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중생과 마음에 자각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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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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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06:42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에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의 영(Spirit)이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살아납니다.
위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의 영(Spirit)이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살아납니다.
위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 주장에 대해 제 생각을 나눕니다.
사람이 거듭난다고 할 때는 영과 혼(마음) 중에서 저는 혼이 아니고 영이라 생각합니다. 표현상은 중생 즉 거듭난다고 할 때는 영이 거듭나는 것이지 혼이 거듭난다고 하지는 않는다 봅니다. 죄로 죽은 영을 살리는데 마음은 관여할 수가 없고, 죽어 있던 영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살리는 역사를 중생이라 생각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정녕 죽으리라 했던 것은 사람의 요소 중에 영이라 보고 선악과를 먹은 그 즉시로 영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곧바로 죽었고 서서히 900년 살다 죽은 것은 사람의 혼과 몸이듯이, 살아 날 때도 그 순서가 영이 먼저 살아나야 마음에 주님을 구세주로 인지하는 자각 활동이 가능하다 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할 때에 물과 성령은 전적 신적 요소이지 인적 요소는 개입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때 마음은 자각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시간차는 있겠지만 마음에 주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 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 전에 이미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영접기도를 아직 한번도 안했다고 해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다 하더라도 저는 영이 거듭난 신자가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도 사람을 영과 혼과 마음으로 봅니다. 죽어 있는 영을 살리는 주체는 내가 아니고 주님이기에 내가 무엇을 한다고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죽은 영을 살렸기 때문에 그 이후에 마음에 주님을 영접해야 겠다는 마음의 결단이나 결심이 나온다 생각합니다. 영접기도의 결과로 죽은 영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죽은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그 결과로 주님을 마음에 믿어지고 영접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구과제로 두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거듭난다고 할 때는 영과 혼(마음) 중에서 저는 혼이 아니고 영이라 생각합니다. 표현상은 중생 즉 거듭난다고 할 때는 영이 거듭나는 것이지 혼이 거듭난다고 하지는 않는다 봅니다. 죄로 죽은 영을 살리는데 마음은 관여할 수가 없고, 죽어 있던 영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살리는 역사를 중생이라 생각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정녕 죽으리라 했던 것은 사람의 요소 중에 영이라 보고 선악과를 먹은 그 즉시로 영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곧바로 죽었고 서서히 900년 살다 죽은 것은 사람의 혼과 몸이듯이, 살아 날 때도 그 순서가 영이 먼저 살아나야 마음에 주님을 구세주로 인지하는 자각 활동이 가능하다 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할 때에 물과 성령은 전적 신적 요소이지 인적 요소는 개입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때 마음은 자각하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시간차는 있겠지만 마음에 주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 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 전에 이미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났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영접기도를 아직 한번도 안했다고 해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다 하더라도 저는 영이 거듭난 신자가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도 사람을 영과 혼과 마음으로 봅니다. 죽어 있는 영을 살리는 주체는 내가 아니고 주님이기에 내가 무엇을 한다고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죽은 영을 살렸기 때문에 그 이후에 마음에 주님을 영접해야 겠다는 마음의 결단이나 결심이 나온다 생각합니다. 영접기도의 결과로 죽은 영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죽은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그 결과로 주님을 마음에 믿어지고 영접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구과제로 두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성구를 중심으로 살펴 봅니다.
요3:6-8
0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0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0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로도 그 향방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 즉 중생은 본인도 타인도 알지 못하게 거듭난다 생각합니다. 죽어 있는 영에 생명 스위치를 눌러 ON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어 있던 영의 살아남은 전적 하나님이 살리심으로 생명이 탄생했으니 이후 전도를 통해 조금 자라 마음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줬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는 말씀처럼 죽어 있는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영역이고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후 우리의 전도는 마음이 자라도록 마음을 깨우는 정도라 생각합니다. 저번에도 언급한 예 같은데 똑같다 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인간의 탄생을 두고 본인은 태어난 날의 상황을 마음에 기억하지 못하고 2살 정도는 되어야 엄마 아빠 부르는 것처럼 영접기도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수 세월 전에 영이 살아나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는 생명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고 단지 마음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영접기도를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시간 지나면 중생된 자는 반드시 주님을 주님이라 부를 테니까요. 물론 본인 믿음을 위해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자각케 하는 훈련 과정으로 엄마 해 봐 정도로 시켜볼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처럼 강조하는 편은 아닙니다. 가끔 주님이 널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믿어 지느냐 물어 봄으로 스스로 확정하도록 돕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요4:36-38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내가 전도할 때 곧바로 주님을 영접했다면 그 전에 수많은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처음 듣고 믿는 사람도 없다 할 수는 없지만 대개 전도 간증을 들어 보면 여러 사람을 통해 여러번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가 많았고 나는 단지 열매를 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수고도 단지 심고 물 주는 정도이지 생명의 실제인 죽어 있는 영을 살릴 수는 없다 죽은 영을 살리는 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 그래서 영의 거듭남은 전적 하나님이 하신 은혜다.
전도의 미련함으로 구원한 것은 영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고전14장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에서처럼 영으로 기도할 때 마음은 느끼지 못하고 알아 듣지 못하여 열매를 못 맺는 것처럼 말로 전하는 전도는 순전 마음을 구원하는 역사로 보고 영의 구원 거듭남은 내 말과 전도와 별개로 하나님의 단독 역사이다. 영이 기도할 때 나의 마음은 못 알아 듣고 느끼지 못하니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의 영이 기도할 때 나의 마음은 무슨 간구를 하는지 모른다. 같은 이치로 영이 중생할 때 마음은 알지 못한다. 전도 전에 이미 그 자의 영은 중생되었다. 그래야 마음이 믿어지는 것이다. 영이 중생하면 성령은 중생된 영과 함께 내주하게 되고 때가 되면 영보다 둔한 마음이 자라 주님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영이 살아나고 마음에 믿어지는 역사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영이 살아나는 중생의 역사와 마음에 믿어지는 영접의 역사 사이에는 분명한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본다. 개인마다 시간차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영이 살아나고 그 이후 일정 세월이 흐른 다음 마음에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는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죽은 영을 살려 놓으시고 그 이후 다른 사람이 심고 물 줘서 단단한 마음의 껍질이 여러번 깨어진 상태에서 내가 최종 전도하여 마음에 문을 열게끔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고 전에 주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려 놓으신 중생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
결론적으로 전도할 때 말씀이 역사했다 할지라도 전도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깨우는 수고 정도이다. 마음에 믿어진다는 것은 그 전에 이미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확정이 아니라 평소 생각을 글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요3:6-8
0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0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0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로도 그 향방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 즉 중생은 본인도 타인도 알지 못하게 거듭난다 생각합니다. 죽어 있는 영에 생명 스위치를 눌러 ON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어 있던 영의 살아남은 전적 하나님이 살리심으로 생명이 탄생했으니 이후 전도를 통해 조금 자라 마음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줬지만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는 말씀처럼 죽어 있는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영역이고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후 우리의 전도는 마음이 자라도록 마음을 깨우는 정도라 생각합니다. 저번에도 언급한 예 같은데 똑같다 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인간의 탄생을 두고 본인은 태어난 날의 상황을 마음에 기억하지 못하고 2살 정도는 되어야 엄마 아빠 부르는 것처럼 영접기도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수 세월 전에 영이 살아나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는 생명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고 단지 마음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영접기도를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지는 않습니다. 시간 지나면 중생된 자는 반드시 주님을 주님이라 부를 테니까요. 물론 본인 믿음을 위해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자각케 하는 훈련 과정으로 엄마 해 봐 정도로 시켜볼 수는 있겠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처럼 강조하는 편은 아닙니다. 가끔 주님이 널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믿어 지느냐 물어 봄으로 스스로 확정하도록 돕는 정도에서 그칩니다.
요4:36-38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내가 전도할 때 곧바로 주님을 영접했다면 그 전에 수많은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처음 듣고 믿는 사람도 없다 할 수는 없지만 대개 전도 간증을 들어 보면 여러 사람을 통해 여러번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가 많았고 나는 단지 열매를 딴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수고도 단지 심고 물 주는 정도이지 생명의 실제인 죽어 있는 영을 살릴 수는 없다 죽은 영을 살리는 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 그래서 영의 거듭남은 전적 하나님이 하신 은혜다.
전도의 미련함으로 구원한 것은 영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고전14장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에서처럼 영으로 기도할 때 마음은 느끼지 못하고 알아 듣지 못하여 열매를 못 맺는 것처럼 말로 전하는 전도는 순전 마음을 구원하는 역사로 보고 영의 구원 거듭남은 내 말과 전도와 별개로 하나님의 단독 역사이다. 영이 기도할 때 나의 마음은 못 알아 듣고 느끼지 못하니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의 영이 기도할 때 나의 마음은 무슨 간구를 하는지 모른다. 같은 이치로 영이 중생할 때 마음은 알지 못한다. 전도 전에 이미 그 자의 영은 중생되었다. 그래야 마음이 믿어지는 것이다. 영이 중생하면 성령은 중생된 영과 함께 내주하게 되고 때가 되면 영보다 둔한 마음이 자라 주님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영이 살아나고 마음에 믿어지는 역사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영이 살아나는 중생의 역사와 마음에 믿어지는 영접의 역사 사이에는 분명한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본다. 개인마다 시간차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영이 살아나고 그 이후 일정 세월이 흐른 다음 마음에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는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죽은 영을 살려 놓으시고 그 이후 다른 사람이 심고 물 줘서 단단한 마음의 껍질이 여러번 깨어진 상태에서 내가 최종 전도하여 마음에 문을 열게끔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고 전에 주님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려 놓으신 중생의 역사가 먼저 있었다.
결론적으로 전도할 때 말씀이 역사했다 할지라도 전도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깨우는 수고 정도이다. 마음에 믿어진다는 것은 그 전에 이미 죽어 있던 영이 살아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확정이 아니라 평소 생각을 글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자연계시만으로는 영이 거듭날 수 없다 생각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했으니 천지를 지을 때 말씀이 역사하여 창조하신 것처럼 전도할 때 전도자의 말 속에 말씀이 역사하여 죽은 영을 살리기도 하고 마음도 깨우는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한다 할 때 마음만을 구원한다 단정할 수는 없다. 전도할 때 전도자의 말 속에 말씀이 역사하여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으니 전도할 때 마음을 깨울 수도 있지만 전도할 때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의 전도로 영을 살리든 또 한 사람의 전도로 마음을 깨우든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다.이는 전도자의 말이 살린 것이 아니라 전도자를 통해 전해진 말씀이 성령과 함께 살린 것이다. 그런고로 전도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운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다. 전도로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고 마음을 깨울 수도 있다. 사람의 전도가 살린 것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죽은 영을 살린 것이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신다에서 그 구원은 마음만의 구원이 아니라 영과 마음의 구원을 다 포함한다.
전도 없이 중생은 가능하다 하지만 전도는 없어도 말씀의 접촉 없이 말씀의 역사 없이 중생이 가능한가? 여기에서 전도란 말씀의 접촉을 말한다. 사람이 전하지 않아도 말씀의 접촉은 가능하다고 본다면 사람이 말로 전했든 성경을 스스로 봤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 없이 중생은 못한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자연 만물에 펼쳐져 있지만 성경 말씀이라는 불씨가 없다면 중생의 생명 역사는 없다고 본다. 전도 없이 또는 말씀의 접촉 없이 자연 계시만으로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부부 관계 없이 잉태가 되는 법은 없듯이 전도라는 관계 방편을 통해 주님이 말씀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보편적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이나 삶으로 전하는 전도가 없거나 사람이 전하는 전도가 없었거나 또는 말씀의 접촉이 전혀 없었는데도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는 법이 있는가? 전도가 없어도 말씀의 접촉이 있었다면 중생은 되고 전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말씀의 접촉이 없었다면 중생은 불가능하다. 전도의 유무에 상관 없이 말씀의 접촉 유무에 따라 영의 중생은 결정된다. 이런 말씀의 접촉이라는 자연법을 거스려 중생되는 특수한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도 수정 단계인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엘리사벳이 전했을 수도 있고 회당에 가서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 하는 자체가 태아에게는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것이니 단정은 못하겠습니다.
전도 없이 말씀 접촉은 가능하다.
그러나 말씀 접촉 없이 중생이 가능한가?
말씀과 성령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이 중생 역사하는 다른 길도 있는가?
자연계시만으로는 영이 거듭날 수 없다 생각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했으니 천지를 지을 때 말씀이 역사하여 창조하신 것처럼 전도할 때 전도자의 말 속에 말씀이 역사하여 죽은 영을 살리기도 하고 마음도 깨우는 것이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한다 할 때 마음만을 구원한다 단정할 수는 없다. 전도할 때 전도자의 말 속에 말씀이 역사하여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으니 전도할 때 마음을 깨울 수도 있지만 전도할 때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사람의 전도로 영을 살리든 또 한 사람의 전도로 마음을 깨우든 이는 순전히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다.이는 전도자의 말이 살린 것이 아니라 전도자를 통해 전해진 말씀이 성령과 함께 살린 것이다. 그런고로 전도는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운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다. 전도로 죽은 영을 살릴 수도 있고 마음을 깨울 수도 있다. 사람의 전도가 살린 것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죽은 영을 살린 것이다.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신다에서 그 구원은 마음만의 구원이 아니라 영과 마음의 구원을 다 포함한다.
전도 없이 중생은 가능하다 하지만 전도는 없어도 말씀의 접촉 없이 말씀의 역사 없이 중생이 가능한가? 여기에서 전도란 말씀의 접촉을 말한다. 사람이 전하지 않아도 말씀의 접촉은 가능하다고 본다면 사람이 말로 전했든 성경을 스스로 봤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 없이 중생은 못한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자연 만물에 펼쳐져 있지만 성경 말씀이라는 불씨가 없다면 중생의 생명 역사는 없다고 본다. 전도 없이 또는 말씀의 접촉 없이 자연 계시만으로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는가? 부부 관계 없이 잉태가 되는 법은 없듯이 전도라는 관계 방편을 통해 주님이 말씀으로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 보편적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이나 삶으로 전하는 전도가 없거나 사람이 전하는 전도가 없었거나 또는 말씀의 접촉이 전혀 없었는데도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는 법이 있는가? 전도가 없어도 말씀의 접촉이 있었다면 중생은 되고 전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말씀의 접촉이 없었다면 중생은 불가능하다. 전도의 유무에 상관 없이 말씀의 접촉 유무에 따라 영의 중생은 결정된다. 이런 말씀의 접촉이라는 자연법을 거스려 중생되는 특수한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도 수정 단계인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엘리사벳이 전했을 수도 있고 회당에 가서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 하는 자체가 태아에게는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것이니 단정은 못하겠습니다.
전도 없이 말씀 접촉은 가능하다.
그러나 말씀 접촉 없이 중생이 가능한가?
말씀과 성령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이 중생 역사하는 다른 길도 있는가?
중생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요 독권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어도 중생은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성경이 없었던 아담으로부터 모세 때까지 하나님은 자연 계시를 통해 택자를 중생시키셨고 택자는 가르쳐 주는 글이나 사람이 없었음에도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별계시인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그러했고, 성경 기록 이후로는 주로 진리와 영감으로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중생 역시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으로 인하여 죽은 영을 살려내는 중생의 역사를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통일신리시대때도, 택자가 있어서 중생이 되었을 수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