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에 대응한 선교부와 한국교회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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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8 17:55
일본 총독부가 1925년에 경성기독교연합회에 내린 회신을 보면 '신사는 공공의 시설입니다... 따라서 학생과 아동을 신사에 참배 시킨다 하더라도 절대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를 강요하여도 교육상 효과를 얻기가 어려우므로 평소에 이미 말한 대로 기본 요지를 최대한 양해 시키는 것이 매우 긴요하며, 지난 날의 작은 오해 때문에 분규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히 고려하여 귀하가 관할하고 있는 각 학교 직원을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는 그들의 전쟁에 죽은 군인을 신으로 섬기는 행위입니다. 군국주의 일제의 잔혹함을 고려하고 전몰장병을 신으로 추모하는 이런 일을 두고 조선인 기독교 학교를 상대로 아주 우호적으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그렇게 나쁘다고 비판하는 현 정권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어느 쪽이 교회에 대해 더 독하고 막 가는 것일까! 일제는 1925년에 이렇게 운을 떼고 이후로 절차를 밟았고 결국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사참배 탄압으로 이어 갑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평양의 미국 북장로교와 호남의 미국 남장로교의 대응입니다. 북장로교 일부는 타협을 주장했으나 결국 정면 대결로 맞섰고 남장로교는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맞섰습니다. 그런데 맞서는 방법이 학교를 폐쇄하고 미국으로 돌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남은 조선 교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맹수 앞에 어린 양들을 버려 두고 목자 혼자 도피한 것이 되지 않습니까? 선교사는 미국 국적을 가졌으니 신사참배를 어떻게 비판하고 거부해도 실제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은 일제가 마음대로 고문과 고형을 할 수 있습니다.
총독부의 신사참배 강요는 그들의 전쟁에 죽은 군인을 신으로 섬기는 행위입니다. 군국주의 일제의 잔혹함을 고려하고 전몰장병을 신으로 추모하는 이런 일을 두고 조선인 기독교 학교를 상대로 아주 우호적으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그렇게 나쁘다고 비판하는 현 정권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어느 쪽이 교회에 대해 더 독하고 막 가는 것일까! 일제는 1925년에 이렇게 운을 떼고 이후로 절차를 밟았고 결국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사참배 탄압으로 이어 갑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평양의 미국 북장로교와 호남의 미국 남장로교의 대응입니다. 북장로교 일부는 타협을 주장했으나 결국 정면 대결로 맞섰고 남장로교는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맞섰습니다. 그런데 맞서는 방법이 학교를 폐쇄하고 미국으로 돌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남은 조선 교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맹수 앞에 어린 양들을 버려 두고 목자 혼자 도피한 것이 되지 않습니까? 선교사는 미국 국적을 가졌으니 신사참배를 어떻게 비판하고 거부해도 실제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은 일제가 마음대로 고문과 고형을 할 수 있습니다.
* 일제 때 남장로교와 북장로교의 대처
기록으로 볼 때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는 신사참배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절해 왔고, 북장로교 선교부는 타협을 원한 선교사도 있었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막상 박해가 시작 되자 남장로교 선교부 지역에서는 일부의 저항과 순교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고, 북장로교 선교부 지역에서는 강력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전국 신사참배 최고 지도부를 모아 둔 곳에 남장로교 소속의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런 환란의 기간에는 무슨 일이 실제 있었는지 알기 어려우나 해방이 되자, 남장로교 관할 지역에서는 신사참배에 순교한 이들조차 묻어 버려 오랜 세월 잊혀 져 버립니다. 남장로교의 대처는 더 강경해 보이나 그 끝과 그 열매를 볼 때 기본적으로 다 무너 져 버렸다고 평가 할 수 있습니다. 손양원은 그 지역이 여수였고 순천 노회 관할이었으나 순천노회와는 거의 남남처럼 지냈습니다.
* 교회 탄압과 선교사들의 귀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그토록 저항을 했다 하나 자진해서 귀국을 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숨을 곳도 없고 본국의 소환령이 내려 지면 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일반 업무적 출장으로 한국에 나온 것이 됩니다. 진정한 선교사라면 자기가 전도한 교인은 자기의 양입니다. 양을 두고 목자가 자기 발로 떠날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란, 헌신적인 심성이 특별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 복음을 전하는 높은 차원까지는 감당을 하는데 최종 순교 단계를 두고는 흔치 못합니다.
선교사는 아무나 나와서 믿으라는 넓은 복음을 외치고, 교리와 노선에 명확한 면을 지키는 점은 약한 것이 공통적입니다. 한 사람에게 여러 면을 요구하는 것은 좀 지나 친 기대라 생각합니다.
기록으로 볼 때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는 신사참배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절해 왔고, 북장로교 선교부는 타협을 원한 선교사도 있었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막상 박해가 시작 되자 남장로교 선교부 지역에서는 일부의 저항과 순교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고, 북장로교 선교부 지역에서는 강력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전국 신사참배 최고 지도부를 모아 둔 곳에 남장로교 소속의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런 환란의 기간에는 무슨 일이 실제 있었는지 알기 어려우나 해방이 되자, 남장로교 관할 지역에서는 신사참배에 순교한 이들조차 묻어 버려 오랜 세월 잊혀 져 버립니다. 남장로교의 대처는 더 강경해 보이나 그 끝과 그 열매를 볼 때 기본적으로 다 무너 져 버렸다고 평가 할 수 있습니다. 손양원은 그 지역이 여수였고 순천 노회 관할이었으나 순천노회와는 거의 남남처럼 지냈습니다.
* 교회 탄압과 선교사들의 귀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그토록 저항을 했다 하나 자진해서 귀국을 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숨을 곳도 없고 본국의 소환령이 내려 지면 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일반 업무적 출장으로 한국에 나온 것이 됩니다. 진정한 선교사라면 자기가 전도한 교인은 자기의 양입니다. 양을 두고 목자가 자기 발로 떠날 수는 없습니다. 선교사란, 헌신적인 심성이 특별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 복음을 전하는 높은 차원까지는 감당을 하는데 최종 순교 단계를 두고는 흔치 못합니다.
선교사는 아무나 나와서 믿으라는 넓은 복음을 외치고, 교리와 노선에 명확한 면을 지키는 점은 약한 것이 공통적입니다. 한 사람에게 여러 면을 요구하는 것은 좀 지나 친 기대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