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진실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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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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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08.25 15:22
"십일조는 성경에 말라기 한번, 복음서에 두 어번 나오고 그 이후로는 안 나온다. 구약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했고 신약은 다 폐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도 율법이라 생각한다. 나는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이라 생각한다."
"수입에 관한 헌금도 십의 1조가 아니라 십의 0.5조도 가능하고 십의 2조도 가능하고 십의 5조도 가능한데 자기가 그 마음에 정한대로 믿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법처럼 딱 월급의 십분의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억지가 될 수 있고 결국 율법주의 발상이라 생각한다"
십일조에 대해 공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수입에 관한 헌금도 십의 1조가 아니라 십의 0.5조도 가능하고 십의 2조도 가능하고 십의 5조도 가능한데 자기가 그 마음에 정한대로 믿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법처럼 딱 월급의 십분의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억지가 될 수 있고 결국 율법주의 발상이라 생각한다"
십일조에 대해 공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집회 가면 집회비가 필요합니다. 어른 식비가 22.000원 집회 식비 운영을 위해 기본적으로 돈이 책정되어야 합니다. 알아서 각자 내라 할 수는 없는 노릇.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교회가 운영되려면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물세 전기세 노트북 목회자 사례 예배당 전월세 주차비용 등등 그것을 다 따져서 봐도 각자 알아서 내라 할 수는 없고 어느 정도 기준은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최소 십일조의 원칙이 황금율이 아닌가도 생각해 봤습니다.
100명 교인에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다 다르지만 물론 십일조가 회비 개념은 아닐 텐데 집회비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우리 교회가 운영되려면 한달 최소 비용이 필요한데 나는 얼마를 내야 할까? 각자 신앙도 다르고 경제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금액은 정해 놓으면 어떨까? 이것은 세상 회계 원리처럼 제 인간적인 생각이고 하나님이 내 놓으신 법칙이 10의 1조 10프로인데 저는 십일조관을 묵상하면 할수록 황금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처럼. 마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하라 하신 주기도문처럼.
십일조를 통해 신앙의 더 깊은 면, 더 신령한 면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가르치기 위해 십일조 제도를 내신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세상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하신 것처럼 구약의 제도와 율법도 어찌 보면 신령한 우리에게는 이치로 따져 보면 다 필요하듯 돼지고기 쪽발을 통해 둘로 구별하고 비교하고 따져 참 지식 하나만 골라 취하는 것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신앙의 신령한 양식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으로 연상하면 구약의 율법도 신약의 계명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6일은 일하고 주일 하루는 주의 날이니 안식함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듯 그리하여 믿음이 자랄수록 나머지 6일도 주일처럼 보내려고 노력하듯 물질의 십의 일조를 주님께 드림으로 나의 물질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은 주님 것이며 나머지 십의 9도 주를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은 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사활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또 하나의 표시라 생각합니다
100명 교인에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다 다르지만 물론 십일조가 회비 개념은 아닐 텐데 집회비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우리 교회가 운영되려면 한달 최소 비용이 필요한데 나는 얼마를 내야 할까? 각자 신앙도 다르고 경제도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금액은 정해 놓으면 어떨까? 이것은 세상 회계 원리처럼 제 인간적인 생각이고 하나님이 내 놓으신 법칙이 10의 1조 10프로인데 저는 십일조관을 묵상하면 할수록 황금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처럼. 마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하라 하신 주기도문처럼.
십일조를 통해 신앙의 더 깊은 면, 더 신령한 면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가르치기 위해 십일조 제도를 내신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세상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하신 것처럼 구약의 제도와 율법도 어찌 보면 신령한 우리에게는 이치로 따져 보면 다 필요하듯 돼지고기 쪽발을 통해 둘로 구별하고 비교하고 따져 참 지식 하나만 골라 취하는 것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신앙의 신령한 양식을 먹으라고 하신 말씀으로 연상하면 구약의 율법도 신약의 계명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6일은 일하고 주일 하루는 주의 날이니 안식함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듯 그리하여 믿음이 자랄수록 나머지 6일도 주일처럼 보내려고 노력하듯 물질의 십의 일조를 주님께 드림으로 나의 물질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은 주님 것이며 나머지 십의 9도 주를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은 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사활 대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또 하나의 표시라 생각합니다
(황금율, 동의하며)
성경의 원칙을 따지기 전에 '황금율'이라는 표현으로 신앙의 상식을 설명해 주신 윗글에 전적 동의합니다.
(황금율은 '자비스러운' 황금율)
보통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자유라는 표현 때문에 오늘 신앙 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의무나 충성에 오해가 생긴다고 봅니다. 의무나 충성이란 구체적으로 예배 참석, 성경 읽기, 십일조, 전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신약의 자유란 내가 자유를 사용한 결과 남이 손해를 보면 안 되는 조건이 붙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나의 짐을 떠 넘기는 것은 남에 대한 공격이며 침해며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자유의 '자유'가 이런 뜻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교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자기의 10% 이상을 교회에 어떤 형태로든지 바치게 될 듯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떤 곳인지 정말 전혀 모르거나 어떤 특수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 10%를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인 전체의 각자 10%가 그 교회 교인의 평균적 최소 최저 헌신이 될 듯합니다. 구약은 교인이 어리기 때문에 아예 십일조라고 획을 그었고 신약은 10%를 최저 가이드로 제시한 다음에 최대치은 우리의 100%를 다 바치는 순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생을 다른 말로 바꾸면 헌신이 될 듯합니다. 헌신이란 수고를 좀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체를 다 바칠 때를 말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란 위 글에서 '황금율'로 표현하신 내용처럼 법으로 말하고 따지기 전에 어떻게 우리의 일상 생활을 전부 꿰뚫어 보시고 어린 신앙들을 중심으로 배려해 주시면서 이 10%를 가지고 출발해 보라 했으나 '황금율'은 '사랑의 황금율'이며 '배려와 자비와 복된 황금율'이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십일조는 10% 연보가 문제가 아니라 집행이 문제)
어느 교회가 '십일조'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아주 드물게 어떤 교인에게는 지나친 짐이 될 듯하나,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십일조'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자기 교인들에 대하여 사랑과 배려를 베푼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인 각자 100%를 바쳐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들을 지나치게 억누를 수 있는데 일단 10%만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서야 남이 돈을 내고 나는 혜택만 보는 것이 속성이지만 교회란 나는 손해만 보고 남은 혜택만 보게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자세는 10%가 아니라 100%를 연보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각자를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10%만 내면서 점차 신앙이 자랄 기회를 준다는 것이 십일조 강조라고 생각합니다. 10%란, 어떤 단체에서도 회원이 해야 할 최소한 일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회계를 맡은 가룟 유다에서 보듯이 이 땅 위에서는 항상 도적이 준동한다는 점에서 오늘 교회도 목회자를 포함해서 교회 곳곳에 수 많은 도적들이 있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친 십일조나 그 이상의 충성을 엉뚱한 곳에 내버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잘 살펴 보고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종교 단체를 찾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나를 꺾고 죽일까? 이 것이 전부요 과제입니다. 하물며 나 때문에 남이 수고한다거나 남의 수고를 내가 사용한다는 것은 종교 단체를 찾은 자기에게 험악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란,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모두가 이해를 하고 현재 대한민국처럼 거의 공산화가 된 정부조차 자기 번 돈에서 남을 위해 기부한 돈은 세금에서도 빼 주고 있습니다. 불신자도 십일조를 아무 데나 흔하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자기의 10%라는 것은 최대치라거나 짐이라거나 강박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성경의 원칙을 따지기 전에 '황금율'이라는 표현으로 신앙의 상식을 설명해 주신 윗글에 전적 동의합니다.
(황금율은 '자비스러운' 황금율)
보통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자유라는 표현 때문에 오늘 신앙 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의무나 충성에 오해가 생긴다고 봅니다. 의무나 충성이란 구체적으로 예배 참석, 성경 읽기, 십일조, 전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신약의 자유란 내가 자유를 사용한 결과 남이 손해를 보면 안 되는 조건이 붙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나의 짐을 떠 넘기는 것은 남에 대한 공격이며 침해며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자유의 '자유'가 이런 뜻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를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교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자기의 10% 이상을 교회에 어떤 형태로든지 바치게 될 듯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떤 곳인지 정말 전혀 모르거나 어떤 특수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 10%를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인 전체의 각자 10%가 그 교회 교인의 평균적 최소 최저 헌신이 될 듯합니다. 구약은 교인이 어리기 때문에 아예 십일조라고 획을 그었고 신약은 10%를 최저 가이드로 제시한 다음에 최대치은 우리의 100%를 다 바치는 순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생을 다른 말로 바꾸면 헌신이 될 듯합니다. 헌신이란 수고를 좀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체를 다 바칠 때를 말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란 위 글에서 '황금율'로 표현하신 내용처럼 법으로 말하고 따지기 전에 어떻게 우리의 일상 생활을 전부 꿰뚫어 보시고 어린 신앙들을 중심으로 배려해 주시면서 이 10%를 가지고 출발해 보라 했으나 '황금율'은 '사랑의 황금율'이며 '배려와 자비와 복된 황금율'이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십일조는 10% 연보가 문제가 아니라 집행이 문제)
어느 교회가 '십일조'를 강하게 요구한다면 아주 드물게 어떤 교인에게는 지나친 짐이 될 듯하나,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십일조'를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자기 교인들에 대하여 사랑과 배려를 베푼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인 각자 100%를 바쳐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들을 지나치게 억누를 수 있는데 일단 10%만 가지고 시작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서야 남이 돈을 내고 나는 혜택만 보는 것이 속성이지만 교회란 나는 손해만 보고 남은 혜택만 보게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자세는 10%가 아니라 100%를 연보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각자를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10%만 내면서 점차 신앙이 자랄 기회를 준다는 것이 십일조 강조라고 생각합니다. 10%란, 어떤 단체에서도 회원이 해야 할 최소한 일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회계를 맡은 가룟 유다에서 보듯이 이 땅 위에서는 항상 도적이 준동한다는 점에서 오늘 교회도 목회자를 포함해서 교회 곳곳에 수 많은 도적들이 있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친 십일조나 그 이상의 충성을 엉뚱한 곳에 내버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잘 살펴 보고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적으로)
종교 단체를 찾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나를 꺾고 죽일까? 이 것이 전부요 과제입니다. 하물며 나 때문에 남이 수고한다거나 남의 수고를 내가 사용한다는 것은 종교 단체를 찾은 자기에게 험악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십일조란,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모두가 이해를 하고 현재 대한민국처럼 거의 공산화가 된 정부조차 자기 번 돈에서 남을 위해 기부한 돈은 세금에서도 빼 주고 있습니다. 불신자도 십일조를 아무 데나 흔하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 자기의 10%라는 것은 최대치라거나 짐이라거나 강박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저는 십일조가 의미 없다거나 율법적이고, 구약법이니 폐해야 한다 , 교회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 와 같은 말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의도인지 이해는 하지만..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나하나 정확한 퍼센트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십일조를 폐지한 세계교회 나라들의 자료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국................1688년 폐지
*프랑스............1789년 폐지
*독일................1807년 폐지
*스페인 ...........1841년 폐지
*아일랜드 .......1869년 폐지
*스코틀랜드.....2000년 폐지
.
*스웨덴 ...........2000년 폐지
*이탈리아 ......세금0.8%나눔
*핀란드 .........세금2.2%징수
*스위스 .........세금2.3%거둠
*홀랜드 .........형편대로갹출
*오스트리아.....세금1%만냄
.
*덴마크 ..........세금1%만냄
*멕시코 ......................폐지
*중동,중미, 아프리카....폐지
하나같이 교회가 위축되거나 무너진 국가들입니다.
정교일치화 되어가는 국가들도 눈에 보이네요.
율법의 바른 적용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한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도 그런 맥락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정교분리를 유지할수 있게 하여 우리 신앙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귀한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고 봅니다.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십일조를 감사로 할 수 있음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나하나 정확한 퍼센트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십일조를 폐지한 세계교회 나라들의 자료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영국................1688년 폐지
*프랑스............1789년 폐지
*독일................1807년 폐지
*스페인 ...........1841년 폐지
*아일랜드 .......1869년 폐지
*스코틀랜드.....2000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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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2000년 폐지
*이탈리아 ......세금0.8%나눔
*핀란드 .........세금2.2%징수
*스위스 .........세금2.3%거둠
*홀랜드 .........형편대로갹출
*오스트리아.....세금1%만냄
.
*덴마크 ..........세금1%만냄
*멕시코 ......................폐지
*중동,중미, 아프리카....폐지
하나같이 교회가 위축되거나 무너진 국가들입니다.
정교일치화 되어가는 국가들도 눈에 보이네요.
율법의 바른 적용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한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도 그런 맥락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하며, 정교분리를 유지할수 있게 하여 우리 신앙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귀한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고 봅니다.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십일조를 감사로 할 수 있음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9:6-7)
십일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십일조에 1원 한장 오차 없이 정확하게 계산해서 내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구요. 위 말씀처럼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께 자원함으로 드릴 수 있는 만큼 정하여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확신은 적어도 십일조 이상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십일조는 최소한의 율법의 규정이라 십의 0.5조는 제 개인적으로는 율법보다 퇴보한 드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에 그 이상을 드리기에 부담이 된다면 십의 0.5조도 주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신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은 각자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 정하여 즐거이 드리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십일조에 1원 한장 오차 없이 정확하게 계산해서 내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구요. 위 말씀처럼 각자의 마음에 하나님께 자원함으로 드릴 수 있는 만큼 정하여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확신은 적어도 십일조 이상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십일조는 최소한의 율법의 규정이라 십의 0.5조는 제 개인적으로는 율법보다 퇴보한 드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에 그 이상을 드리기에 부담이 된다면 십의 0.5조도 주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신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은 각자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 정하여 즐거이 드리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부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데 최소한으로 말씀하신 것이 1/10입니다. 실력이 있으면 2/10....9/10..10/10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강팍해서 1/10 최소를 잡으셨으니 개인 실력껏 1/10이상 내면 됩니다. 말씀 하셨듯이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서 복을 받아 보십시오. 복받은 분은 1/10조이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 저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받으시는 하나님이 복된 제도로 주신 것이니 복되게 행하십시오. 이것저것 하다보면 지나쳐서 받은 은혜마저 놓쳐 버리고 원망 불평 불만 낙심 낙망의 저주 받은 인생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