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벳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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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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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21:59
“보아스의 아들로 족보에 오른 오벳”
◼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룻 4:10)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 4:16)
룻기 4:10을 보면 룻과 보아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은 말론의 아들로 엘리멜렉의 족보에 올라가서 그 죽은 자의 기업 (말론의 이름으로)을 잇게 되는 것이라고 읽혀지고 그렇게 짐작됩니다. 그리고 룻기 4:16을 보면 실제 나오미가 오벳을 양육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오벳이 실제로든 족보로든 말론의 아들로 인정되어 그 이름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지요?
◼ 족보의 기록은?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4:18, 21)
“헤스론의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나손은 살마를 낳았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대상2:9-12)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1:5)
그런데 룻기4:18-22, 역대상 2:9-12, 마태복음 1:5에는 오벳이 베레스의 자손인 보아스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오벳을 말론의 아들이 아닌 보아스의 아들로 인정했다는 것인지요?
◼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룻 4:10)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 4:16)
룻기 4:10을 보면 룻과 보아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은 말론의 아들로 엘리멜렉의 족보에 올라가서 그 죽은 자의 기업 (말론의 이름으로)을 잇게 되는 것이라고 읽혀지고 그렇게 짐작됩니다. 그리고 룻기 4:16을 보면 실제 나오미가 오벳을 양육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오벳이 실제로든 족보로든 말론의 아들로 인정되어 그 이름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지요?
◼ 족보의 기록은?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4:18, 21)
“헤스론의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나손은 살마를 낳았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대상2:9-12)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1:5)
그런데 룻기4:18-22, 역대상 2:9-12, 마태복음 1:5에는 오벳이 베레스의 자손인 보아스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오벳을 말론의 아들이 아닌 보아스의 아들로 인정했다는 것인지요?
■ 외부 혈통과 구원 계통
육체 이스라엘의 외부 혈통은 '엘리멜렉 > 말론 > 오벳'으로 이어 가고
신령한 이스라엘의 구원 계통은 '보아스 > 오벳'으로 이어 갑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아주 다릅니다. 육체의 혈통으로 써 내려 간 기록과 신령한 구원의 계통으로 써 내려 간 기록의 차이입니다. 가다가 영육이 겹친 경우도 있고 가다가 나뉘다가 다시 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구약은 율법으로 육체의 이스라엘을 외형으로 인도하지만, 곳곳에 신령한 신약의 복음으로 내면을 붙들고 나온 실제 역사가 곳곳에 있습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도 율법에는 확실히 잘못이지만 주님이 오셔서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은 승천 후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지만 실제 사도는 바울이 됩니다. 구약과 신약이 겹치는 시기였습니다. 히5, 7장의 멜기세덱의 경우는 아론으로 내려오는 제사장의 엄한 혈통과 아주 상관이 없었습니다.
■ 성경의 해석과 환경
▸자연 환경
밥을 굶어 본 사람이라야 떡이 귀한 것을 알고, 떡을 만드는 순서를 알아야 누워서 떡 먹는 횡재를 압니다. 요즘 기준으로 성경을 읽으면 나이 많은 보아스에게 젊은 여자가 생긴다면 좋아 보입니다.
▸구원 계통
창38장에서 구원의 계통으로 지정 된 유다 지파의 구원 계통 출발 모습이 잠깐 나옵니다. 유다가 시작이고 엘이 2대가 되어야 하나 하나님은 엘이 악하다 하여 죽입니다. 이후에도 악한 이들은 늘 있지만 유다를 잇는 첫 순간에 악함 때문에 엘을 죽임으로 구원 계통에는 자기중심의 '악'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표시한 것입니다. 오난이 엘을 대신하여 구원의 계통을 이어 주기 위해 자기 것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니 회피했습니다. 세상에 내버릴망정 남 주지는 못하겠다는 것인데 이 '남'이 바로 형입니다. 형제 사이에도 자기중심 때문에 헌신이란 없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저런 재미로 생각하기 쉬우나 구약은 죄악이 오늘에 비해 발달하지 않았고 재미보다는 내 것과 네 것이 먼저였으며 내 새끼를 낳아 기르지 남을 위해 남의 새끼가 될 것을 위해 수고할 리는 없었습니다. 자연의 기초 기본 본능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모든 종교와 도덕이 고대로 가면 언행은 거치나 순수한 면이 나옵니다. 오늘은 언행은 지성적이며 부드러우나 그 속은 인간은 커녕 동물의 세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성경의 기록과 자연의 상식을 가지고 보아스를 살펴본다면
죄악의 발달로 인해 모든 것을 말초 신경의 끝으로 향하게 하는 오늘의 우리는 인간답기는커녕 자연답지도 못하여 맹수만도 못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우리의 사고방식을 초월하여 보아스 시기의 인간이 되어 보아스를 살펴본다면,
보아스보다 가까운 엘리멜렉의 근족이 기업을 무르려 나섰다가 보아스가 형제의 것 즉 남의 것이 된다는 조건을 명확하게 짚자 바로 포기를 합니다. 일반 인간의 본능으로는 자기를 위해 살지 남을 위해 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록 때문에 보아스가 나선 것은 사욕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한 헌신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헌신도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모하여 고난의 길을 걷는 룻을 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인도를 본 것입니다.
엘리멜렉 가족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모압으로 갔고, 돌아 온 후 나오미가 주어먹고 사는 모습을 볼 때 이들은 아직 몸은 팔지 않았으나 기업은 모두 팔았고 희년은 멀었습니다. 보아스는 레25:49에 따라 대신 해결했습니다. 보아스의 돈과 보아스의 남성은 보아스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룻의 아들 오벳이 엘리멜렉과 말론을 잇는 일에 나오미 집의 기업 전부를 되찾아 넘겨주고 자기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식을 취하지 말라 한 레25:36절 말씀에 따라 오로지 형제의 신앙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조건 없이 줬으니 신약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내가 다른 사람을 '대속의 은혜'로 살게 한 것입니다.
육체 이스라엘의 외부 혈통은 '엘리멜렉 > 말론 > 오벳'으로 이어 가고
신령한 이스라엘의 구원 계통은 '보아스 > 오벳'으로 이어 갑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아주 다릅니다. 육체의 혈통으로 써 내려 간 기록과 신령한 구원의 계통으로 써 내려 간 기록의 차이입니다. 가다가 영육이 겹친 경우도 있고 가다가 나뉘다가 다시 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구약은 율법으로 육체의 이스라엘을 외형으로 인도하지만, 곳곳에 신령한 신약의 복음으로 내면을 붙들고 나온 실제 역사가 곳곳에 있습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도 율법에는 확실히 잘못이지만 주님이 오셔서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은 승천 후에 맛디아를 사도로 선출하지만 실제 사도는 바울이 됩니다. 구약과 신약이 겹치는 시기였습니다. 히5, 7장의 멜기세덱의 경우는 아론으로 내려오는 제사장의 엄한 혈통과 아주 상관이 없었습니다.
■ 성경의 해석과 환경
▸자연 환경
밥을 굶어 본 사람이라야 떡이 귀한 것을 알고, 떡을 만드는 순서를 알아야 누워서 떡 먹는 횡재를 압니다. 요즘 기준으로 성경을 읽으면 나이 많은 보아스에게 젊은 여자가 생긴다면 좋아 보입니다.
▸구원 계통
창38장에서 구원의 계통으로 지정 된 유다 지파의 구원 계통 출발 모습이 잠깐 나옵니다. 유다가 시작이고 엘이 2대가 되어야 하나 하나님은 엘이 악하다 하여 죽입니다. 이후에도 악한 이들은 늘 있지만 유다를 잇는 첫 순간에 악함 때문에 엘을 죽임으로 구원 계통에는 자기중심의 '악'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표시한 것입니다. 오난이 엘을 대신하여 구원의 계통을 이어 주기 위해 자기 것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니 회피했습니다. 세상에 내버릴망정 남 주지는 못하겠다는 것인데 이 '남'이 바로 형입니다. 형제 사이에도 자기중심 때문에 헌신이란 없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저런 재미로 생각하기 쉬우나 구약은 죄악이 오늘에 비해 발달하지 않았고 재미보다는 내 것과 네 것이 먼저였으며 내 새끼를 낳아 기르지 남을 위해 남의 새끼가 될 것을 위해 수고할 리는 없었습니다. 자연의 기초 기본 본능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모든 종교와 도덕이 고대로 가면 언행은 거치나 순수한 면이 나옵니다. 오늘은 언행은 지성적이며 부드러우나 그 속은 인간은 커녕 동물의 세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성경의 기록과 자연의 상식을 가지고 보아스를 살펴본다면
죄악의 발달로 인해 모든 것을 말초 신경의 끝으로 향하게 하는 오늘의 우리는 인간답기는커녕 자연답지도 못하여 맹수만도 못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우리의 사고방식을 초월하여 보아스 시기의 인간이 되어 보아스를 살펴본다면,
보아스보다 가까운 엘리멜렉의 근족이 기업을 무르려 나섰다가 보아스가 형제의 것 즉 남의 것이 된다는 조건을 명확하게 짚자 바로 포기를 합니다. 일반 인간의 본능으로는 자기를 위해 살지 남을 위해 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록 때문에 보아스가 나선 것은 사욕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한 헌신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 헌신도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모하여 고난의 길을 걷는 룻을 보며 하나님의 '구원'의 인도를 본 것입니다.
엘리멜렉 가족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모압으로 갔고, 돌아 온 후 나오미가 주어먹고 사는 모습을 볼 때 이들은 아직 몸은 팔지 않았으나 기업은 모두 팔았고 희년은 멀었습니다. 보아스는 레25:49에 따라 대신 해결했습니다. 보아스의 돈과 보아스의 남성은 보아스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룻의 아들 오벳이 엘리멜렉과 말론을 잇는 일에 나오미 집의 기업 전부를 되찾아 넘겨주고 자기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식을 취하지 말라 한 레25:36절 말씀에 따라 오로지 형제의 신앙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조건 없이 줬으니 신약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내가 다른 사람을 '대속의 은혜'로 살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