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에 방역 패스를 도입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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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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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8 21:03
12월 7일 정부는 종교계와 함께 종교 시설의 방역 강화 방안을 협의한다고 발표했고, 10일에는 종교 시설에 방역 패스 도입 문제를 검토한다고 추가했습니다. 이에 예자연(예배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는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권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종교 시설에 대한 백신 패스 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첫째, 백신의 안정성이 미확보
둘째, 돌파 감염으로 백신의 효과성 미지수
셋째, 청소년의 부작용이 심각하여 청소년의 백신 도입은 신중
넷째, 일반 다중시설이나 식당에 비하여 감염 사례가 거의 전무
교회에 백신 패스를 도입한다면 미접종 목사의 예배 인도가 막히는 문제가 나온다 합니다. 연구소의 입장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역 패스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방역 백신 주사를 맞으면 출입을 시켜 준다는 '통행증'을 말합니다.
방역 패스가 있어야 교회의 예배를 참석할 수 있다는 정부의 조처는 예배 참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역 패스가 예배를 방해하는가?)
방역 패스는 예배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가는 사람에게 백신을 맞으라는 불편을 요구할 뿐입니다. 백신 요구지 예배 방해는 아닙니다. 무료이니 맞으면 되는 것이고 이는 죄 되는 것이 아닌데 이런 문제를 두고 정부와 시비하는 것은 교회로서 옳지 않습니다. 건축법으로 예배당 건축을 막는다고 예배와 종교 자유를 방해한 것일까? 예배당으로 가는 길의 신호등과 보행 제한 지장물과 교통 통제는 예배 방해가 아닙니다. 교회 가는 사람만 차단한다면 예배 방해입니다.
(개인의 자유권을 위해 싸우는가?)
방역 패스를 반대하는 단체의 목적이 '예배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역 패스가 예배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백신을 맞으라는 불편을 요구했을 뿐이고, 이를 거부하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의 시민권을 위해 세상 단체와 연대하여 예배 자유를 도모한다는 것이 됩니다. 예배의 자유를 위해 교회 밖의 세상에 일반 시민과 이해가 맞아서 함께 모였다면 교회가 세상과 멍에를 함께 하는 것이 됩니다.
백신 문제 때문이든 부동산 세법 문제든 교회가 세상의 이해 집단 중 하나와 연대를 하게 되면 그 것이 비록 개인의 자유권 문제라 해도 교회가 교회를 벗어 나서 사회 단체화를 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세상과 싸우는 과정에 세상을 이기기 위해 세상의 일부와 결탁을 하면 싸워서 이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교회가 세상이 되는 것을 속화 타락이라고 합니다.
(롬13장, 세상에게 맡긴 일)
교회는 세상이 교회를 돕든 말든 교회의 일만 하면 됩니다. 교회의 일이란 예배와 전도가 중심입니다. 예배와 전도를 막으면 예배와 전도가 막히는 그 자리까지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출발하다 자기 집 대문에서 막히면 대문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 되고, 예배당 입구에서 막히면 현관에서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교회의 예배를 막는 이유가 불교를 지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부는 예배를 막는 것이 죄가 됩니다.
교회의 예배를 막는 이유가 건물의 붕괴 위험이면 그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정부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권한이 있고 정부는 막을 권한이 있습니다. 이 때 깔려 죽어도 그 예배당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권리는 교회의 권리이지만 깔려 죽어도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를 드리겠다고 한다면 이들은 천주교적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입니다. 천주교적으로 예배당의 건물 자체가 신앙이 되었다면 이들은 신앙에도 틀렸고 정부의 옳은 결정에도 항거했으니 하나님께 항거한 사람이 됩니다. 예배당 붕괴로 그 안에서 죽었다면 순교도 아니고 순직도 아니고 개죽음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들어 가겠다는 이들의 그 성령의 인도가 주관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라면, 그렇다 해도 입구를 막는 경찰과 멱살을 잡고 싸우고 밀고 들어 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신 부모가 교회 다니는 아이의 체중 조절을 위해 식사의 분량을 줄인다고 해서 종교 탄압이나 신앙 박해라고 생각하면 이는 동문서답입니다. 교회를 가는 아이에게 식사량을 줄인다면 이는 신앙 박해입니다. 이 때 이 아이는 신앙을 위해 그 밥이 줄어 든 만큼 박해를 받은 것이나 이 박해 때문에 이 아이가 부모와 다투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모는 믿지 않으니 식사량을 줄일 수 있고, 아이는 신앙의 사람이니 식사가 불편한 것만큼 십자가의 고난이고 이 고난이 바로 신앙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지식 범위 내에서 사랑하고 있으니 좋은 부모고, 자녀는 신앙의 댓가로 고난을 받고 있으니 십자가의 군병으로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밥 더 달라고 싸울 일은 아닙니다.
(백신 정책에 대한 비판)
이 단체가 '1.백신의 안정성' '2.효과의 미지성' '3.청소년 문제' '4.다른 시설과 형평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앞에서 3가지는 교회가 구체적으로 크게 실수한 것입니다. 교회가 과학의 전문적이며 실무적 사안을 두고 다수론과 소수론 중에 소수론에 서는 것은 신앙의 보편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일반 보편 자연의 원칙이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르지만 대부분이 옳다고 따른다면 그 대부분의 길이 비록 진리는 아니지만 일단 보편적이며 일반적입니다. 세상의 애매한 문제를 두고 교회가 세상의 일부와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또한 세상은 원래부터 과학적인데 세상의 과학을 우리의 비과학적 신앙을 가지고 세상의 과학 논쟁에 끼어 든다는 자체가 교회의 본질을 세상에게 넘겨 버리는 실수가 됩니다. 코로나 방역 문제에 몰입한 나머지 교회가 싸워서 안 되는 방향과 내용에 선을 넘어 가 버렸습니다. 토끼를 사냥하며 총을 난사하던 사냥꾼이 토끼가 아이들 학교 운동장으로 도망을 가는데 모여 있는 아이들은 보지 않고 토끼만 노려 보며 계속 엽총을 난사하는 셈입니다. 매가 비둘기에 매몰 되어 뒤를 쫓다가 매를 노리는 포수의 총을 잊는 경우입니다.
4번은 예배당과 다른 시설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은 예배 방해로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근거입니다. 과학의 시비를 떠나 세상의 과학적 판단이 옳다면 방역의 제재권은 세상이 하나님께 받은 정당한 권한입니다. 그런데 그 권한으로 세상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보는 정부의 기관 출입을 금하고 경찰과 군인의 활동을 금지하고 대중교통까지 전부 금지를 시키면서 교회의 예배를 금지 시킨다면 세상으로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식 문화와 음악회는 보장하면서 예배를 금지 시킨다면 이 것은 명확한 교회 탄압니다. 문제는 앞에 3가지를 포함하는 순간 4번의 탄압은 교회가 지적할 여지가 없어 집니다.
방역 패스가 있어야 교회의 예배를 참석할 수 있다는 정부의 조처는 예배 참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역 패스가 예배를 방해하는가?)
방역 패스는 예배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가는 사람에게 백신을 맞으라는 불편을 요구할 뿐입니다. 백신 요구지 예배 방해는 아닙니다. 무료이니 맞으면 되는 것이고 이는 죄 되는 것이 아닌데 이런 문제를 두고 정부와 시비하는 것은 교회로서 옳지 않습니다. 건축법으로 예배당 건축을 막는다고 예배와 종교 자유를 방해한 것일까? 예배당으로 가는 길의 신호등과 보행 제한 지장물과 교통 통제는 예배 방해가 아닙니다. 교회 가는 사람만 차단한다면 예배 방해입니다.
(개인의 자유권을 위해 싸우는가?)
방역 패스를 반대하는 단체의 목적이 '예배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역 패스가 예배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백신을 맞으라는 불편을 요구했을 뿐이고, 이를 거부하는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의 시민권을 위해 세상 단체와 연대하여 예배 자유를 도모한다는 것이 됩니다. 예배의 자유를 위해 교회 밖의 세상에 일반 시민과 이해가 맞아서 함께 모였다면 교회가 세상과 멍에를 함께 하는 것이 됩니다.
백신 문제 때문이든 부동산 세법 문제든 교회가 세상의 이해 집단 중 하나와 연대를 하게 되면 그 것이 비록 개인의 자유권 문제라 해도 교회가 교회를 벗어 나서 사회 단체화를 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세상과 싸우는 과정에 세상을 이기기 위해 세상의 일부와 결탁을 하면 싸워서 이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 교회가 세상이 되는 것을 속화 타락이라고 합니다.
(롬13장, 세상에게 맡긴 일)
교회는 세상이 교회를 돕든 말든 교회의 일만 하면 됩니다. 교회의 일이란 예배와 전도가 중심입니다. 예배와 전도를 막으면 예배와 전도가 막히는 그 자리까지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출발하다 자기 집 대문에서 막히면 대문 안에서 예배를 드리면 되고, 예배당 입구에서 막히면 현관에서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교회의 예배를 막는 이유가 불교를 지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부는 예배를 막는 것이 죄가 됩니다.
교회의 예배를 막는 이유가 건물의 붕괴 위험이면 그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정부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권한이 있고 정부는 막을 권한이 있습니다. 이 때 깔려 죽어도 그 예배당 건물 안에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권리는 교회의 권리이지만 깔려 죽어도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를 드리겠다고 한다면 이들은 천주교적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성령의 인도에 따른 것입니다. 천주교적으로 예배당의 건물 자체가 신앙이 되었다면 이들은 신앙에도 틀렸고 정부의 옳은 결정에도 항거했으니 하나님께 항거한 사람이 됩니다. 예배당 붕괴로 그 안에서 죽었다면 순교도 아니고 순직도 아니고 개죽음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들어 가겠다는 이들의 그 성령의 인도가 주관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라면, 그렇다 해도 입구를 막는 경찰과 멱살을 잡고 싸우고 밀고 들어 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신 부모가 교회 다니는 아이의 체중 조절을 위해 식사의 분량을 줄인다고 해서 종교 탄압이나 신앙 박해라고 생각하면 이는 동문서답입니다. 교회를 가는 아이에게 식사량을 줄인다면 이는 신앙 박해입니다. 이 때 이 아이는 신앙을 위해 그 밥이 줄어 든 만큼 박해를 받은 것이나 이 박해 때문에 이 아이가 부모와 다투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모는 믿지 않으니 식사량을 줄일 수 있고, 아이는 신앙의 사람이니 식사가 불편한 것만큼 십자가의 고난이고 이 고난이 바로 신앙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지식 범위 내에서 사랑하고 있으니 좋은 부모고, 자녀는 신앙의 댓가로 고난을 받고 있으니 십자가의 군병으로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밥 더 달라고 싸울 일은 아닙니다.
(백신 정책에 대한 비판)
이 단체가 '1.백신의 안정성' '2.효과의 미지성' '3.청소년 문제' '4.다른 시설과 형평성'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앞에서 3가지는 교회가 구체적으로 크게 실수한 것입니다. 교회가 과학의 전문적이며 실무적 사안을 두고 다수론과 소수론 중에 소수론에 서는 것은 신앙의 보편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일반 보편 자연의 원칙이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르지만 대부분이 옳다고 따른다면 그 대부분의 길이 비록 진리는 아니지만 일단 보편적이며 일반적입니다. 세상의 애매한 문제를 두고 교회가 세상의 일부와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또한 세상은 원래부터 과학적인데 세상의 과학을 우리의 비과학적 신앙을 가지고 세상의 과학 논쟁에 끼어 든다는 자체가 교회의 본질을 세상에게 넘겨 버리는 실수가 됩니다. 코로나 방역 문제에 몰입한 나머지 교회가 싸워서 안 되는 방향과 내용에 선을 넘어 가 버렸습니다. 토끼를 사냥하며 총을 난사하던 사냥꾼이 토끼가 아이들 학교 운동장으로 도망을 가는데 모여 있는 아이들은 보지 않고 토끼만 노려 보며 계속 엽총을 난사하는 셈입니다. 매가 비둘기에 매몰 되어 뒤를 쫓다가 매를 노리는 포수의 총을 잊는 경우입니다.
4번은 예배당과 다른 시설의 형평성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은 예배 방해로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근거입니다. 과학의 시비를 떠나 세상의 과학적 판단이 옳다면 방역의 제재권은 세상이 하나님께 받은 정당한 권한입니다. 그런데 그 권한으로 세상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보는 정부의 기관 출입을 금하고 경찰과 군인의 활동을 금지하고 대중교통까지 전부 금지를 시키면서 교회의 예배를 금지 시킨다면 세상으로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식 문화와 음악회는 보장하면서 예배를 금지 시킨다면 이 것은 명확한 교회 탄압니다. 문제는 앞에 3가지를 포함하는 순간 4번의 탄압은 교회가 지적할 여지가 없어 집니다.
지금 일부 대형교회들은 백신 안맞으면 예배당에 못들어가게 하던데 혹시 앞으로 총공회 교회도 그렇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총공회의 범위)
보통 '총공회'라고 하면 5개의 각 공회들과 그 소속 200여 교회를 모두 말합니다. 이 곳에서는 범위를 좁혀 말할 때 '총공회 = 연구소 공회 = 부공3'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공회들은 대부분 교계의 일반 사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부공2에 몇 교회는 초기에 맞대응을 했으나 아마 각 교회의 자기 기준으로 최선을 다했고 현재도 그렇다고 할 듯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처럼 세부적으로 공개 된 경우를 보면 예배당의 현관문을 출입 금지 시켰으나 그 넓은 예배당의 현관 앞 마당과 주차장조차 교회 스스로 차단을 했습니다. 기준과 대응 모습 등에 혼선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 서부교회는 고신의 세계로교회와 법적 대응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공회 기준을 떠나 교계의 가장 강한 입장을 지킨다고 보이며, 그런 경우 이 곳의 기준으로 보면 공회적 대처는 아닙니다.
(부공3의 경우)
작년 초기부터 일제 때와 6.25 점령 사례 등을 제시하며 교회의 예배는 끝까지 가되 개인 별 참석은 각자에 맡기는 것이 마25장의 밤중 대처이며 공회는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막히면 현관 앞에서, 현관까지 막으면 그 다음 마당에서, 마당이 없는데 골목이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해도 밀어 내면 주변 차량에서, 그조차 막으면 각 가정에서 진행합니다. 어떤 경우도 밀리면 밀린 그 곳이 공회의 예배 장소 원칙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세상이 힘으로 휘둘 때 교회가 힘으로 맞서면 십자군 운동이 되어 천주교식입니다. 또 법적 투쟁에 나서는 것은 건축법 등은 처음부터 신앙 외적 문제여서 제기할 수 있으나 이 번 예배의 경우는 법적 소송을 잘못 나서면 세상의 철장 속으로 들어 가는 결과가 됩니다.
(백신 조건부의 경우)
백신이란 맞아도 되고 맞지 않아도 되는 문제입니다. 백신을 무료로 맞고 예배당에 출입을 하라는 정부의 조처는 건축법에 따라 준공 검사를 받은 후 예배당을 사용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백신 패스 문제는 교회가 애당초 시비를 할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조건이면 문제가 되지만 무료 백신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정부 고위직과 공무원과 의료진이 모두 맞는 상황이면 이 문제로 시비하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교회 차량에 긴급 차량이나 아동보호의 표시를 하라고 법적 강제가 나온다면? 이런 것은 세상이 결정하고 교회는 불편해도 그냥 끌려 가듯 그렇게 맞춰 가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총공회'라고 하면 5개의 각 공회들과 그 소속 200여 교회를 모두 말합니다. 이 곳에서는 범위를 좁혀 말할 때 '총공회 = 연구소 공회 = 부공3'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른 공회들은 대부분 교계의 일반 사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부공2에 몇 교회는 초기에 맞대응을 했으나 아마 각 교회의 자기 기준으로 최선을 다했고 현재도 그렇다고 할 듯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처럼 세부적으로 공개 된 경우를 보면 예배당의 현관문을 출입 금지 시켰으나 그 넓은 예배당의 현관 앞 마당과 주차장조차 교회 스스로 차단을 했습니다. 기준과 대응 모습 등에 혼선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 서부교회는 고신의 세계로교회와 법적 대응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공회 기준을 떠나 교계의 가장 강한 입장을 지킨다고 보이며, 그런 경우 이 곳의 기준으로 보면 공회적 대처는 아닙니다.
(부공3의 경우)
작년 초기부터 일제 때와 6.25 점령 사례 등을 제시하며 교회의 예배는 끝까지 가되 개인 별 참석은 각자에 맡기는 것이 마25장의 밤중 대처이며 공회는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막히면 현관 앞에서, 현관까지 막으면 그 다음 마당에서, 마당이 없는데 골목이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그렇게 해도 밀어 내면 주변 차량에서, 그조차 막으면 각 가정에서 진행합니다. 어떤 경우도 밀리면 밀린 그 곳이 공회의 예배 장소 원칙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세상이 힘으로 휘둘 때 교회가 힘으로 맞서면 십자군 운동이 되어 천주교식입니다. 또 법적 투쟁에 나서는 것은 건축법 등은 처음부터 신앙 외적 문제여서 제기할 수 있으나 이 번 예배의 경우는 법적 소송을 잘못 나서면 세상의 철장 속으로 들어 가는 결과가 됩니다.
(백신 조건부의 경우)
백신이란 맞아도 되고 맞지 않아도 되는 문제입니다. 백신을 무료로 맞고 예배당에 출입을 하라는 정부의 조처는 건축법에 따라 준공 검사를 받은 후 예배당을 사용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백신 패스 문제는 교회가 애당초 시비를 할 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조건이면 문제가 되지만 무료 백신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정부 고위직과 공무원과 의료진이 모두 맞는 상황이면 이 문제로 시비하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교회 차량에 긴급 차량이나 아동보호의 표시를 하라고 법적 강제가 나온다면? 이런 것은 세상이 결정하고 교회는 불편해도 그냥 끌려 가듯 그렇게 맞춰 가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