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장의 탈란트 비유가 기본구원이라는 설교록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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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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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0 05:31
87.8.16. 주일 오후 설교 중에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것을 땅에다 파서 묻고, 장사하지 않하고 땅에다 파서 묻었는 고로 주인이 악하고 게을한 종아 하면서 있는 것도 빼앗고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았다 이렇게 여게 비유했습니다. 그 달란트를 빼앗았다 하는 여기에서 그것은 이 세 가지(주, 대속 영감 진리)를 빼앗겼으니까 그는 불택자다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택자라면 다 이 세 가지 은혜 생활을 다소라도 하지 안하는 자는 없다, 이 구속을 받았다 해도 이 은혜 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자는 그 자는 불택자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불택자라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내용이 맞는 것인지요? 아니면 백목사님의 실수인지요?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것을 땅에다 파서 묻고, 장사하지 않하고 땅에다 파서 묻었는 고로 주인이 악하고 게을한 종아 하면서 있는 것도 빼앗고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았다 이렇게 여게 비유했습니다. 그 달란트를 빼앗았다 하는 여기에서 그것은 이 세 가지(주, 대속 영감 진리)를 빼앗겼으니까 그는 불택자다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택자라면 다 이 세 가지 은혜 생활을 다소라도 하지 안하는 자는 없다, 이 구속을 받았다 해도 이 은혜 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자는 그 자는 불택자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불택자라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내용이 맞는 것인지요? 아니면 백목사님의 실수인지요?
택불태은 기본구원 문제입니다.
대속은 모든 사람에게 줬으니, 받아가지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하고 평생으로 두고 보면 불택자로 보는 것은 타당합니다. (택, 불택의 의미와는 좀 맞지 않습니다)
다만, 대속을 빼앗아 택자에게 준다는 말이 애매합니다.
마25:28-29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 택자가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할 수 있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대속은 모든 사람에게 줬으니, 받아가지지 않은 사람은 믿지 못하고 평생으로 두고 보면 불택자로 보는 것은 타당합니다. (택, 불택의 의미와는 좀 맞지 않습니다)
다만, 대속을 빼앗아 택자에게 준다는 말이 애매합니다.
마25:28-29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한 택자가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할 수 있다는 면을 생각한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마25장은 건설구원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달란트를 빼앗긴 자는 고전3:15의 불택자라기 보다는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는 말씀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설교록의 말씀 중
'택자라면 이 세 가지 은혜 생활을 다소라도 안하는 자는 없다'는 말씀 또한 맞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임종 직전에 믿더라도
'주님의 대속, 영감, 진리에 합하는 생활'을 극히 잠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중생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성화의 발버둥이 나옵니다.
살아있음은 심신의 어떤 적은 부분에라도 이룰 구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 달란트를 빼앗긴 종은
3가지 은혜 생활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택자라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기 때문에
불택자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설교록의 위 말씀을 연구과제로 두고 더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 답변이 애매한 듯하여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과거 문답방에서 참고가 될 만한 답변을 올려 드립니다.
=============================
1.기본적으로 받은 구원은 변동 없습니다. 이루어가야 할 건설구원의 '분량' 문제입니다.
믿는 사람은 무조건 천국은 기본적으로 가게 되어 있으니 이 점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믿는 사람이면 차이가 없고 또 그가 평생 살아가면서 어떤 실수를 하거나 어떤 깊은 죄에 빠질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되는 그 순간 기본적으로 받는 것은 천국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니 이 점에서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성화의 정도, 몸과 마음의 깨끗의 정도는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때'를 주시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힘써 깨끗게 해 나가야 할 자기 심신의 깨끗과 그 분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2.평생을 타락한 상태로 사는 교인들은
믿다가 타락하고 그후 돌이키지 않고 죽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그 남은 때를 '준비할 기회'를 버린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 한 달란트를 허비한 만큼 자기 심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 부분을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는 평생 죄 가운데 살다 가는 것 같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과 그 사람만 아는 '이룰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렇게 살아서 안된다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아질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또 그에게 남모르게 나아질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인이 이 땅 위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뜻은 아무리 적을지라도 무언가 아직 좀 더 나아질 부분이 있고 좀더 깨끗해질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지 않은 것입니다. 교인이란, 잘 믿든지 타락한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자기에게는 이루어가야 할 부분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들의 구원에 도움되는 면이 있습니다. 단순한 이용물로 사용되는 것은 불택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정신 장애자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도,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면에서는 전혀 심신이 말씀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 보이지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외부로 표현하지 않고 또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그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
<행위로 판가름 나는 구원은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
성경 내용 중에서
안 믿는 사람에게 이 성경 말씀을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가르친 내용은 아주 드물고
믿는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가르친 내용이 성경 내용의 거의 전부입니다.
물론
안 믿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도 따지고 보면 믿는 우리가 전도할 때 사용할 말씀이고
믿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기본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구원 받은 사람과 멸망 받은 사람의 차이가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가름 나기 때문에
이는 믿는 사람의 건설구원에 관련 된 말씀입니다.
다만
성경은 모든 면에 진리이므로 지옥 갈 불택자에게
'너희가 기름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지옥이다' - 열처녀 비유
'너희가 교회를 갔더라면 좋은데 가지 않았으니 지옥이다' - 달란트 비유
'너희가 주님을 알아봤더라면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 양과 염소 비유
주님이 불택자들에게나 또는 불신자 시절의 행위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는 면도
마태복음 25장에서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본전 한 달란트만 그대로 가지고 주인에게 왔다가 버림을 받았고,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각각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남겨서 각각 네 달란트와 열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 앞에 와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각각 그렇게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놀고 본전만 그대로 가지고 주인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배나 가지고 왔을지라도 총 둘과 넷뿐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본전 그대로만 가지고 와도 그들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평가가 주님 앞에 가지고 온 총 달란트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증가량을 보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왔다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늘어 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고 나기를 0점짜리 인간이고 한 사람은 타고 나기를 90점짜리라고 볼 때, 0점짜리 인간이 80점이 되도록 발전을 했다 해도 90점으로 타고 난 도덕적인 인물은 평소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80점짜리보다는 수준이 높습니다. 도덕적으로 더 낫습니다. 이런 경우 주님은 자라 간 정도를 보시기 때문에 건설구원에 있어 90점짜리는 0점이고, 80점짜리는 엄청 난 발전 때문에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달란트를 빼앗긴 자는 고전3:15의 불택자라기 보다는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다'는 말씀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설교록의 말씀 중
'택자라면 이 세 가지 은혜 생활을 다소라도 안하는 자는 없다'는 말씀 또한 맞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임종 직전에 믿더라도
'주님의 대속, 영감, 진리에 합하는 생활'을 극히 잠깐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중생 된 사람은 필연적으로 성화의 발버둥이 나옵니다.
살아있음은 심신의 어떤 적은 부분에라도 이룰 구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한 달란트를 빼앗긴 종은
3가지 은혜 생활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택자라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기 때문에
불택자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설교록의 위 말씀을 연구과제로 두고 더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 답변이 애매한 듯하여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과거 문답방에서 참고가 될 만한 답변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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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본적으로 받은 구원은 변동 없습니다. 이루어가야 할 건설구원의 '분량' 문제입니다.
믿는 사람은 무조건 천국은 기본적으로 가게 되어 있으니 이 점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믿는 사람이면 차이가 없고 또 그가 평생 살아가면서 어떤 실수를 하거나 어떤 깊은 죄에 빠질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되는 그 순간 기본적으로 받는 것은 천국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니 이 점에서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성화의 정도, 몸과 마음의 깨끗의 정도는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때'를 주시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힘써 깨끗게 해 나가야 할 자기 심신의 깨끗과 그 분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2.평생을 타락한 상태로 사는 교인들은
믿다가 타락하고 그후 돌이키지 않고 죽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그 남은 때를 '준비할 기회'를 버린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 한 달란트를 허비한 만큼 자기 심신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 부분을 지옥에 버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는 평생 죄 가운데 살다 가는 것 같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과 그 사람만 아는 '이룰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렇게 살아서 안된다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아질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또 그에게 남모르게 나아질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인이 이 땅 위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뜻은 아무리 적을지라도 무언가 아직 좀 더 나아질 부분이 있고 좀더 깨끗해질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지 않은 것입니다. 교인이란, 잘 믿든지 타락한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자기에게는 이루어가야 할 부분도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들의 구원에 도움되는 면이 있습니다. 단순한 이용물로 사용되는 것은 불택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정신 장애자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경우도,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면에서는 전혀 심신이 말씀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 보이지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외부로 표현하지 않고 또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그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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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로 판가름 나는 구원은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
성경 내용 중에서
안 믿는 사람에게 이 성경 말씀을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가르친 내용은 아주 드물고
믿는 우리에게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가르친 내용이 성경 내용의 거의 전부입니다.
물론
안 믿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도 따지고 보면 믿는 우리가 전도할 때 사용할 말씀이고
믿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기본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구원 받은 사람과 멸망 받은 사람의 차이가 '사람의 행위'에 따라 판가름 나기 때문에
이는 믿는 사람의 건설구원에 관련 된 말씀입니다.
다만
성경은 모든 면에 진리이므로 지옥 갈 불택자에게
'너희가 기름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지옥이다' - 열처녀 비유
'너희가 교회를 갔더라면 좋은데 가지 않았으니 지옥이다' - 달란트 비유
'너희가 주님을 알아봤더라면 천국으로 갔을 것이다' - 양과 염소 비유
주님이 불택자들에게나 또는 불신자 시절의 행위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는 면도
마태복음 25장에서 짐작해 볼 수는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본전 한 달란트만 그대로 가지고 주인에게 왔다가 버림을 받았고,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각각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남겨서 각각 네 달란트와 열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 앞에 와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각각 그렇게 남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놀고 본전만 그대로 가지고 주인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배나 가지고 왔을지라도 총 둘과 넷뿐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본전 그대로만 가지고 와도 그들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평가가 주님 앞에 가지고 온 총 달란트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증가량을 보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왔다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늘어 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고 나기를 0점짜리 인간이고 한 사람은 타고 나기를 90점짜리라고 볼 때, 0점짜리 인간이 80점이 되도록 발전을 했다 해도 90점으로 타고 난 도덕적인 인물은 평소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80점짜리보다는 수준이 높습니다. 도덕적으로 더 낫습니다. 이런 경우 주님은 자라 간 정도를 보시기 때문에 건설구원에 있어 90점짜리는 0점이고, 80점짜리는 엄청 난 발전 때문에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윗글에서 인용한 부분은 설교내용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설교 원문을 참고해보면 위의 인용부분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언급하신 것이지 목사님이 그렇게 해석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왜 그렇게 볼 수 있는가?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오는 내용이 '그런데’로 시작하여 전체 설교내용의 요지가 건설구원에 관련된 충성에 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두가지 해석을 대조하므로 어느 해석이 바른해석이 되는지 설교를 듣는 청중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설교라 생각됩니다. 또한 기본구원으로 본문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공격받는 느낌이 들지 않게하여 바른해석으로 돌아설 수 있게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본구원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시는 표현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백목사님의 설교에서 달란트는 피와 진리와 영감을 비유한다고 언급하고 있기때문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택자로 보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달란트를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긴다는 의미는 건설구원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종들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으로 해석하게 되면 은혜로 얻는 구원이 아닌 행위로 얻는 구원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비교하며 묵상해 볼 성구를 덧붙입니다.
(삼하7:15) 은총을 빼앗긴 사울,
(요15:2)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해 버리시고...,
(막12:9) 포도원을 뺏긴 농부들,
(계2:5)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주님의 경고
그렇다면 결국 달란트를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긴다는 의미는 건설구원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종들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기본구원으로 해석하게 되면 은혜로 얻는 구원이 아닌 행위로 얻는 구원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비교하며 묵상해 볼 성구를 덧붙입니다.
(삼하7:15) 은총을 빼앗긴 사울,
(요15:2)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해 버리시고...,
(막12:9) 포도원을 뺏긴 농부들,
(계2:5)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주님의 경고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25:13-14)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마25:19)
▶회계의 시점으로 볼 때
타국에 간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를 합니다. 종들이 받은 소유를 갖고 이익을 남길 기회는 더 이상 없는 상황입니다.
본문의 회계의 시점은 매 현실에 오신 주님, 개인 종말로 만나는 주님, 대종말의 심판 앞에서 만나는 주님 즉 심판의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백목사님의 이어지는 설교에서 ‘작은 일’은 세상 신앙생활을 뜻하고 ‘많은 것‘은 영영한 무궁세계의 무한하고 온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같은 날 주전 설교 (87.8.16 주전)에서는 종들 모두를 믿는 자, 구속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택자의 건설구원이라 생각합니다.
▶왜 불택자라 말씀하셨을까?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나 기본구원 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시어 기본구원으로 본문을 이해하는 사람이 돌아설 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담당T님의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87.8.16 주후 전체 내용으로 “택자”의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생각되며 단정대신 불택자라 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후 말씀에는 첨부하신 것 같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마25:19)
▶회계의 시점으로 볼 때
타국에 간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를 합니다. 종들이 받은 소유를 갖고 이익을 남길 기회는 더 이상 없는 상황입니다.
본문의 회계의 시점은 매 현실에 오신 주님, 개인 종말로 만나는 주님, 대종말의 심판 앞에서 만나는 주님 즉 심판의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백목사님의 이어지는 설교에서 ‘작은 일’은 세상 신앙생활을 뜻하고 ‘많은 것‘은 영영한 무궁세계의 무한하고 온전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같은 날 주전 설교 (87.8.16 주전)에서는 종들 모두를 믿는 자, 구속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택자의 건설구원이라 생각합니다.
▶왜 불택자라 말씀하셨을까?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나 기본구원 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시어 기본구원으로 본문을 이해하는 사람이 돌아설 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담당T님의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87.8.16 주후 전체 내용으로 “택자”의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라 생각되며 단정대신 불택자라 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후 말씀에는 첨부하신 것 같습니다.
질문의 답은 아니지만 백 목사님의 마25장 달란트 비유 말씀들을 살피며 정리해 보았습니다.
■ 달란트는 빼앗길 수 있다
.“... 맡은 것도 이 달란트 한 낭중 맡긴 자와 같이 빼앗아 버렸다 말이오. 빼앗으면 뺏긴다 그거요. 제가 반사 노릇 하다가 반사 하기 싫어서 안 하니까 제딴에는 제가 뭐 안 하고 하는 것 같지마는 주님이 뺏들어 버렸어. 제가 뺏겼다 말이오.” (87.11.8 주새)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충성이라 보시는 것이고, 중단되는 것은 불충이라 보시고 하나님이 빼앗는 것이다.
■ 자본의 양은 다르나 충성의 대우는 같다.
“두 달란트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그 두 달란트로 자본을 삼아 가지고 충성한 사람이나 다섯 달란트를 자본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충성한 사람이나 같은 충성했을 때는 자본은 다르지만 대우는 꼭 같습니다.” (84.8.31 금지)
“달란트 비유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대로 가졌기 때문에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것의 차이점은 하나도 없다. 많이 가졌으나 적게 가졌으나 그 차이점은 하나도 없다.... 영원 무궁을 마련하는 데에는 조금도 차이 없다. 꼭 같다...착한 것 충성된 것 요 두 가지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87.7.19 주새)
▶받은 달란트의 양과 상관없이 그 충성의 대우는 같다.
■ 대우는 같으나 가치는 다를 수 있다.
“닷 낭중 두 낭중 둘이 있었는데 둘 중에 닷 낭중 두 낭중 있으니까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이래 놓으면, 자, 이래 이래 측으로 이래 놓으면 이래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옆으로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이래 놓으면(주: 위아래로 놓으면) 어느 것 위에 놓을꼬?..... 그래 두 낭중 받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야 닷 낭중 받았거나 자기 두 낭중 받았거나 그거 상관없이 했기 때문에 그것을(주: 두 낭중 받은자의 충성) 좀 더 대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래 생각이 돼지는데 이거 꼭은 아니오. 이건 진리에 그렇게 한 거 아니니까....... 대우는 같지마는...그저 인간 생각으로서 하나님 앞에 적게 받아도 상관하지 안하고 그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만족하고 이라는 그것이 더 주인을 더 바라보는 것이며 더 충성하는 것이며 그것이 더 순종하는 것이라 이렇게 더 가치 있다 그렇게 봐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깨달으면 자기 형편 사정에 마귀란 놈이 와서 유혹을 시키지 못합니다.‘너는 이렇게 주고 저 사람은 많이 주고’ 이래 가지고 유혹을 시키지 못할 거라.” (87.4.23 목새 말씀 중)
▶백 목사님은 적게 받은 사람의 충성의 가치를 더 귀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깨닫고 믿으면 교만, 절망, 시기심, 열등감 등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구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질문을 통해 백 목사님의 달란트 비유 말씀들을 자세히 살필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 달란트는 빼앗길 수 있다
.“... 맡은 것도 이 달란트 한 낭중 맡긴 자와 같이 빼앗아 버렸다 말이오. 빼앗으면 뺏긴다 그거요. 제가 반사 노릇 하다가 반사 하기 싫어서 안 하니까 제딴에는 제가 뭐 안 하고 하는 것 같지마는 주님이 뺏들어 버렸어. 제가 뺏겼다 말이오.” (87.11.8 주새)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충성이라 보시는 것이고, 중단되는 것은 불충이라 보시고 하나님이 빼앗는 것이다.
■ 자본의 양은 다르나 충성의 대우는 같다.
“두 달란트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그 두 달란트로 자본을 삼아 가지고 충성한 사람이나 다섯 달란트를 자본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서 충성한 사람이나 같은 충성했을 때는 자본은 다르지만 대우는 꼭 같습니다.” (84.8.31 금지)
“달란트 비유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 적게 가진 사람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대로 가졌기 때문에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진 것의 차이점은 하나도 없다. 많이 가졌으나 적게 가졌으나 그 차이점은 하나도 없다.... 영원 무궁을 마련하는 데에는 조금도 차이 없다. 꼭 같다...착한 것 충성된 것 요 두 가지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87.7.19 주새)
▶받은 달란트의 양과 상관없이 그 충성의 대우는 같다.
■ 대우는 같으나 가치는 다를 수 있다.
“닷 낭중 두 낭중 둘이 있었는데 둘 중에 닷 낭중 두 낭중 있으니까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이래 놓으면, 자, 이래 이래 측으로 이래 놓으면 이래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옆으로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이래 놓으면(주: 위아래로 놓으면) 어느 것 위에 놓을꼬?..... 그래 두 낭중 받은 사람을?... 다른 사람이야 닷 낭중 받았거나 자기 두 낭중 받았거나 그거 상관없이 했기 때문에 그것을(주: 두 낭중 받은자의 충성) 좀 더 대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래 생각이 돼지는데 이거 꼭은 아니오. 이건 진리에 그렇게 한 거 아니니까....... 대우는 같지마는...그저 인간 생각으로서 하나님 앞에 적게 받아도 상관하지 안하고 그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만족하고 이라는 그것이 더 주인을 더 바라보는 것이며 더 충성하는 것이며 그것이 더 순종하는 것이라 이렇게 더 가치 있다 그렇게 봐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깨달으면 자기 형편 사정에 마귀란 놈이 와서 유혹을 시키지 못합니다.‘너는 이렇게 주고 저 사람은 많이 주고’ 이래 가지고 유혹을 시키지 못할 거라.” (87.4.23 목새 말씀 중)
▶백 목사님은 적게 받은 사람의 충성의 가치를 더 귀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깨닫고 믿으면 교만, 절망, 시기심, 열등감 등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구원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질문을 통해 백 목사님의 달란트 비유 말씀들을 자세히 살필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1. 달란트를 받는 자격 = 택자
우리의 영의 구원은 본인의 알기전 벌써 대속이 됐고 영이 중생되었고 중생된 후 달란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달란트란 그리스도의 구속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 재료로 불신자들은 그런 걸 받지도 못합니다.
2. 달란트의 사용처 = 장사
신령한 것(대속 영감 진리)을 가지고 썩어질 것(땅의 것, 물질)으로 개조, 변화, 성화 시키는 것입니다. 곧 3가지를 통해 지극히 작은 것(이 땅위의 것, 멸망할 것)을 가지고 그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큰 것(하늘의 것, 영생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장사입니다.
3. 장사하는 방법 = 충성
방법은 충성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몸 마음 힘 뜻 시간 생명 전부)은 원래는 다 멸망받고 말 것이나 받은 은혜(3가지)를 가지고 다할 때에 받은 은혜가 성화가 되고 다하지 않으면 주관으로되어 땅에 속한 것이 되어 성화가 안됨. 다 할때에 성화가 됨.
4. 땅에 파묻는 것
땅에 파묻은 것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나 영감이나 진리를 전부 세상 생활에 파묻어 버리고 짓밟은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5. 빼앗김 = 건설 구원 x
주신 은혜를 통해 썩을 것, 멸망 받을 것을 가지고 영생의 것으로 불타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성화 즉 건설 구원을 이루어야 되는데 주신 은혜를 다 빼앗아 감으로 영생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더이상의 기회가 없음을 말합니다. 주인이 오고 이제 마음것 실력대로 받아가진 것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데 영원한 천국에서 세상에서 마련한 자본을 가지고 무한히 자라가는 우리들이나 세상에 있을 동안만 만들수 있는 자본은 세상이 끝나고 주인이 오시므로 더이상은 마련하지 못하고 받은 달란트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6. 불택자란
구원의 종류는 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가지는 기본구원.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위치에 따라 이루어가는 건설구원이 있습니다. 중생된 자라면 전부 기본구원은 가졌고 중생되지 못한 자는 기본구원이 없는 불택자 입니다 중생여부로 택자 불택자 둘로만 구분합니다.
그다음 건설구원 면만 살핀다면 건설(성화) 여부를 통해 택자와 불택자로 살필수 있습니다. 똑같이 기본구원은 가졌으나,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해 불 가운데 얻은 구원으로 천국에는 갔지만 그 모습을 보니 불택자와 꼭 같은 자로서 건설구원면만 본다면 불택자일 것입니다. 불택자는 건설구원 면으로 0%일 것이고 택자이나 건설구원이 0%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건설구원면으로 불택자일 것입니다. 구속은 받아 천국은 갈찌라도 전혀 은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서도 마련한 것이 없고 할일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을 못할 것입니다.
또 주신 달란트에 따라 다르고 그 충성을 통해 10% 건설한자, 90% 건설한자, 100% 건설한자 가 있겠지만 100%를 두고 부족한 부분 만큼은 불택자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의 구원은 본인의 알기전 벌써 대속이 됐고 영이 중생되었고 중생된 후 달란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달란트란 그리스도의 구속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 재료로 불신자들은 그런 걸 받지도 못합니다.
2. 달란트의 사용처 = 장사
신령한 것(대속 영감 진리)을 가지고 썩어질 것(땅의 것, 물질)으로 개조, 변화, 성화 시키는 것입니다. 곧 3가지를 통해 지극히 작은 것(이 땅위의 것, 멸망할 것)을 가지고 그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큰 것(하늘의 것, 영생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장사입니다.
3. 장사하는 방법 = 충성
방법은 충성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몸 마음 힘 뜻 시간 생명 전부)은 원래는 다 멸망받고 말 것이나 받은 은혜(3가지)를 가지고 다할 때에 받은 은혜가 성화가 되고 다하지 않으면 주관으로되어 땅에 속한 것이 되어 성화가 안됨. 다 할때에 성화가 됨.
4. 땅에 파묻는 것
땅에 파묻은 것은 주님의 구속의 은혜나 영감이나 진리를 전부 세상 생활에 파묻어 버리고 짓밟은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5. 빼앗김 = 건설 구원 x
주신 은혜를 통해 썩을 것, 멸망 받을 것을 가지고 영생의 것으로 불타지 않는 신령한 것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성화 즉 건설 구원을 이루어야 되는데 주신 은혜를 다 빼앗아 감으로 영생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더이상의 기회가 없음을 말합니다. 주인이 오고 이제 마음것 실력대로 받아가진 것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데 영원한 천국에서 세상에서 마련한 자본을 가지고 무한히 자라가는 우리들이나 세상에 있을 동안만 만들수 있는 자본은 세상이 끝나고 주인이 오시므로 더이상은 마련하지 못하고 받은 달란트가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6. 불택자란
구원의 종류는 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가지는 기본구원.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위치에 따라 이루어가는 건설구원이 있습니다. 중생된 자라면 전부 기본구원은 가졌고 중생되지 못한 자는 기본구원이 없는 불택자 입니다 중생여부로 택자 불택자 둘로만 구분합니다.
그다음 건설구원 면만 살핀다면 건설(성화) 여부를 통해 택자와 불택자로 살필수 있습니다. 똑같이 기본구원은 가졌으나, 건설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해 불 가운데 얻은 구원으로 천국에는 갔지만 그 모습을 보니 불택자와 꼭 같은 자로서 건설구원면만 본다면 불택자일 것입니다. 불택자는 건설구원 면으로 0%일 것이고 택자이나 건설구원이 0%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건설구원면으로 불택자일 것입니다. 구속은 받아 천국은 갈찌라도 전혀 은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서도 마련한 것이 없고 할일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을 못할 것입니다.
또 주신 달란트에 따라 다르고 그 충성을 통해 10% 건설한자, 90% 건설한자, 100% 건설한자 가 있겠지만 100%를 두고 부족한 부분 만큼은 불택자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