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과 그 속에 담긴 내막의 깊이와 사연은 천차만별 (우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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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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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9 17:50
1.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살펴 보셨으면
천주교는 예수님의 고통을 수천 년 동안 처참하게 표현해 왔고 그 것이 천주교의 회원과 회비를 확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불신자도 자기 나라나 왕을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 사람들은 떼를 지어 그렇게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본이 초기 천주교 선교 과정에 신자들을 처형할 때 별별 고통스러운 방법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떳떳하게 또는 장렬하게, 또는 찬송하며 죽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도 더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존경하는 특별한 신앙가들이 최후 순간을 맞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말을 전하고 당시를 목격한 사람들에 따라 다른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다르다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이해할 듯합니다. 슬픈 사람의 보름달은 슬픈 달로 보입니다. 희망찬 사람의 눈에는 보름달은 그렇게 좋게 보입니다. 보는 사람의 자세와 주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음을 먼저 짐작해 보시면 한 사람의 순교를 두고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봤느냐는 목격담을 전해 들을 때 당당하게 죽더라고 해도 좀 빼고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비겁하게 죽더라 해도 그 자세가 원수에 대한 배려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잡혀 가는 순간, 그들의 향후 고문과 고형을 예상하며 이를 잘 극복하기 위해 마음으로 준비하다 보면 일반 교인 눈에는 마치 마지 못해 끌려 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마지막 표정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마지막 스케치를 천주교처럼 절망의 절규로 그려도 되지만 천주교는 그렇게 감성을 강조해야 돈을 버는 집단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이를 두고 감사가 넘쳐던 감탄사라고 합니다. 공회의 입장도 감탄사로 생각합니다.
2.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 도피를 시도했다면?
요5:13에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고 했는데, 피하실 때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면 그 모습이 오늘 우리 기준으로 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찍혔을까? 혹시 애매하다면 요8:59에서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하신 말씀으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게 찍혀 졌을까요?
당해야 할 때가 있고, 피해야 할 때가 있고.
핍박자를 향해 호통을 쳐야 할 때가 있고, 핍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살 정도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주기철 손양원 백영희 순교자들의 마지막 모습에 혹시 의구심이 있다면 여러 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의 고통을 수천 년 동안 처참하게 표현해 왔고 그 것이 천주교의 회원과 회비를 확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불신자도 자기 나라나 왕을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 사람들은 떼를 지어 그렇게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일본이 초기 천주교 선교 과정에 신자들을 처형할 때 별별 고통스러운 방법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떳떳하게 또는 장렬하게, 또는 찬송하며 죽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도 더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존경하는 특별한 신앙가들이 최후 순간을 맞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말을 전하고 당시를 목격한 사람들에 따라 다른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다르다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냥 이해할 듯합니다. 슬픈 사람의 보름달은 슬픈 달로 보입니다. 희망찬 사람의 눈에는 보름달은 그렇게 좋게 보입니다. 보는 사람의 자세와 주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음을 먼저 짐작해 보시면 한 사람의 순교를 두고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봤느냐는 목격담을 전해 들을 때 당당하게 죽더라고 해도 좀 빼고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비겁하게 죽더라 해도 그 자세가 원수에 대한 배려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잡혀 가는 순간, 그들의 향후 고문과 고형을 예상하며 이를 잘 극복하기 위해 마음으로 준비하다 보면 일반 교인 눈에는 마치 마지 못해 끌려 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마지막 표정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마지막 스케치를 천주교처럼 절망의 절규로 그려도 되지만 천주교는 그렇게 감성을 강조해야 돈을 버는 집단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이를 두고 감사가 넘쳐던 감탄사라고 합니다. 공회의 입장도 감탄사로 생각합니다.
2.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 도피를 시도했다면?
요5:13에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고 했는데, 피하실 때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면 그 모습이 오늘 우리 기준으로 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찍혔을까? 혹시 애매하다면 요8:59에서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하신 말씀으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게 찍혀 졌을까요?
당해야 할 때가 있고, 피해야 할 때가 있고.
핍박자를 향해 호통을 쳐야 할 때가 있고, 핍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을 살 정도라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주기철 손양원 백영희 순교자들의 마지막 모습에 혹시 의구심이 있다면 여러 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순교자들의 고통 감내력
주기철 목사님의 아드님 회고록을 보면 주기철 목사님께서 연행 될 때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멋있게 장렬하게 잡히지 않고 피하며 연행에 저항했다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는 6.25 점령치하이며 연행 될 때 모습은 전기와 달리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피난을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막상 연행을 피했다는 증언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적어도 인민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는 대구공회라는 단체에 속한 목회자들이 법정에서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볼 때 들어오는 칼을 피하고 막았다는 모습을 봤다며 이런 모습은 장렬하게 순교한 것이 아니니 순교로 인정할 수 없다 합니다.
역사에 순교를 당하며 실제 당당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전남의 영광과 신안 지역의 6 ~ 70명 집단 순교자들이 대부분 장렬하게 순교했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백영희와 같은 인물들은 신안이나 영광의 시골에서 신앙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순교할 기회가 닥쳤을 때 장렬하게 죽은 분들과는 비례 형평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순교에 대한 갈망과 평소 교훈이 특별하다는 점에서 공회의 의견을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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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의 아드님 회고록을 보면 주기철 목사님께서 연행 될 때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멋있게 장렬하게 잡히지 않고 피하며 연행에 저항했다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는 6.25 점령치하이며 연행 될 때 모습은 전기와 달리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합니다. 피난을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막상 연행을 피했다는 증언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적어도 인민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순교는 대구공회라는 단체에 속한 목회자들이 법정에서 마지막 모습을 영상으로 볼 때 들어오는 칼을 피하고 막았다는 모습을 봤다며 이런 모습은 장렬하게 순교한 것이 아니니 순교로 인정할 수 없다 합니다.
역사에 순교를 당하며 실제 당당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깝게는 전남의 영광과 신안 지역의 6 ~ 70명 집단 순교자들이 대부분 장렬하게 순교했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백영희와 같은 인물들은 신안이나 영광의 시골에서 신앙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순교할 기회가 닥쳤을 때 장렬하게 죽은 분들과는 비례 형평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순교에 대한 갈망과 평소 교훈이 특별하다는 점에서 공회의 의견을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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