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34 예수님의 기도 효력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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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7:18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 하셨습니다. 완전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어떤 효력을 갖게 되나요?
내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 했고 주님의 기도는 우리와 달리 기도를 잘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못 박은 이들도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그냥 효력은 없고 덕담이었을까요?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 하셨습니다. 완전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어떤 효력을 갖게 되나요?
내 이름으로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 했고 주님의 기도는 우리와 달리 기도를 잘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못 박은 이들도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그냥 효력은 없고 덕담이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과제로 돌려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질문자의 말씀대로 완전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효력을 갖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택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패역한 세대의 불택자는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신구약 모든 말씀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 상관 없는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예수님의 기도는 즉시 효력을 가졌습니다. 사함 받은 그 대상은 택자에 한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그 근거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책망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모르고 지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받았을지라도 그들의 건설구원은 비참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행2장에서 베드로가 ‘2:3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그 날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그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2. 그들이 사함 받지 못했다면 나의 죄도 사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내 죄를 생각하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죄가 내 죄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의 죄를 예수님의 이 기도, 대속의 공로로 모두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눅23:34 예수님의 그 기도는 바로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스데반도 순교할 때에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행7:60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늘 외우는 주기도문입니다. 흉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마5:44의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 질문자의 말씀대로 완전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기도는 효력을 갖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택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패역한 세대의 불택자는 말씀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신구약 모든 말씀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 상관 없는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예수님의 기도는 즉시 효력을 가졌습니다. 사함 받은 그 대상은 택자에 한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그 근거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책망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모르고 지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받았을지라도 그들의 건설구원은 비참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행2장에서 베드로가 ‘2:3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그 날에 삼천 명이나 회개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그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2. 그들이 사함 받지 못했다면 나의 죄도 사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내 죄를 생각하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죄가 내 죄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의 죄를 예수님의 이 기도, 대속의 공로로 모두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눅23:34 예수님의 그 기도는 바로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스데반도 순교할 때에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행7:60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늘 외우는 주기도문입니다. 흉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마5:44의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문제는 기도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가지고 이렇게 나눠 볼 수 있게습니다.
1. 절대적 유효
그 기도가 어떤 제한도 조건도 없다면 그 날 십자가에 관계 된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빌라도 헤롯 로마군병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유다, 그리고 못 박도록 데모한 군중들...
주님의 기도니 제한이 없다면 예정 교리로는 그 날 그들 전부가 원래 택자였다고 하면 일단 말은 될 수 있습니다.
2. 상대적 유효
요3:16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으나 믿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 책임이라는 만인구원설처럼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죄 사하는 기도를 하셨으나 사함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말도 가능하겠지요?
비는 하늘에서 차별 없이 고루 내리지만 우산을 쓴 사람은 적시지 못하는 그런 면으로 이해를 해봤습니다.
1. 절대적 유효
그 기도가 어떤 제한도 조건도 없다면 그 날 십자가에 관계 된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빌라도 헤롯 로마군병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유다, 그리고 못 박도록 데모한 군중들...
주님의 기도니 제한이 없다면 예정 교리로는 그 날 그들 전부가 원래 택자였다고 하면 일단 말은 될 수 있습니다.
2. 상대적 유효
요3:16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으나 믿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 책임이라는 만인구원설처럼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죄 사하는 기도를 하셨으나 사함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말도 가능하겠지요?
비는 하늘에서 차별 없이 고루 내리지만 우산을 쓴 사람은 적시지 못하는 그런 면으로 이해를 해봤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들이 누구인가?
학생님이고 담당7님이고 댓글을 지금 달고 있는 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군병들은 2,000년전 현장에서 못을 박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불신 시절 우리는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모인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정죄했으며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보며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라고...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자기중심의 악 때문에 또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되기 전 사울은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고통을 줬으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믿고 난 후 나 자신의 죄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가?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녀, 수많은 교인들까지. 그 아픔이 주님의 아픔이었다. 십자가 고통 이상으로.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죽는 순간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 즉 학생님과 저를 위한 그 기도.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그 기도는 100프로 응답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단 군병들은 어찌 되었을까?
택자였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학생님이고 담당7님이고 댓글을 지금 달고 있는 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군병들은 2,000년전 현장에서 못을 박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불신 시절 우리는 모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모인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정죄했으며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보며 조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라고...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자기중심의 악 때문에 또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되기 전 사울은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고통을 줬으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믿고 난 후 나 자신의 죄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가?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녀, 수많은 교인들까지. 그 아픔이 주님의 아픔이었다. 십자가 고통 이상으로.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고 죽는 순간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 즉 학생님과 저를 위한 그 기도.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그 기도는 100프로 응답이 된 것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단 군병들은 어찌 되었을까?
택자였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