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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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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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저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입니다.
(제목은 일반 방문인을 고려하여 내용 안에 넣고 목록에는 관리자가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 관리자, 20.11.9.)


안녕하세요 저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응 믿어보고싶지만 도무지 왜 믿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성폭행한 그 사람도 회개한다면 천국에 보내시나요?

만일 그렇다면 저는 회개하더라도 그사람을 용서하기 힘들 것 같고 제 마음이 찢어질거 같습니다.

 

제 슬픔은 도대체 누가 알아주나요? 저는 복수하고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서기에 제 자신이 잘못한게 안느껴지는데 저한테 하나님 믿으세요 라고 하면 저는 도무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더이상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허울뿐인 말 은 저에게 와닿지가 않습니다. 내일이 아니라고 아무조언이나 틱틱 하는것도 저는 싫습니다.  이런 제가 잘못됬나요?

저는 제인생을 망쳐버린 그사람을 용서하기가 싫습니다.

살인자 강간마등 추악한 과거를 지닌 자들과 같이 있고싶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천국에 있다면 저는 천국도 기대가 안됩니다.

주님께선 마음이 넓으시지만 저는 지금 그러지못하겠네요.

기도 드려도 제 현실은 달라지지가 않고

제 마음은 어두움에 가득 차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어떤 도움이 되시나요?

 

 

 

 
담당 2020.11.09 15:00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주셨고, 남녀를 함께 주셨으며, 행불행도 함께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2 가지가 나란히 붙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알게 되어 있고 피할 길은 없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세상 누구라도 하나만 가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주 다른 둘을 생각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우선 천국을 봅니다.)
마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천국이 없으면 좋겠다고 해서 없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비참하게 한 사람은 지옥을 가는가? 역사에 가장 나쁜 2 명은 인류에게 죄를 가져 온 아담과 가룟 유다입니다. 아담은 확실하게 천국을 갔고, 가룟 유다의 경우도 천국을 간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었음에도..

안 믿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나쁜 사람은 지옥 가고 자기 생각에 좋은 사람은 천국에 갔다고 해야 종교로 생각합니다.
안 믿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천국을 가거나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지옥을 간다면 그 종교를 욕하고 싶어 집니다.
남한 교인은 김일성이 지옥을 가야 하고 북한의 김씨 부하들은 남한 기독교 교인들은 전부 지옥을 가야 할 것입니다.
누구 생각 대로 천국과 지옥이 있고 없고, 가고 말고 할 것이면 그 사람이 교주일 것입니다. 종교라 할 수도 없습니다.
종교란, 인간이 아는 그 이상을 말하고 죽음 너머와 세상을 100% 움직이는 신을 인정하고 말할 때만 종교라 합니다.

내게 가장 미운 사람, 나를 가장 비참하게 한 사람은 지옥을 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신이란 없어야 하는가?


(아무리 분해도, 일단 생각해 보셨으면)
팥쥐는 콩쥐보다 못 나서 콩쥐가 싫고 신이 싫습니다. 팥쥐의 그 생각과 자세는 생각해 봐야 할 듯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기를 때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그 것이 예방 주사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야 예방 주사를 학교에서 맞았습니다. 그 때 간호사는 사탄이었고 귀신이었습니다.

인생을 넓게 넓게 멀리 멀리 잘 생각해 보면
겨울이 얼어 붙어야, 다음 해에 농사를 지으며 병충해가 줄어 들고 풍년이 옵니다.
겨울이 포근하고 행복하면, 다음 1년을 고생하게 되고 가을의 추수가 줄어 들며 곳곳에 사람이 죽어 나갑니다.
모르는 사람은 겨울이 추우면 하늘을 욕했고 경험 있는 사람은 미리 준비한 땔감으로 견디며 내년을 기대했습니다.
 
지금 기막힌 상황을 겪고 있는 분은 이 혹독한 상황을 겪기 전에
뉴스에서 자주 듣는 일이니 내게도 이런 혹독한 겨울이 올 때를 생각하여 땔감을 준비하듯 미리 조심할 수 없었을까?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왕 닥친 혹독한 추위라면 이 번 일이 예방주사가 되어 질문자의 평생이 나아 질 기회는 아닐까?

안 믿는다 해도 이미 닥친 일이면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이 번 불행으로 더 큰 불행을 막는 것이 자신에게 좋고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런 일까지 지켜 보며 이런 예방주사를 피할 수 없는 앞 날 때문에 주신 일입니다.


(다시 계산을 해 봅니다.)
춘향이 살던 조선 시대는 중국이 만든 유교가 종교였고 사회 인식이었으며 여자가 이렇게 당하면 죽어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일반 여성은 한 남자만 붙들면 이상하다 합니다. 가능하면 몇 남자와 어떻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안 믿는 일반 사람의 상식으로 본다면 마음에 없는 일을 당했으니 화가 나고 재수가 없어 분하기 그지 없으나,
그렇다고 조선시대처럼 여성은 평생 한 남자만 알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거는 오늘의 불신자는 없습니다.
만일 교인이라면? 교인이면 성경으로 우리가 살아 가며 당하는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질문자께 먼저 여쭙니다.)
뼈가 아프면 정형외과로 가고, 머리가 아프면 신경과로 갑니다. 세상적 안내를 원하는지, 신앙의 안내를 원하는지?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로 가고, 눈이 아프면 안과로 갑니다. 질문은 신앙과 세상을 두고 양면으로 적고 있습니다.
둘 다를 원하면 세상의 상식과 신앙으로 이런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 보고 대처할지 살펴 보겠습니다.
좋기는 둘 중에 하나를 먼저 적어 주시면 이 곳은 정성을 다해 보겠습니다.

믿기 어려울지, 또는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겠으나
이 번에 당한 그런 일은 흔하게 흔하게 넘치도록 주변에 많습니다. 다만 표시를 냈는지 아닌지만 다를 뿐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흔하고 성경에도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갈수록 많아 지고 있고 지금은 너무 넘치고 있습니다.
흔한 일이니 별 것 없이 대처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곳은 이런 일을 두고 교계에서도 가장 심각히 대처해 왔습니다.
대화를 하기 전에 한 해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수천 명이 넘는다는 것은 알면서 자기 식구의 사고를 대처하고
코로나로 온 나라가 1년을 벌벌 떨었는데 작년에 감기 예방 주사 맞은 후 죽은 사람이 이미 1,500명이 넘었다 합니다.

오늘 우리 세상이 이 번에 당한 일이 심각할 것을 성경은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세상이 어느 지경까지 가고 있는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곳의 답변은 최대한 첫 질문에서 모든 답변을 담으려 노력하지만 아주 가끔 질문을 드리며 안내할 때도 있습니다.
. 2020.11.10 15:47  
그럼 궁금합니다. 제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사람을 용서해야할까요? 저는 믿어야 할 이유가 필요합니다.
저는 운좋게 살해당하진 않았지만 만약.
주님을 믿기전에 저처럼 당한 후 살해 당하였는데 그 용의자는 주님을 믿어서 천국으로 간다면 그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지나요?? 주님을 믿을 기회도 박탈당한체 지옥행인가요? 그게 공평한가요
담당 2020.11.10 18:06  
(간단한 답변)
* 용서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원수를 용서해야 할까요? 어떤 교회 어떤 상담자도 원수를 사랑하라 할 듯합니다.
이 곳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여유가 있습니까, 실력이 있습니까, 그렇게 해도 될 정도입니까?
사랑할 만큼 여유가 있고 실력이 있다면 당연히 용서하라고 권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음에도 없이 또 그럴 형편도 아닌데 섣부르게 용서한다고 나서면 그 사람이 용서를 받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더 악화가 됩니다. 내가 더 악화가 된다면 나를 친 사람은 좋아질까요? 그 사람에게 더 큰 죄가 쌓여 집니다. 그래서 '용서'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사용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네 딸이 당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물어 보면 그런 사람들은 더 펄펄 뛸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원수를 갚을까요?
다시 묻습니다. 원수를 갚을 실력이 있습니까? 힘이 부족했든 주변의 돕는 사람이 적었든 내가 약하고 부족해서 당한 것입니다. 그 어떤 손해든 마찬 가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나섰다가 더 크게 손해를 보면 어떻게 되지요? 손해에 손해가 더해 집니다. 그래서 상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를 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손해를 본 내가 일단 더 큰 손해를 보지 않는 면으로 차분히 대처를 해야 합니다. 이 것이 순서이고, 이 것이 자연스럽고, 이 것이 내게도 좋고, 이 것이 나를 친 그 인간에게도 결국은 더 나은 결과를 주게 됩니다.

* 피해자는 지옥 가고, 가해자는 천국 가는 경우
불신자가 믿기 전에 억울하게 죽었다면 세상에서 일찍 죽은 것도 억울한데 믿기도 전에 죽었으니 지옥을 가야 합니다.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에 있다가 믿게 되고 천국을 갑니다. 웬만하면 몇 년 살다 나옵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세상에 억울하고 억울한 일도 많지만 이런 경우가 되면 억울하기 짝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만들고 운영하는 분은 제가 아니고 질문자도 아니고 따로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혼자 만들고 운영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우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말이 된다 안 된다고 말한다고 우리의 정의,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확인을 하면 좋겠습니다. 실제가 그렇습니다. 따지는 것은 뒤에 해도 됩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뒤에 천국 제일 가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맞아 죽은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맞아 죽은 스데반은 지금 천국에서 바울과 함께 주님 앞에 있습니다. 스데반의 마음이 복잡할까요, 억울할까요, 이런 천국에는 살지 못하겠다고 화를 내고 지옥으로 가 버렸을까요? 아니면 스데반이 바울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을까요? 이왕 죽을 스데반이 바울에게 죽는 바람에 바울은 영원히 스데반의 제자가 되었고, 바울의 평생 전도와 실적은 전부 스데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불신자로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불신자로 죽어 지옥을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세상에 태어 나기 전부터 지옥을 가게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예정'은 일단 장로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자기 교회, 자기 교단에 질문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 질 수 있어 앞에 스데반과 바울로 예를 들었습니다. '공평'이란 김정은의 기준도 아니고 석가의 기준도 아니듯이 제 기준도 피해자의 기준도 아닙니다. 공평이란 문제는 '예정'과 함께 살펴야 할 사안인데, 여기서 우리는 '현재'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공평이란 없어 보이지만 '훗날' '하나님' 기준으로 살펴 보면 세상은 물론 천국까지, 그리고 누가 재수 좋게 로또 복권을 가지고 1천 억원을 가지든 질문자처럼 너무 억울하게 된 분이든, '공평'을 떠나 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넘어 갈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또 질문 내용에 담긴 몇몇 사안이 쉽게 설명할 내용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가장 극단적인 문제가 생겼고, 또 관련 된 신앙의 내용 역시 기독교의 근본에 대한 것입니다.
제대로 답변을 드리려면 작은 책이 한 권 될 분량일 듯합니다. 이 곳에 어렵게 적은 글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약간의 시간을 가지면서 약간의 대화식이 되도록 나누어 안내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 내용을 다시 참고해 보시고, 그리고 다시 필요한 점을 지적해 주시면 꾸준히 안내를 드리도록 해 보겠습니다.


(상식, 당연, 필연)
내가 손해를 봤다면 누구나 나를 친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세상에서도 당연하고 모든 법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공산당도 불교도 역사에 가장 나쁜 황제도 국민들에게 닥치는 대로 남을 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사회가 안전해야 황제 노릇도 하고 독재자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불신 세상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 처벌인가?)
세상은 보이는 처벌만 처벌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증거가 있어야 처벌을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증거를 남기지 않아 무죄가 되기도 합니다. 당한 쪽이 입증을 제대로 못하면 죄의 100분의 1도 되지 않게 처벌을 받고 끝이 납니다. 세상이 이렇다는 것은 우리가 이런 종류의 사건을 접하면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나를 친 사람, 다른 사람을 손해 보게 한 사람. 하나님의 법은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처벌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처벌은 눈에 보이는 당장의 처벌보다 처벌의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을 막아 선 아말렉의 경우 400년 뒤에 처벌을 하면서 상상 못할 만큼 강했습니다. 왜 당시 억울한 그 때 처벌을 하지 뒤에 했을까? 당시 죄를 지은 사람들만 처벌하는 것으로는 너무 약해서 400년 동안 자손을 번창 시킨 다음에 몰살을 했습니다. 내 기준으로, 내 성향으로, 내가 좋아 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 해도 나 원하는 대로 처벌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60년대 서울대 공대는 탄광학과가 제일 높았습니다. 70년대에는 섬유공학과가 제일 높은 적도 있었습니다. 60년대 탄광학과 들어 간 학생은 그 때 환호를 했습니다. 70년대가 되니까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60년대 석탄 산업이 70년대가 되면 석유산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70년대에는 옷을 수출하는 바람에 인기가 있었으나 80년대가 되니까 또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는 확정을 하면 좋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나쁜 사람은 언제 당해도 꼭 당하기는 당하더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천벌'이라는 말을 합니다. 억울한 나에게 우선 급한 것은 내게 위로가 되고 저 ㄴ은 내 속이 시원하도록 당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세상 전부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 가는데 모든 억울한 사람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하게 되면 세상도 억울한 사람도 함께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모든 억울한 사람 전부를 위로하면서, 이 세상 모든 나쁜 행동 전부를 처벌하되

천사가 봐도, 만물이 봐도, 훗날 우리가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나면 '하나님의 처벌은 정말 공의롭고, 잊지 않으면, 억울한 사람을 그냥 넘어 가는 수가 없고, 나쁜 행위에 대해서는 대충이 없다'고 결론을 맺게 됩니다.
. 2020.11.11 12:30  
결론적으로
주님의 판단은 공의롭고 공평하고 억울하지 않다 란 것인가요?  불신자로 죽은 사람도 이유가 있고 억울하지 않게 하나님이 조율하신단 건가요? 당장은 이해가 안되겠지만 훗날 보면 이해 갈거다 라는건가요

그렇다면

세상에 억울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지 않나요?
억울이란것이 아예 없지 않나요?
신자가 겪는 아픔은 전부 하나님이 주시나요 악마가 주나요?  둘다인가요?
신자는 어떠한 아픔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전부 주님이 준거라고 생각하고 달게 받아야하나요?

훗날의 공평을 말하신건 사실 너무 결과론적인 것 아닌가요 훗날에 다죽으니 지금 죽어도 괜찮다 이말 어떤가요
제 생각이 많이 뒤틀려있습니다.

스데반의 예시를 들으셨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근데 바울이 돌로 죽였는데도 천국에 가있으면 그사람은 좋겠죠.. 근데 이건 제가 말하는 케이스가 아니네요

주님이 처벌 하신다 하였을때 제가 용서한다면 그래도 처벌이 이루어지나요?
이세상 모든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제가 겪는 모든일들에 대해 이것도 주님의 뜻이겠지 라는 자세로 살아여하나요?  사실 인과응보 라는것은 누군가 수긍되는 이유가 있다면 인과응보고 수긍이 안되면  어느한쪽이 억울한거 아닌가요? 저는 무슨 처벌을 받은건가요. 저는 무슨 이유로 수긍해야하나요?

제 속에 끊임없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삶의 부조리함이 저를 갉아먹습니다. 부디 제대로 된 답변 주시기를..
. 2020.11.11 12:48  
또한 불신자로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불신자로 죽어 지옥을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세상에 태어 나기 전부터 지옥을 가게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예정'은 일단 장로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자기 교회, 자기 교단에 질문을 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 질 수 있어 앞에 스데반과 바울로 예를 들었습니다. '공평'이란 김정은의 기준도 아니고 석가의 기준도 아니듯이 제 기준도 피해자의 기준도 아닙니다. 공평이란 문제는 '예정'과 함께 살펴야 할 사안인데, 여기서 우리는 '현재'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공평이란 없어 보이지만 '훗날' '하나님' 기준으로 살펴 보면 세상은 물론 천국까지, 그리고 누가 재수 좋게 로또 복권을 가지고 1천 억원을 가지든 질문자처럼 너무 억울하게 된 분이든, '공평'을 떠나 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럼 주님기준에서는 살인자가 살인한 이유도 있고 죽은 사람이 죽은 이유도 있고 억울한게 아니라 공평한거고 그 죽은 사람을 주님이 어떻게 위로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데반의 예시를 드셨으니 불신자를 억울하지않게 위로한다 란건 예수그리스도를 믿지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단건가요? 못믿고 죽은 그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되나요? 주께서 그 억울함이 없도록 하시니 나는 걱정하지마라 인가요? 사실 이 부분은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가 안되네요..

그 불신자가 평생 안믿을 예정이라면 주님이 데려갔어도 그사람은 억울한것이 없는건지...처음부터 쭉정이다 라고 하는건지...모든걸 내다보시는 주님 기준에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옥갈 영혼이 정해져있는건가요...?? 너무 어렵네요...
담당 2020.11.11 16:13  
(예정론, 책임론)
닥친 큰 어려움, 억울함
여기에 대하여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곳의 답변을 맡은 분들은 각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개인적인 극단의 어려움을 겪어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 비록 종류는 달라도 그런 고통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하는 분들과 여러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고, 고통을 겪은 분들과도 그렇습니다. 이 점만은 이해를 해 주시고,

지금 겪고 계신 극단적인 어려움을 우선 내 마음에 속이 시원하게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감기 하나도 위장병 하나도 그런 고장이 생기기까지는 평소의 건강 관리 등이 쌓여서 병으로 생기는 것이라 진통제로 급한 고통은 잡아야 하지만, 아예 이런 병이 오게 된 원인을 파악해서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면 훨씬 빠르겠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이런 방법으로 대화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느 가정이나 이런 정도의 극단적인 고통은 몇 개씩 묻어 두고 있는데 그냥 덮어 두다가 속이 썩으면 암으로까지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 번 글을 통해 조용히 지켜 보며 함께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의 근본을 살피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곳은 '연구소'입니다. 어떤 것은 간단히 단호하게 해답을 드리지만 현재 이런 문제는 과거에도 종종 안내를 드려 봤고 저희의 안내를 받은 후 새롭게 인생을 출발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질문은 이제 '예정론' '책임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겪는 극단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볼 차례입니다. 과거 다른 분과 대화를 통해 공통적으로 안내할 부분을 과거 자료를 맡은 분이 글 몇 가지를 소개하고, 저는 그 뒤에 다시 질문자께서 직접 궁금할 부분을 안내하겠습니다.
. 2020.11.11 17:48  
기다리겠습니다. 함께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8 2020.11.14 08:52  
다른 분과의 대화라는 점을 참고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노선의 기본 방향을 담았습니다. 각자 억울하고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진리의 원칙이란 기본적으로 같다는 점에서 다른 분의 경우를 먼저 지켜 보면서 현재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 보신 후 다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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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신장애인의 구원, 예정은?
일시 : 2000-08-22 08:57:48
작성자 : 장애반 교사

저는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지능지수 측정 자체가 불가능한 자폐아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말도 못하고 앞뒤 분간도 못하는(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의 구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아이들 역시 영과 육과 혼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이 아이들의 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폐아들이야말로 스스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하시며 너무나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들을 가까이서 볼 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하나님께선 장애아를 주실만한 가정에 주신다', '장애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사랑과 배려와 보살핌이 없는 훨씬 삭막한 세상이 될 것이다'하고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너무 잔인하신 거 아니냐'고 하시는 학부형님 앞에서(좀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원망을 벗어나서 체념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 아픔의 백분의 일도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예정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면(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매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게 될 거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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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전부는 특수반 교실 밖에 있는 더 위험한 정신장애들입니다.
일시 : 2000-08-22
작성자 : yilee

정신장애자의 영, 신앙 등의 구원문제

1)일반적인 경우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①일반장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지체 장애는 그 장애 때문에 큰 좌절로 낭패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장애 때문에 더 큰 복을 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불임도 넓은 개념의 큰 장애였습니다. 이스라엘도 메시야 출생이 자기 가족 계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 선호사상이 대단했습니다. 한나는 불임의 장애가 있었고 그 때문에 받은 복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②정신장애는 믿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중생되는 것이 영입니다. 이 영을 중생시키는 데까지는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전적 하나님이 객관의 역사로 중생을 시켜 놓습니다. 따라서 정신장애에 상관없이 그들의 영은 중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중생된 이후입니다. 믿는 우리가 평생 노력하는 것이 마음을 말씀으로 바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이 일을 위해 영이 노력하고 또 몸은 마음이 성화된 것만큼 그 뒤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음의 성화 정도가 천국의 영원한 우리 모습으로 보면 되는 정도인데 마음에 장애가 발생이 된다면. 말씀을 받아 지식으로 인정으로 나아가야 되는 건설구원의 기본 요소, 출발에 필수 과정이 전부 마비가 되거나 큰 불편을 가지게 되니 그 신앙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결정이며 예정이니 받아 들여야 한다지만,

이런 점에서 정신장애만큼 큰 장애가 없고, 그 장애에 견줄 불행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특수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예외적인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그 마음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믿음의 성장이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입을 막아버린다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러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장애자로 출생이 되던, 머리를 다쳐 장애가 되던 이런 아이들을 처음 마주치게 된 가족이나 교사는 사명감이나 동정심으로 각오도 해 보고 노력도 해 보지만, 인간이기에 피로와 반복이 누적되면 결국 죽일 수 없고 죽을 수 없어 체념적 생활이 될 뿐입니다.

정신장애아, 너무도 가혹하며 평생의 족쇄라는 점에서 어떤 위로나 어떤 표현도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말장난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2)그러나, 이런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습니까?

①잘 쓰면 큰 선물이나 잘 쓰는 사람이 적습니다.

'정신기능'을 하나의 좋은 선물 또는 도구라고 한다면, 정신지체 장애자는 가장 좋은 도구 가장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한 거지입니다. 그들을 애처롭게 보는 우리는 '정상적인 정신'을 가졌고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와는 모든 면에서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탁월한 도구, 이 최상의 선물로 정신장애자보다 나은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TV라는 탁월한 도구, 좋은 선물이 패륜을 조장하는지 인륜을 고취시키는지, 좋은 시력이 남의 여자 남의 남자를 잘 보게 하는지 소중한 자기 남자 자기 여자를 더 잘 보게 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 세월이 많았는지 건강함으로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때가 더 많았는지.

②가장 귀한 선물, 도구. 정신기능은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가진 사람이 그 정신으로 어떻게 사용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대학 4학년까지가 16년 세월이며, 이 연령층에 해당되는 숫자가 대략 1,000만명입니다. 가방 들고 학교가는 학생치고 정신이 바로 박힌 학생과 정신기능은 정상인데 정신을 잘못 쓰고 있는 학생과 숫자 비율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볼 때, 마음씨를 참으로 곱게 쓰고 좋게 쓰고 또 잘 쓰는 학생이 한반 40명 중에 몇 명입니까? 곱게 쓴다면 심성이 착하다 말이며 좋게 쓴다면 처신이 바르다는 말이며 잘 쓴다면 공부나 기타 실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어려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에서 40까지 15-6년 연령층을 살펴보면 됩니다. 회사 초년생으로 과장 정도까지의 남자들, 한참 잘 나가는 아가씨로부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1-2 가진 주부들, 이들이 사용하는 정신 기능을 분석해 보셨는지요? 남자라면 그 머리 속에 자기 수준 이상의 여자를 찾아 직장에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가는 이 방향에 자신의 정신기능이 전부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자라면 자기 수준이상의 남자를 찾아 자기가 가진 가정이 자기를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방향을 잡고 여기에 자기의 정신기능을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정신기능이 곱게 사용된다면 시부모를 내 부모같이 기쁨으로 모실 것이고 남자라면 자기 희생을 찾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좋게 쓰였다면 그들을 존경해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부러움을 주위에서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정신기능이 잘 쓰였다면 실력까지 갖춘 여성이며 사회 지도적 입장에 설 남성입니다.

③교회 내부를 정신기능 측면에서 조사한다면

목회자를 상대로 이 3가지 항목에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익명으로 여론 조사를 한다면, 3가지에 합격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고우면 무능해서 교인들이 답답합니다. 병신인지 착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교인들의 불평, 교인들끼리 모였을 때 내놓는 말을 무작정 눌러만 둘 일도 아닙니다. 실력있는 목회자면 교만과 독선이 있어 특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변해 버립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다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말을 교회 내부 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꾸하기가 심히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교인들을 두고 목회자들이 점수를 주라면 목회자 눈에, 착한 교인, 실력있는 교인, 충성하는 교인의 3가지를 다 갖춘 사람이 몇 %,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가장 정신기능을 바로 잡고 바로 사용한다는 교회 내부가 이 정도라면 세상은 굳이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멀리서 보고 물건너 불구경으로 보면 좋아 보일찌 모르나 들여다 보면 그러합니다.


3)정신장애란 가능성이 차단된 점은 불행이나 결과만 가지고 본다면 밑져야 본전입니다.

①평균적 인간을 보아 '정상적인' 정신기능을 정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1%가 채 안됩니다.

정신기능을 가지고 한 개인이 평생에 바로 사용한 것이 1%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계산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세상계산법은 1% 바로 사용한 것만 가지고 선전하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 단점은 잊어버리고 장점만 크게 보이는 인간 심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산은 심판으로 나타나며 여기서는 지공 지성의 진리 심판이 적용됩니다. 1% 사용 생애는 우리가 천국으로 갈 때 가지고 가며 여기 대한 보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99% 잘못 사용한 나머지 생애는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심령이 밝아진 천국에서 영원토록 99% 낭비로 살았던 자기 세상 생활은 자기가 알고 느끼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천국은 갔지만, 죄송함은 말할 수 없이 크며, 비관적 후회는 없으나 죄송한 미안은 영원토록 가져야 합니다.

정신장애자는 바울처럼, 백목사님처럼 자기 정신기능을 잘 사용하여 큰 성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지 못했다는 기대지수에서는 대단히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신기능을 잘못 사용하여 손해배상을 하고 그 결과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99%라고 한다면 이 점에서 정신장애자는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입니다.

②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아쉽지 않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학자가 되고 정치가가 되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정신장애자들은 기대지수가 제로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실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세상이 지난 다음 우리가 살 영원한 나라를 주 목표로 삼는다면, 그리고 그 나라의 준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면, 정신장애자는 노력할 경우이지 불가할 경우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이 있으며 말씀에는 창조력 개조력 개선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없는 데서 아인슈타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면, 만들어놓은 정신장애자 뇌속에 위치가 잘못된 회로 수리가 휠씬 쉽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살아가는 그 순간만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인 순간은 신앙이 아닌 세상에 두고갈 생애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감기를 낫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기약을 먹고 감기를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넣어주셔서 과학으로 치료하는 길도 기도 중에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감기약을 먹고 치료하도록 감동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요 역사라고 간증을 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동네 약사들도 그 정도 하나님 노릇은 할 수 있다고. 기도로 감기가 나으면 사람들이 '아, 그랬어!' 듣고 지나치는 정도입니다. '기도로 정신장애자가 정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 주변 여러 종류 많은 사람들이 진동할 일입니다. 하나님께는 과학의 치료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나, 감기를 직접 낫게 하시는 것이나, 정신장애를 복구시키는 것이나 꼭같은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사람이 자기 기준에서 앞에 두가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뒤에 한 경우는 대단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고려치 않은 불신자들의 행동입니다.

③정신장애라는 병을, 정신장애자라는 사람을 왜 우리에게 보내셨을까?

인간이 자기가 겪는 아픔, 고통은 큰 관심사가 되고 물건너 불구경은 소식듣는 정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아를 상대하시다 보니 그 면이 부각되었고, 물론 어떤 불행보다 큰 불행임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환경이 바뀌면 간사한 우리의 입맛이 그냥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딴 소리를 하지요.

교사 이기주의를 마구 욕하다가 자기 아들이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갑자기 그 사람의 단어와 표정은 바뀌어버립니다. 신기할 만큼. 표시가 뚜렷하게 난 장애가 정신장애입니다. 표시가 전혀 나지 않았으나 이 나라 이 백성 이 말세 모든 인간의 정신장애는 심각한 정도입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만 운없이 걸려든 것이 '정신장애자' 본인이며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로 상대하는 정신박약아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으나 공격성은 없습니다. 정신박약이 아니고 정신분열이나 과대망상 착란증으로 나가면 순간에 한 가족을 몰살 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히틀러 한 사람이 가졌던 정신분열증의 정신장애, 그에게 충동받아 함께 넘어갔던 게르만 민족 전체의 정신박약, 일본 군국주의를 주도한 몇 사람이 가졌던 과대망상이라는 정신장애와 일본인 전체의 착란증은 수천만명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들 전부는 차라리 특수학교를 다니는 수준의 정신장애자였다면 자기 하나의 불편에서 그쳤을 불행인데, 일본과 독일에서 보였던 히스테리는 비교못할 큰 장애였으나 아무도 그들을 정신장애로 분류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분류하면 우리 세상을 사는 모두가 다 그 종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 잘하는 진짜 미친사람들이 우리들인데, 덜 미치고 휠씬 증세가 약하고 또 공격적이지 않은 수줍은 미친사람들이 말을 못한다고 그들만 미친사람으로 분류를 하고 있음도 계산해 볼 대목일 것입니다.

김일성 사망에 북한 주민이 보였던 국가적 발악은 집단 히스테리입니다. 이런 예는 너무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것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대통령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미쳤던 이 지역 사람들, 저 지역 사람들, 우리들이 많이 보고 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끼리도 열을 내 가면서 난리들이었습니다. 제 부모를 위해 그렇게 해 보았는지, 전주이씨 족보만 섬기고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조선 왕조의 소위 충신 열사 유생들이나, 제 부모 모시기 싫어 머리 돌리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나,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대로 안 미친 사람이 사실 없습니다.

제 부모 죽은 자리에서 장남들 대개 남자들의 눈물은 그렇게 인색합니다. 한몸을 약속한 여자가 제 시부모 죽은 자리에서 눈물은 더 인색합니다. 그러나 옆집 애완견 죽었다고 우는 새댁, 그 새댁이 우는 눈물에는 이웃 새댁들이 함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이 정도에서 우리는 이런 결론을 가집니다.

①불쌍해 보이는 것이 '정신장애아'이고, 실제 불쌍한 이들은 '정신건강자'들입니다.

정신장애아들을 건강한 아이로 바꿔 달라는 기도는 그냥 해보는 기도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개선시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개인 경험으로 정신장애아를 세 명 정도 주일학교 반사로 있을 때 데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다닌지 1-2년 만에 너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놀랄 정도였고, 목회 나온 후 5-6년 뒤에 들어보니까 여고를 다닌다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말을 듣고 정말 믿어지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일반 설교 모든 성경 말씀이 정신박약아를 위해서도 그를 책임진 또 관련있는 사람의 꾸준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②기도는 내 소원을 허락하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현실을 주셨느냐고 여쭤야 합니다.

왜 나면서 앉은뱅이 되고 왜 나면서 한번도 눈을 떠 보지 못하는 이런 장애아를 주셨느냐고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들을 고쳤으니 내 자식도 고쳐 내라고 요구나 항의를 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능치 못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다 고치겠다고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해당된 길과 과정이 다 다릅니다. 몇 번 기도하다 결국 포기하는 것이 '정신장애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방향을 '왜 주셨습니까?' '왜 하필이면 정신장애입니까?' 이런 기도는 분풀이나 한풀이로 고함지르며 기도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기일을 정한 작정기도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요한 묵상, 고요한 명상이라야 합니다. 조용히 냉정히 그러면서 주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인간으로는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창조주가 왜 전지자가 알면서 일부러 나에게 이 현실, 이 '장애아'를 주셨느냐는 질문을 그 장애를 만든 책임자, 원인자, 제작자 하나님께 문의를 드려야 합니다. 그는 예정하신 본인이시고 그대로 진행시키는 책임자십니다.

의문은 좋지 않습니다. 의문이 없어져야 문의가 있고 답변이 있게 됩니다. 의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문의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문의의 자세로 질문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자라는 지혜를 보충하여 알려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기도로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대목입니다. 수개월, 적어도 수년은 마음 속에 묻어둔 혼자만의 숙제로 꾸준히 살펴보아야 비로소 무릎을 치며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현실은 전부가 선한 것이었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이 이런 이유였다는데 반드시 도달할 것입니다.

③장애를 주신 이유를 알았으면, 이제 해결은 되었습니다.

그런 계획, 그런 예정이 계셨으니, 즐겁게 이제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 됩니다. 껌파는 아이는 자기하는 일이 싫고 또 땀은 자기가 흘리는데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폭력배니까 처참한 꼭두각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탈랜트들은 잠깐 수고하여 유명한 스타가 되고 적은 돈 투자해서 거금을 끌어 모으게 되니까, 1달 고생, 1년 고생도 참아가며 감독이 시키는 일은 별별 일을 다 하지 않습니까? 한 겨울 얼음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울어야 하고 웃어야 하고, 별별 고생을 다 하는 이유가 '나은 소망' '다음 생활'이 있기 때문이며 잘만 되면 많이 나아질 것을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땅 위의 '정신장애', 그 가족과 관련된 사람이 기도하여 고쳐주시려고 주신 것인가, 아니면 잠깐의 십자가를 주셔서 천국의 영원을 특별하게 마련하시려고 그러는가? 계산은 자신들이 할 일이며 그 계산에 따라 어떻게 마음을 먹고 행동을 해야겠는가 하는 문제는 장애가족 자신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남의 일이니까 하기 좋은 말로 해 보시라고 한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정신장애' 당신은 그래도 본전 장사는 하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은 줄줄이 다 망하는 사업을 해서 본전도 못 찾고 빚만 지고 갈 사람들이요, 또 당신은 '정신장애'에 장애지만 그 장애 이상의 정신장애자들 '위험스럽기 한없는 정신장애'들이 꽉 찬 세상이니 이 면을 생각해도 창조주를 크게 원망할 것이 없으며, 더구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전능이 계시니 감기 하나 낫는 것과 정신장애 바로 잡는 것과 하나님께는 같은 수준의 치료이니 그분께 기도해 볼 일이고, 그보다는 왜 이런 사람을 주셨느냐고 그 장애자 때문에 고생할 가족, 그들의 기도 제목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믿는 우리에게 예정된 모든 예정은 각자에게 알맞은 그리고 가장 좋은 예정으로 예정해두셨습니다. 자식들은 상대적 비교로 나는 부모 덕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섭섭하다 하며 이말 저말들을 하지만 한 분 하나님 아버지는 분명히 사랑으로 좋게 주셨습니다. 즐겁게 기쁘게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해보라고 각자에게 적절한 다른 역할을 맡겼습니다. 세상 배역은 역량이 부족해서 재촬영도 해야 하고, 또 시키는 대로 다 따라 했는데도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이 각본 감독하시고 진행시키는 오늘 현실은 당신의 전능이 각본대로 되도록까지 하십니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굴러가도 뒤집혀도 복된 길, 영생의 길, 참된 길만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계를 넘어가 본 경험이 롬8:34-39 에 있습니다. 바울의 간증입니다. 그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이렇게 좋아서 환장할 때는 바울이 로마 감옥 안에 있을 때 일입니다.


*정신장애로 일단 외부와 대화가 차단되는 경우는 '치매'도 마찬가지이며 '치매환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둘 몇가지를 문의답변방 초기에 올려 둔 것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담당8 2020.11.14 13:31  
'자료 계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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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절대주권 질문입니다
일시 : 2008-05-30 09:07:16
윤영삼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100%를 인간의 자유의지 100%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절대주권 100%, 인간의 자유의지 0%입니다.

이번 주에 개혁주의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중에 칼빈주의 신학과 알미니안 신학을
비교하시면서 칼빈주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는 신학이고, 알미니안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신학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고, 백목사님 신학(교리)이 진정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신학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질문)

1. 우리의 기본구원, 건설구원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며, 절대주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모든 죄의 책임도, 건설구원을 제대로 못 이루는 책임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불신자가 모두 지옥가는 것도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까?

모든 영광도 하나님께, 모든 책임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책임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이해하는 책임과는 좀 다를 것 같습니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인간이 이해하는 책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라면, 그 책임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도 하나님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2.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이나 속성에서 나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본질이나 속성에서 나왔다면
마귀나 죄도 결국은 하나님께로 나왔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속성중에 마귀나 죄가
있는 것입니까? 정통신학에서는 하나님께는 절대 죄가 없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 우리 속에 있는 죄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수많은 고통들, 좌절들, 죄들, 음란들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을 터인데, 하나님께로 부터 나왔다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알고 있으신것인지?
알고 있었다면 또 하나님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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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준과 시각의 문제 - 하나님과 죄책
일시 : 2008-05-30 12:02:30
작성자 : yilee

1.기준 문제

신앙 건설도 하나님 주권이며 신앙 후퇴도 하나님 주권입니다.
신앙 건설의 자격이 주어지는 택자와 주어지지 않는 불택자의 선택도 하나님 주권입니다.
천국을 만드신 분도 지옥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 한 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 한 분이 하나님께 필요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평가 기준을 여기에 두면 세상 만사는 전부 옳고 좋은 것 뿐입니다.
그렇지만 평가 기준을 지옥갈 인간에게 둔다면 억울하고 원통할 것입니다.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을
소의 기준에서 보면 아주 맛있고 좋은 먹잇감일 것이고
우리가 보면 한가로운 그림일 것이고
풀의 입장에서는 대량 학살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를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풀을 뜯어 먹은 그 소를 우리의 맛있는 소고기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신앙 건설에서 앞서고 뒤서는 모든 기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 뜻에 딱 맞아떨어지도록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선이라 하고, 좋았더라 라고 표현하며, 그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풀이 억울하게 뜯겨지는 것은 누구 책임이냐....
이런 논제, 이런 시각, 이런 표현, 이런 발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인이 소를 기르기 위해 풀을 길렀고 또는 풀 있는 곳으로 소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지옥가는 사람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그런 표현, 그런 시각, 그런 발언 자체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그리하고 계시니 왜 그렇게 하는지를 두고는 공부를 할 일입니다.



2.만물의 근원

하나님 홀로 계셨으니 '자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는 전부 하나님께서 만들었으니 피조물이며 그 전체를 '만물'이라 합니다.

하나님 홀로 만드셨다면
만들어진 그 모든 만물에는 하나님의 실력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잔인한 사람이 잔인하게 만들었다면 그 만들어진 잔인성에는 만든 사람의 잔인성이 있듯이
만드신 만물은 하나님의 실력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 본성이 드러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일부가 빠져나와 된 것이 아니라
그 만들어진 것에는 하나님의 솜씨와 성질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으시니 죄를 만들었겠는가?
이 표현, 이런 접근 자체가 잘못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살인죄를 하나님께 적용시킨다면 노아홍수 때 하나님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홍수심판으로 사람을 죽인 것으로 보아 6계명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은 살해라 하지 않고 먹이를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사람이 소를 뜯어 먹는 것은 살해라 하지 않고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신다면 그것은 6계명의 살인죄라 하지 않고 심판이라 해야 합니다.
. 2020.11.14 14:02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담당8 2020.11.14 17:11  
이전 답변의 질문도 추가했습니다.
. 2020.11.15 14:20  
답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주님에 대해 좀더 깊게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담당 2020.11.15 20:53  
(속 마음, 깊은 심정입니다.)
격한 상황 때문에 강하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감정이 조금 비켜 서야 상황을 제대로 보면서 대처가 됩니다. 억울 할 때 감정이 먼저 나서면 더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더 이상 억울하지 않고 이제는 덜 억울해 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극단적인 상황을 겪어 봤든 평소 얼굴 한 번 긁혔든 원리는 같습니다. 감정이란 손익을 따지지 않습니다. 감정이 앞 서면 대개 기분을 푸는 대신 소리 없이 손해를 더 많이 봅니다. 글을 읽으며 인격과 지성은 충분한 분이나 당한 일이 극단적이어서 지성을 덮어 버리는 감성을 먼저 뵙게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이 지났고 몇몇 글을 함께 읽었습니다.

저는 세월 속에 질문자보다 더 큰 피해를 겪은 분들을 더러 알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이 곳을 운영하며 알게 된 분들과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사연들을 많이 헤쳐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만 말한다면 모두가 극단적인 순간을 딛고 이후에는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 교인들의 교통 사고를 많이 처리 해 드리고 왔습니다. 일단 다치면 가해 운전자를 처벌하여 속풀이를 하는 데 전력을 합니다. 바로 이 순간 자기의 피해를 보험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칩니다. 상대가 나 때문에 어려움을 아무리 겪는다 해도 내게 보상으로 돌아 오지는 않습니다. 이미 사고를 당했고 가족이 돌아 가셨거나 장애자가 되었거나 현재 뼈가 부러져 누워 있습니다. 가해자를 제쳐 두고 보상 받을 방법을 연구해 보면 보험사가 50만원 합의금을 제의하는 경우 최소 몇백 만원에서 1-2천만원을 쉽게 받았습니다. 보험사에서 100만원을 제안한 사건은 수억 원을 받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피도 눈물도 없다고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자해가 필요하면 더 고통을 겪으시라고 마음 속에 중얼거립니다. 그런데 그가 교인이니 안타깝습니다. 이 분이 돈 100만원을 당시 벌기 위해 한 달을 어떻게 고생하는지 알기 때문에 사고 직후 몇백 몇천 몇억의 손해 본 보상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할지 눈에 선합니다.

현재 질문자는 돈으로 보상 받을 문제가 아닙니다. 교통사고와 다르기 때문에 교통사고는, 당한 뒤에 평생 다시는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차를 조심하는 사람 되는 것이 제1의 수입이고 보상은 제2의 수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챙기면 이왕 당한 사고는 훗날 평생을 두고 또 자기 주변의 가족들의 안전을 두고 크나 큰 수업료가 됩니다. 객관적으로 어떤 사고든지, 그 사고를 객관적으로 면밀하게 살펴 보면 100대 0으로 한 쪽만 전적 잘못하고 한 쪽은 전적 억울한 경우는 없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억울한 과정을 밝힐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우리는 30여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10명 이상이 연쇄 피해를 당해 온 나라가 최근까지 난리였습니다. 오늘 이 순간 30여년 전의 연쇄 살인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밤 길에 당했습니다. 한 분이 당하고 두 분이 밤 길에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화성을 벗어 나 살든지 밤길은 학교를 결석하든지 파출소에 가서 잠을 잔다며 동행을 요구하든지 극단적으로 대처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피해자임에 틀림이 없으나 '설마...' '이 골목만은...' '이 산길까지야...' '그런데 남의 집 대문을 미안해서 어떻게 두드리나...' 라는 마음 때문에 밤길을 걸었습니다.


(이제 그 분들을 돌아 봅니다.)
범죄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공통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을까? 그런 경우는 하늘에서 비행기가 폭발하면서 파편에 맞는 사람, 번개 벼락에 맞는 사람은 달리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당하는 피해, 그 중에서도 여성이기에 당하는 것은 거의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몇만 볼트 전압으로 상대방을 기절 시키는 장비도 요즘은 흔합니다. 저는 1986년에 구입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은 분이 위협을 느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이화여대로 진학 하는 여동생에게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남자에게 당할 수 있다며 여동생을 교육 시킨 대학 교수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 엘리베이터는 전국에 몇 대 없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화여대 생이기 때문에 가끔 기회가 있을 것이고 아차 하는 순간 혼자 탔다가 남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를 그 때 벌써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분은 제게 평생 그 때를 회고하면서 나는 내 여동생들이 깨끗하게 살다가 자기 남자 만나 평생 살도록 했다고 말할 때마다, 그렇게까지 세상을 살면 피곤해서 어떻게 하나? 피곤하면 그야 말로 생각 못한 순간에 자기의 모든 것을 잃으면 됩니다. 자기 모든 것,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해도 지킬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투자를 해야 합니다.

지키고 싶은 것이 1만원짜리라면 9천원까지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키고 싶은 것이 10억짜리라면 1억짜리 보험은 들어야 할 듯합니다. 대개 보험은 가치 대비 1% 정도를 불입합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대비해서 몇십 만원짜리 보험을 넣습니다. 이 보험은 몇 억짜리를 보상합니다. 의료보험 10만원이면 몇 억원을 쉽게 보장해 줍니다. 질문자께서는 이 번에 잃은 것이 평소 자기에게 얼마 정도의 가치로 알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여성들은 만나 보고 괜찮으면 함께 하루밤을 지내고, 다음 날 별 것 없으면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의 평생을 걸 정도로 자기의 가치를 높이 보는 사람은 상대가 10년을 따라 다니며 온갖 약속을 다 해도 상대의 인격과 경제력과 건강까지를 면밀히 들여다 본 후에 자기를 맡깁니다.

질문자를 제외하고, 오늘 우리가 아는 우리 주변, 심지어 신앙에 전념하는 교인들, 그 중에서 이 곳과 관련 된 교인들은 교계에서도 굉장이 신앙을 철저히 지킨다는 쪽이고 조선 시대가 생각 날 만큼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이 곳의 여반 교인들도 교회 오는 모습을 보면 교회 오는 길에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저렇게 입고, 저런 시간에 저런 골목을 저렇게 허물 없이 가볍게 다닐까... 저 분은 이 도시 수십 만의 남자가 전부 사슴인 줄 알까? 자기가 사슴이라고 생각하면 이 도시의 늑대 호랑이 뱀 악어들이 사슴으로 바뀔까? 오늘의 여성이 오늘의 남성들에게 여성을 그런 눈으로 그런 식으로 상대하면 안 된다 하면 오늘의 남성들이 자신들을 모두 바꾸게 될까? 그 것이 가능할까? 이 나라의 좌파 민주주의와 인권과 여성을 보호하자는 분들의 공통점은 그렇게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반대입니다.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최대한 지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키려 해도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을 욕할지 고민을 해야 하겠으나 긴장도 조심도 하지 않고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하나님부터 원망하고 나서는 것은 우선 일이 되지 않고, 피해를 더욱 악화 시킨다고 봅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과거 전기가 없을 때는 귀신이 무서워 밤 길을 가지 못했지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았습니다. 불 꺼진 시골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안심이 되었고 사람이 없으면 귀신이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불 꺼진 길이라고 귀신을 겁 낼 사람은 없습니다. 그 대신 밝은 조명의 빌딩 안에서도 사각 지대에서 사람을 만나면 이제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현재 여성의 피해는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는 사람조차 더 무서운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이 된 원인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천하의 여성들이 결혼을 30대 이후로 미룬 상태에서 초등학교부터 과거 성인처럼 꾸미고 다닙니다. 너무 잘 먹어서 이미 남자에게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10대 후반에 결혼하던 이 나라를 온 사회가 30대 이전에 결혼은 불가능할 만큼 만들었으니 정상적으로 건강한 남자라면 10대부터 30대까지 20여년을 굶주린 늑대요 이리요 호랑이요 맹수가 되어 겉으로는 표시를 내지 않으나 속으로는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30만 지방의 한 도시를 기준으로 10만의 맹수가 득실 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문 밖에 나갈 때 경호원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서울 지하철의 그 바쁜 시간에 출근 통학이라는 하나의 목적  때문에 한껏 차려 입은 여성들이 빼곡하게 칸칸을 메웁니다. 이런 환경을 자진해서 들어 간 상황에 어느 남자 어느 여자가 자기의 여성과 남성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불 구덩이에 뛰어 들면서 시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근을 말든지 일찍 출발하여 자가용으로 가든지 출근 거리 근처에 살며 걸어 가든지, 기본적으로 모든 상황을 면밀히 생각하지 않고 주거는 가장 좋은 곳, 출근도 가장 좋은 곳, 교통은 가장 편한 것. 이렇게 조합을 시키니 그 과정에 여성과 닿기 싫은 남성은 여성을 피할 길이 없고, 남성과 닿고 싶지 않은 여성 역시 피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이런 지하철에서 누가 스친다면 그 사람을 욕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 보면 신앙이고 그 사람부터 욕을 시작하면 비신앙입니다. 그 말은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귀신이란, 죄를 짓게 한다는 뜻일 뿐입니다.

오늘 천하의 여성들이 10 ~ 20년 결혼을 미루는 바람에 천하의 남성은 10 ~ 20년을 맹수로 살아 갑니다. 이런 맹수의 소굴 속에 토끼 한 마리 사슴 한 마리가 뒷 다리를 물렸든 꼬리를 다쳤든... 다치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다친 것이 이상한 상황이 아닌 비정상적인 시대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질문자에게 전혀 해당 되지 않는다 해도 이 곳을 찾는 모든 남녀 우리 교인들에게 모두가 자신과 주변을 근본적으로 돌아 보시자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향후 피해를 줄일 수 있겠는가? 이런 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백영희 신앙노선입니다. 참으로 굉장했던 시대적 인물이었습니다. 그 분 교회에 빽빽하게 교인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 분은 설교 때마다 각자 가방을 옆구리에 단단히 차고 기도하고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 없는 이들은 하늘을 가르치는 예배당의 설교 시간에 목사가 얼마나 돈에 미쳤으면 교인들의 연보돈에 문제 생길까 싶어 교회 나온 교인을 믿지 못하고 저럴까 라는 불평도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 와서 자기 돈 도둑 맞은 손해 보다 예배당을 노리고 돈을 훔치러 온 도적ㄴ에게 교회 오면 돈 훔치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든 죄가 더 크다'고 했었습니다. 서부교회는 연보궤가 컸습니다. 시내 도적들이 연보궤 안에 작은 아이들을 몰래 숨어 들게 하고 통째로 연보를 훔쳐 갔습니다. 주로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내들에게 연보궤 앞에 서게 했고 기도 시간에 눈을 뜨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교회의 돈을 지켰을까요? 예. 교회 연보 돈을 지켜 냈습니다. 교회 돈만 지켰습니까? 도적이 교회를 상대로 도적하는 상상못할 죄를 막기 위해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들켜도 13세까지 처벌을 받지 않으니 도적의 두목이 아이들을 시켰고, 아이들은 잡히면 서럽게 서럽게 울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때마다 주변 다른 교회들은 손양원이 아들 둘 죽인 원수를 사랑한 이야기를 기억하며 용서해 줬습니다. 서부교회는 직원들이 그런 아이들을 잡으면 죽을 만큼 패 버렸습니다. 아동 폭행입니까? 예. 아동 폭행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해도 됩니까? 질문자가 처음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용서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돈 몇 푼을 훔친 죄를 용서하면 이 아이들은 바늘 도적에서 소 도적이 되고 나중에는 살인마로 자라 갑니다. 그래서 교회 직원들이 자기가 폭행죄로 경찰에 갈지라도 이 아이들이 다시는 교회에 도적질을 하러 오지 못하도록 현장에서 패버렸습니다. 이런 교회를 1989년까지 서부교회라고 했습니다. 그 서부교회가 오늘은 그 때 서부교회가 아닙니다. 이런 교단을 총공회라고 합니다. 이 곳을 '연구소'라 이름 붙인 것은

때리면 늘 용서가 되는가?
어떤 죄도 무마 시키면 용서가 되는가?
손양원의 용서는 살인자에게 또 살인을 하라는 것인가, 이제는 자기가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인가?
이 곳은 성경과 신앙과 교회의 역사와 모든 사회 현실을 들여다 보면서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죄가 있는지, 믿는 사람이 왜 억울한 일을 당하는지, 억울할 때는 하나님을 원망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없다고 해야 하는지, 이런 점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론이 아니라 자기가 당해도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곳입니다. 그런 백영희 목사님을 소개하다 이 곳의 주력 연구원은 전과 여러 범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과가 더해질 때마다 이 곳에서 전과자가 되어 감사하다는 글을 적고, 더더욱 백영희의 신앙 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목사로서 설교를 훔쳤다는 범죄는 가장 극단적인 죄가 됩니다.

앞에 드린 몇 가지 자료는 신앙의 근본을 돌아 보며 다시 질문자의 상황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이 번 글은 이제 처음 주신 질문을 두고 이 노선이 그 어떤 피해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늘 해결해 온 치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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