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와 모르드개
| 분류 |
|---|
반사
2
1
2019.11.07 17:34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를 삼촌과 조카의 관계로 알았는데
에스더 2:7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곧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사촌관계인 듯합니다.
왜 삼촌과 조카 관계라고 배웠을까요? 다른 뜻이 있을까요?
에스더 2:7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곧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사촌관계인 듯합니다.
왜 삼촌과 조카 관계라고 배웠을까요? 다른 뜻이 있을까요?
(수정 2019-11-08 23:32)
(성경의 혈연 표현)
성경에 기록된대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혈육적으로 사촌 관계입니다. 삼촌과 조카 사이라고 표현한다면 분명 오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동명이인도 많고 혈연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오해하곤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동등한 항렬인 사촌 관계라 하더라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딸처럼 양육을 받았으니 그 내면은 신앙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같을 것입니다. 그런 내면에 집중하다가 오해한 작은 착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의 혈연 표현)
성경에 기록된대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혈육적으로 사촌 관계입니다. 삼촌과 조카 사이라고 표현한다면 분명 오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동명이인도 많고 혈연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오해하곤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동등한 항렬인 사촌 관계라 하더라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딸처럼 양육을 받았으니 그 내면은 신앙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같을 것입니다. 그런 내면에 집중하다가 오해한 작은 착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가 합니다.
(호적의 표현, 성경의 표현)
에스더 2:7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정확하게 차촌입니다. 그런데 성경 시대와 성경 표현은 할아버지나 조상을 누가복음 16:30, 요한복음 8:39에서 그냥 '아버지'로 줄일 때도 있고, 또 삼촌 조카의 결혼이나 형제 결혼이 흔하여 아브라함은 사라와 부부도 되고 실제 남매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혈족 관계나 촌수 관계는 유교 영향을 받은 우리 나라처럼 구구단처럼 나누기 어렵고 마치 고무줄처럼 줄어 들고 늘어 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표현, 체감의 표현)
그렇다 해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그냥 사촌이나 조카라 하지 않고 '삼촌의 딸'이라고 했기 때문에 비교적 가족 관계가 명확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자기 딸 같이 양육'했다는 관계와 왕비로 들여 놓을 때 일일이 지도하는 모습이 너무 강하여 원래 호적상의 촌수는 흐려 지고 '삼촌의 딸'이라는 표현을 조카로 바꾸어 기억하는 수가 있습니다. 저도 성경을 읽을 때는 '삼촌의 딸'이니 사촌으로 읽고, 어느 날 설교 때는 '조카'라 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 조심해야 할 대목으로 생각합니다.
(호적의 표현, 성경의 표현)
에스더 2:7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정확하게 차촌입니다. 그런데 성경 시대와 성경 표현은 할아버지나 조상을 누가복음 16:30, 요한복음 8:39에서 그냥 '아버지'로 줄일 때도 있고, 또 삼촌 조카의 결혼이나 형제 결혼이 흔하여 아브라함은 사라와 부부도 되고 실제 남매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혈족 관계나 촌수 관계는 유교 영향을 받은 우리 나라처럼 구구단처럼 나누기 어렵고 마치 고무줄처럼 줄어 들고 늘어 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표현, 체감의 표현)
그렇다 해도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그냥 사촌이나 조카라 하지 않고 '삼촌의 딸'이라고 했기 때문에 비교적 가족 관계가 명확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자기 딸 같이 양육'했다는 관계와 왕비로 들여 놓을 때 일일이 지도하는 모습이 너무 강하여 원래 호적상의 촌수는 흐려 지고 '삼촌의 딸'이라는 표현을 조카로 바꾸어 기억하는 수가 있습니다. 저도 성경을 읽을 때는 '삼촌의 딸'이니 사촌으로 읽고, 어느 날 설교 때는 '조카'라 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 조심해야 할 대목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