도 인정하겠다고 해서 알지 못하자 모든 술사 박사를 다 죽이라고 했던 왕,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 받아서, 하나님께서 왕에게 앞으로의 일을 알리신 것이라고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했던, 그 왕이 느부갓네살이었고,

두라 평지에 높이가 60규빗, 넓이가 여섯 규빗이나 되는 큰 금 신상을 만들고 그 나라 신민 모두에게 절하게 하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에 던졌던 왕, 세 사람을 던진 후 타는 풀무 불 안에서 신의 아들 같은 한 사람을 포함해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 것을 보고 다시 불러내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인 사람도 이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바벨론 나라를 자기의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다고 교만했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지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어 일곱 때를 살다가, 모든 인간 나라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깨닫고 난 다음에야 다시 총명과 왕의 자리를 되찾게 된, 이 모든 일이 있기 전 이에 대한 꿈을 꾸어 번민할 때 다니엘이 해석을 해 주고 왕에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조심해서 살라고 간절히 구했던, 바로 그 왕이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3. 택자 불택자를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

1) 불택자로 볼 수 있는 근거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 나라의 왕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이방인도 구원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이방인입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 나라의 왕,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킨 나라의 왕입니다. 이 자체로만 보면 택자로 보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신상의 꿈을 꾸고 그 꿈과 해석을 아무도 몰랐을 때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아, 그 꿈은 하나님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리신 것이라고 하면서 꿈과 해석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그래서 다니엘을 높였고 하나님을 높였지만 ‘너희 하나님’이라고 했지 자기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 일이 있고 난 다음 바로 두라 평지에 큰 금 신상을 세웠고,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에 던졌으며, 풀무 불에서 신의 아들 같은 사람도 보았고, 세 사람이 불탄 냄새도 나지 않고 살아나온 것을 보고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이라고 했지 자기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택자로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

큰 나무의 꿈을 꾸고 다니엘이 해석해 준 대로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지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어 일곱 때를 지낸 후 하늘을 우러러보았을 때 총명이 다시 돌아왔고,

이때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존경하였으며,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고, 땅의 모든 것을 자기의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고, 총명과 나라의 위엄과 광명이 돌아왔으며 다시 왕으로 세움을 입었고, 그 후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했다고 했습니다.


4. 결론적으로

초두에 설명드렸지만 불택자라면 평생을 통하여 단 한 번도 택자와 같은 모습은 없어야 하는데 느부갓네살은 이방 나라의 왕,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킨 나라의 왕이며 오랜 기간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고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봤지만 인정하지 않았다가 결정적으로 일곱 때를 짐승처럼 지낸 후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택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으나 전체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담당 2022.02.22 22:02  
천국의 구원을 받은 택자냐 불택자냐 라는 문제는 교계적으로 너무 흔하게 단정하지만 공회는 기본구원에 속한 택함과 불택만은 최대한 단정하지 않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죽을 때 구원받는 이들이 있고 그들의 구원은 천국에 가서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땅 위에 사는 우리에게 택함과 불택을 기록해 주셨기 때문에 소망 중에 늘 택한 백성을 전도하여 구원함을 생의 최고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히 지옥 갈 불택자라는 단정은 그 누구를 향해서도 우리가 직접 우리 입으로 우리 결정으로 끝맺음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교리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알려 주지 않았을 때는 옳고 좋고 소망적인 면으로 기대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고 심판 그 자체는 하나님만 합니다.

구약에도 이방인들 중에 예외적으로 구원을 얻었던 라합이나 룻이 있기 때문에 이방인은 무조건 불택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거의 없다 할 정도임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을 나누어 기록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일단 느부갓네살 문제는 구약이라는 시점이 중요합니다. 구약은 구원의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육체적으로 외견적으로 일단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아람 나라 나아만 정도라면 병이 나은 것에 그치지 않고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리고 다른 신에게는 제사를 폐하나 왕을 모시는 업무 때문에 왕을 붙들다가 굽히는 것만 양해를 구하며 '여호와의 사유'를 질문했고 엘리사는 '평안'으로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주님이 눅4:25에서 엘리야가 시돈 땅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심을 받았고 4:27에서 깨끗함을 얻은 사람을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라 했습니다. 구약에서 치료는 육체의 치료로 끝이 남으로 애굽의 10재앙이 진행될 때 치료나 해결을 받은 애굽인은 그 자체로 구원과 연결할 수 없으나 이 2 가지는 구약의 육체 기록에 이어 신약에 주님이 직접 '보내심' '깨끗함'을 표시했으니 구약에도 예외적으로 구원 받은 이방인으로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구약에 기록되었고 이방인이며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완전 훼파한 이방 나라의 왕이니 사단 정도로 봐야 합니다. 물론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를 여러 번 겪었으나 접한 것까지만 나오지 나아만처럼 돌아선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 51장에서 느부갓네살과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에 대한 결론을 보면 이스라엘을 칠 때만 사용하고 영원히 쇠패 시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정도가 된다면, 불택을 단정하는 것은 늘 가장 조심을 해야 하나 불택자로 보인다, 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정말 애매한 인물은 대하36:22의 바사 왕 고레스입니다. 일단 바사는 이스라엘을 직접 멸망 시킨 바벨론이 아니고 바벨론을 이어 일어난 나라입니다. 고레스는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여기까지는 느부갓네살도 겪었습니다. 이어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 표현은 쉽게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정도라면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와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응원한 이방인 정도일까 아니면 기본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복구 역사에 직접 심부름을 맡았던 택자일까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담당 2022.02.23 09:31  
* 하나님을 알아 보는 것은
약2:19에서 귀신들도 '믿고'라 했으니 아는 것으로는 구원 안으로 들어 오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미디고 떠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원 밖에서 하나님의 멸망 역사만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 예수님의 역사에 무릎을 꿇는 것은
빌2:10에서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신다 했으니 구원 운동을 받아 들인 것과 구원 운동이 옳고 맞고 바르며 그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인정하는 것만 가지고는 구원 안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한다면
빌2:11에 따라 예수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외에 인생에게 완전이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길이 없다는 인정, 여기까지만 가지고는 여전히 구원 안이라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면
빌2:11에 따라 오늘 세상의 죄와 악령과 사망의 어두움에 가려 살 때는 하나님도 성부의 전체 역사도 또 그 영광도 대적하고 살지만 육체를 벗고 영계에 가면 음부의 불택자도 구원은 받지 못하여 불에 타고 있으나 모든 것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그 때는 불택자가 영원히 불 가운데 타면서도 하나님의 택한 자녀 구원 역사에 감탄하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은 모든 것이 가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한 번씩 빛을 비추어 주시면 불택자를 포함한 미중생의 세상 사람도 잠깐 빛 가운데 들어 온 사람이 알게 되는 그런 세계를 체험하게 되니 일시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외면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구원이 그들의 안에 들어 갔다고 단정하지는 못합니다.

요나처럼 죄악 속에 깊이 빠져 있으나 돌아 오는 길에 있어 그의 평생에 가장 밝을 때를 겪는 이도 있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돈을 맡았을 때와 요압이 다윗의 최고 장군으로 활동할 때처럼 모두에게 빛의 사람으로 살던 그 시기 그들 속은 이미 오실 주님을 예표한 다윗의 최고 대적이고 오신 예수님을 돈으로 계산하며 팔 생각을 하였으니 우리 보기에 빛의 사자처럼 보여도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사단에게 붙들려 있을 수 있습니다.

택함과 불택만은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것이 늘 주의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신앙이 자라 가려면 실수를 할지라도 현재 자기 신앙으로서는 이 사람이 복이다, 저 사람의 저 행동을 보니 중생도 하지 않았다 등으로 구별하면서 자기의 이런 판단이 확실한지 여부는 세월을 통해 자기가 자라면 확정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자라지 않아도 자기가 판단한 인물이나 행위가 열매로 드러 나게 되면 그 때는 자기의 이전 판단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알게 될 때 그 열매를 통해 또는 그 결과를 통해 상대방을 분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지난 날의 구별과 판단에 어떤 면이 옳았고 어떤 면이 잘못이었는지를 살펴 내가 나를 점검하는 것이 더 큰 유익을 얻습니다. 어떤 때는 과연 옳았고, 대부분은 우리의 과거 짐작과 판단에 부족이 많음을 발견한다면 이 사람은 지금 자기 자신이 가속도로 자라 가고 있으니 이 복이 너무 큰 수입입니다. 또한 남에 대해서는 정죄로 심판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접하게 하시고 구별을 하게 만드시니 순종했을 뿐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 배우는 학생이니 학생이 학생의 신분을 잊지 않고 학생으로서 받은 과제를 풀어 본 것인 줄 아는 이상 우리가 적은 답은 최후 심판이 아니기 때문에 형제를 정죄하고 심판한 죄에 상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알지 못하고 불택자다 택자다, 택자지만 아직 중생이 되지 않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 온 사단의 무리다 라는 판단과 발표를 함부로 하다 보면 그들이 실제 그런지 아닌지 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니, 하나님 외에 할 수 없는 자세와 발표를 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이 죄야말로 바로 1계명을 어기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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