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재독을 선택할 때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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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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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 10:31
연구소를 운영하는 교회들은 목회자가 설교를 할 수 없는 건강이나 출타 일정이 있을 때 교인에게 설교를 부탁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탁을 하게 되면 교인들이 준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평소 준비 된 설교 자료를 가지고 재독을 합니다. 재독을 선택할 때 주의할 점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 1월 이전까지는 백 목사님 설교만 가지고 복습을 위해 재독을 했는데, 백도영 (목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라는 분이 자기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설교를 전달해도 함께 들어도 범죄가 된다고 고소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백 목사님 설교로 재독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가지고 재독을 합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설교 외에는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교인들에게 복습으로 다시 듣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들 했는데 백 목사님 때처럼 모두 은혜를 받고 좋아하기 때문에 1년 이상을 지금 재독을 맡고 있는 담당자입니다. 질문만 적으려다 화가 나서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는가? 공회인들에게 탄식과 함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백도영 씨가 목사라면서 적을 두고 있는 대구공회는 그런 행동에 대하여 제재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살아 있는 공회라고 생각했는데 제재를 철회하고 지금은 모두가 함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참죄지요. 고소가 두려워 '목사 설교는 자식들의 사유재산'이라는 교리를 대구공회 노선으로 해두고 있는 것이지요. 목사님들이야 이심전심으로 좋겠지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니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법원의 입장이 그렇고 백 목사님 자녀들이 설교는 목사의 개인 재산이라 하고 고소를 해버리니 우린들 어떻게 하겠나. 내 설교는 내 것으로 삼고 싶지 않은데 내 재산이라니..... 이게 맞나요?
2018년 1월 이전까지는 백 목사님 설교만 가지고 복습을 위해 재독을 했는데, 백도영 (목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라는 분이 자기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설교를 전달해도 함께 들어도 범죄가 된다고 고소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백 목사님 설교로 재독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가지고 재독을 합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설교 외에는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교인들에게 복습으로 다시 듣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들 했는데 백 목사님 때처럼 모두 은혜를 받고 좋아하기 때문에 1년 이상을 지금 재독을 맡고 있는 담당자입니다. 질문만 적으려다 화가 나서 과연 이렇게 해도 되는가? 공회인들에게 탄식과 함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백도영 씨가 목사라면서 적을 두고 있는 대구공회는 그런 행동에 대하여 제재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살아 있는 공회라고 생각했는데 제재를 철회하고 지금은 모두가 함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참죄지요. 고소가 두려워 '목사 설교는 자식들의 사유재산'이라는 교리를 대구공회 노선으로 해두고 있는 것이지요. 목사님들이야 이심전심으로 좋겠지요.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니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법원의 입장이 그렇고 백 목사님 자녀들이 설교는 목사의 개인 재산이라 하고 고소를 해버리니 우린들 어떻게 하겠나. 내 설교는 내 것으로 삼고 싶지 않은데 내 재산이라니..... 이게 맞나요?
1. 재독할 설교를 정할 때
자기 교회 목사님 설교를 재독하고 은혜 받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입니다. 보통 한번 듣고 나서 두 번째 들으면 들을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1년 이상 재독을 계속하고 백 목사님 때처럼 은혜 받고 좋아하신다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많은 설교 중에 재독할 내용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재독할 설교를 고르는 기준과 참고할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째, '시간'을 살펴야 합니다.
직접 설교와 달리 재독 설교는 아무리 은혜로워도 시간이 길면 은혜가 삭감될 수 있습니다. 밤예배는 30-40분, 새벽예배는 15-20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재독하고 싶은 내용 중에 이렇게 시간에 맞는 설교가 없으면 내용을 살펴 그 정도의 시간에서 끊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에 맞춰 내용을 끊을 때는 어중간하거나 이상하지 않도록 전체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둘째, '말씀' 중심이라야 합니다.
은혜 있는 교회일수록 설교는 ‘목회설교’일 것이고, 목회설교를 하게 되면 직접적인 ‘말씀’ 외에 다른 내용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행정, 사회, 사건, 가정사, 비유 등 사람을 길러가는 목회에는 실질적인 면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 외에 다른 내용들’이 들어가는데, 직접 설교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은혜로우나 재독으로 들으면 이상할 때가 많습니다. 재독 설교를 선택할 때는 가능하면 다른 내용이 최소화되고 말씀 중심으로 된 설교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원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 있는 설교라도 앞에 설교자 없이 재독으로 듣기만 하면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고를 복사해서 나누든지, 스크린으로 비추든지 해서 듣는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은혜가 됩니다.
넷째, '대상'을 전체로 생각해야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어떤 설교는 들으면 특정인에게 해당된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설교가 있습니다. 목회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하는 분은 최대한 그런 표가 나지 않도록 하지만 내용에 해당되는 사람은 예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교인 중에 특정인이 연상되는 설교는 재독에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며 그 사람을 올리거나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크게 손해될 수가 있습니다. 선정할 때 전체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째, '미리' 준비해 두면 좋습니다.
갑자기 재독을 하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선정이 쉽지 않고 시간도 바쁘면 선정한 설교가 은혜면도 떨어질 수 있고, 내용 중에 재독에는 피해야 되는 내용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평소에 재독할 설교들을 여러 개 준비해 두면 좋고, 전체 내용은 좋은데 시간이 길거나 내용 중에 피하고 싶은 내용들이 있으면 목사님께 말씀드려 편집도 해서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백 목사님 설교 재독을 막는 것은
1)귀신만 좋아할 일입니다. 복음의 원수 노릇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기도 목적도 과정도 전부 귀신 좋아하는 일일 뿐입니다. 복음의 원수 노릇입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며 돌로 제 몸을 상하면서 밤낮 소리 지르는 거라사인을 성경은 귀신들린 사람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사유화라 주장하며 수많은 재물을 써가면서 변호사를 사서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주장하는 불신 판사들에게 복음 전파를 막아달라고 고소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살펴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기도 목적도 과정도 전부 신앙적으로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입니다.
불신 판사에게 복음 전파를 막도록 판결해 달라고 맡기는 그 자체도 성경을 어기는 죄이고, 복음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것이 성경인데 사유화를 주장하는 것도 죄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참으로 귀한 복음 전파를 막고 있으니 인간 구원운동에 큰 대적인 아말렉 같은 일입니다.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3)백 목사님 뜻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이며 큰 불효입니다.
백 목사님은 당신의 설교를 세계만방에 퍼치라 했습니다. 가족들의 것도, 자녀들의 것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주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고 수도 없이 말씀했습니다. 설교를 원고 그대로 전하라 했습니다. 공과를 수십 번씩 외워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했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지금도 고소인과 직접 한 편 되어 있는 사람들, 방조함으로 고소인의 편이 되어 있는 교회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것을 있는 힘을 다해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막고 있으니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가? 정상적인 총공회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4)손익계산으로 따져도 만고에 손해되는 일일 뿐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전파하는 만큼 백 목사님은 유명해질 것이고 그 가족들은 헬 수 없는 덕을 볼 것인데 그것을 스스로 송두리째 허물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널리 전파해서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손해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귀신이 들어 무덤 사이에 거하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했던 귀신들린 거라사인처럼 귀신이 들어 주장한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5)인간 도의상으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소를 당한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서 가장 아낀 제자이며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가정과 가족을 가장 아꼈고 은사의 가정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헌신한 분입니다. 백 목사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백 목사님과 그 가족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다 바친 사람에게 무차별 고소로 갚는다는 것은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인간 도덕적으로도 할 수 없는 짓입니다.
3. 방관하는 사람들은 동참 죄를 짓고 있습니다.
1)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모든 연구소는 연구가 중심입니다. 연구소의 중심인 연구를 하는 부서를 ‘연구부’라고 합니다. 연구부는 모든 연구소의 목적이며 핵심입니다. 다른 부서들은 연구부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일을 돕는 보조 부서들일 뿐입니다. 국가나 단체나 개인의 모든 연구소의 원리는 그렇습니다. 지극히 상식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중심은 연구부입니다. 연구부 없는 연구소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인쇄부 경리부 판매부 등 기타 부서들은 연구부를 지원하는 보조 부서들입니다. 백영희 목사님 생전 백영희 목사님께서 직접 독립기관으로 세우신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연구부’는 ‘이영인 당시 조사님을 연구부장’으로 세웠습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일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당신의 설교, 설교를 통한 목회, 교훈대로 살아가신 백 목사님의 생애 전부에 대한 연구, 출판, 전파를 이영인 연구부장에게 실제로 다 맡겼다는 뜻입니다. 총공회 모든 교회, 교역자, 교인들, 서부교회 수천명 교인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너무도 환하게 알려진 이 사실을 모르면 천치바보이거나 짐짓 모르는 체 하는 외식자, 가식자일 뿐입니다. 맡기신 사명, 맡은 사명에 따라 복음을 전한다고 무차별로 수많은 고소를 당해서 현재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고 있고 대법원까지 가 있는 등 현재도 수많은 고소 사건들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을 총공회 교역자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모를 수가 없고, 모른다면 부러 잊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는 자는 반대하는 자라 했습니다. 주님 편이 아니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입니다. 복음 전파를 막는 사람을 반대하지 않으면 그 편입니다. 받은 복음이 귀해서 그 복음을 힘껏 전하다가 고소를 당해서 사실을 말해 줄 증인을 부탁했으나 거의 대부분 교역자들에게 거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형편 사정이 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복음 전파를 막는 사람과 한편이거나 적어도 방조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이렇게 했지만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대대로 외워지고 있습니다.
2)설교는 사유화될 수 없습니다.
설교를 사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도, 성경도, 신앙도, 구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설교는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원전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깨달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는 값이 없는 것입니다. 유일한 값은 감사이며 받은 만큼 또 다른 사람에게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사유화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도, 성경도, 복음도, 인간 구원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복음을 악용하는 장사꾼이며 삯군이며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다.
대부분의 설교는 사람들이 별로 듣지 않습니다. 한 번 들으면 그걸로 끝인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는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롭고 새롭고 사람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특별합니다. 그래서 귀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거저 주어야 합니다. 고소인이 속했다는 공회의 교역자들 설교도 대개는 한 번 들으면 별로 들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고, 그 중 좀 은혜 있는 설교를 하는 분들 중에는 백 목사님 설교 사유화 주장을 모르는 체 하면서 자기 설교를 사유화하고 싶은 욕심에 악용해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처신들이 그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교회 목사님 설교를 재독하고 은혜 받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고 좋은 일입니다. 보통 한번 듣고 나서 두 번째 들으면 들을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1년 이상 재독을 계속하고 백 목사님 때처럼 은혜 받고 좋아하신다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많은 설교 중에 재독할 내용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재독할 설교를 고르는 기준과 참고할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째, '시간'을 살펴야 합니다.
직접 설교와 달리 재독 설교는 아무리 은혜로워도 시간이 길면 은혜가 삭감될 수 있습니다. 밤예배는 30-40분, 새벽예배는 15-20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재독하고 싶은 내용 중에 이렇게 시간에 맞는 설교가 없으면 내용을 살펴 그 정도의 시간에서 끊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에 맞춰 내용을 끊을 때는 어중간하거나 이상하지 않도록 전체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둘째, '말씀' 중심이라야 합니다.
은혜 있는 교회일수록 설교는 ‘목회설교’일 것이고, 목회설교를 하게 되면 직접적인 ‘말씀’ 외에 다른 내용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행정, 사회, 사건, 가정사, 비유 등 사람을 길러가는 목회에는 실질적인 면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 외에 다른 내용들’이 들어가는데, 직접 설교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은혜로우나 재독으로 들으면 이상할 때가 많습니다. 재독 설교를 선택할 때는 가능하면 다른 내용이 최소화되고 말씀 중심으로 된 설교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원고'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 있는 설교라도 앞에 설교자 없이 재독으로 듣기만 하면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고를 복사해서 나누든지, 스크린으로 비추든지 해서 듣는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은혜가 됩니다.
넷째, '대상'을 전체로 생각해야 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어떤 설교는 들으면 특정인에게 해당된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설교가 있습니다. 목회설교이기 때문입니다. 설교하는 분은 최대한 그런 표가 나지 않도록 하지만 내용에 해당되는 사람은 예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교인 중에 특정인이 연상되는 설교는 재독에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며 그 사람을 올리거나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크게 손해될 수가 있습니다. 선정할 때 전체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째, '미리' 준비해 두면 좋습니다.
갑자기 재독을 하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선정이 쉽지 않고 시간도 바쁘면 선정한 설교가 은혜면도 떨어질 수 있고, 내용 중에 재독에는 피해야 되는 내용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평소에 재독할 설교들을 여러 개 준비해 두면 좋고, 전체 내용은 좋은데 시간이 길거나 내용 중에 피하고 싶은 내용들이 있으면 목사님께 말씀드려 편집도 해서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백 목사님 설교 재독을 막는 것은
1)귀신만 좋아할 일입니다. 복음의 원수 노릇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기도 목적도 과정도 전부 귀신 좋아하는 일일 뿐입니다. 복음의 원수 노릇입니다. 무덤 사이에 거하며 돌로 제 몸을 상하면서 밤낮 소리 지르는 거라사인을 성경은 귀신들린 사람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사유화라 주장하며 수많은 재물을 써가면서 변호사를 사서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주장하는 불신 판사들에게 복음 전파를 막아달라고 고소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살펴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기도 목적도 과정도 전부 신앙적으로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성경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입니다.
불신 판사에게 복음 전파를 막도록 판결해 달라고 맡기는 그 자체도 성경을 어기는 죄이고, 복음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것이 성경인데 사유화를 주장하는 것도 죄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참으로 귀한 복음 전파를 막고 있으니 인간 구원운동에 큰 대적인 아말렉 같은 일입니다.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3)백 목사님 뜻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이며 큰 불효입니다.
백 목사님은 당신의 설교를 세계만방에 퍼치라 했습니다. 가족들의 것도, 자녀들의 것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 했습니다. 주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고 수도 없이 말씀했습니다. 설교를 원고 그대로 전하라 했습니다. 공과를 수십 번씩 외워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했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지금도 고소인과 직접 한 편 되어 있는 사람들, 방조함으로 고소인의 편이 되어 있는 교회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것을 있는 힘을 다해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막고 있으니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가? 정상적인 총공회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4)손익계산으로 따져도 만고에 손해되는 일일 뿐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전파하는 만큼 백 목사님은 유명해질 것이고 그 가족들은 헬 수 없는 덕을 볼 것인데 그것을 스스로 송두리째 허물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널리 전파해서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손해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귀신이 들어 무덤 사이에 거하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했던 귀신들린 거라사인처럼 귀신이 들어 주장한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5)인간 도의상으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소를 당한 목사님은 백 목사님께서 가장 아낀 제자이며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백 목사님의 가정과 가족을 가장 아꼈고 은사의 가정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헌신한 분입니다. 백 목사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백 목사님과 그 가족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다 바친 사람에게 무차별 고소로 갚는다는 것은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인간 도덕적으로도 할 수 없는 짓입니다.
3. 방관하는 사람들은 동참 죄를 짓고 있습니다.
1)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모든 연구소는 연구가 중심입니다. 연구소의 중심인 연구를 하는 부서를 ‘연구부’라고 합니다. 연구부는 모든 연구소의 목적이며 핵심입니다. 다른 부서들은 연구부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일을 돕는 보조 부서들일 뿐입니다. 국가나 단체나 개인의 모든 연구소의 원리는 그렇습니다. 지극히 상식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중심은 연구부입니다. 연구부 없는 연구소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인쇄부 경리부 판매부 등 기타 부서들은 연구부를 지원하는 보조 부서들입니다. 백영희 목사님 생전 백영희 목사님께서 직접 독립기관으로 세우신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연구부’는 ‘이영인 당시 조사님을 연구부장’으로 세웠습니다. 백영희 목사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일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당신의 설교, 설교를 통한 목회, 교훈대로 살아가신 백 목사님의 생애 전부에 대한 연구, 출판, 전파를 이영인 연구부장에게 실제로 다 맡겼다는 뜻입니다. 총공회 모든 교회, 교역자, 교인들, 서부교회 수천명 교인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너무도 환하게 알려진 이 사실을 모르면 천치바보이거나 짐짓 모르는 체 하는 외식자, 가식자일 뿐입니다. 맡기신 사명, 맡은 사명에 따라 복음을 전한다고 무차별로 수많은 고소를 당해서 현재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고 있고 대법원까지 가 있는 등 현재도 수많은 고소 사건들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이런 모든 사실들을 총공회 교역자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모를 수가 없고, 모른다면 부러 잊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는 자는 반대하는 자라 했습니다. 주님 편이 아니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입니다. 복음 전파를 막는 사람을 반대하지 않으면 그 편입니다. 받은 복음이 귀해서 그 복음을 힘껏 전하다가 고소를 당해서 사실을 말해 줄 증인을 부탁했으나 거의 대부분 교역자들에게 거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형편 사정이 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복음 전파를 막는 사람과 한편이거나 적어도 방조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이렇게 했지만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대대로 외워지고 있습니다.
2)설교는 사유화될 수 없습니다.
설교를 사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도, 성경도, 신앙도, 구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입니다. 설교는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원전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깨달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는 값이 없는 것입니다. 유일한 값은 감사이며 받은 만큼 또 다른 사람에게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사유화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도, 성경도, 복음도, 인간 구원도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복음을 악용하는 장사꾼이며 삯군이며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다.
대부분의 설교는 사람들이 별로 듣지 않습니다. 한 번 들으면 그걸로 끝인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백 목사님 설교는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롭고 새롭고 사람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특별합니다. 그래서 귀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들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거저 주어야 합니다. 고소인이 속했다는 공회의 교역자들 설교도 대개는 한 번 들으면 별로 들을 것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고, 그 중 좀 은혜 있는 설교를 하는 분들 중에는 백 목사님 설교 사유화 주장을 모르는 체 하면서 자기 설교를 사유화하고 싶은 욕심에 악용해 먹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하고 있는 처신들이 그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