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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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2
1
2020.04.23 11:00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요셉을 잡아 옥에 넣었다 했습니다
1. 그때에 요셉은 자기의 억울함을 해명했나요?
아니면 아무말 없이 옥에 갇히게 된건가요?
추후에 관원장들의 꿈을 해몽하며,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창세기 40:14-15
자기의 억울함을 말했습니다
2. 믿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만났을때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2번 질문에 대하여 과거 문답방에 있었던 글을 먼저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곧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1-07-11 06:55:54
yilee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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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울하신 분들의 손해는 이렇습니다.
1)
억울하게 당했던 것, 그 전부가 손해였습니다.
2)
당한 것보다 더 큰 손해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건강에도 크게 해롭습니다.
3)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 하신 말씀 때문에,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살인자에 해당되는 죄를 더하게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그 손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2.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1)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한 것을 기억하고 바로 상대하게 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 말씀입니다.
2)
부모에게 억울함을 생각한다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아도니야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었던 참 억울함은 그들의 결과가 그들 자신에게 더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억울함을 잘못 풀면 억울함을 당한 것도 서러운데 더 큰 억울함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울하다시는 본인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성경을 차분히 다시 읽어 보는 것입니다.
3)
참으로 억울했으나 그 억울함을 억울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는 훈련기간으로 받아들인 요셉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역사에나 기록될 인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그리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3.참고로 성경의 상호주의는
1)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상호주의가 죄인에게는 마땅히 죄값으로 죽게 하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차원의 상호주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지극히 공의롭고 공평한 법이어서 지공법이라고 합니다.
2)
그러나 오늘 구원의 시대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원수인 우리를 먼저 구했으니 너도 너에게 죄지은 작은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극히 작은 문제라도 애를 쓰라 하십니다. 즉 복음의 시대 오늘 신약의 상호주의는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큰 은혜를 생각하여 자기가 지면 질 수 있는 작은 십자가를 자기 현실에서 지라는 것입니다.
4.남의 말은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것이라 보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억울하신 일을 당한 분'과 같은 억울함을 당해 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 그런 일을 당했느냐는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당해도 해결은 성경이며 상대방이 당해도 해 드릴 말씀은 결국 성경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지 않아도 천국가기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어느 교회 예배당 들어가는 입구에서 본 글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2001-07-11 06:55:54
yilee
제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내용분류 : [-교리-교회론-신앙생활-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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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울하신 분들의 손해는 이렇습니다.
1)
억울하게 당했던 것, 그 전부가 손해였습니다.
2)
당한 것보다 더 큰 손해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건강에도 크게 해롭습니다.
3)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 하신 말씀 때문에,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살인자에 해당되는 죄를 더하게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그 손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2.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1)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한 것을 기억하고 바로 상대하게 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 말씀입니다.
2)
부모에게 억울함을 생각한다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아도니야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었던 참 억울함은 그들의 결과가 그들 자신에게 더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억울함을 잘못 풀면 억울함을 당한 것도 서러운데 더 큰 억울함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울하다시는 본인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성경을 차분히 다시 읽어 보는 것입니다.
3)
참으로 억울했으나 그 억울함을 억울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는 훈련기간으로 받아들인 요셉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역사에나 기록될 인물로 주신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그리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3.참고로 성경의 상호주의는
1)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상호주의가 죄인에게는 마땅히 죄값으로 죽게 하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차원의 상호주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지극히 공의롭고 공평한 법이어서 지공법이라고 합니다.
2)
그러나 오늘 구원의 시대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원수인 우리를 먼저 구했으니 너도 너에게 죄지은 작은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극히 작은 문제라도 애를 쓰라 하십니다. 즉 복음의 시대 오늘 신약의 상호주의는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큰 은혜를 생각하여 자기가 지면 질 수 있는 작은 십자가를 자기 현실에서 지라는 것입니다.
4.남의 말은 식은 죽 먹듯이 하는 것이라 보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억울하신 일을 당한 분'과 같은 억울함을 당해 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 그런 일을 당했느냐는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당해도 해결은 성경이며 상대방이 당해도 해 드릴 말씀은 결국 성경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가지 않아도 천국가기로 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어느 교회 예배당 들어가는 입구에서 본 글입니다.
'먼저 기도하고'
1. 복음의 비밀이라는 점에서
요셉의 신앙은 그의 평생을 볼 때 암3:7이나 딤전3:9에서 말씀하는 복음의 비밀을 아는 차원입니다. 창37:5의 말씀에서 요셉은 이방인에게 밝힐 수 없는 남 다른 비밀을 받았고 39:2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형통한 복을 주신 것을 볼 때 요셉은 팔려 갈 때 그 비밀이 진행 되는 과정에 충성했다는 뜻입니다. 팔려 가는 상황이 억울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알았다면 복음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찼다고 보입니다. 삼상21:2에서 다윗이 대제사장에게도 비밀을 지킨 것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는 나쁜 의도로 속이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비밀 때문에 밝히지 못하거나 사명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2. 박해에 대한 기본 인식
억울해야 하소연을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데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고 감옥으로 다시 가는 모든 과정을 박해로 본다 해도 마5:11 말씀을 아는 수준이고 5:12에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에 해당 될 수준이므로 그 핍박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비밀 수행에다 기뻐할 일이라면 당연히 입을 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팔아 먹은 형들과 누명을 씌운 보디발 아내를 두고 하나님께서 요셉에 주신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동원한 불쌍한 사람들로 동정할 신앙입니다.
이런 사실은 창45:5에서 형들에게 하나님의 일정 때문에 형들이 사용되었다고 밝혔다는 점과 20년이 넘어서 갑자기 만난 형들을 대하는 42:7의 태도를 보면 어떤 감정도 표출하지 않고 그들을 회개 시키기 위해 표정 하나 말 하나를 계산하며 대처합니다. 이런 평온한 마음은 요셉이 마5:2 이하의 8가지 복을 받을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갑자기 만난 형들을 상대하며 비밀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시므온을 잡아 두고 베냐민을 데려 와 보라 합니다.
3. 반론이 제기 될 성구
창40:15에서 요셉은 출옥할 사람에게 자기 일을 호소하고 바로에게 청탁을 넣었습니다. 복음의 비밀 수행을 깨 버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주권 섭리 역사를 믿지 않은 행위가 되며 마5장의 복 된 행동과 다르게 보입니다. 이 때의 요셉이 원래의 요셉이었다면 이 날 이전의 요셉은 팔려 갈 때 비명을 지르고 팔려 가면서 탈출을 기도하고 보디발 집에서 거품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창39:4, 22에서 보디발과 전옥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돌아 보지 않았다는 신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사람이란 실제 억울할 때도 억울하다 하겠지만, 실제로는 억울하지 않아도 착각을 하게 되면 억울하게 느낄 것이고 그 억울함은 분노가 되고 어느 날 주인에게 칼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정이 없는 사람이 없고 인간이란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는데 보디발과 전옥은 요셉에게서 이런 점이 없었기 때문에 요셉에게 맡기는 것은 뒤 탈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 인간들은 속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보디발 집에서 또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한 것을 볼 때 아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 요셉은 인정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형들의 상황을 보디발에게 말하지 않았듯이, 감옥에서 보디발 부부에게 원망하지 않고 비밀을 잘 지켰을 듯합니다. 훗날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의 전권을 쥐었을 때 보디발 부부에게 보복을 했을까? 형들을 대하는 것을 보니 알 수가 있고, 또 애굽의 왕과 신하와 백성까지 모든 종류의 상하 전부가 요셉을 다 마음에 우러 나오며 순종하는 것을 볼 때 요셉은 하나님께 붙들려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차원을 넘어 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출옥하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청탁한 것은 요셉의 평생에 한 번 있었던 흠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다윗에게도 밧세바 건이 있었던 것처럼.
4. 믿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만났을때?
요셉을 연구해 보면 해결 되지 않을 일이 없을 듯합니다. 현재 이 연구소가 당한 일도 요셉과 비교해서 못하지 않게 억울합니다. 평생을 그 부친 위해 전부를 다했는데 그 자녀들이 전과자로 만들며 온갖 말을 만들었습니다. 또 동지들 안에서도 혜택을 많이 받은 인물들일수록 또는 제일 앞에 섰던 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을 두고 우리를 돌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을 두고 기쁨과 사명에 충만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죄를 더 짓지 않아야 회개가 되니 이 차원에서 일부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보복심이나 땅의 것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어떤 일을 당했다 해도, 또 이 곳의 누구라도 우리의 평생이 늘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그의 평생을 볼 때 암3:7이나 딤전3:9에서 말씀하는 복음의 비밀을 아는 차원입니다. 창37:5의 말씀에서 요셉은 이방인에게 밝힐 수 없는 남 다른 비밀을 받았고 39:2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형통한 복을 주신 것을 볼 때 요셉은 팔려 갈 때 그 비밀이 진행 되는 과정에 충성했다는 뜻입니다. 팔려 가는 상황이 억울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알았다면 복음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찼다고 보입니다. 삼상21:2에서 다윗이 대제사장에게도 비밀을 지킨 것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는 나쁜 의도로 속이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비밀 때문에 밝히지 못하거나 사명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2. 박해에 대한 기본 인식
억울해야 하소연을 하거나 분풀이를 하는데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고 감옥으로 다시 가는 모든 과정을 박해로 본다 해도 마5:11 말씀을 아는 수준이고 5:12에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에 해당 될 수준이므로 그 핍박을 기뻐했을 것입니다. 비밀 수행에다 기뻐할 일이라면 당연히 입을 닫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팔아 먹은 형들과 누명을 씌운 보디발 아내를 두고 하나님께서 요셉에 주신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동원한 불쌍한 사람들로 동정할 신앙입니다.
이런 사실은 창45:5에서 형들에게 하나님의 일정 때문에 형들이 사용되었다고 밝혔다는 점과 20년이 넘어서 갑자기 만난 형들을 대하는 42:7의 태도를 보면 어떤 감정도 표출하지 않고 그들을 회개 시키기 위해 표정 하나 말 하나를 계산하며 대처합니다. 이런 평온한 마음은 요셉이 마5:2 이하의 8가지 복을 받을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갑자기 만난 형들을 상대하며 비밀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시므온을 잡아 두고 베냐민을 데려 와 보라 합니다.
3. 반론이 제기 될 성구
창40:15에서 요셉은 출옥할 사람에게 자기 일을 호소하고 바로에게 청탁을 넣었습니다. 복음의 비밀 수행을 깨 버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주권 섭리 역사를 믿지 않은 행위가 되며 마5장의 복 된 행동과 다르게 보입니다. 이 때의 요셉이 원래의 요셉이었다면 이 날 이전의 요셉은 팔려 갈 때 비명을 지르고 팔려 가면서 탈출을 기도하고 보디발 집에서 거품을 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창39:4, 22에서 보디발과 전옥이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돌아 보지 않았다는 신임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사람이란 실제 억울할 때도 억울하다 하겠지만, 실제로는 억울하지 않아도 착각을 하게 되면 억울하게 느낄 것이고 그 억울함은 분노가 되고 어느 날 주인에게 칼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정이 없는 사람이 없고 인간이란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에 나서는데 보디발과 전옥은 요셉에게서 이런 점이 없었기 때문에 요셉에게 맡기는 것은 뒤 탈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 인간들은 속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보디발 집에서 또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한 것을 볼 때 아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께 요셉은 인정을 받았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형들의 상황을 보디발에게 말하지 않았듯이, 감옥에서 보디발 부부에게 원망하지 않고 비밀을 잘 지켰을 듯합니다. 훗날 요셉이 총리가 되어 애굽의 전권을 쥐었을 때 보디발 부부에게 보복을 했을까? 형들을 대하는 것을 보니 알 수가 있고, 또 애굽의 왕과 신하와 백성까지 모든 종류의 상하 전부가 요셉을 다 마음에 우러 나오며 순종하는 것을 볼 때 요셉은 하나님께 붙들려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차원을 넘어 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출옥하는 술 맡은 관원장에게 청탁한 것은 요셉의 평생에 한 번 있었던 흠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다윗에게도 밧세바 건이 있었던 것처럼.
4. 믿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만났을때?
요셉을 연구해 보면 해결 되지 않을 일이 없을 듯합니다. 현재 이 연구소가 당한 일도 요셉과 비교해서 못하지 않게 억울합니다. 평생을 그 부친 위해 전부를 다했는데 그 자녀들이 전과자로 만들며 온갖 말을 만들었습니다. 또 동지들 안에서도 혜택을 많이 받은 인물들일수록 또는 제일 앞에 섰던 이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요셉을 두고 우리를 돌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을 두고 기쁨과 사명에 충만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죄를 더 짓지 않아야 회개가 되니 이 차원에서 일부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보복심이나 땅의 것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질문자께서 어떤 일을 당했다 해도, 또 이 곳의 누구라도 우리의 평생이 늘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