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사스와 같은 전염병일 때 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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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04:19
예배는 어떤 환란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공회입니다.
백 목사님의 일제 말기와 6.25 점령기에도 예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한폐렴과 사스와 같은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지요?
백 목사님의 일제 말기와 6.25 점령기에도 예배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한폐렴과 사스와 같은 문제가 있을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지요?
1. 나의 십자가
인민군이 막고 일제가 막아도, 내가 희생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전염병을 염려한다면 그 때는 그 사람이 결정하지 내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전쟁과 식민지 시기에 신앙을 막을 때도 주기철 손양원은 죽어도 맞섰지만, 그렇다고 신앙 없는 교인들을 맞서라고 밀어 넣지 않았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은 그 반대로 신앙이 없는 이들을 붙들고 함께 부딪히자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 남에게 그 사람의 십자가를 메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를 갔다가 전염병에 걸려 죽어도 갈 사람은 그 사람이 결정하고 그렇게 하면 신앙이지만 신앙 없는 사람에게 전염병을 감수하고 교회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2. 따라서
전염병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가 나도, 교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각자 자기 신앙에 따라 건강한 사람이 교회 갔다 병에 걸려 죽어도 좋은 사람은 알아서 가고, 그렇게 고생하기 싫은 사람은 오라 해도 오지 않을 터이니 오지 않겠다는 사람을 끌고 오는 것은 교회가 해서 안 되는 일입니다. 다만 내가 병에 걸렸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 내가 교회를 가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일을 시킬 수 있으니 나의 자유로 남의 자유를 막으면,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에 문제가 됩니다. 고전9장에서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해도 남을 위해 그 자유와 그 권한을 사용할 때 조심하고 잘 조절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인민군이 막고 일제가 막아도, 내가 희생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전염병을 염려한다면 그 때는 그 사람이 결정하지 내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전쟁과 식민지 시기에 신앙을 막을 때도 주기철 손양원은 죽어도 맞섰지만, 그렇다고 신앙 없는 교인들을 맞서라고 밀어 넣지 않았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은 그 반대로 신앙이 없는 이들을 붙들고 함께 부딪히자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 남에게 그 사람의 십자가를 메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교회를 갔다가 전염병에 걸려 죽어도 갈 사람은 그 사람이 결정하고 그렇게 하면 신앙이지만 신앙 없는 사람에게 전염병을 감수하고 교회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2. 따라서
전염병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가 나도, 교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각자 자기 신앙에 따라 건강한 사람이 교회 갔다 병에 걸려 죽어도 좋은 사람은 알아서 가고, 그렇게 고생하기 싫은 사람은 오라 해도 오지 않을 터이니 오지 않겠다는 사람을 끌고 오는 것은 교회가 해서 안 되는 일입니다. 다만 내가 병에 걸렸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 내가 교회를 가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일을 시킬 수 있으니 나의 자유로 남의 자유를 막으면,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에 문제가 됩니다. 고전9장에서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해도 남을 위해 그 자유와 그 권한을 사용할 때 조심하고 잘 조절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치사율도 낮고 현실적으로 감염됨 위험도 없겠지만
만약 여수 전체가 지역감염이 되어 정부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 나으 신앙을 막지 말라며 데모할거요^^
날짜와 장소에서 이젠 좀 벗어나구려
그리고 어린 신앙 좀 그만 우려먹구려 내자식 절벽에서 앵앵거린다고 내버려둘거 아님 말이지 쯧쯧
만약 여수 전체가 지역감염이 되어 정부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 나으 신앙을 막지 말라며 데모할거요^^
날짜와 장소에서 이젠 좀 벗어나구려
그리고 어린 신앙 좀 그만 우려먹구려 내자식 절벽에서 앵앵거린다고 내버려둘거 아님 말이지 쯧쯧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기본'이고,
그 시간 그 장소의 그 예배를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그리고 어느 정도 어떻게 지키느냐는 것은 각자의 양심이며,
이런 내용은 '교회론' 교리의 기본인데 이 것을 두고 탓하거나 이런 본질을 바꾸자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씀입니다.
교회의 전통과 역사와 교리와 노선에 대하여 덮어 놓고 튀고 보는 10대적인 반발 반항심은 이제 버릴 때인 듯합니다.
윗글을 잘 읽어 보시면, 공회 내의 무조건 과거 그대로를 재현하자는 측과 아주 다름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회 모든 것을 무조건 고치고 바꾸면 개선이라는 초기 섣부른 개혁주의는 이제 다시 평가할 때가 아닐지요?
여수를 콕 찍었는데 부산 대신동과 대티고개로 예를 들겠다.
그 곳 전체를 정부가 출입금지를 한다면 남정교회와 서부교회는 '예배 시간과 장소'를 여전히 개설합니다 라고 써붙인 다음, 그 교회들의 목사님들이든 장로님들이든 어린 교인들이든 그 시간 그 장소에 가고 말고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공회의 입장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느 건강한 분이 죽어도 가겠다면 교회가 막을 도리가 있습니까? 남정교회 서부교회 전체 교인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아무도 나오지 않고 빈 예배당인데 그 1명만 나오겠다면 그 자유는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시간 그 장소의 그 예배를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그리고 어느 정도 어떻게 지키느냐는 것은 각자의 양심이며,
이런 내용은 '교회론' 교리의 기본인데 이 것을 두고 탓하거나 이런 본질을 바꾸자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씀입니다.
교회의 전통과 역사와 교리와 노선에 대하여 덮어 놓고 튀고 보는 10대적인 반발 반항심은 이제 버릴 때인 듯합니다.
윗글을 잘 읽어 보시면, 공회 내의 무조건 과거 그대로를 재현하자는 측과 아주 다름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공회 모든 것을 무조건 고치고 바꾸면 개선이라는 초기 섣부른 개혁주의는 이제 다시 평가할 때가 아닐지요?
여수를 콕 찍었는데 부산 대신동과 대티고개로 예를 들겠다.
그 곳 전체를 정부가 출입금지를 한다면 남정교회와 서부교회는 '예배 시간과 장소'를 여전히 개설합니다 라고 써붙인 다음, 그 교회들의 목사님들이든 장로님들이든 어린 교인들이든 그 시간 그 장소에 가고 말고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공회의 입장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느 건강한 분이 죽어도 가겠다면 교회가 막을 도리가 있습니까? 남정교회 서부교회 전체 교인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아무도 나오지 않고 빈 예배당인데 그 1명만 나오겠다면 그 자유는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요?
쉽게 얘기합니다
있어어도 안되고 바리지도 않지만 어짜피 얘기는 가정 속에 진행하니 마저 말합니다
말씀하신 남정교회와 서부교회에서 지역감염이 발생하여 정부에서 교회를 폐쇄한다고 결정했을 시
각자의 신앙양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에볘당 문은 활짝열어 논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예볘를 드린다는 뜻인가요?
어린 신앙 따질 것 없이 저의 결정은 주일이든 아니든 누구도 폐쇄된 장소에 와서는 안된다는 말이고
님은 그래도 가겠다는겁니까? 아니면 옮겨서 예볘드린다는 겁니까?
님의 신앙의지는 확인하겠는데 분면히 말하죠 반댑니다
설마 여수전체란 제 말 속에 교회는 예외라고 해석하신 것은 아니겠죠??
있어어도 안되고 바리지도 않지만 어짜피 얘기는 가정 속에 진행하니 마저 말합니다
말씀하신 남정교회와 서부교회에서 지역감염이 발생하여 정부에서 교회를 폐쇄한다고 결정했을 시
각자의 신앙양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에볘당 문은 활짝열어 논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예볘를 드린다는 뜻인가요?
어린 신앙 따질 것 없이 저의 결정은 주일이든 아니든 누구도 폐쇄된 장소에 와서는 안된다는 말이고
님은 그래도 가겠다는겁니까? 아니면 옮겨서 예볘드린다는 겁니까?
님의 신앙의지는 확인하겠는데 분면히 말하죠 반댑니다
설마 여수전체란 제 말 속에 교회는 예외라고 해석하신 것은 아니겠죠??
손양원은 적이 밀려 오는데 피난을 가지 않았다 합니다. 그런데 적이 오지 않던 때도 애양원을 늘 비웠습니다.
손양원이 죽고 싶어 기다리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장을 나가든 애양원교회는 예배당의 문을 여는 것이 맞고
백영희도 몸이 좋지 않으면 강단에 서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강단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부산에 계엄령이 내려 외부 출입이 집행되고 여수에 반란사건이 발생하여 1948년 10월에 통금이 실시되어도
교회의 예배당 문은 열어 두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남정 서부 신풍의 목사들과 전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볼 때 우한폐렴에 걸려 남에게 전염이 될 상황이면 예배당에 가지 않을 사람이고 누가 감염이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를 출입금지 시킨다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나가지 않겠지만, 교회란 성령의 역사를 세상 판단에 100% 종속 시키지 않으며 그렇게 시킬 수가 없습니다. 소개령이 내려 지거나 통행금지령이 집행되면 기독교는 로마서 13장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하고 정권에 따릅니다.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처럼. 그러나 '교회'의 '예배'는 그 어떤 성령의 사람이 그 어떤 별도의 인도를 따라 설교를 하든 출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특수 사례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조처하지는 못합니다.
1980년까지 우리 나라는 밤 10시에서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공회는 이 통금을 늘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특이한 경우에, 정말 이 통금을 지키지 않고 교회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경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란 절대 있어서는 아니 되는가?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기 때문에 평생 통금을 지키든 목사가 어느 하루는 그 통금을 무시하고 움직인 경우도 있고, 그 교회 목사는 평생 그 통금을 지켰으나 그 교회에 어느 교인이 어떤 특별한 상황 때문에 전국의 통금과 교회가 늘 지켜 오던 통금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세상 법은 '절대'가 없습니다. 통금조처란 통금조처로만 받아 들이지 예외가 없는 종교의 교리 차원의 통금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교회의 예배 노선과 예배 교리란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시간을 교인들의 생활에 맞추어 결정하되 그 결정은 교인의 전반적 형편을 고려하여 신앙으로 자라 가는 과정에 필요한 정도로 맞추지 순간도 그냥 잊지 못해서 괜히 바꿔 보는 그런 식의 변덕스런 결정은 금지가 되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뻔한 것인데도 쉽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예배'라는 것만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이기 때문에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가 그들 세대의 그들 취향에 맞춰 아무리 애정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 해도 부모 앞에서는 약간의 선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모 앞에서도 못할 행동을 하면서 그 행동을 사랑의 거침 없는 표현의 자유라고 밀고 나가면 그 가정은 친부모 친형제 자매 사이가 허물어 지면서 요즘 흔하게 접하는 소식을 그 가정에서도 접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구약에서 짐승과 관계를 금지한 선을 넘어 가며 악화 일로를 걷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갑갑해도, 아무리 기가 막혀도, '예배'만은 예배의 최소한 지킬 몇 가지는 지켜 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닫지 못한다. 예배는 진행 된다. 적어도 기독교가 종교라면 그렇게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교회 목사와 교인 전체가 건강 문제로 다른 사람을 위협할 수 없어 출입을 하지 않는다 해도!
손양원이 죽고 싶어 기다리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장을 나가든 애양원교회는 예배당의 문을 여는 것이 맞고
백영희도 몸이 좋지 않으면 강단에 서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강단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부산에 계엄령이 내려 외부 출입이 집행되고 여수에 반란사건이 발생하여 1948년 10월에 통금이 실시되어도
교회의 예배당 문은 열어 두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남정 서부 신풍의 목사들과 전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볼 때 우한폐렴에 걸려 남에게 전염이 될 상황이면 예배당에 가지 않을 사람이고 누가 감염이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를 출입금지 시킨다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나가지 않겠지만, 교회란 성령의 역사를 세상 판단에 100% 종속 시키지 않으며 그렇게 시킬 수가 없습니다. 소개령이 내려 지거나 통행금지령이 집행되면 기독교는 로마서 13장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하고 정권에 따릅니다. 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처럼. 그러나 '교회'의 '예배'는 그 어떤 성령의 사람이 그 어떤 별도의 인도를 따라 설교를 하든 출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특수 사례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조처하지는 못합니다.
1980년까지 우리 나라는 밤 10시에서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었습니다. 공회는 이 통금을 늘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특이한 경우에, 정말 이 통금을 지키지 않고 교회를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경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란 절대 있어서는 아니 되는가?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기 때문에 평생 통금을 지키든 목사가 어느 하루는 그 통금을 무시하고 움직인 경우도 있고, 그 교회 목사는 평생 그 통금을 지켰으나 그 교회에 어느 교인이 어떤 특별한 상황 때문에 전국의 통금과 교회가 늘 지켜 오던 통금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세상 법은 '절대'가 없습니다. 통금조처란 통금조처로만 받아 들이지 예외가 없는 종교의 교리 차원의 통금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교회의 예배 노선과 예배 교리란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시간을 교인들의 생활에 맞추어 결정하되 그 결정은 교인의 전반적 형편을 고려하여 신앙으로 자라 가는 과정에 필요한 정도로 맞추지 순간도 그냥 잊지 못해서 괜히 바꿔 보는 그런 식의 변덕스런 결정은 금지가 되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뻔한 것인데도 쉽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예배'라는 것만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이기 때문에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가 그들 세대의 그들 취향에 맞춰 아무리 애정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 해도 부모 앞에서는 약간의 선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모 앞에서도 못할 행동을 하면서 그 행동을 사랑의 거침 없는 표현의 자유라고 밀고 나가면 그 가정은 친부모 친형제 자매 사이가 허물어 지면서 요즘 흔하게 접하는 소식을 그 가정에서도 접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구약에서 짐승과 관계를 금지한 선을 넘어 가며 악화 일로를 걷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갑갑해도, 아무리 기가 막혀도, '예배'만은 예배의 최소한 지킬 몇 가지는 지켜 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닫지 못한다. 예배는 진행 된다. 적어도 기독교가 종교라면 그렇게 말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교회 목사와 교인 전체가 건강 문제로 다른 사람을 위협할 수 없어 출입을 하지 않는다 해도!
쪽박은 깨지 말라고 영업방해는 하지 말아야겠죠^^ (적을 옆에 두고 의사전달을 할 때 눈빛만 교환해도 된다는 뜻)
빨갱이도 아니고 시체팔이도 지겹긴 한데 그게 본질이 아니니 다른거 다 넘어가고
말씀처럼 텅빈 예볘당에 저 혼자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그렇게 사람 목숨도 무시할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까????????????
빨갱이도 아니고 시체팔이도 지겹긴 한데 그게 본질이 아니니 다른거 다 넘어가고
말씀처럼 텅빈 예볘당에 저 혼자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그렇게 사람 목숨도 무시할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텅 빈 공간이 무의미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 순간을 위해 평생 사력을 다하기도 하겠지요?
우리는 지금 종교계의 神을 상대할 때를 논하고 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의 고난조차 냉정하게 살펴 보면 혼자 뭐에 씌인 듯 걸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생생하게 그 분들의 생존 당시와 고난의 순간을 겪어 본 분들 그 분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며 그 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의외로 황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공회가 주교생이나 사람을 모을 때는 정신 없이 뛰어 다니며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어떤 때는 혼자 앉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면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한 순간을 위해 평생 사력을 다하기도 하겠지요?
우리는 지금 종교계의 神을 상대할 때를 논하고 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의 고난조차 냉정하게 살펴 보면 혼자 뭐에 씌인 듯 걸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생생하게 그 분들의 생존 당시와 고난의 순간을 겪어 본 분들 그 분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며 그 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의외로 황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공회가 주교생이나 사람을 모을 때는 정신 없이 뛰어 다니며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어떤 때는 혼자 앉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면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말기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고 백영희 목사님께서 예볘드린거 확실한겁니까^^
일제 말기로 갈 것도 없이 1952년에 서부교회로 오셔서 1989년 돌아 가실 때까지 백 목사님과 서부교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지켜 내기 위해 투쟁한 적이 없습니다.
필요하면 시간을 변경했고, 필요하면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공회를 개혁한다면서 체육관에서 교인 단합대회를 한다면서 고정 예배 시간과 장소를 옮긴 적은 없습니다.
예배 장소로 정한 곳에 갈 수 없을 때는 이리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저리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간도 자주 변경했습니다. 다만 다른 교회와 비교를 하면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할 정도였습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원칙은 절대 불변의 원칙이 아닙니다. 하도 참새들처럼 몰려 다니고 정신도 차리지 못할 만큼 변경을 하니까 그러지 말라는 원칙입니다. 공회의 역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반발심 가진 분들의 오도 된 비판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를 아는 사람은 이 글에 동의할 것이고 당시를 모르는 사람은 이 글의 사실 관계를 좀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지켜 내기 위해 투쟁한 적이 없습니다.
필요하면 시간을 변경했고, 필요하면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공회를 개혁한다면서 체육관에서 교인 단합대회를 한다면서 고정 예배 시간과 장소를 옮긴 적은 없습니다.
예배 장소로 정한 곳에 갈 수 없을 때는 이리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저리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간도 자주 변경했습니다. 다만 다른 교회와 비교를 하면 거의 변경하지 않았다 할 정도였습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원칙은 절대 불변의 원칙이 아닙니다. 하도 참새들처럼 몰려 다니고 정신도 차리지 못할 만큼 변경을 하니까 그러지 말라는 원칙입니다. 공회의 역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반발심 가진 분들의 오도 된 비판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를 아는 사람은 이 글에 동의할 것이고 당시를 모르는 사람은 이 글의 사실 관계를 좀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 ...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원칙은 절대 불변의 원칙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씀하셨으니 이후론 (님의 말씀에) 경청만 하겠습니다
근데 맨 위에 담당님의 " ...전염병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가 나도, 교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라는 말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의무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씀하셨으니 이후론 (님의 말씀에) 경청만 하겠습니다
근데 맨 위에 담당님의 " ...전염병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가 나도, 교회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다."라는 말씀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의무는 아닙니다)
경청을 감사하며,
선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더 중요한 약속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이 일반적으로 평소 신앙 생활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약속이 예배 시간입니다. 외부에서 막고 나서면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외부에서 막기 전에 교회가 어린 신앙을 길러 가는 과정에 필요하면 바꿀 수도 있는 것이며 바꾸지 않는 것이 더 나으면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문은 열어 두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문까지 닫자는 말을 할 경우는 제가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없을 듯합니다. 문은 열어 두지만 올 사람이 없으면 비는 것이고 1명이 오면 한 명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교회 문을 닫으라는 행정 명령이 내려 지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두고 주변 몇 사람과 교회 회의 때 심도 있게 여러 면을 살펴 봤습니다. 질문 또는 지적하신 분께서도 여러 면으로 살펴 봐 주시고 또 주변에 여러 사례로 따져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 어려움이 없을 내용으로 결론을 지웠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상 명령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휴전선을 넘어 복음을 전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는 빠를수록 좋다는 노선을 견지해 왔으나 통금 시절에 통금 때문에 새벽 4시 30분까지만 예배를 당겼습니다. 만일 행정명령을 통해 예배당을 선거 투표소로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공회는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경찰과 시청에서 인원을 동원한다면 그 분들과 멱살을 잡고 예배당의 대문과 시설을 지켜 내지는 않습니다. 배우는 입장에 있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입장에 계시니 일단 이 정도의 입장을 전합니다. 저도 경청해 보겠습니다. 공회는 정부의 법령에 맞서는 초법 반국가 단체가 아닙니다.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요구한다 해도 전부를 따르지도 않습니다. 이 것을 먼저 정리해 보시면 이 번 대화는 서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설명하는 제가 제시한 원리에 전염병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잘못 발언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경우는 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대처 방법을 바꾸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질문 또는 지적하신 분도 원리를 먼저 정리해 보신다면 저처럼 교회 문은 당연히 여는 것이고, 그리고 출결은 당연히 모든 교인의 자기 신앙과 자기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결론이 날 듯합니다.
선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 더 중요한 약속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이 일반적으로 평소 신앙 생활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약속이 예배 시간입니다. 외부에서 막고 나서면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외부에서 막기 전에 교회가 어린 신앙을 길러 가는 과정에 필요하면 바꿀 수도 있는 것이며 바꾸지 않는 것이 더 나으면 바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문은 열어 두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문까지 닫자는 말을 할 경우는 제가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없을 듯합니다. 문은 열어 두지만 올 사람이 없으면 비는 것이고 1명이 오면 한 명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교회 문을 닫으라는 행정 명령이 내려 지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두고 주변 몇 사람과 교회 회의 때 심도 있게 여러 면을 살펴 봤습니다. 질문 또는 지적하신 분께서도 여러 면으로 살펴 봐 주시고 또 주변에 여러 사례로 따져 봐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무 어려움이 없을 내용으로 결론을 지웠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상 명령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공회는 휴전선을 넘어 복음을 전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새벽예배는 빠를수록 좋다는 노선을 견지해 왔으나 통금 시절에 통금 때문에 새벽 4시 30분까지만 예배를 당겼습니다. 만일 행정명령을 통해 예배당을 선거 투표소로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공회는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경찰과 시청에서 인원을 동원한다면 그 분들과 멱살을 잡고 예배당의 대문과 시설을 지켜 내지는 않습니다. 배우는 입장에 있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입장에 계시니 일단 이 정도의 입장을 전합니다. 저도 경청해 보겠습니다. 공회는 정부의 법령에 맞서는 초법 반국가 단체가 아닙니다.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요구한다 해도 전부를 따르지도 않습니다. 이 것을 먼저 정리해 보시면 이 번 대화는 서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설명하는 제가 제시한 원리에 전염병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잘못 발언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경우는 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대처 방법을 바꾸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질문 또는 지적하신 분도 원리를 먼저 정리해 보신다면 저처럼 교회 문은 당연히 여는 것이고, 그리고 출결은 당연히 모든 교인의 자기 신앙과 자기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결론이 날 듯합니다.
도대체 이런 글 남기는 사람. 본명 밝히고 웃으시죠!
저를 지칭하시는거 같은데
음..
길을 가고 있는데 (물론 곱게 가지 않았으니 주의를 끌었겠죠^^)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이름이 뭐요 묻습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홍길동입니다. 라고 묻자마자 대답해여 할까요??
아마 뭔 개소리지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다수일겁니다
님께 여쭙줘 제 이름을 알고 싶은 님의 간절함이 어느 정도입니까?
그 간절함을 제게 알려주시면 님께만 알려드리죠
혹시 온라인 상 익명의 공간이라고 분탕질만 치는 그런 호로 잡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크게 잘못 보신겁니다
제가 콤퓨터에 정말 정말 문외한이긴 해도 적어도 관리자가 맘만 먹으면 저의 실제 거주지를 아는게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쉽다는 정도는 압니다
기가 차서 한마디님
이제 님의 간절함을 보여주세요 제가 님께만 제 이름을 알려드리죠
단, 입바른 소리 말고 천박한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돈(금액)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래요
당신은 저의 이름을 알기 위해 얼마를 기꺼이 지불하시겠습니까?
음..
길을 가고 있는데 (물론 곱게 가지 않았으니 주의를 끌었겠죠^^)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이름이 뭐요 묻습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홍길동입니다. 라고 묻자마자 대답해여 할까요??
아마 뭔 개소리지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다수일겁니다
님께 여쭙줘 제 이름을 알고 싶은 님의 간절함이 어느 정도입니까?
그 간절함을 제게 알려주시면 님께만 알려드리죠
혹시 온라인 상 익명의 공간이라고 분탕질만 치는 그런 호로 잡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크게 잘못 보신겁니다
제가 콤퓨터에 정말 정말 문외한이긴 해도 적어도 관리자가 맘만 먹으면 저의 실제 거주지를 아는게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쉽다는 정도는 압니다
기가 차서 한마디님
이제 님의 간절함을 보여주세요 제가 님께만 제 이름을 알려드리죠
단, 입바른 소리 말고 천박한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돈(금액)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래요
당신은 저의 이름을 알기 위해 얼마를 기꺼이 지불하시겠습니까?
익명이라는 가면뒤에서 언어유희를 하시는군요.
익명도 이 곳이 허락한 이상 익명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익명을 허락한 것은 그 단점도 있으나 그 장점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면밀하게 많은 면을 계산해 봤습니다.
익명의 단점 중에 하나는 실명일 때 하지 않을 표현이 나옵니다.
익명의 보호를 받아 내면을 표시하면 우리는 영안이 어두워 남을 잘 모르는데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어떻게 표현해도
평양이 지상낙원 되지 않는 것처럼, 남한 좌파가 남한을 지옥이라 해도 월북하지 않는 행동이 다 말을 합니다.
표현이 좋지 않은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신앙의 사람으로서는 좋지 않습니다. 적은 분도 적어 놓고 세월을 통해 아쉬워 할 것이고
표현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나 시대를 향해 외친 음성이면 복음으로 드러 날 것입니다.
현재 총공회와 교계 어느 곳에도
이 곳처럼 로그인 없이 완전 익명으로 자유롭게 운영자나 운영 방향조차 제한 없이 질타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이미 이 곳은 괜찮은 곳입니다. 북한에는 수령님을 향해 손가락만 잘못 되도 끝장이 납니다. 총공회와 교계 사이트에는 하나님의 종들을 비판하면 안 된다 하여 언로를 전부 막아 놓았습니다. 이 곳에서 이 정도 꾸지람을 듣고 또 풀무에 단련이 된다 해도 더 나아 질 기회입니다. 만일 이 곳의 비판들이 틀렸다면.
익명을 허락한 것은 그 단점도 있으나 그 장점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면밀하게 많은 면을 계산해 봤습니다.
익명의 단점 중에 하나는 실명일 때 하지 않을 표현이 나옵니다.
익명의 보호를 받아 내면을 표시하면 우리는 영안이 어두워 남을 잘 모르는데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어떻게 표현해도
평양이 지상낙원 되지 않는 것처럼, 남한 좌파가 남한을 지옥이라 해도 월북하지 않는 행동이 다 말을 합니다.
표현이 좋지 않은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신앙의 사람으로서는 좋지 않습니다. 적은 분도 적어 놓고 세월을 통해 아쉬워 할 것이고
표현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곳이나 시대를 향해 외친 음성이면 복음으로 드러 날 것입니다.
현재 총공회와 교계 어느 곳에도
이 곳처럼 로그인 없이 완전 익명으로 자유롭게 운영자나 운영 방향조차 제한 없이 질타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이미 이 곳은 괜찮은 곳입니다. 북한에는 수령님을 향해 손가락만 잘못 되도 끝장이 납니다. 총공회와 교계 사이트에는 하나님의 종들을 비판하면 안 된다 하여 언로를 전부 막아 놓았습니다. 이 곳에서 이 정도 꾸지람을 듣고 또 풀무에 단련이 된다 해도 더 나아 질 기회입니다. 만일 이 곳의 비판들이 틀렸다면.
최근에 신풍교인이 예배당 출입 금지 명령이 나올 때 대처를 질문하자 답변한 내용을 더해 봅니다.
과거 예배당은 예배 때문에 고민 할 교단이 있고 그런 교회라도 있었지만, 90년대에 한국을 휩쓸고 지나 간 '열린예배' '열린교회'란 교회가 지켜내야 할 교회의 최저선, 예배의 최하선을 모두 교회들이 자진해서 철거를 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비판한 교회라면 예배당 출입 금지 명령에 고민이라도 할 교회이겠지만 '열린교회' '열린예배'를 이해하거나 동의하거나 동참한 교회라면 예배당 출입 금지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해야 맞다.
공회에는 일부 교회가 열린 교회, 열린 예배를 거부한다. 그런 교회들은 백 목사님 사후 32년동안 교회와 예배를 깨고 부수고 막기 위해 수백 건을 고소 고발하고 각목을 들고 설쳤다. 그런 교회들이 무슨 교회와 예배를 고수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떼강도가 풀 한 포기도 아끼자며 생명 운동에 나선다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일까?
우리 부공3에는 아직까지 상기 2가지에 해당 되지 않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그런 교회들의 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은 다른 교회를 갈 면목이 없고 또 기회가 없어 예배당에 앉아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고민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부공3 교회의 교인들 중에 예배 한 번에 모든 것을 정말 다 걸고 살아 온 분이 한 교회에 5명이 될까? 서부교회 현재 1천명 교인 중에 5명 되기가 어렵다. 한 교회에 5명 정도가 출석해서 사방 구석에 1명씩 앉고 중앙에 1명이 앉는다면 전염의 위험성이 전혀 없을 듯하니 관계 당국에 1명 당 10평에서 100평을 별도 확보하여 전염의 위험성이 없으니 이 곳은 걱정을 마시라 하면 되지 않을까...
과거 예배당은 예배 때문에 고민 할 교단이 있고 그런 교회라도 있었지만, 90년대에 한국을 휩쓸고 지나 간 '열린예배' '열린교회'란 교회가 지켜내야 할 교회의 최저선, 예배의 최하선을 모두 교회들이 자진해서 철거를 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비판한 교회라면 예배당 출입 금지 명령에 고민이라도 할 교회이겠지만 '열린교회' '열린예배'를 이해하거나 동의하거나 동참한 교회라면 예배당 출입 금지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해야 맞다.
공회에는 일부 교회가 열린 교회, 열린 예배를 거부한다. 그런 교회들은 백 목사님 사후 32년동안 교회와 예배를 깨고 부수고 막기 위해 수백 건을 고소 고발하고 각목을 들고 설쳤다. 그런 교회들이 무슨 교회와 예배를 고수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떼강도가 풀 한 포기도 아끼자며 생명 운동에 나선다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일까?
우리 부공3에는 아직까지 상기 2가지에 해당 되지 않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그런 교회들의 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은 다른 교회를 갈 면목이 없고 또 기회가 없어 예배당에 앉아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고민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부공3 교회의 교인들 중에 예배 한 번에 모든 것을 정말 다 걸고 살아 온 분이 한 교회에 5명이 될까? 서부교회 현재 1천명 교인 중에 5명 되기가 어렵다. 한 교회에 5명 정도가 출석해서 사방 구석에 1명씩 앉고 중앙에 1명이 앉는다면 전염의 위험성이 전혀 없을 듯하니 관계 당국에 1명 당 10평에서 100평을 별도 확보하여 전염의 위험성이 없으니 이 곳은 걱정을 마시라 하면 되지 않을까...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심을 하나님께 바로 드리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해석하시는 분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약보다 구약을, 예배보다 제사를 더 먼저 주심은 눈에 보이는 형식을 통한 조심이 있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심이 바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러한 뜻이라고 배웠습니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부모님께 존댓말 쓴다고 모두 효자라고 할 순 없습니다. 효자는 마음가짐과 그 자세가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하고 위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댓말을 쓰면 효자가 아니다’라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존댓말을 사용하는 아이에게 마음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며 나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심이 없는 공경은 모순입니다. 하지만 못된 불효자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핑계로 존댓말을 비롯한 눈에 보이는 행위를 걷어차 버립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언제,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도 중심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조심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 교리를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약하기에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으면 긴장이 풀리고 조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예배당이 정한 시간과 장소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예배당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에 유익하고, 앞서 말했듯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을 핑계 삼아 조심이 사라지고 예배의 본질을 흐트러뜨릴까 염려되어 예배당에서 정한 시간과 장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리와 영감으로 상황에 따라 찾은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가 있다면 설령 예배당의 시간과 장소와 다르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신령한 정한 시간과 장소를 찾는다면 신앙이 깊어진 것이고, 혹 신령함을 핑계로 자기중심으로 예배시간을 옮긴다면 자타의 구원을 가로막는 큰 죄이니 저처럼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예배당에서 정한 기준이 죄가 아니므로 따르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이름이 다양하신 분이 가정하신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1등 신앙은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게 미리 기도로 준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하여 그런 상황이 닥쳤다면 자신의 신앙이 감당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조심이 부족해 예배당에서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예배당에서 드린다면 그것 또한 비난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텅텅 빈 예배당에 있는 게 무슨 의미냐 하셨지만 (신앙)양심을 살렸으니 어느 것보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효자는 어린 아이가 아직 존댓말뿐이더라도 중심이 바르지 못하다 혼내지 않고 그 아이가 효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며 기도하고 기다릴 겁니다. 그러나 본질을 망가뜨리고 싶은 불효자만 수군거리며 어린 아이를 비난하고 비방하고 혼낼 것입니다.
(아직 열심히 배우고 있는 청년 학생입니다. 질문과 요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것을 스스로 정리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답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해석하시는 분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약보다 구약을, 예배보다 제사를 더 먼저 주심은 눈에 보이는 형식을 통한 조심이 있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심이 바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러한 뜻이라고 배웠습니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부모님께 존댓말 쓴다고 모두 효자라고 할 순 없습니다. 효자는 마음가짐과 그 자세가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하고 위하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댓말을 쓰면 효자가 아니다’라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존댓말을 사용하는 아이에게 마음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며 나무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심이 없는 공경은 모순입니다. 하지만 못된 불효자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핑계로 존댓말을 비롯한 눈에 보이는 행위를 걷어차 버립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언제,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도 중심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조심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 교리를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약하기에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으면 긴장이 풀리고 조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예배당이 정한 시간과 장소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예배당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에 유익하고, 앞서 말했듯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을 핑계 삼아 조심이 사라지고 예배의 본질을 흐트러뜨릴까 염려되어 예배당에서 정한 시간과 장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만약 진리와 영감으로 상황에 따라 찾은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가 있다면 설령 예배당의 시간과 장소와 다르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신령한 정한 시간과 장소를 찾는다면 신앙이 깊어진 것이고, 혹 신령함을 핑계로 자기중심으로 예배시간을 옮긴다면 자타의 구원을 가로막는 큰 죄이니 저처럼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예배당에서 정한 기준이 죄가 아니므로 따르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이름이 다양하신 분이 가정하신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1등 신앙은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게 미리 기도로 준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하여 그런 상황이 닥쳤다면 자신의 신앙이 감당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조심이 부족해 예배당에서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예배당에서 드린다면 그것 또한 비난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텅텅 빈 예배당에 있는 게 무슨 의미냐 하셨지만 (신앙)양심을 살렸으니 어느 것보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효자는 어린 아이가 아직 존댓말뿐이더라도 중심이 바르지 못하다 혼내지 않고 그 아이가 효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치며 기도하고 기다릴 겁니다. 그러나 본질을 망가뜨리고 싶은 불효자만 수군거리며 어린 아이를 비난하고 비방하고 혼낼 것입니다.
(아직 열심히 배우고 있는 청년 학생입니다. 질문과 요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것을 스스로 정리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답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이 곳의 '교회 현황'이나 '포탈 총공회'에서 구 게시판을 책임 졌던 신풍교회의 설교를 직접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배 본질과 현실적 문제를 두고 오늘 오전과 오후 시간에 요한복음 4장의 말씀으로 설명했으니 참고했으면 합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원칙에 대해 이해할 정도의 내용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한 번쯤 들어 볼 내용일 듯합니다.
신풍교회 '다시보기'에는 설교만 접할 수 있고, '예배당'이라는 게시판에는 학생의 설교 파악을 위해 교안이 있습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는 않으나 최소한 그 설교와 관련 된 공회의 평소 상식은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료를 참고한다면 비록 동감하지는 못해도 이해 할 정도는 될 듯하고, 그대로 살지는 못해도 이해는 할 듯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종교적으로 말을 해야 할 터인데 종교인이라면 예배를 쉽게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설교입니다.
예배 본질과 현실적 문제를 두고 오늘 오전과 오후 시간에 요한복음 4장의 말씀으로 설명했으니 참고했으면 합니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원칙에 대해 이해할 정도의 내용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한 번쯤 들어 볼 내용일 듯합니다.
신풍교회 '다시보기'에는 설교만 접할 수 있고, '예배당'이라는 게시판에는 학생의 설교 파악을 위해 교안이 있습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는 않으나 최소한 그 설교와 관련 된 공회의 평소 상식은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자료를 참고한다면 비록 동감하지는 못해도 이해 할 정도는 될 듯하고, 그대로 살지는 못해도 이해는 할 듯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종교적으로 말을 해야 할 터인데 종교인이라면 예배를 쉽게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설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