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희 김현봉 이병규의 교리적 깊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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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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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1 10:42
백영희 김현봉 이병규 세분의 교리적 깊이 차이에 대하여?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세분 목사님은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고, 모두 독립적으로 "삼분론 -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는다 - 심신의 성화"를 깨달았나요?
이병규 김현봉 두분은 백목사님과 비교하면 어디까지 "기본구원 - 건설구원 - 삼분론" 교리적 깊이가 나아갔는지 궁금합니다.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금일 중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1. 백영희 김현봉 이병규 세 분의 교리적 깊이 차이에 대하여
(1) 김현봉
신앙은 지식과 실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교훈이 30이라면 경건이 70입니다. 교훈만 가지고 본다면 김 목사님의 세계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대단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의 경건의 세계는 하나님이 동행하며 능력으로 함께 하신 면이 탁월합니다. 역사에 흔치 않는 분입니다.
이런 노선에서는, 김 목사님의 생전을 봤을 때는 교훈의 약간 약한 면이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능력이 김 목사님의 자체 신앙은 물론 김 목사님이 맡은 교인들의 신앙을 건설해 나가는 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 목사님이 돌아 가시면 그 뒤에 이어 지는 면에서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후대가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별로 없습니다.
(2) 백영희
백 목사님의 경우는 경건만 가지고 볼 때 김 목사님과 같은 수준입니다. 생사 문제가 걸렸던 신사참배와 6.25 전쟁 상황에서 두 분을 비교해 보면 아주 크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건 면으로 봐도 백 목사님이 훨씬 낫다고 표현하고 싶으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는 반론이 나온다면 객관화 시키는 것이 어렵고 또 이 번 답변에서는 이 면의 비교가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단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그런 경건에 살았다는 점이 같기 때문에 일단 경건은 두 분이 같다는 정도에서 일단 소개하고 싶습니다.
백 목사님은 김 목사님과 비교할 때 교훈 면이 객관적으로 뚜렷하게 월등합니다. 이 교훈 면을 두고 김 목사님은 지식주의라고 지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의 교훈은 김 목사님이 일반적으로 비판하는 그런 지식주의의 지식에 그치는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결과적으로 백 목사님의 교훈은 세계 기독교사의 역사적 대미를 장식하며 그 수준이 동시대에 살았던 김 목사님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라 세계 기독교사의 역사 발전의 단계에 별도의 장을 마련할 차원입니다.
(3) 이병규
계약신학대학원을 지도하는 이병규 목사님은 역사적으로 1950년대로부터 김현봉 목사님에게서 배운 분이지만 김 목사님 가르침을 그대로 잇지 않고 이 목사님의 독자 노선을 걷는 분입니다. 김현봉 목사님 사후에 김 목사님의 장례식을 주관했고 이후 김 목사님의 아현교회의 처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김현봉 목사님의 계통을 순수하게 따르는 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탈로 보고 있고 이 목사님 계통에서는 이 목사님의 걸음이 발전적으로 더욱 옳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 체계로만 말한다면, 이목사님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계신대학원 홈에서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일반 신학의 교리체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 적응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그분이 지향하고 그분이 지켜야 하는 교리체계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중생교리의 본론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즉, 그 교단의 내면 세계는 알 수 없지만 외부로 나타난 몇 가지 노선 발표를 통해서 그 내부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단의 전반적 운영이나 신학교의 운영 체제 그리고 그 운영의 핵심인 교수진의 면면을 살펴볼 때, 일반 교단 중에 아주 보수적이고 모범적인 곳이라고 평가하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질문하신 중생 교리를 기준으로 다시 평가한다면, 일반 교계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중생 교리'의 단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비해 이 목사님은 중생 교리가 기독교 교리체계에서 아주 특별한 교리라는 것을 초기에 간파한 몇 안 되는 분 중에 한 분이며, 비록 중생 교리의 본론 안으로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해석과 교리 전반에 두루 적용하고 계신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2. 세 분은 독립적으로 건설구원을 깨달았는지
(1) 백영희, 김현봉 두 분의 성경 깨달음의 일치
일반 교계가 신학 중심으로 2천 년 쌓여 내려 오는 과거의 자료를 책으로 배우고 책으로 전하며 발전 시켰으니 모든 책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출간을 했을 것이나 내용을 유심히 살피면 모두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할 정도입니다. 기독교 TV에 나오는 모든 목사님들의 설교는 모두가 같다 하면 억울할까요? 설교 자료를 제대로 뒤져 본 분들은 그렇다고 할 것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신학을 부정하다시피 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저자인 성경이면 되었지 그 것에 무엇을 더하느냐는 식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양심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각자 자기 형편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을 배우려 하느냐는 식입니다. 실은 이 정도에 집중을 한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기본 인식이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의 인식이라야 하는데 왠 일인지 모든 교회가 수천 년 내려 온 신학을 마치 학생이 학교에 가서 배우고 그대로 따라 가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김 목사님은 당대에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다가 뒤에야 그 분의 위대함이 알려 져 박윤선 목사님도 가서 배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과 김 목사님의 같은 점은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더한다면 두 분이 신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신학을 하기는 했으나 약간 견학 또는 관람하는 정도에서 그쳤고 두 분은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령의 인도에 집중했던 분들이므로 두 분이 서로가 모를 때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각자 따로 성경으로 살피고 가르 쳤는데 사람에게는 마음 속에 영이 있음과 그 영은 중생 후 범죄하지 않음과 믿은 이후에 천국에는 들어가게 되었으나 신앙의 성화의 분량이 다른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마치 서로가 먼저 배우고 가르쳐서 두 분이 함께 알게 된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두 분에게 다 배워 본 교계의 유명 인물들이 이런 사실을 뒤에 알아 차리고 한국 교회에 이 두 분이 있으니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참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경 깨달음을 두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을 외부 교계와 비교할 때 같다는 그 기준을 배제하고 수평적으로 두 분만 그냥 비교를 하게 되면 김현봉 목사님의 깨달음은 백 목사님 깨달음의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모든 자료와 기록을 통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전기를 쓸 때 공회 외부의 객관적 위치에 계신 분들이나 김현봉 목사님 계열에 계신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늘 질문했던 내용인데 모두들 두 분의 성경 가르침만 가지고 비교하면 확연하게 백 목사님이 깊고 체계적이며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김 목사님의 설교는 비록 양은 많지 않아도 그 가르침이 특별했고 그 권위가 대단했기 때문에 필기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알기는 어렵다 해도 그 밑에서 배운 분들이나 백 목사님을 아는 분들이라면 김 목사님의 설교 자료의 일부나 몇몇 요약 된 부분만 봐도 평가는 가능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고신의 오종덕 목사님에 비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이병규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 두 분은 확실히 독립적으로 깨달은 것으로 보이나, 이병규 목사님은 김현봉 목사님의 제자이므로 김현봉 목사님께 배우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1960-1961년 어느날 이인재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 그리고 이병규 목사님 등 세 분이 중생교리에 대한 깨달음을 함께 작성하고 서명했을 정도로, 1960년대 초반까지는 백 목사님과도 접촉이 많았습니다.
3.김현봉 이병규 두 분은 어디까지 건설구원의 교리적 깊이가 나아갔는지
(1) 김현봉 목사님에 대해서는 윗 글에서 안내해드렸고.
(2) 이병규 목사님에 대해서는
이병규 목사님은 김현봉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을 가까이 접했던 분입니다. 따라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와 삼분론 그리고 건설구원론의 기본 방향은 인정하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고 듣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장하고 계시는지, 또 어떤 면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자세하게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병규 목사님의 설교는 '계약신학대학원' 홈에서 접할 수가 있고 또 그분의 주석이 출간되어 잠깐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답변자 기억으로는 백영희 교리 체계의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이병규목사님의 신앙노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총공회 내에서도 이 교리를 본론 안으로 진입한 분은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송용조목사님이나 서영호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총공회 내부에서 신학을 전담했던 훌륭한 교수님들이지만 이병규목사님과 같이 백영희 교리체계 본론에 진입하지는 않았다고 이곳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송목사님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분론으로 돌아갔고 서목사님은 현재 송목사님 이목사님 등과 함께 일반교계 신학에 익숙한 분들과 동역하는 상태인데, 백영희 중생론의 본론에 접어들었다고 한다면 '칼빈신학을 파수하자'는 표어 밑에 함께 동역할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총공회 내에서 일반 교인들의 인식으로는 백영희목사님을 이어 총공회를 이끌 분으로 보았던 잠실동교회 담임목사님 같은 분, 또 일반 장로교와 이단 시비의 가장 혹독한 시련을 거치며 끝까지 중생 교리를 주장했던 대구 비원교회의 담임목사님 등은 비록 신학자는 아니라 해도 중생 교리와 관련하여 성경과 교리에 가장 정통했던 분들인데, 그분들도 현재 기능 구원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며 중생 교리의 근간을 부인하는 발언울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다른 발언은 몰라도 중생 교리와 관련하여 그분들이 이렇게 발언하는 것은 교회 정치적인 발언이 아니라 그분들이 중생 교리에 대한 근본 시각과 인지 수준이 중생 교리의 총론적 기초 이해만 하고 있을 뿐이며 중생 교리의 본론에 진입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총공회 내에서 40여년을 가장 앞장서서 배웠고 또 외부 교단과 이 중생 교리 문제로 공회를 대표해서 투쟁하던 분들, 그리고 신학에 정통하여 단어 하나의 의미가 신앙노선을 어디까지 갈라지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총공회 내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들까지도 중생 교리의 본론에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총공회 외부에 있는 분으로서 과거 40여년 전에 백목사님과 잠시 접촉했던 정도로는 백목사님의 중생 교리체계를 각론적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 김현봉
신앙은 지식과 실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교훈이 30이라면 경건이 70입니다. 교훈만 가지고 본다면 김 목사님의 세계는 그렇게 특별하거나 대단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의 경건의 세계는 하나님이 동행하며 능력으로 함께 하신 면이 탁월합니다. 역사에 흔치 않는 분입니다.
이런 노선에서는, 김 목사님의 생전을 봤을 때는 교훈의 약간 약한 면이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능력이 김 목사님의 자체 신앙은 물론 김 목사님이 맡은 교인들의 신앙을 건설해 나가는 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 목사님이 돌아 가시면 그 뒤에 이어 지는 면에서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후대가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별로 없습니다.
(2) 백영희
백 목사님의 경우는 경건만 가지고 볼 때 김 목사님과 같은 수준입니다. 생사 문제가 걸렸던 신사참배와 6.25 전쟁 상황에서 두 분을 비교해 보면 아주 크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건 면으로 봐도 백 목사님이 훨씬 낫다고 표현하고 싶으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는 반론이 나온다면 객관화 시키는 것이 어렵고 또 이 번 답변에서는 이 면의 비교가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일단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그런 경건에 살았다는 점이 같기 때문에 일단 경건은 두 분이 같다는 정도에서 일단 소개하고 싶습니다.
백 목사님은 김 목사님과 비교할 때 교훈 면이 객관적으로 뚜렷하게 월등합니다. 이 교훈 면을 두고 김 목사님은 지식주의라고 지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의 교훈은 김 목사님이 일반적으로 비판하는 그런 지식주의의 지식에 그치는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결과적으로 백 목사님의 교훈은 세계 기독교사의 역사적 대미를 장식하며 그 수준이 동시대에 살았던 김 목사님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라 세계 기독교사의 역사 발전의 단계에 별도의 장을 마련할 차원입니다.
(3) 이병규
계약신학대학원을 지도하는 이병규 목사님은 역사적으로 1950년대로부터 김현봉 목사님에게서 배운 분이지만 김 목사님 가르침을 그대로 잇지 않고 이 목사님의 독자 노선을 걷는 분입니다. 김현봉 목사님 사후에 김 목사님의 장례식을 주관했고 이후 김 목사님의 아현교회의 처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김현봉 목사님의 계통을 순수하게 따르는 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탈로 보고 있고 이 목사님 계통에서는 이 목사님의 걸음이 발전적으로 더욱 옳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리 체계로만 말한다면, 이목사님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계신대학원 홈에서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일반 신학의 교리체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안에 적응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그분이 지향하고 그분이 지켜야 하는 교리체계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중생교리의 본론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입니다. 즉, 그 교단의 내면 세계는 알 수 없지만 외부로 나타난 몇 가지 노선 발표를 통해서 그 내부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단의 전반적 운영이나 신학교의 운영 체제 그리고 그 운영의 핵심인 교수진의 면면을 살펴볼 때, 일반 교단 중에 아주 보수적이고 모범적인 곳이라고 평가하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질문하신 중생 교리를 기준으로 다시 평가한다면, 일반 교계가 40여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중생 교리'의 단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비해 이 목사님은 중생 교리가 기독교 교리체계에서 아주 특별한 교리라는 것을 초기에 간파한 몇 안 되는 분 중에 한 분이며, 비록 중생 교리의 본론 안으로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해석과 교리 전반에 두루 적용하고 계신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2. 세 분은 독립적으로 건설구원을 깨달았는지
(1) 백영희, 김현봉 두 분의 성경 깨달음의 일치
일반 교계가 신학 중심으로 2천 년 쌓여 내려 오는 과거의 자료를 책으로 배우고 책으로 전하며 발전 시켰으니 모든 책들은 다 다르기 때문에 출간을 했을 것이나 내용을 유심히 살피면 모두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할 정도입니다. 기독교 TV에 나오는 모든 목사님들의 설교는 모두가 같다 하면 억울할까요? 설교 자료를 제대로 뒤져 본 분들은 그렇다고 할 것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신학을 부정하다시피 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저자인 성경이면 되었지 그 것에 무엇을 더하느냐는 식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양심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각자 자기 형편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을 배우려 하느냐는 식입니다. 실은 이 정도에 집중을 한 분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기본 인식이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의 인식이라야 하는데 왠 일인지 모든 교회가 수천 년 내려 온 신학을 마치 학생이 학교에 가서 배우고 그대로 따라 가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김 목사님은 당대에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다가 뒤에야 그 분의 위대함이 알려 져 박윤선 목사님도 가서 배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과 김 목사님의 같은 점은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더한다면 두 분이 신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신학을 하기는 했으나 약간 견학 또는 관람하는 정도에서 그쳤고 두 분은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령의 인도에 집중했던 분들이므로 두 분이 서로가 모를 때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각자 따로 성경으로 살피고 가르 쳤는데 사람에게는 마음 속에 영이 있음과 그 영은 중생 후 범죄하지 않음과 믿은 이후에 천국에는 들어가게 되었으나 신앙의 성화의 분량이 다른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마치 서로가 먼저 배우고 가르쳐서 두 분이 함께 알게 된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두 분에게 다 배워 본 교계의 유명 인물들이 이런 사실을 뒤에 알아 차리고 한국 교회에 이 두 분이 있으니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다고 참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경 깨달음을 두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을 외부 교계와 비교할 때 같다는 그 기준을 배제하고 수평적으로 두 분만 그냥 비교를 하게 되면 김현봉 목사님의 깨달음은 백 목사님 깨달음의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모든 자료와 기록을 통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답변자가 백 목사님의 전기를 쓸 때 공회 외부의 객관적 위치에 계신 분들이나 김현봉 목사님 계열에 계신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늘 질문했던 내용인데 모두들 두 분의 성경 가르침만 가지고 비교하면 확연하게 백 목사님이 깊고 체계적이며 높다는 것을 말합니다.
김 목사님의 설교는 비록 양은 많지 않아도 그 가르침이 특별했고 그 권위가 대단했기 때문에 필기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알기는 어렵다 해도 그 밑에서 배운 분들이나 백 목사님을 아는 분들이라면 김 목사님의 설교 자료의 일부나 몇몇 요약 된 부분만 봐도 평가는 가능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고신의 오종덕 목사님에 비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이병규
김현봉, 백영희 목사님 두 분은 확실히 독립적으로 깨달은 것으로 보이나, 이병규 목사님은 김현봉 목사님의 제자이므로 김현봉 목사님께 배우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1960-1961년 어느날 이인재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 그리고 이병규 목사님 등 세 분이 중생교리에 대한 깨달음을 함께 작성하고 서명했을 정도로, 1960년대 초반까지는 백 목사님과도 접촉이 많았습니다.
3.김현봉 이병규 두 분은 어디까지 건설구원의 교리적 깊이가 나아갔는지
(1) 김현봉 목사님에 대해서는 윗 글에서 안내해드렸고.
(2) 이병규 목사님에 대해서는
이병규 목사님은 김현봉 목사님과 백영희 목사님을 가까이 접했던 분입니다. 따라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와 삼분론 그리고 건설구원론의 기본 방향은 인정하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고 듣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장하고 계시는지, 또 어떤 면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자세하게 살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병규 목사님의 설교는 '계약신학대학원' 홈에서 접할 수가 있고 또 그분의 주석이 출간되어 잠깐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답변자 기억으로는 백영희 교리 체계의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이병규목사님의 신앙노선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총공회 내에서도 이 교리를 본론 안으로 진입한 분은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송용조목사님이나 서영호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총공회 내부에서 신학을 전담했던 훌륭한 교수님들이지만 이병규목사님과 같이 백영희 교리체계 본론에 진입하지는 않았다고 이곳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송목사님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분론으로 돌아갔고 서목사님은 현재 송목사님 이목사님 등과 함께 일반교계 신학에 익숙한 분들과 동역하는 상태인데, 백영희 중생론의 본론에 접어들었다고 한다면 '칼빈신학을 파수하자'는 표어 밑에 함께 동역할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총공회 내에서 일반 교인들의 인식으로는 백영희목사님을 이어 총공회를 이끌 분으로 보았던 잠실동교회 담임목사님 같은 분, 또 일반 장로교와 이단 시비의 가장 혹독한 시련을 거치며 끝까지 중생 교리를 주장했던 대구 비원교회의 담임목사님 등은 비록 신학자는 아니라 해도 중생 교리와 관련하여 성경과 교리에 가장 정통했던 분들인데, 그분들도 현재 기능 구원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며 중생 교리의 근간을 부인하는 발언울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다른 발언은 몰라도 중생 교리와 관련하여 그분들이 이렇게 발언하는 것은 교회 정치적인 발언이 아니라 그분들이 중생 교리에 대한 근본 시각과 인지 수준이 중생 교리의 총론적 기초 이해만 하고 있을 뿐이며 중생 교리의 본론에 진입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총공회 내에서 40여년을 가장 앞장서서 배웠고 또 외부 교단과 이 중생 교리 문제로 공회를 대표해서 투쟁하던 분들, 그리고 신학에 정통하여 단어 하나의 의미가 신앙노선을 어디까지 갈라지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총공회 내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들까지도 중생 교리의 본론에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총공회 외부에 있는 분으로서 과거 40여년 전에 백목사님과 잠시 접촉했던 정도로는 백목사님의 중생 교리체계를 각론적으로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