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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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5 06:02
1. 총공회 목회자 분들은 투표를 일반적으로 하십니까? 안하십니까? 공회별로 각각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설교록에 보면 교인들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2. 백목사님은 살아 생전에 투표를 몇 번 정도 하셨나요?
3. 총공회의 투표관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지 아니면 적극 권장하는지 안한다면 왜 안하는지 교인들에게는 투표하라 하면서 목회자는 안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목회자가 투표에 관한 언급을 안한다면 교인들은 선거 투표를 어떤 마음 자세나 중심으로 상대해야 하는지 선거 투표도 목회 지도의 범주 안에 든다면 설교에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는지 아니면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하는 것이 좋은지...
4. 선거 투표에 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주신다면.
유대 민족(신자)을 말살하려는 하만(왼쪽)의 계략과 거짓말의 선동 책동을 알게 된 모르드개(오른쪽)와 에스더는 금식하며 기도한 후 행동으로 옮겨 왕(주권자)에게 호소(표현)하여 유대 민족을 죽음(적화)으로부터 구출합니다
에스더의 금식기도처럼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 표현이다
말하는 독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5. 지금은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이 밀릴 때보다 더 위태로와 보입니다 기도하고 왕에게 호소했던 에스더처럼 믿는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아말렉과의 전투 때 아론. 훌. 모세의 기도에 합하여 전장에 나갔던 여호수아처럼 .
6. 6.25때 부산에 모인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금식 철야 기도와 연합군의 행동인 인천상륙작전의 결과처럼 지금도 기도와 함께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7. 바벨론 포로처럼 70년 회개로 접어드는 환란 초입의 기간이라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야 하겠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북한을 남한에 붙여 달라는 그 기도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선거와 함께 믿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성경의 예에서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설교록에 보면 교인들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2. 백목사님은 살아 생전에 투표를 몇 번 정도 하셨나요?
3. 총공회의 투표관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지 아니면 적극 권장하는지 안한다면 왜 안하는지 교인들에게는 투표하라 하면서 목회자는 안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목회자가 투표에 관한 언급을 안한다면 교인들은 선거 투표를 어떤 마음 자세나 중심으로 상대해야 하는지 선거 투표도 목회 지도의 범주 안에 든다면 설교에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는지 아니면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하는 것이 좋은지...
4. 선거 투표에 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주신다면.
유대 민족(신자)을 말살하려는 하만(왼쪽)의 계략과 거짓말의 선동 책동을 알게 된 모르드개(오른쪽)와 에스더는 금식하며 기도한 후 행동으로 옮겨 왕(주권자)에게 호소(표현)하여 유대 민족을 죽음(적화)으로부터 구출합니다
에스더의 금식기도처럼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 표현이다
말하는 독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5. 지금은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이 밀릴 때보다 더 위태로와 보입니다 기도하고 왕에게 호소했던 에스더처럼 믿는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아말렉과의 전투 때 아론. 훌. 모세의 기도에 합하여 전장에 나갔던 여호수아처럼 .
6. 6.25때 부산에 모인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금식 철야 기도와 연합군의 행동인 인천상륙작전의 결과처럼 지금도 기도와 함께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7. 바벨론 포로처럼 70년 회개로 접어드는 환란 초입의 기간이라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야 하겠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북한을 남한에 붙여 달라는 그 기도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선거와 함께 믿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성경의 예에서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회와 세상)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바닷물과 배의 관계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움직일 수 없는데 그 바닷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침몰합니다. 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세상이 없는 교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이 없는 구원도 없습니다. 불교는 세상을 미워하는 염세주의라 세상을 등지고 살지만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가 침몰하듯이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는 죽어버립니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정치뿐만 아니고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 역시 세상의 하나이므로 교회와 끊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세상은 교회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현실이고 정치 역시 그 현실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나 현실 속에 들어 있는 정치의 상황은 알아야 하고 구원에 유익되도록 필요한 말은 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 정치 상황에 따라 믿는 사람의 구원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모든 현실은 동일합니다. 외부로는 크게 차이 나는 같으나 들어가 보면 전부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역사입니다. 여당도 야당도 세상이며 모두 현실입니다. 교회를 싫어하는 세력이 잡고 있어도, 그 반대쪽이 잡아도 모두 세상이며 우리의 현실입니다. 좋고 나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추위도 필요하고 더위도 필요합니다. 따뜻한 봄날도 서늘한 가을도 필요합니다. 다 필요해서 주시는 세상이고 현실들입니다.
문제는 어린 신앙, 자라나는 주일학생들이 문제입니다. 교회에 대한 비호감 세력이 계속 잡고 있으면 장성한 신앙은 어떤 경우라도 상관이 없지만 어린 신앙들은 신앙생활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당장 어떻게 하지는 않겠지만 교묘하게, 치밀하게, 세월 속에 서서히 쪼여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고 앞선 신앙의 사람들의 책임이 더 막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날이 암담하고 심히 걱정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이니,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과 천국을 향하여 변함없는 우리의 길을 걸어가면 모든 것은 복되게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질문별로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1. 총공회 목회자 분들은 투표를 일반적으로 하십니까? 안하십니까? 공회별로 각각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는 분도 있고 안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라거나 또는 하지 말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총공회에 속한 공회들은 다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교록에 보면 교인들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2. 백목사님은 살아 생전에 투표를 몇 번 정도 하셨나요?
->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필요에 따라 투표를 하실 때도 있고 안 하실 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평안한 때는 안 하셨을 것 같고, 시국이 위험할 때는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3. 총공회의 투표관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지, 아니면 적극 권장하는지, 안한다면 왜 안하는지, 교인들에게는 투표하라 하면서 목회자는 안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목회자가 투표에 관한 언급을 안한다면 교인들은 선거 투표를 어떤 마음 자세나 중심으로 상대해야 하는지, 선거 투표도 목회 지도의 범주 안에 든다면 설교에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는지 아니면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하는 것이 좋은지...
-> 꼭 할 것도 아니고 꼭 안 할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시국이 평안하다면 굳이 하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위험한 시국이면 상황을 설명하면서 꼭 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평안과 위험의 기준은 교회자유 신앙의 자유를 기준으로 합니다.
선거 투표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고 이것 역시 현실이므로 신앙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언급하지는 않아도 신앙생활에 유익된 방향으로 관련된 설명은 설교시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4. 선거 투표에 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주신다면.
유대 민족(신자)을 말살하려는 하만(왼쪽)의 계략과 거짓말의 선동 책동을 알게 된 모르드개(오른쪽)와 에스더는 금식하며 기도한 후 행동으로 옮겨 왕(주권자)에게 호소(표현)하여 유대 민족을 죽음(적화)으로부터 구출합니다
에스더의 금식기도처럼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 표현이다
말하는 독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선거 투표는 다수가결의 원칙입니다. 세상은 다수가결을 모든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습니다. 공회는 종다수의 결과는 타락인 줄 알기 때문에 배제하고 전리전원일치를 신앙의 중요한 노선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전원일치의 합의하에서 필요에 따라 다수결을 채택할 때도 있습니다. 교역자 시무투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면은 다수결이라기보다 최대한 구원 중심으로 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의 표현이다’라는 것은, 교회에서 시무투표라든지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의 투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 선거를 두고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구 인용은 최대한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래 성구들은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사도행전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행15: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빌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5. 지금은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이 밀릴 때보다 더 위태로와 보입니다 기도하고 왕에게 호소했던 에스더처럼 믿는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아말렉과의 전투 때 아론. 훌. 모세의 기도에 합하여 전장에 나갔던 여호수아처럼 .
-> 현재 시국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의 판단에 동감합니다. 그때보다 더 위태로운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 정치에 나서서 무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이 개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야 자유지만 교회 이름으로 세상 운동을 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교회도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위태로움을 주시는지 찾아봐야 하고, 각자 깨달아지는 대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노를 풀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이러나저러나 세상입니다. 지금의 여당도 세상이고 지금의 야당이 권력을 잡아도 역시 세상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교회를 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생명 있는 교회는 그 세상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둠에 가까운 세상이 계속되면 밤중이 가까운 것이니 반시동안의 고요한 때를 주신 지금 빨리 기름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교회에 대한 비호감이 덜한 쪽이 강해지면 아직은 좀 더 기회를 주신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역시 교회를 삼키는 역사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어린 신앙들 때문에 그리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6. 6.25때 부산에 모인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금식 철야 기도와 연합군의 행동인 인천상륙작전의 결과처럼 지금도 기도와 함께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절대 주권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교회를 향합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은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떠함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교회자유 신앙자유가 위태로우면,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었던 때에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천국을 향한 신앙생활에 전력하지 못하고 교회가 인본과 세본과 유물주의로 살았던 것을 철저히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유를 빼앗아 가셨으니 지금까지 교회가 드린 예배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잡아 산제사로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스트레스 풀 듯이 믿는 사람은 예배를 통하여, 찬송을 통하여, 예배시간 말씀을 통하여 세상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 푸는 신명풀이로 예배드리지 않았는지, 말씀은 간곳없고 인간의 주관과 감정으로만 예배드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7. 바벨론 포로처럼 70년 회개로 접어드는 환란 초입의 기간이라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야 하겠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북한을 남한에 붙여 달라는 그 기도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선거와 함께 믿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성경의 예에서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교회가 속화된 모습 중 하나가 결혼의 모습입니다. 만혼이 예사이고 소위 비혼도 예사이며,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가정이 다 무너진 시대가 되어습니다.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는 항상 주일학생과 중간반 학생들을 앞세우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교회 전체를 두고는 자라나는 새싹들을 앞세워 기도할 명분이 없다고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공회교회들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되는 천국의 귀한 보배들이 정말 깨끗하게 순수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귀하고 보배롭습니다. 이런 귀한 보배들이 살아갈 세상에 신앙의 자유가 없다면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장년반을 보면 기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데 깨끗한 주일학생들 보면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주님의 진노와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애가2:18의역)’ 백 목사님 생전에 남침 위험이 있을 때마다 외친 회개의 말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지금 교회가 할 일은 가장 먼저 회개의 이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동시에 밤중을 대비한 기름준비가 급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엘2:12-14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바닷물과 배의 관계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움직일 수 없는데 그 바닷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침몰합니다. 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갑니다. 세상이 없는 교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이 없는 구원도 없습니다. 불교는 세상을 미워하는 염세주의라 세상을 등지고 살지만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닷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가 침몰하듯이 세상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는 죽어버립니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세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정치뿐만 아니고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치 역시 세상의 하나이므로 교회와 끊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세상은 교회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현실이고 정치 역시 그 현실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나 현실 속에 들어 있는 정치의 상황은 알아야 하고 구원에 유익되도록 필요한 말은 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 정치 상황에 따라 믿는 사람의 구원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모든 현실은 동일합니다. 외부로는 크게 차이 나는 같으나 들어가 보면 전부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역사입니다. 여당도 야당도 세상이며 모두 현실입니다. 교회를 싫어하는 세력이 잡고 있어도, 그 반대쪽이 잡아도 모두 세상이며 우리의 현실입니다. 좋고 나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추위도 필요하고 더위도 필요합니다. 따뜻한 봄날도 서늘한 가을도 필요합니다. 다 필요해서 주시는 세상이고 현실들입니다.
문제는 어린 신앙, 자라나는 주일학생들이 문제입니다. 교회에 대한 비호감 세력이 계속 잡고 있으면 장성한 신앙은 어떤 경우라도 상관이 없지만 어린 신앙들은 신앙생활 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당장 어떻게 하지는 않겠지만 교묘하게, 치밀하게, 세월 속에 서서히 쪼여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자유를 누리고 앞선 신앙의 사람들의 책임이 더 막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날이 암담하고 심히 걱정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이니,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과 천국을 향하여 변함없는 우리의 길을 걸어가면 모든 것은 복되게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질문별로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1. 총공회 목회자 분들은 투표를 일반적으로 하십니까? 안하십니까? 공회별로 각각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는 분도 있고 안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라거나 또는 하지 말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총공회에 속한 공회들은 다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교록에 보면 교인들에게 투표하라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2. 백목사님은 살아 생전에 투표를 몇 번 정도 하셨나요?
->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필요에 따라 투표를 하실 때도 있고 안 하실 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평안한 때는 안 하셨을 것 같고, 시국이 위험할 때는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3. 총공회의 투표관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지, 아니면 적극 권장하는지, 안한다면 왜 안하는지, 교인들에게는 투표하라 하면서 목회자는 안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목회자가 투표에 관한 언급을 안한다면 교인들은 선거 투표를 어떤 마음 자세나 중심으로 상대해야 하는지, 선거 투표도 목회 지도의 범주 안에 든다면 설교에 얼마든지 언급할 수 있는지 아니면 최소화하거나 아예 안하는 것이 좋은지...
-> 꼭 할 것도 아니고 꼭 안 할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시국이 평안하다면 굳이 하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위험한 시국이면 상황을 설명하면서 꼭 하라고 할 것 같습니다. 평안과 위험의 기준은 교회자유 신앙의 자유를 기준으로 합니다.
선거 투표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고 이것 역시 현실이므로 신앙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언급하지는 않아도 신앙생활에 유익된 방향으로 관련된 설명은 설교시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4. 선거 투표에 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 주신다면.
유대 민족(신자)을 말살하려는 하만(왼쪽)의 계략과 거짓말의 선동 책동을 알게 된 모르드개(오른쪽)와 에스더는 금식하며 기도한 후 행동으로 옮겨 왕(주권자)에게 호소(표현)하여 유대 민족을 죽음(적화)으로부터 구출합니다
에스더의 금식기도처럼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 표현이다
말하는 독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선거 투표는 다수가결의 원칙입니다. 세상은 다수가결을 모든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습니다. 공회는 종다수의 결과는 타락인 줄 알기 때문에 배제하고 전리전원일치를 신앙의 중요한 노선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전원일치의 합의하에서 필요에 따라 다수결을 채택할 때도 있습니다. 교역자 시무투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면은 다수결이라기보다 최대한 구원 중심으로 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선거는 기도의 또 다른 의지의 표현이다’라는 것은, 교회에서 시무투표라든지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의 투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 선거를 두고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구 인용은 최대한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래 성구들은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사도행전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행15: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빌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5. 지금은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이 밀릴 때보다 더 위태로와 보입니다 기도하고 왕에게 호소했던 에스더처럼 믿는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입니까?
아말렉과의 전투 때 아론. 훌. 모세의 기도에 합하여 전장에 나갔던 여호수아처럼 .
-> 현재 시국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의 판단에 동감합니다. 그때보다 더 위태로운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세상 정치에 나서서 무엇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이 개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야 자유지만 교회 이름으로 세상 운동을 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교회도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위태로움을 주시는지 찾아봐야 하고, 각자 깨달아지는 대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노를 풀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이러나저러나 세상입니다. 지금의 여당도 세상이고 지금의 야당이 권력을 잡아도 역시 세상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교회를 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생명 있는 교회는 그 세상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둠에 가까운 세상이 계속되면 밤중이 가까운 것이니 반시동안의 고요한 때를 주신 지금 빨리 기름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교회에 대한 비호감이 덜한 쪽이 강해지면 아직은 좀 더 기회를 주신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역시 교회를 삼키는 역사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어린 신앙들 때문에 그리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6. 6.25때 부산에 모인 수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금식 철야 기도와 연합군의 행동인 인천상륙작전의 결과처럼 지금도 기도와 함께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예정과 절대 주권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교회를 향합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은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어떠함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교회자유 신앙자유가 위태로우면,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었던 때에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천국을 향한 신앙생활에 전력하지 못하고 교회가 인본과 세본과 유물주의로 살았던 것을 철저히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노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유를 빼앗아 가셨으니 지금까지 교회가 드린 예배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잡아 산제사로 드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스트레스 풀 듯이 믿는 사람은 예배를 통하여, 찬송을 통하여, 예배시간 말씀을 통하여 세상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 푸는 신명풀이로 예배드리지 않았는지, 말씀은 간곳없고 인간의 주관과 감정으로만 예배드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7. 바벨론 포로처럼 70년 회개로 접어드는 환란 초입의 기간이라면 하나님 뜻으로 받아야 하겠지만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 북한을 남한에 붙여 달라는 그 기도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선거와 함께 믿는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성경의 예에서 찾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교회가 속화된 모습 중 하나가 결혼의 모습입니다. 만혼이 예사이고 소위 비혼도 예사이며,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가정이 다 무너진 시대가 되어습니다. 교회마다 아이들이 없어서 주일학교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는 항상 주일학생과 중간반 학생들을 앞세우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교회 전체를 두고는 자라나는 새싹들을 앞세워 기도할 명분이 없다고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공회교회들은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되는 천국의 귀한 보배들이 정말 깨끗하게 순수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귀하고 보배롭습니다. 이런 귀한 보배들이 살아갈 세상에 신앙의 자유가 없다면 이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장년반을 보면 기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데 깨끗한 주일학생들 보면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주님의 진노와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애가2:18의역)’ 백 목사님 생전에 남침 위험이 있을 때마다 외친 회개의 말씀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지금 교회가 할 일은 가장 먼저 회개의 이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동시에 밤중을 대비한 기름준비가 급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엘2:12-14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