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첫째날과 넷째날의 빛과 어두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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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첫째날과 넷째날의 빛과 어두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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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2 1
저는 신학교에서, 첫째 날의 빛이, 원형의 빛이요.  넷째 날의 빛이, 이 원형의 빛을 가견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모형의 빛이라고 배웠습니다.

신학교 교수님이, 가견적인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견적인 것에 머무르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 받아드렸습니다.

 

그런데,  원형의 빛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실상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 해주셨습니다.

계속해서, 그냥 눈에 보이는 것에 매이지 말라고만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이고 있는 오늘날 교회만 비판을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만 하셨습니다.

 

무엇이 영적입니까?

무엇이 빛과 어두움의 본질입니까?

첫째날과 넷째날의 빛과 어두움의 관계의 실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답답해서, 이곳에서 여쭙습니다.
담당 2019.08.21 15:07  
(4일째와 첫 날의 빛)
4일째 '해, 달, 별'을 만들고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4일째 '해'라는 말이 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시136:8-9에서 해로 낮을 주관, 달로 밤을 주관'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했다고 다시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4일째 해와 달로 만든 빛과 어두움은 명확하게 오늘까지 내려 오는 밤낮입니다. 따라서 첫 날 만든 빛과 어두움 그리고 낮과 밤은 4일째 만들 해와 달과 별의 빛과 어두움과 낮과 밤을 임시 대신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자연의 이런 빛과 어두움보다 더 중요한 생활 속에 빛과 어두움을 말합니다.

(첫 3일이 수십 억년이라는 진화론)
먼저 짚고 가실 것은 지구 나이를 수십 억 년으로 보는 이들은 1-3일까지가 그냥 3일로 되어 있으나 이 때가 수십 억 년의 세월이라 하는데, 그 것은 구약이 육체의 이스라엘이고 보이는 면으로 먼저 가르칠 때이니 7일은 당연히 육체의 7일이고 그 육체의 7일 안에 들어 있는 뜻은 따로 살펴야 하지, 육체의 7일을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또한 출20:8에서 6일과 1일로 나눈 것은 오늘까지 그대로 24시간의 일 단위입니다. 무엇보다 수십 억 년에 만들어 지는 자연 환경을 3일에 만들었으니 전능자입니다. 반대 논리는 하나님을 그리스 신화의 인간 수준의 신으로 낮춘 결과일 뿐입니다.

(첫 날의 빛과 어두움)
타락 후 어두움은 죄악을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 그 어두움은 남을 습격하고 옳은 일을 하지 못하는 나쁜 환경입니다. 겨울도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 어두움과 겨울이 타락 전에 있었습니다. 원래 주신 1일과 4일의 어두움, 그리고 겨울은 선물로 주셨습니다. 빛은 진리의 인도를 받고 건설을 하는 은혜고, 어두움은 쉬고 다시 일을 하도록 주시는 다른 은혜입니다. 타락 후 겨울은 원망스럽고 고통스런 나쁜 환경이나 타락 전에도 겨울은 있었고 그 때는 죄로 인한 저주가 없었기 때문에 타락 전의 겨울은 겨울의 장점은 있고 겨울의 나쁜 점은 없습니다.

(배경의 여러 고려)
그 것이 가능할까?
뱀을 보면 압니다. 타락 전 뱀은 민첩하게 심부름하던 훌륭한 신하였습니다. 타락 후 뱀은 습격하고 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소는 등신이 아니라 충직한 일꾼이었습니다. 타락 전 인간은 다른 인간을 만들 때 자고 나면 하나님께서 고통 없이 깨끗한 또 하나의 인간을 배출했습니다. 타락 후 인간은 다른 인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별별 일을 다해야 합니다. 성장 과정, 사춘기, 연애, 결혼으로 인한 별별 일들, 그리고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면 열 달간 굿을 해야 하고 이 것이 하와처럼 아담을 바로 도울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생지옥을 다 거칩니다.

이런 점을 비교하면서 '1일의 빛'과 '4일의 빛'을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합니다. '1일의 어두움과 4일의 어두움'도 그렇습니다. 4절 18절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31절에서는 심히 좋았더라 하신 그 대상에는 1일과 4일의 어두움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두움과 밤이 주는 좋은 면만을 뽑아 내면 창조 전의 상황을 재현해 볼 수 있습니다.

왼 발이 나갈 때 오른 발은 쉽니다. 우리는 이 오른 발을 놀고 있다 저 쪽이 일하는 데 발을 빼고 몸을 사린다 하지 않습니다. 왼 발이 나가도록 도와 주면서 한 편으로는 바로 다음 순간의 사명은 오른 발이 맡으려고 지금 준비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두 발이 함께 움직이면 토끼 꼴이 됩니다. 두 발로 모듬 뛰기를 하면 토끼가 할 일이지 만물의 영장인 지도자의 모습이나 역할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발을 없애고 움직이면? 그 것은 새에게 맡겼고 천사에게 주신 일입니다. 발이 없으면 더 나을 뻔 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에 실수가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낮밤은 4일째의 해와 달과 별을 만든 우주 형성의 결과입니다. 그 이전의 3일은 1일에 만든 빛과 어두움입니다. 당연히 이 빛과 어두움은 4일의 빛과 어두움과는 다른데, 전체 창조를 위해 4일째 만들어야 하는 해와 달을 3일간 대신하면서도 4일에 만들 해와 달의 빛과 어두움에 앞서 더 귀하고 근본적으로 필요하여 주신 빛과 어두움입니다. 식물 동물 우리의 자연 환경에 필요한 4일의 빛과 어두움보다 더 중요한 빛과 어두움도 있을까?

진리의 인도, 옳고 바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환경이 1일의 빛이고
빛을 빛 되게 하기 위해, 빛 아래 충성하는 데 도움 되고 협조가 되기 위해, 빛 아래 충성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틈은 빈틈일까? 헛점일까? 아니면 낮만큼 귀한 밤일까? 결론은 쉽게 나올 듯합니다. 밤의 준비 없이 질주만 하면 되지 않을까?

눅17:5 겨자씨 비유에서 밭을 갈고 양을 치는 종이 주인을 위해 하루를 충성스럽게 활동한 것으로 그 종이 전부일까? 이 종은 소 수준의 하급 종입니다. 소 수준의 일도 하고, 그리고 돌아 와서 소나 나귀가 할 수 없는 식사 준비하는 종업원 수준의 일도 있으니 낮에는 밭에서 들에서 주인의 귀한 일을 했고, 저녁에는 주인 곁에서 식탁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더 나은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종이 주인의 침소까지 준비한다면 이 종은 왕궁의 궁녀 수준입니다. 웬만한 대신들이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만일 그 종이 왕을 이불 안에서 모신다면? 이 종은 종 출신인데 왕비입니다. 이런 왕비는 왕과 한 몸입니다. 어떤 종은 궁녀를 거쳐 왕비를 넘어 서고 나중에 왕 위에 군림까지 합니다.

이렇게 단계 별로 나누면서 이 세상에 나쁜 면으로 보지 않고 좋은 면으로 본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한 명의 인격자를 만들고 이 것이 하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은 머리가 되고 우리는 몸이 되는 영생을 꿈꾸고 목표로 정했습니다. 왕궁의 왕이라면 부엌용, 걸레용, 침소용, 식사용, 외교 무대에 세울 의식용으로 나누면 되고 어떤 경우 몇 가지를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은 제한이 있어 혼자 다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로 보시고, 우리 하나를 상대하면서 우리에게 전부를 다 할 수 있게 원합니다. 낮에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 빛 가운데 할 일이 있고 밤에는 주님 품에 안겨 해야 할 말도 있고 나누어야 할 정도 있고 만물을 다스릴 작전도 짜여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떠나 그냥 서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정말 뜨거운 사람은 두 사람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두 사람의 마음이 두 사람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육체 둘이 달구어 져서 난리를 부리는 사랑은 젊음이 지나면 식어 집니다. 그 속에 마음이 한없이 쏟아 부어 지는 사이가 되면 춘향이처럼 이몽룡 그 놈이 날 버리고 갔으나 나는 이대로 찢겨 져 죽어도 그 마음을 안고 갈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오해 받고 유배 갔다가 사약 받고 죽는 순간의 충신들이 이 땅 위의 왕을 향한 충심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돈을 주고 계급을 올려 주는 단계를 초월했던 이들입니다.

이런 면으로 자꾸 비추어 생각해 보면 '1일의 빛과 어두움'은 '4일'에 주실 이후 빛과 어두움과 비교를 해 보면 수준 차이가 많을 듯합니다. 1일에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4일에 만든 것과 비교 되지 않을 최고의 가치, 최고의 수준입니다. 4일의 낮과 밤도 필요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눅17장에서 밭에서 일하고 양을 치는 것은 4일에 은혜로 충성할 대상이라면 1일의 빛은 주인을 옆에서 직접 모시는 세계이고 1일의 밤은 주인을 침소에서 모시는 것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건설사 현장 소장이 보면 낮에 곡괭이를 휘두르는 일꾼이 최고이고, 주인 식탁 차리는 종은 장애자가 해도 되고, 주인과 나란히 눕는 종은 기생 하나 불러다 주면 된다고 생각할 듯합니다. 그런데 지성과 도의를 아는 인격자 주인이 보면 건축 현장의 소장 그 ㄴ은 천상 그 자리가 그 ㄴ 자리로 생각할 것이고, 그런 수준이기 때문에 그 소장은 주인이 거니는 아가서 4:12의 세계를 맡길 수도 없고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할 것입니다. 2:7, 3:5, 8:4에서 '깨우지 말찌니라' 하신 주님은 4일째의 밤을 통해 1일의 어두움을 당신의 목적 세계에서 기쁨을 누리는 환경으로 주셨을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아가서 4장 설교에서 왕궁에는 수 많은 여인이 있으나 왕과 하나 되는 사람을 우리 성도의 목표로 삼아 늘 더 깊이, 더 은밀히, 더 고요히 주님과 마주 하는 면을 가르쳐 왔습니다.
신학생 2019.08.21 15:57  
아!

첫 날의 빛과 어두움과
넷째 날의 해, 달, 별의 빛과 어두움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한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뜻한다는 해석에 놀랐습니다.

밝히 보이는 빛이 있을 때는, 소와 양이 되어 주님께 전력을 다해 순종의 나를 모두 드리고,

캄캄한 어두움 속에 있을 때는,
범죄 전에는, 하나님과의 단 둘의 은밀히, 더 고요히, 가장 깊은 관계가 되어 모시거나,
범죄 후에는, 하나님과 끊어진 고통을 두려움 속에서, 자기 안의 염소를 죽여 드리게 하신.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어떤 현실에 처하더라도
오로지 택자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할 수 밖에 없도록, 이 근본적인 관계가 첫 날의 빛과 어두움 창조하신 이유요. 

(사 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이렇게 인격적이고, 신령의 무한의 세계를 알려주시기 위하여, 넷째날, 시공에 속한 해와 달과 별에게 이 신령의 빛과 어두움을 주관케 하셨으니,
 
그래서, 인생이 하루를 아침에 빛 가운데 시작할 때 그렇게 기쁘고, 어두운 저녁에 하루가 끝낼 적마다 그렇게 허무했던 것이었습니다. 유한의 세상에서, 무한의 하나님을 찾도록, 찾을 수 밖에 없도록.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 가견에서 불가견으로. 죄악의 어두움에서, 범죄 전 하나님과 은밀한, 원형의 어두움이 되어, 그리하여, 빛과 어두움이 동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게만 연결되어, 더 이상 어떤 어두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빛에서나, 어두움에서나 완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맞습니다. 빛과 어두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요. 그를 통한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하나님과의 관계.
그것이 바로 빛과 어두움의 본질이요. 이것이 핵심이요. 이것이 바로 영적 해석이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창조만 봐도 구약과 신약이 연결이 되어지고, 다르게 보이는 하나님의 마음과 행위가 이해가 되어집니다. 이렇게 놀라운 세계, 이렇게까지 깊은 세계가 공회였습니까?

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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