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는 왜 '겨우' 은 30에 팔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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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출 21:32)
사람 1명의 목숨값을 성경은 은 30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롯유다도 이스라엘 종교 기득권층에게 예수님을 판 대가로 은 30냥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금액을 생각하며 가롯 유다의 의중을 두고서 왜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았는가를 연결지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연보를 관리하며 연보에까지 손을 댈 정도로 물질에 약한 모습을 보인 가롯 유다 이지만,
은 30은 예수님을 판 값으로 말하자면 푼돈에 가까운 금액입니다
종교말년 이스라엘 그들의 표현으로
"나사렛 이단 반란수괴" 위치를 밀고하고 체포하는데 주 역할을 한 핵심 내부밀고자 에게 보상할 금액치고는 대단히 적은 금액입니다
은 30은 공식적 수고비 명목으로 지출하고, 뒤로 본금액을 챙겨준 것인가 생각을 해보아도
정작 가롯유다가 나중에 돌려줄 때를 보면은 정말로 은 30 만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가롯유다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같은 권력을 약속받을 수 있는 위치도 아닙니다
출신성분도 미천하고, "반란수괴"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에 공식적 직책을 받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 어떤 명예도 직책도 약속받지 못하는데, 보상금 조차도 "최소금액"만 받았다는 것을 본다면은 분명 돈에만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동하여 듣고자 부르는 선한 심리와
그와 동시에 돈을 얻고자 한 심리가 공존했던 것과 같이
사람의 심리는 단순히 딱 하나로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복합적 작용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가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팔게된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혹자는,
열심당원 이었던 가롯유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이후에도 "이스라엘 왕"이 되기를 거부하자 배신감 혹은 봉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밀고하였다고도 말을 합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연합군이 파리 수복에 미적지근 하다고,
자기 신분과 대의까지 위협에 빠뜨리면서 나치에 밀고하겠는가 생각해본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가롯 유다는 명예도, 권력도, 돈도, 대의를 이루는 것
그 어느것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던가
단순히 인간적 실망감 이었는지
아니면 사소한 마음의 트러블 이었는지
오랜기간 예수님을 팔 준비를 다른 사도들도 모르게 철저히 해오던 가롯유다의 배신의 이면에 담긴 심리를 안다면은
교회사 이해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혹자가 말하듯 열심 당원이었던 가룟유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이후에도 "이스라엘 왕"이 되기를 거부하자 배신감 혹은 봉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밀고하였다고 하는 등 여러 주장들은 확인할 수 없으니 짐작으로 남겨두고
‘가룟유다가 과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던가’라는 의문에 우리 자신을 대입시켜보면 좋겠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들 말하는데
오늘 세상을 살펴보면 가룟유다처럼 예수님을 팔고 세상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으니 우리 속에 가룟유다와 같은 요소는 늘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천국을 소망하라고 애가 타게 말씀하시고 천국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는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기회로 주셨는데 우리는 천국만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애쓰게 되고, 천국 소망과 세상 소망이 같이 갈 때는 누구보다 잘 믿는 것처럼 보이나, 두 소망이 충돌하게 되면 탐심, 자기욕심에 이끌려 진리을 버리고 세상에 붙들려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전부라 할 정도입니다.
탐심, 자기욕심에 이끌려 세상으로 가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파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좀 더 살펴 볼 것은
“은 삼십”은 출 21:32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 한 사람의 몸값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종이란 사람 밑의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대상입니다.
레27:3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이 말씀에 의하면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한 사람의 가치도 되지 않는 천한 노비의 몸값에 팔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소망하면 진리의 말씀과 멀어지게 되고 진리의 가치는 하찮게 보여 결국 보배를 헐값에 팔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 소망을 버리고 세상 그 어떤 귀하다 하는 것과 바꾼들 이는 구세주를 천하고 하찮은 세상 이용물과 바꾸는 행위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가룟유다의 탐심, 자기욕심의 행위는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자멸에 이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