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수님의 대속에 사랑에 눈물이 있으신 분?감격이 있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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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수님의 대속에 사랑에 눈물이 있으신 분?감격이 있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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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신 10 2
백영희목사님의 89년 8월집회에서 제일 많이 강조하고 말씀하신 부분이 계시록 7교회중 에베소 교회인줄 압니다.

처음사랑에 감사 감격이 있어야 한다.

이 처음사랑을 백영희목사님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사랑이라 하셨고 에베소교회가 이 대속의 사랑에 기뻐하고 감사할때 8가지 행위의 선물을 주신다.

그러나 에베소교회가 대속의 사랑은 잊어버리고 행위에 빠질때 주님은 그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신다 했습니다.

집회말씀중 신사참배를 안하고 나오신 분들께 여쭤봤답니다.

어떻게 해서 이기셨습니까?

대부분 내가 니들한테 굴복하나봐라! 하며 본인의 의지 각오로 이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흘리기까지 사랑하셨는데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 마음아프게 할수 있겠는가? 하며 대속의 사랑으로 이기신 분은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백목사님이 손양원 목사님에대해 말씀하셨을때 손목사님은

감옥에가도 주님사랑때문이요                    고문을 받아도 주님사랑때문이요                모든 행위가 주님사랑때문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백목사님과 같이 깊은 대속의 사랑을 받으신 분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평하시기를 대속의 사랑을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하는 분을 못봤다고 하며 한번에 알아보셨습니다. 그분도 북한의 여러번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분을 통해 나의 신앙의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받은 만큼 주님을 사랑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1프로 받은 사람은 1프로 사랑할수있고

10프로 받은 사람은 10프로 사랑할수 있다.

19살쯤 서울 잠실동교회에 가게 되었고 백목사님 부흥집회 3번참석하니 순교하셨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순교적 정신으로 신앙의 투쟁을 했지만 (국기에받들어총안하기, 주일성수..)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껍데기는 싸웠지만 속은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속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사랑에 기쁨이 넘쳐 한 행위는  아니었습니다ㅠㅠ 그러니 계시록 에베소교회처럼 어떤 충성된 행위도 주님앞에 인정이 안되고 심판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길게 썼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요

백목사님도 내게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는 사랑이 없다. 그분의 사랑을 충만히 받는게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목사님은 대속의 사랑에 감사해야한다 감격하라 대속을 노래부르라 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ㅠ

백목사님은 성경을  읽다가도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을 읽을 때는 성경책에 눈물이 떨어져  눈물을 많이 닦았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나는 왜 그런 감동 감격 눈물이 없을까?

신앙생활에 그 대속의 사랑에 감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는데ㅠㅠ

오랜 고민? 아니 대속의 사랑을 깊히 만나서 지도해주는 분이 없으니 그동안 교회만 왔다가는 종교인으로 살다가 작년에 백목사님을 한번에 알아보시고 같은 대속의 사랑을 강조하신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외국에 계심)

그분은 통화중 십자가 말만하면 눈물이 나오시고 목이 메이십니다. 항상하시는 말씀이 주님이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는데 내가 어찌 눈물이 없을수 있는가? ㅠㅠ 제 자신은 멀뚱멀뚱ㅠ 생각해봐라 육신의 부모라도 그 부모가 나를 위해 죽었는데 눈물하나도 없다, 감동이 없다? 이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거다.ㅠㅠ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온다고 그분은 예수님 대속의 사랑밖에 다른 말씀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신앙의 근본 문제는 대속의 사랑은 내가 감격하고 내가 기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주님의 대속의 사랑이 부어져야 되고 그런자만이 주님을 깊히 사랑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깊히 받은 자만이 목숨바쳐 주님을 사랑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롬5장5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조금 길게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일생 아니 영원에 있어 너무 중요한 문제이고 해결못한 숙제 입니다.

여기계신 총공회분들 께서 혹시 대속의 사랑을 생각만해도 감격이 있고 눈물이 있으신 분은 저를 좀 이끌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그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격적으로 만나신 분들, 대속의 사랑을 1대1 로 부어져 만나신 분들을 집중적으로 알아보고 찾아보니 정말 소수중의 소수 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청교도들은 대속의 사랑,십자가 사랑을 꼭 부음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조지휫필드는 주님의 사랑이 강하게 부어질때는 숨을 쉴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천로역정에서도 크리스찬이 성경을 읽고 세상을 버리고 천성을 향해서 많은 고난 가운데 걸어가지만 죄짐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수많은 싸움을 지나 깊은 골자기를 올라갈때 정상쯤에서 십자가를 만나는 사건을 체험했고 그때 죄짐이 벗겨지는 것을 봤습니다.(최근에나온 애니메이션^^)                   그후에도 영적인 고난 전쟁은  더욱 커지고 맹렬합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처음 믿을때 대속의 사랑이 크게 부어지셨던 것 같습니다.

대속의 사랑에 기쁨, 감사가 있는 삶, 그사랑에 근거한 충성있는 삶을 사모하며 긴글을 올립니다.

그간 30년 신앙? 아니 종교생활에 벗어나 대속의 사랑을 깊히 만나기를 너무나 소원합니다.

십자가 대속에 눈물, 감격이 항상 있는 분은 저를 붙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010  2448  4404  고명신입니다.  주안에서 꼭 부탁드립니다. 문자나 카톡 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면 그런 목사님계시면 소개시켜주셔요 꼭요

 

 
서기 2020.06.17 18:29  
연구소가 제대로 된 연구소 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된 교인이 되기 위해서, 이 번 질문은 가장 깊고 중요한 부분을 적었고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다른 답변은 안내를 드리는 약간의 흐름이 있어 담당자들이 일정에 따라 비교적 쉽게 적지만, 이 번 과제는 두어 분이 각각 다른 각도로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다 함께 고민하고, 말과 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문득 돌아 보면서 깜짝 놀라야 하고... 심정지에 이를 정도로 숨이 막혀야 하며... 그런 순간이 하루가 아니라 1년이 가고 그대로 죽는 날까지 이어 지며 남들에게는 다시 그를 본 적이 없다 할 분도 계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몇 말씀을 적어 볼 분들에게 바쁘지 않을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문답은 1일 정도의 첫 답변과 늦어도 2, 3일을 기대해 왔으나 이 글은 다른 글이니 함께 시간을 갖고 비록 질문 형식으로 적었으나 일단 첫 글로 적은 내용만 가지고도 모든 방문인과 답변을 맡은 모든 분들과 이 곳의 모든 직원들이 깊은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고명신 2020.06.17 22:09  
https://youtu.be/UvYbe4jyqEI 
죄송합니다. 복사해서 검색하면
유튜브에 청교도 조지휫필드의 회심? 대속의 사랑을  깊히 체험한 내용이 나옵니다.
 6분정도 짧습니다.
처음에 존번연은 예수님께 처음 은혜입은 시간 사건을 자주 생각했고 이것이 본인의 신앙을 지탱한다고 했습니다.
용어의 차이지만 백영희 목사님의 처음사랑에 감격이 있어야 한다와 같은 맥락같습니다.
제겐 너무 절실하니 나이에 관계없이 십자가 대속사랑이 크게 부어지신 분 있으시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꾸벅^^
서기 2020.06.21 19:31  
1. 일반적 소개
부탁하신 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선 일반적으로 안내를 드립니다. '사막의 교부'라는 책과 '이용도 목사님'을 통해 역사적인 인물을 그려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막의 교부에서는 염세주의를 알아서 잘 제치고 들어 가야 하며, 이용도 목사님의 경우는 그의 세계를 모르는 분들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비판을 한다는 점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2. 자연계시의 참고
주님의 첫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쉽게 주시려고 부모님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에 먼저 눈물이 쏟아 지고, 눈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억장 무너지는 아픔과 감사를 느껴 보면 좋겠습니다. 이 단계는 불신자도 예전에는 누구나 가졌고 오늘도 그런 분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에 만사를 제쳐 둘 수 있는 것은 신앙에 상관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유교는 여기까지고, 우리는 이 사랑에 감격을 붙들고 부모와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어 가셨으면 합니다. 경쾌한 멜로디에 신나는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장송곡이 흐르는 속에 애국자를 추모하고 부모님을 떠나 보낼 때 그 곡과 부모님에 대한 애절함은 잘 어울립니다. 이런 것은 자연계시입니다. 모든 자연계시는 특별계시를 위해 주셨습니다. 견딜 수 없이 감사할 수 있는 이 땅 위의 사랑은 부모님 사랑뿐입니다. 그 사랑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주님 사랑입니다. 

3. 오늘 이런 대화가 필요하면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이런 면을 나눌 분들은 대개 외부와 연락을 끊고 묻혀 사는 편입니다. 이 곳의 글이 전해 지고 퍼져 어느 날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연락처를 적었으니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또 좋은 만남을 가진 후에 이 곳에 전해 주시면 이 곳도 애모하는 마음으로 그런 분을 찾겠습니다. 최근은 잘 모르겠으나 80년대까지는 이진헌 김응도 목살님과 같은 분은 늘 그 감사에 눈물을 적시고 살았습니다. 돌아 가신 전성수 홍순철 목사님은 옆에서 지켜만 봐도 온 몸이 떨리도록 그 감동이 전해 져 왔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오랜 세월 성찬 때마다 눈물로 인도를 하시다 80년대가 되면서부터 이제는 눈물의 단계를 딛고 이를 악물고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되자는 더 진한 세계를 소개했습니다.

4. 좀 혼란스럽습니다만
눈물의 빵을 넘어 각오와 결심에 사무친 분들도 더러 계실 것이나 대부분의 분들은 눈물을 억누르고 눈물보다 더 어려운 실행의 길을 걷겠다면서 눈물을 거둔 뒤에 실행도 없고 눈물조차 없어 이제는 주님의 대속이 공회 내에도 찾기가 어려운 때로 보입니다. 공회의 교리 입장은 명확합니다. 겉으로 흐르는 눈물보다 속 눈물이 진하고, 속 눈물보다 그 눈물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이 더 진한 눈물이라고. 그래서 백 목사님의 주님의 대속에 감격하여 선교사로 이 땅 위에 와서 대를 이어 가며 선교한 분들을 이야기 할 때는 바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하곤 했습니다.

부모 장례 때 한도 없이 눈물을 흘려 본 사람, 그 후 죽을 때까지 눈물이 계속 되는 사람.
부모 장례 때 그런 눈물을 함께 흘린 뒤, 그 부모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다시는 울어 볼 틈도 없이 달려 간 사람.
부모 장례 때 눈물을 흘리고 부모를 묻고, 이후 평생 부모가 생각 나지 않고 자기 길만 걸어 간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사랑, 그 첫 사랑에 사무 쳐 죽는 날까지 다시는 세상을 돌아 보지 않고 주님이 부탁한 일에 매진하는 데까지 나아 가시되 우선은 그 사랑을 더욱 일깨워 주실 분을 찾기를 바랍니다. 이 면에 특별하게 은혜를 받은 분이 주변에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연구소 인원들은 주님의 그 대속에 감사하여 주님이 부탁하신 일에 매진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에 붙들려 그 감사를 잊었는지 그 감사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 올 틈도 없다 보니 이제 눈물로 감사를 나누는 것이 서툴어 졌는지 스스로 돌아 볼 시점입니다. 함께 찾고 있습니다.
고명신 2020.06.22 12:25  
진솔한 답변감사드립니다.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북한 감옥인지 중국에있는  탈북자 감옥인지는 생각이 안나나 죽음의 두려움이 왔다갔다 하는 험악한 감옥에서 어느 그리스도인이 다른 탈북자를  보고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한번에 알아 보았답니다.
감옥사람 같지 않았다 합니다.
얼굴도 환하고
힘도 넘쳤답니다.
서로 은밀히 ''할렐루야''하며 주님께 영광돌렸답니다.
한마디로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게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와 같은 상황이죠
사도바울은 감옥의 고문속에서 정말 기뻐하였고
그 기쁨이 너무커서  빌립보교인들에게도 이기쁨을 전한줄 압니다

이는 각오로 되는게 아니고 죽음의 고통,공포속에서 평안하고 기뻐할수 있는것은 대속의 사랑이 강하게 부어진 사람이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저는 재수시절 교회못가게 부모,형이 감금해서
세끼손가락을 카터칼로 자르다 칼날이 부러져 다행히 흉터만 남은 적도 있습니다.(죄송합니다
자랑도 아니고 그만큼 백목사님따라 신앙의 절개를  지킬려고 나름 노력했었습니다)
 제가 전투경찰 군복무때 신앙지킬려다 수많은 시간동안  구타와 갖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손가락 관절이 부어있습니다.
저는 주일날 진압안나간다고 하다 하도 안되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러니 대원들이 강제로 진압복 입히고 전경버스에 태워 데모현장에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데모현장에서도 눈을 감았고 기도했습니다.
주일날은 나갈수 없다고ㅠㅠ
평일날 사회 방범근무 나가서도 구석에서 사회 거리 한구석에서 구타당했습니다ㅠ

저때문에 대원들이 구타당하고 힘들어서 저희소대에서 탈영병이 3명이나 있었습니다.

백목사님의 신앙을 조금이나마 따라갈려고 나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길만 했는데
너무 수개월~~~  지속되니 겉은 싸우나 속은 지쳐갔습니다. 나중에는  하도 맞다보니 조금만 맞아도 온몸이 본능적으로 부르르 떨렸습니다.

윗글에도 말씀드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대속의 사랑으로 시작도 안되었고 그런 감격, 기쁨속에서 싸운것이 아니라 단지 싸우는 행위에만 집중했던 겁니다.

그러니 성경적으로나 백목사님의 교훈적으로나(물론 같은 의미이지만요)
주님과 관계없는 심판받을 행동만 한게  된겁니다.
주의 이름으로 이것 저것 행했지만 주님은 책망하시어 불법을 행한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말씀이 저에게 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양의 문으로 통하지 않으면 절도요 강도다.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적 삶의 처음도 대속의 사랑이요
중간도  대속의 사랑이요
마지막도 대속의 사랑이라는 것을

목숨까지 내 줄지라도 대속의 사랑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주님과 전혀 관계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껍데기 행위, 투쟁은 같을 수 있으나 대속의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주님은 불법으로 보신다는것을 신앙생활 한지 30년 지나서야 조금씩 깨닫습니다.

왜 백목사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진들을 대속의 사랑을 중요시 하셨는가? 조금 알게 됩니다.

제가 총공회 분들께 이글을 올리는 것은 교리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논쟁을 할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름 백목사님의 말씀, 교훈을 사모하고 부족하지만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지금까지 왔는데
대속의 사랑, 에베소교회의 처음사랑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시작도 안된자였고 그 행위는
 불법을 행한자들아!  말씀처럼 불법의 행위라는 것을 ㅠ 밤새 울다 통곡까지 하게됐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아니고 공든탑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ㅠㅠ

물론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혼자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백목사님과 색깔이 비슷한 분의 가르침속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교도들 천로역정... 오늘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신 분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게 되었고 그분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어떻게 만났는가 알아봤습니다.

정말 소수이지만 공통적으로는
성령의 은혜로 본인의 죄가 너무 참혹했고 이 죄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이 이론 지식이 아니라 실제가 됐다는 것입니다.
진짜 성령에 의해 생각도 못한 죄들이 생각나게 되었고 가슴을 찢는 통렬한 회개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롬5:5 , 요한1서 말씀처럼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대속의 사랑)이 부어진 자만이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수 있지
우리에게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대속의 사랑이 부어진 자는
 십자가 피흘리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통렬한 회개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때문에 피흘리신 예수님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게는 이런 십자가 피흘리신 예수님앞에 통렬한 회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없었습니다.

깊은 교리를 나눌려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청교도들과 대속의 사랑에 뜨겁게 반응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내용을 몇자 적어봅니다.

혹 총공회에 이런 분이 계신가 해서 긴글을 올린겁니다.
고명신 2020.06.22 13:18  
최근은 잘 모르겠으나 80년대까지는 이진헌 김응도 목살님과 같은 분은 늘 그 감사에 눈물을 적시고 살았습니다. 돌아 가신 전성수 홍순철 목사님은 옆에서 지켜만 봐도 온 몸이 떨리도록 그 감동이 전해 져 왔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오랜 세월 성찬 때마다 눈물로 인도를 하시다 80년대가 되면서부터 이제는 눈물의 단계를 딛고 이를 악물고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 되자는 더 진한 세계를 소개했습니다.


최근은 잘 모르겠으나-------->
내앞에서 부모가 내 죄때문에 죽은 것이 실제가 된사람은 겉에 눈물이 흐르던 안흐르던
단순이 눈물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말을 몇번 들어보면 알수 있데요
그사람 속이 무엇으로 가득차있나?
대속으로 가득찬사람은 대속밖에 말할수 없다고.... 저는 멀뚱멀뚱인데ㅠㅠ

대속의 사랑은 머리 지식이  아닌
롬5:5  성령의 부어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백목사님의 에베소 처음사랑의 말씀으로 비추어본다면
 이는 목회자, 평신도 이런 직급을를 떠나서
참성도라면 반듯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야 에베소 교회처럼 처음사랑에 근원한 행위를 할수 있으니까요
백목사님은 이 행위는 내것이 아니고 대속의 사랑에 감격하고 노래를 부르니 선물로 8가지 행위를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총공회에도 이런분이 쉽지 않다는 것에 조금 놀랍습니다.

물론 저도 깨어나서 알아보니 소수중의 소수입니다.
그후 1년 이상 제 기도 제목은 오직 한가지!
대속의 사랑을 부어주옵소서!
백목사님 처럼 총공회에도 많은 분들이 대속의 사랑을 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담당 4 2020.06.22 06:18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여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살고 싶은 그 간절과 열정이 귀하여 답변이 조심스럽습니다. 답변자가 아는 대로 그 길은 하나밖에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설명 드리게 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디 그 간절과 열정이 변함없이 계속되면서 찾고자 하는 길을 찾으시기를 소망합니다.


1. 사활의 대속과 백영희 목사님

‘생명은 주님이 나를 사활의 대속으로 구속해 주신 이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없으면 하나님은 나하고 상관이 없어 버려, 그만 딱 끊어져 버려요.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만 끊어져 버려요. 이러니까 오늘 가면서 사활의 대속의 이 …’

위 내용은 1989. 8. 27. 주일 새벽 백영희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는 사활의 대속에 대한 말씀이었고 백영희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도 ‘사활의 대속’이었습니다. 신앙 출발과 목회 생활 55년, 그분 평생의 전부는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고 사활의 대속을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사활의 대속으로 출발해서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여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살다가 사활의 대속으로 끝을 맺으신 분입니다.

신앙의 위대한 분들, 김현봉 손양원 주남선 주기철… 사도 바울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성경의 모든 인물들의 평생도 알고 보면 사활의 대속에 감격하여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살다가 사활의 대속으로 끝마친 분들입니다. 사활의 대속이 무엇이기에 성경의 수많은 종들, 역사의 수많은 신앙의 종들이 평생을 사활의 대속만 노래하며 사활의 대속 때문에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며 일평생을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그리 살 수 있었을까? 사활의 대속이 무엇이기에 오늘 우리 또한 사활의 대속을 알기를 소원하며 사활의 대속에 갈급하며 간절하며 사모할까?


2. 사활의 대속이 무엇인가?

사활의 대속은 우리 모두가 너무도 많이 배우고 잘 배워 아는 대로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네 가지로 요약됩니다.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생명, 부활로 주신 하늘의 영원한 소망이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활의 대속으로 사는 것은 죄 없이 사는 것,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동기에서, 사랑으로 인한 무한한 희생의 역사로,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니 사활의 대속은 사랑입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기본구원도 사활의 대속이고 건설구원도 사활의 대속입니다. 우리 구원은 전부가 사활의 대속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이라고 했습니다. 흰 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데교회의 몇 사람, 흰 옷을 입고 나오는 14만4천명으로 표시한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

사활의 대속은 기독교의 중심이며 전부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구원 역사의 정중앙에 사활의 대속이 있습니다. 사활의 대속 없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고 우리의 구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전부, 우리 구원의 전부가 사활의 대속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알고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살아 사활의 대속의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3. 우리도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신앙의 위대한 종들은 어떻게 일평생을 사활의 대속의 감격에 빠져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사활의 대속에 감격되어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며 평생을 감사와 기쁨으로 충성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주시지 않은 것은 요구하시지도 않는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좌우된다면 일반적인 우리는 그분들을 따라갈 수 없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입니다. 앞선 종들의 걸음, 그분들의 생애를 살피고 연구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평생은 사활의 대속을 연구하고, 사활의 대속으로 살고, 사활의 대속을 전하는 생애였습니다. 사활의 대속 연구는, 성경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죄가 무엇인지 죄를 알아서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며 살 수 있는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분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어떨 때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는지, 하늘나라 소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그 소망으로 살 수 있는지를 말씀으로, 기도로, 당면한 현실 상황으로 찾고 살피고 연구하는 것이 사활의 대속에 대한 연구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연구하여 깨달아 아는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하여,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빼앗겨도 죄 짓지 않고, 당면하는 현실의 만사를 세밀하게 구별하고 구별하며 살피고 살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소유를 손해 보고 사람을 다 잃어도 하나님의 뜻은 양보하지 않고 살며, 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만사 걸음걸음 순간순간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일보일보 그분과 동행으로 살고, 두고 갈 이 땅 위의 그 무엇에 가치와 욕망 두지 않고 오직 하늘나라만을 바라보며 그 나라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는 생활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산 그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도 이렇게 살게 하려고 일평생 사활의 대속의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산 것이 백영희 목사님의 생애였습니다. 이 생애가 그분을 평생 사활의 대속에 감격되어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며 살다가 사활의 대속으로 끝마치게 만든 길이며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 목사님뿐 아니라 모든 신앙의 종들의 생애가 외부적인 환경과 모습은 달라도 그 내면은 전부 이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렇게 살면 우리도 그분들처럼 사활의 대속에 감격되어 평생, 만사 모든 생활에서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며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신앙의 경험과 체험이 그러합니다. 이 방법 외에, 이 길 외에 다른 방법 다른 길은 없습니다.


4. 감격의 눈물도 말씀의 이치에서 나와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감동이라 합니다. 그 움직임이 크고 충격적이면 감격이라 합니다. 마음이 감격되어 마음으로만 감당하기 어려워 밖으로 표시가 나면 눈물이 나옵니다. 감격의 눈물입니다. ‘나실 제 괴롬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학생 때, 청소년 때 이 노래를 부르면 부모님의 은혜와 가사의 내용에 마음이 감동되고 감격되며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실제로 부모가 되고 나면 학생 때 알고 느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부모님의 은혜가 실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면서 한숨도 나고 탄식도 나고 부모님께 효도 못 한 회한이 저절로 나옵니다. 부모 된 세월이 오래 갈수록 부모님의 사랑과 수고가 크게 느껴지고 감사가 커지면서 그리워지게 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필연적인 모습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바로 알았다면, 사활의 대속을 바로 깨달았다면, 사활의 대속의 무한한 주님의 사랑을 정말 어느 정도라도 바로 알았다면, 그 사랑으로 인한 수고와 희생, 고난을 조금이라도 바로 깨달았다면, 그로 인하여 주신 구원의 가치와 받은 구원의 소망을 바로 알았다면 감사함과 죄송함과 기쁨과 소망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넘어 사활의 대속에, 예수에 미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겠네 저 죄인 어서 이리 와 죄 사유하심 받아라, 나 예수 사랑 못 잊어 위하여 눈물 흘리네 세상에 어디 가든지 내 주만 생각하도다’ ‘이 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곡조로 날 구원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

문제는, 감동과 감격만으로는, 감격의 눈물만으로는 평생을 사활의 대속의 사랑을 노래하며 사활의 대속을 입은 사활의 대속의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물은 감동에서 나옵니다. 감동은 감정입니다. 감정은 이성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는 생활은 현실입니다. 현실은 냉정합니다. 현실은 전투의 전장입니다. 전투의 현장인 현실은 감성, 감정으로 이기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합니다. 사활의 대속의 감격이, 그 눈물이 계속되려면,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살려면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야 합니다. 이치를 따져야 합니다. 참된 이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참된 이치인 진리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사활의 대속을 알되 말씀으로 이치를 따져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활의 대속이 무엇인지, 사활의 대속의 시작이 어디며 과정이 어떠하며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그것이 나와 내 구원과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지,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랑은 어떠하며 희생은 어떠하며 그로 인해서 받은 구원은 어떠하며 소망은 어떠한 것인지 … 내가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사활의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인지,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는 것인지… 사활의 대속에 대한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면 사활의 대속에 감격한 눈물은 없을 것이고, 그 이치의 깊이가 얕으면 눈물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고, 그 이치의 범위가 좁으면 눈물의 범위도 좁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활의 대속의 이치를 깨달아 알고 그 이치대로 사는 생활, 그 생활을 계속하는 것만이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평생 사활의 대속에 감격되어 사활의 대속을 노래하며 산 종들의 생애가 다 이런 생애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산 것만큼 사활의 대속에 감격되고 노래하며 살 수 있습니다. 


5. 나를 일으켜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실 분

우리 신앙은 현실 생활입니다. 사활의 대속도 현실입니다. 현실 없는 사활의 대속은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무한한 사랑의 희생의 수고와 고난의 죽으심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신 사활의 대속은 현실에서 그 대속을 입은 자로 살아 사활의 대속의 사람이 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 현실은 나에게 가장 좋은 에덴동산입니다. 나에게 사활의 대속의 눈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대개는 내 주변에 있습니다. 나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장 유익된, 가장 필요한 현실이며 에덴동산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사람도 대개 그러합니다. 나를 인도할 인도자도 거기서부터 찾는 것이 순서입니다.

1989년 5월 백 목사님 마지막 대구 집회 때, ‘이 노선이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최고라 생각되는 곳을 찾아서 가라, 그것이 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영원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일에 사람의 안면과 혈육과 정실과 이해타산을 따져 자기 소속을 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온 세계를 다 다녀보지 않았지만 안 가 봐도 알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이고, 유명한 것은 무엇이든 어떤 형태로든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이 글을 쓰는 답변자는 평생을 이 연구소에 속해서 배우며 따라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이곳보다 더 옳고 정확하고 바르고 참된 곳이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평생 노래하며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명신 2020.06.22 14:18  
귀한 답변 감사합니다.
글을 읽서보니 백영희 목사님의 찐한 색깔이 나오시네요 ^^~

제가 백영희목사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라 한다면 에베소교회의 처음사랑!입니다.
그때 큰 은혜받았고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제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노여워 하지 말아주셔요)
백목사님은 당신은 대속의 사랑을 초기에 강력하게 부음받았고 그 사랑의 힘으로 일평생 살으시고 순교하신 줄압니다.

그리고 후대들에게 당신이 이렇게 신앙생활 했으니 여러분도 이렇게 해야합니다 하며 가르치셨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백목사님은 어떻게 대속의 사랑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음받아야 한다고는 말씀하지 많으신듯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잠실동교회있을때도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주님의 십자가때문에 감격하고 눈물이 있는 분을 못봤습디다.

위에 말씀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백목사님과 같은 대속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분을 멀리서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탈북자이신데
목숨걸고 나왔던 북한이기에
 자신의 이성,본능으로는 도저히 다시 들어갈수 없었는데 (하나님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셨는데 몇번 거부했다고 합니다)

 어는 중국 부흥집회때 대속의 사랑이 강하게 부어져 통회하며 육체가 둥둥뜨고 ...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완전히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목숨을 드려 주님을 사랑할수 있는 은혜가 부여져 북에서 복음을 여러번 전했다고 합니다.
밤새 시간가는걸 잊고 전하기도 했답니다.

이분의 말씀의 중심도 십자가 대속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런분도 3년전에야 대속에 사랑에 대해 하나님이 자세히 열어주셨답니다.
그래서 이분은 말씀합니다.
목숨걸고
언약의 말씀붙잡고
대속의 사랑을  부어달라고 기도하라고 강조합니다. 기도의 그릇이 채워지면 주님이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제가 눈물,감격이 있는 분 찾는 것은 그분은 타국에 있어 저를 세밀히 지도 할수 없어서 입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평신도 목회자 ..  대속의 사랑을 부어진 분들이 계시지만 색이 조금씩 달라서요
백목사님을 사모하다보니 여기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이 노선이 최고다는 대속의 사랑이 최고다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아무리 교리가 깊고 깨달음이 깊어도 실제적으로 대속의 사랑이 부어지지 않으면 그 사랑에 감동이 없다면 소리나는 구리요 꽹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죄송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올렸습니다.

진짜 마지막 때입니다.
곧 세계 종교통합이 있고 이스라엘에 제3성전이 지어지게 됩니다.
마지막 승리위해 대속의 사랑이 크게 부어지는 총공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 진짜 엄청난  전염병이 옵니다.
여러 귀한 하나님의 종들이 공통적으로 경고합니다.
영적, 육적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총공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신데 긴글로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2 2020.06.23 18:42  
(신앙의 대화)
원하는 안내와 방향은 다르지만 신앙을 이렇게 진실되이 전력하고자 하는 분들께 한 번씩 안내를 드립니다.

* 공회 출신들의 흔한 오해
청량리교회 교인들은 청량리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경험으로 공회 전체를 보는 오류가 있습니다. 잠실동은 그런 면이 더 많습니다. '백태영'이라는 인물, '공회 교회 중에 서울에서 제일 큰' 곳이라는 점, '교회 내의 여러 인재'들이 많았다는 등의 이유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창의 개명교회는 그들이 신약교회의 최초라는 정도로 착각을 하며 그들 전부와 그들의 오늘까지 신앙이 좋은 줄로 압니다. 백 목사님 계시던 1949년 이후 개명교회는 허무해 졌고 개명 출신이라 하면 일단 신앙이 거의 다 넓습니다. 대구 동성로교회 부산 거제동교회... 이렇게 헤아리면 거의 다 그렇습니다.

'잠실동교회'와 '백태영 목사님 계열'의 신앙은 1980년의 개척 초기부터 잠실동 내부는 뜨거웠지만 교회 자체는 그 때부터 공회에서 벗어 났습니다. 그 곳에 대속의 사랑에 심각하게 빠진 분이 계셨다면 아마 밀려 났거나 저절로 나왔을 듯합니다.

* 탈북자의 경우
예를 든 분은 제가 전혀 모르며 탈북하신 분이나 중국 분들조차 본 연구소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통해 로마제국 때나 6.25 때 또는 어느 나라 어느 교회든지 신앙의 박해가 심하면 주님이 위에서 무차별로 붓는 은혜가 많습니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정말 제대로 믿어 보려는 분들과 탈북하신 분들의 경우는 교리나 경력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첫 사랑이 넘치는 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중에 일부는 초대교회처럼 또는 이 노선의 백영희 목사님 초기처럼 그런 분들이 더러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명신 2020.06.23 20:32  
네 감사합니다 ^^~
고명신 2020.07.02 19:55  
서기님과 담당4님의 귀한 글을 미국에 계신 분께 복사해서 드렸습니다.
저도 지금 두분 글 또 읽으며 은혜받고 있습니다.
사활의 대속에 더욱 깊히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이렇게 긴 장문을  쓰시기 힘드셨을텐데 한 영혼을
위해 정성의 답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특히 담당4님 말씀에 눈물흘리며 은혜받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가지 질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글 같아서 조용히 여기에 질문 올립니다.
혹  확인이 안되셔서 답이 없으시면 위에다  새롭게  질문 올리겠습니다.
주안에서 평안하시고 강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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