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의미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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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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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18:38
질문1) `영감`이란 무엇을 가르키는 것입니까?
질문2) 신약시대에 살고있는 `영감`은 무엇입니까?
질문3) 갑절의 영감이란?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2배다 더 영감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 입니까?
출처 : 동천교회, (문답2009-11-25 20:30:06)
1. 영감이란
일반적으로'성령의 감동'이라는 뜻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무인격의 '이치'이듯이
영감 역시 무인격의 '감동'이며 '역사'이고
영감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감동 역사이기 때문에
그 종류와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성경을 기록한 영감, 성경을 읽게 하는 영감, 성경을 깨닫게 하는 영감,
성경이 믿어지게 하는 영감, 성경 말씀대로 살게 하는 영감... 모든 것이 영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최종적인 것은 영감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2. 신약시대 영감
구약시대 영감은 외부 역사이고
신약시대 영감은 내부 역사라 합니다.
이 말은
구약시대는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되지 않은 미래로 두고 예표적으로 믿었고
따라서 구약시대 성도들은 중생이 완성되지 못한 미중생 상태였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 속에서 역사할 수가 없는 고로 외부에서 역사했고
신약시대는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되었으므로
신약시대 성도들은 중생도 성령으로 중생했고
중생된 영 안에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부 역사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의 중생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엘리사가 구한 영감의 갑절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영감의 갑절을 구한 것은
엘리사 자신은 엘리야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영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지만
엘리사 자신은 엘리야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어도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은 있어야 비로소 엘리야의 사명을 계대해서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성령의 감동'이라는 뜻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무인격의 '이치'이듯이
영감 역시 무인격의 '감동'이며 '역사'이고
영감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감동 역사이기 때문에
그 종류와 범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쉽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성경을 기록한 영감, 성경을 읽게 하는 영감, 성경을 깨닫게 하는 영감,
성경이 믿어지게 하는 영감, 성경 말씀대로 살게 하는 영감... 모든 것이 영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최종적인 것은 영감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2. 신약시대 영감
구약시대 영감은 외부 역사이고
신약시대 영감은 내부 역사라 합니다.
이 말은
구약시대는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되지 않은 미래로 두고 예표적으로 믿었고
따라서 구약시대 성도들은 중생이 완성되지 못한 미중생 상태였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 속에서 역사할 수가 없는 고로 외부에서 역사했고
신약시대는 예수님의 대속이 완성되었으므로
신약시대 성도들은 중생도 성령으로 중생했고
중생된 영 안에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부 역사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의 중생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엘리사가 구한 영감의 갑절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영감의 갑절을 구한 것은
엘리사 자신은 엘리야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야에게 역사하신 영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지만
엘리사 자신은 엘리야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어도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은 있어야 비로소 엘리야의 사명을 계대해서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조직신학의 교과서들을 보면 '성경론 = 정경론 = 계시론'이라는 항목에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 되었다고 적고 있 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성경 기록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입니다. 그런데 영감이라는 표현을 오로지 성경 기록에만 해당 된다고 전제를 한다면 영감은 성경 기록자 외에는 없어야 합니다. 만일 영감이라는 표현을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며 믿는 사람의 신앙 양심에 가책을 통해 평소 각자에게 역사한다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면, 성경 기록과 함께 그 성경을 읽는 오늘 우리의 마음에 감동도 당연히 영감의 역사입니다.
공회의 설명은 만사를 좀 깊고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이런 자세 때문에 공회의 단어 표현은 주변에서 흔하게 넘어 가는 의미보다 많은 면을 포함한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부모'라도 낳은 육체의 부모도 있고, 또 신앙으로 전도하고 기른 분을 '신앙의 부모'로 표현하기도 하며, 공부를 가르친 교사의 경우는 낳아 기른 것은 아니나 가르치는 면만 가지고 보면 부모의 역할을 일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호적상 육체의 생부 생모를 포함하여, 호적에 없는 생부 생모도 포함하고, 계모나 계부도 기르는 면에는 부모로 포함하며, 신앙과 세상의 모든 면에서 가르침을 준 사람에게는 그 가르침만 가지고 보면 부모적인 감사를 부탁해 오고 있습니다.
'사랑'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부부의 애정, 부모의 육정, 친구의 우정을 다 성경의 사랑으로 포함하는 경향인데 공회는 성경의 주님 사랑은 불신자에게도 있고 동물에게도 있는 애정 육정 우정은 빼고 구원의 사랑만으로 그 범위를 좁히기도 합니다. 앞뒤를 잘 읽어 보면 윗글의 답변을 은혜롭게 새길 수 있으나 어느 신학교의 어느 철 없는 교수가 마치 자기 강의를 절대의 기준처럼 가르치다 보면 그 배운 학생들의 시야가 좁아 지면서 성경을 기록하는 영감만 영감이 아니냐는 지경까지 나오게 되고, 그런 선입견 때문에 윗글의 좋은 뜻이 곡해 될까 싶어 몇 가지를 추가해 봤습니다.
조직신학의 교과서들을 보면 '성경론 = 정경론 = 계시론'이라는 항목에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 되었다고 적고 있 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성경 기록은 성령의 감화와 감동입니다. 그런데 영감이라는 표현을 오로지 성경 기록에만 해당 된다고 전제를 한다면 영감은 성경 기록자 외에는 없어야 합니다. 만일 영감이라는 표현을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며 믿는 사람의 신앙 양심에 가책을 통해 평소 각자에게 역사한다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면, 성경 기록과 함께 그 성경을 읽는 오늘 우리의 마음에 감동도 당연히 영감의 역사입니다.
공회의 설명은 만사를 좀 깊고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이런 자세 때문에 공회의 단어 표현은 주변에서 흔하게 넘어 가는 의미보다 많은 면을 포함한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부모'라도 낳은 육체의 부모도 있고, 또 신앙으로 전도하고 기른 분을 '신앙의 부모'로 표현하기도 하며, 공부를 가르친 교사의 경우는 낳아 기른 것은 아니나 가르치는 면만 가지고 보면 부모의 역할을 일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호적상 육체의 생부 생모를 포함하여, 호적에 없는 생부 생모도 포함하고, 계모나 계부도 기르는 면에는 부모로 포함하며, 신앙과 세상의 모든 면에서 가르침을 준 사람에게는 그 가르침만 가지고 보면 부모적인 감사를 부탁해 오고 있습니다.
'사랑'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부부의 애정, 부모의 육정, 친구의 우정을 다 성경의 사랑으로 포함하는 경향인데 공회는 성경의 주님 사랑은 불신자에게도 있고 동물에게도 있는 애정 육정 우정은 빼고 구원의 사랑만으로 그 범위를 좁히기도 합니다. 앞뒤를 잘 읽어 보면 윗글의 답변을 은혜롭게 새길 수 있으나 어느 신학교의 어느 철 없는 교수가 마치 자기 강의를 절대의 기준처럼 가르치다 보면 그 배운 학생들의 시야가 좁아 지면서 성경을 기록하는 영감만 영감이 아니냐는 지경까지 나오게 되고, 그런 선입견 때문에 윗글의 좋은 뜻이 곡해 될까 싶어 몇 가지를 추가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