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을 처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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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압을 처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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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2 1
열왕기상 1장에 아도니야가 반역을 하였으나 다윗 왕이 솔로몬으로 왕을 세웠습니다. 2장에서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에게 요압과 시므이를 처리하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물론 1장52절에서 아도니야는 선한 사람이 되면 죽이지 않겠다고 조건을 걸어 뒀습니다. 시므이는 2장 36절에서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말라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와 시므이는 조건을 어겼기 때문에 죽였지만 요압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죽였습니다. 마18장 15절에서도 먼저 회개할 기회를 주고 나서 처리를 하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다윗이 요압을 없애라고 말은 했지만 솔로몬이 요압을 죽일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요압을 죽인 이유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비의 죄로 자식을 죽이지 않고 자식의 죄로 아비를 죽이지 않고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죽는 것이 신명기 24장 16절입니다. 아도니야의 죄로 요압을 처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담당9 2021.05.11 17:56  
1. 다윗의 악인들
세상에서는 왕에게 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면 무조건적 숙청만이 정답이라 하지만, 신앙의 세계는 절대자 하나님이 그런 악인까지 직접 등용하여 깨닫게 하고 고치게 하려 하시기 때문에 다윗은 그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늘 조심히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시므이의 경우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을 때에,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옆의 장군들이 나서려는 것을 막아서고, 도리어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범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아도니야의 경우에는, 다윗은 늙고 아들들은 많은데 왕좌를 정하지 않았으니 나라가 불안해지고 모반이 생기는 일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번 더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기다렸다는 면에서 더욱 튼튼한 솔로몬의 왕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요압의 경우는, 실력있는 사람이나 제어하기 힘든 자기 중심의 악인입니다. 요압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윗은 옆에 두고 사용하였으나 늘 고통스러운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도 큰 목적을 위해 참고 포용하나 다윗은 신앙의 사람이므로 한 번 사용한 사람을 끝까지 사람이 되게 하려고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요압이 자기 사람이므로 위험해도 끝까지 붙들었지만 솔로몬은 요압을 자기가 책임 지고 사용해야 할 자기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 때문에 조심했을 뿐입니다. 아도니야나 시므이도 같은 원칙입니다. 무시와 모멸을 당해도 죽이지 않고 더 나아가 다윗이 사람이 되도록 기회를 줬지만 솔로몬으로서는 자기 실력과 그들과 자기의 관계가 다윗과 다릅니다.

2. 악인을 정리할 때
악인을 통해 다윗을 고치려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고 이제 사용되었던 악인들에 대한 처분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처분을 모든 내면을 해결한 다윗에게 맡겼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맡겼습니다. 시므이는 2년이 지나고 명령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왕을 우습게 알았던 그대로 죽었고. 아도니야는 다윗의 사후 아버지를 범하는 더 중대한 반란죄로 그대로 죽습니다. 아도니야가 반란죄로 죽었으니 관계된 모든 사람도 죽어야 하는데, 아비아달은 다윗과 함께 고생한 수고로 인하여 생명은 건졌고, 요압은 다윗과 함께 고생한 수고는 아비아달과 비교도 못하고 전공도 많으나, 자기 중심으로 흘려서는 안되는 피를 흘린 그 댓가로 인하여 결국 자기 죄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도니야가 죄를 범했을 때 아도니야와 요압은 상관이 없는데도 함께 묶어 처리한 것은 이들이 아도니야가 모반할 때 한 몸이었기 때문에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을 하나로 보아 아도니야의 문제 때문에 한꺼번에 처리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적이고 솔로몬이 이를 처리해야 할 사람이지만 아도니야와 다른 그룹이므로 단체를 하나로 보고 처리하는 과정에 분리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할 때 아비아달과 요압은 솔로몬의 노선을 벗어 났고 이탈한 이들이 한 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도 한 교회가 걸어 가는 길, 특히 공회처럼 신앙의 노선을 뚜렷히 강조하는 교회를 벗어 나는 분들이 참고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의 이 면이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분은 다윗의 저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다윗을 반대하는 상황이 같을 때 모두가 함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을 반대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후계자가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걱정 되니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비아달은 다윗 이후의 대세를 보고 동조한 듯합니다. 이에 반해 요압은 다윗의 신앙 초기부터 함께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다윗과 신앙 성향이 달랐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 지는 시기에 3명의 입장은 서로가 달랐지만 목적을 위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야합이라 합니다. 신앙 세계는 이런 것을 인본에 자기 중심이라 합니다.

솔로몬으로 이어 지는 생명의 구원 노선에서 3명이 각각 다른 이유로 이탈을 했는데 이 3명은 시므이와는 아예 다른 이들입니다. 그래서 시므이의 죄는 이들과 하나로 보지 않고 따로 처리했고 이 3명의 경우는 나갈 때 한 몸 되어 역할 분담을 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처리를 할 때 그들 중 아도니야 한 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나머지 두 사람도 책임을 같이 물었습니다. 그들은 아도니야가 모반을 할 때는 함께 했지만 아비삭을 요구할 때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솔로몬은 이미 한 몸이 되어 다윗 - 솔로몬의 바른 노선에 저항한 과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교회로 처리했습니다. 그들은 아비삭 문제를 두고는 전화나 편지로 도운 적이 없고 전혀 모른다고 하겠지만 신앙의 노선 분리 문제를 두고 하나님은 그들 3명을 한 몸이라 보았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오늘도 한 교회가 세파에 대충 흘러 가는 교회일 때는 별 상관도 없지만 신앙의 노선을 제대로 알고 실제 하나님 앞에 바로 된 노선의 교회로 유지가 되는 경우, 옳고 바른 노선에서 벗어 나는 이들은 벗어 나는 순간 나무에서 끊어 진 상황이고 그 이후 회개하여 돌아 와야 하는데도 그런 기회를 잃으면 나갈 때 함께 한 사람 중에 개별적 탈선은 몰라도 원래의 바른 노선을 향한 침해가 있을 때는 실제 몰랐다 해도 함께 파멸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곳이 지향하는 공회의 노선으로 예를 들면, 이 곳을 비판하고 이탈하는 것은 훗날 칼빈처럼 개혁주의 선봉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함께 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쯤 후자임이 명확해 진 것으로 보입니다. 백영희 설교가 그 자녀들만의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한 것도 지금은 틀린 줄 스스로 알 듯하고, 또 그 문제가 아닌 일로 수 없는 잘못 된 행위를 했습니다. 이 곳을 벗어 날 때만 함께 했지 이후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모른다고 할 듯합니다. 실제 그런 주장을 많이 접합니다. 이제 세월이 충분히 지났습니다. 현재 그 분들은 아도니야이거나 아도니야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벗기는 어렵습니다. 그 분들이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것은 이탈 이후의 언행과 방향과 오늘의 상황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얼른 돌아 오는 것만이 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들은 뒤 돌아 서는 것은 참으로 쉬울 듯한데 자존심이 있는 분들은 시체 도적으로 몰아 버리고 자기 자존심을 우선 살립니다. 이 것이 최종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 됩니다.
공회인 2021.05.12 05:19  
목사님 생전에 송용조 김철수 정의진 송용석 목사님들이 한꺼번에 탈퇴를 했으나 각각 이 노선에 대해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하나 되어 활동하다 나중에 오늘의 각자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당시 제일 머리가 되거나 앞에 설 분 중에는 공회를 이탈하지 않고 있다가 목사님이 돌아 가시는 바람에 총공회 안에서 총공회를 다 드신 분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는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하나 된다고 하지 신앙의 하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철수 목사님께서 임종 직전에 연구소에 자신의 모든 기록을 넘겨 주며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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