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 고모라를 두고 아브라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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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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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25 00:00
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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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하신 세미한 부분을 모르고 다른 면으로 답변을 드렸습니다.
소돔 고모라를 두고 아브라함이 기도한 '의인의 숫자'는 먼저 답변 드린 내용처럼, 또 재질문에서 지적한 대로 '최종적 멸망'에 주로 해당되는 경우였습니다. 아합시대를 '최종적 멸망'으로 본다면 1차 답변이 해당될 수 있으나, 아합시대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분명히 멸망 받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함께 그 시대를 지켰던 7천명의 의인들이 실존의 인물이며 또 그 숫자가 그렇게 많았다면 충분히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멸망들이 막아졌어야 했었다는 질문이라면 앞에 드린 답변에 다시 보충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한 의인의 의는 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어야 하는데 왜 전체에 해당되는 면을 가지는가?
자기 의로 자기가 구원되고 자기 죄로 자기가 멸망 받는 것이지 남의 죄로 내가 죽고 내 의로 남이 구원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한 사람의 죄와 의가 주변 뿐 아니라 시대 전체의 멸망과 구원에 분명히 관련되어 있는 경우를 명시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일견 모순 같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하나님은 무형'이심이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얼굴이 있고 손이 있고 또 눈이 있다고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래 본 자가 없다고 한 성구가 있으나,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본체가 무형이신데 유형인 우리에게 유형의 예를 들어 무형의 세계를 알려주는 표현이며 방편입니다.
사람의 복과 멸망은 그 사람 자신의 죄와 그 사람 자신의 의에 따라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라 혹은 그 지방 전체의 흥망이 한 두 사람의 죄나 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있고 이런 사건이 있을 때에는 일단 그 당시에 어느 죄인과 어느 의인 때문에 이스라엘에 구원 역사가 있었으며 또는 멸망받는 역사가 있게 되었는지를 명시한 곳이 많습니다. 그런 죄인과 의인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그 당시 그 죄인과 의인이 누구며 그 숫자가 몇 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었는지를 계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을 할 때 항상 기억해야 될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의는 전체의 죄악 속에 던져져도 그 의로 그 사람은 멸망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가 다른 사람을 살려가고 의를 확장해 가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멸망 받을 다른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게 됩니다. 열 명의 의가 그 곳에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를 전달하고 의를 넓혀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의가 그 범위를 축소해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의가 자라가면 그 의가 자라가는 동안에는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에게 매가 갈 수 있는 기간이 연기됩니다. 그러나 의는 축소되어가고 죄가 자라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매는 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기 의를 바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속한 곳에 멸망이 언제 임하여도 그 의인은 그 멸망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따로 취급하십니다. 그러나 의인의 의가 다른 사람을 살려가는 구원 운동으로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이것이 의인된 사람을 의인으로 만든 '대속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의가 힘이 있어 의를 키워가면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겠고, 의가 힘이 없어 죄가 늘어가면 죄인들에게는 소망이 없겠습니다.
3.예루살렘에 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찾는다는 '1명의 의'는 '의의 뿌리'를 말합니다.
만일 이 렘5:1에서 한 사람의 의로 예루살렘을 구한다는 말씀이 모든 단체 멸망에 해당된다고 하면, 성경에 모순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또한 이 '한 사람'의 법칙이 그 당시 그 예루살렘에는 해당되고 다른 곳에는 다른 숫자와 다른 기준이 제시된다면,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을 성구들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우선 예레미야 시대에 요구한 '1명'이든, 소돔과 고모라에 요구한 '10명'이든 성경이 요구한 그 곳에는 그 숫자가 더하고 빼지 못할 성경의 명시된 숫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는 이 숫자들이 요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이미 예루살렘에는 '의의 뿌리' '의가 재생할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나라에 의하여 완전히 망할 때에, 유다 나라에는 의인인 예레미야 자신이 있었습니다. 혹시 예레미야 자신 말고 또 한 사람의 의인을 더 요구했다면, 에스겔 선지가 바로 그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두 의인이 최소한 이스라엘에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말한 '한명의 의인'은 2명의 의인 외에 제 3의 의인을 말씀하는 것인가? 모르드개와 같은 의인도, 비록 어리지만 포로잡혀 간 다니엘도 그 친구 3명도 전부가 유다가 멸망하던 그 시대의 의인들입니다. 유다가 완전히 절단나던 때에 유다에 의인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성전까지 완전히 훼파하며 성전 안에 거룩한 물건들을 전부 이방에 넘겼습니다.
유다 나라 전체를 두고 계산할 때에는 역사에 어느 시대에 비겨도 비겨볼 수 있는 이런 많은 의인들이 있었고 또 그들의 호소가 눈물의 선지라는 이름으로까지 전해졌지만, 유다 나라 전체를 볼 때는 더 이상 극심해 가던 죄를 보시고 그들에게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는 백성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충분히 경고했고 때가 되어 정리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시대 모든 선지와 의인들은 자기들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절단 났다고 스스로 겸손했을 것이고 또 그런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옮겨진 후 유다 나라의 다음 소망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의를 행했고, 그 의가 다시 유다 나라를 소생할 수 있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일단은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된 것은, 그 당시에도 있었던 의인들의 의로운 행위보다 그 당시 그 시대 전체가 멸망받을 죄의 행위가 더 극심했습니다. 더 극심해지는 죄로 인하여 그 시대는 시대 전체적으로 더 이상 기다려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그 시대 전체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누적되어 온 유다의 범죄와 유다를 회개 시킬 의, 둘을 놓고 하나님께서 비교하고 그 시대를 하나님께서 없애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 시대 선지와 의인들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 하나님의 일반 백성과 왕들의 강퍅이 더 이상 구원의 소망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전부 멸망시켰던 것입니다.
4.그렇다면, 엘리야 시대의 '7천명'과 그 시대의 완악함을 함께 놓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7천명의 의인이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고 자기 의를 지킬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의 시대적 멸망을 막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갈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전체에는 멸망의 재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10명의 의인이라면 소돔을 구원할 수 있었으니, 7천명이나 되는 의인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7천명이 있었지만 아합 시대에 멸망은 여러 형태로 계속되었으니 우리는 성경에 기록해 주신 그 결과를 가지고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7천명 의인들의 의로 이스라엘이 조금씩이라도 회개가 많아지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기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한 이스라엘 전체의 유례 없는 죄는 하나님의 큰 징계까지가 가해져야 될 죄였습니다. 그러나 전멸재앙으로 그 구원의 여지를 없애는 정도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잇는 그 시대의 의인과 이 7천의 의인들이 있어 이스라엘 전체를 볼 때는 아직까지 회개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엘리야는 그 활동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가는 의인이었으나, 7천의 의인들은 아합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를 더럽히지 않았던 의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의인이라도 그 의인을 여러 모양으로 사용하신다고 봐야 할 것 같고,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가던 이스라엘의 소망은 실은 엘리야 한 사람일 것인데 그 엘리야까지도 자기 하나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이 아합시대의 강퍅이었습니다. 이 정도였다면 전멸재앙으로 구원의 여지가 없도록 재앙이 닥쳐질 만 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심은 엘리야를 잇는 엘리사로 이스라엘에는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구원의 소망이 준비되어 있었고, 동시에 7천의 의인들 중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위해 엘리야처럼 힘있게 의로 활동할 소망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70년대 당시에는 복잡하게 얽힌 국내 정치 현실 때문에 실존하던 남침 위협을 실제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월남 패전 직후였던 1975년, 백영희목사님은 6.25전쟁이 재발된 정도의 다급한 심정으로 한국교회의 회개를 외친 적이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너무 민감한 반응이라고 보았으나 존경하는 종이었기 때문에 그 인식을 소극적으로 받아 들였던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분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에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를 봐서는 청소를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전쟁이 있어야겠으나 깨끗하게 자라나는 어린 주일학생 수천명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이렇게 커나가고 있으니 이들에게 전쟁 없는 고요한 때를 허락하시고, 이들의 신앙이 전쟁을 감당할 때가 된다면 그때는 이들을 귀하게 순교로 받든지 아니면 이들의 깨끗한 신앙으로 한국교회가 회개하여 전쟁이라는 청소도 필요 없는 그런 때를 소망하도록 전쟁을 막아주시라'는 기도였습니다.
5.다른 예를 참고한다면,
더 강한 의가 더 강한 악한 시대를 만나 그 시대 전체를 구원하지 못했던 때는 종종 많았습니다. 노아의 의도 결코 작은 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 내려오는 초기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체적인 강퍅은 물로 완전히 쓸어버려야 했고, 노아는 역사에 없는 큰 승리자가 되고 나머지는 역사에 비할 바 없는 큰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체 계산은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섭리 역사는 그 시대 개개인의 의와 죄를 계산하며, 동시에 그 시대 전체가 의로 나아가는지 죄로 완강해져 가는지를 계산하게 되며, 동시에 그 시대 전체를 두고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로 움직이는지 우리는 과거를 보고 그 시대를 평가하기는 쉽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시대가 어떤 의와 죄로 어떤 전체 멸망과 전체 구원을 계산하시는지,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어떻게 이 시대에 보여질런지가 문제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의라도 바로 지키고 있으면 천인이 네 옆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결코 너에게는 미치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꼭 지켜질 것이며, 내가 힘쓴 의가 점점 전해지는 양이 많아진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연기되며 혹 멈추어지며, 더 나아가 복주시는 시대로 바뀔 수까지도 있겠습니다. 내가 힘이 없어 주저앉던 내가 어떤 시대보다 강한 의로 전하는 데도 그 의의 결실이 자꾸 축소가 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버리시는가 라는 문제로 두려워할 일이고, 요나처럼 니느웨의 멸망을 기어코 봐야겠다는 심보를 혹시 가지게 되면 나는 내 의를 가졌으니 안심해도 되고,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 당하는 구경이나 하자고 될까 심히 두려워할 일입니다.
소돔을 두고 아브라함에 10명까지 의인을 계산한 것은, 롯의 의라면 아내와 딸 둘, 사위 둘, 최소한 거느린 종 몇 명이라도 의인을 만들었어야 하고, 비록 어려도 이렇게 자라가는 의가 있다면 하늘에까지 사무친 소돔의 죄라도 더 기다리며 구원받을 백성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아들, 며느리가 아브라함의 의가 전해져 의인들이 되었고, 심지어 심부름 보낸 노복도 비록 종의 신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맡은 일을 은혜스럽게 완수하는 의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소돔을 두고 아브라함이 찾아보겠다고 하나님께 구한 '10명'의 의미는 어느 곳이던 구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10명'이 아니라 롯의 의와 소돔의 죄악을 두고 하나님께 더 기다려야 할 '의가 자라가고 있는 최소한의 증거'였고, 그러나 아무리 계산해도 롯이 그런 최소한의 의를 만들어 놓지도 못했을 것이라 하나님께 더 이상 소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죄악이 대단했고 그 범위가 온 백성에게 미치고 있었으나 비느하스가 들고 꿰뚫은 한 '의분'은 하나님 앞에 비록 '1명의 의인'이었으나 그 '의의 기세'가 강퍅한 이스라엘 중에서 의를 살려갈 증거로 보셨고 그 의 때문에 전체 멸망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6. 문제는 오늘 우리 시대 우리 형편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믿는 어느 가정을 볼 때, 술에 노름에 엉망진창이 되었을찌라도 그 가정에 어린 아이 하나가 주일학교를 다니고 그 아이 때문에 그 형 하나가 교회를 또 나가게 되고, 그 집 아버지가 말 술을 마시다가 잔 술로 낮아지고 이렇게 나아가면 하나님은 기다리며 그 의의 장성을 지켜봅니다. 목사 가정에 자녀가 예수를 안 믿고 그 목사가 돈만 알게 된다면, 그래도 아직까지 자기 교회 다니는 그 주일학생에 비하면 가정 전체가 의가 많은데 앞에 가정은 지켜보시고 뒷 가정은 멸망재앙으로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습니다. 그 자녀로 내려가며 심해졌습니다. 더 이상 기회를 줘도 죄가 커지지 의가 자랄 여지가 없게 될 때 그 가정의 멸망이 결정되어졌습니다. 반대로 사무엘의 가정은 그 자녀들 역시 엘리 집과 같이 둘 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신앙은 그 두 자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자녀의 범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고를 다 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셔서 자녀의 죄가 막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그 가정에서 세력을 키워나가지는 못했고 사무엘의 의의 범위가 그 가정 전체에 더 크게 힘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자녀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결과로 볼 때 그 과정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엘리는 엘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자녀로 내려가며 악화가 되고 있었고 성화로 돌아설 여지가 없었고 그래서 그 가정을 기다리던 기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사무엘은 반대였음이 그 결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하나님 앞에 붙들고 마지막까지 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눈물로 간구한 종, 천하가 단체 속화로 달려갈 때 단 한번도 그 교계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오직 참된 의인들이 자라도록 주일학교에 모든 소망을 걸고 전부를 다했던 분, 이 시대를 오늘까지 하나님 앞에 그 진노의 날을 연기시켜 왔던 분은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백영희목사님' 한 분이었습니다. 제 눈에 발견되지 않았던 더 위대한 분이 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곳 홈페이지는 이 시대를 큰 범위에서 보며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넓혀 가는 의', '힘을 더해 가는 의'라는 기준에서는 이 시대 의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한 사람의 의를 겨우 붙들고 있는 분들은 주위에서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시대적으로 본다면 소망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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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질문하신 세미한 부분을 모르고 다른 면으로 답변을 드렸습니다.
소돔 고모라를 두고 아브라함이 기도한 '의인의 숫자'는 먼저 답변 드린 내용처럼, 또 재질문에서 지적한 대로 '최종적 멸망'에 주로 해당되는 경우였습니다. 아합시대를 '최종적 멸망'으로 본다면 1차 답변이 해당될 수 있으나, 아합시대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분명히 멸망 받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함께 그 시대를 지켰던 7천명의 의인들이 실존의 인물이며 또 그 숫자가 그렇게 많았다면 충분히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멸망들이 막아졌어야 했었다는 질문이라면 앞에 드린 답변에 다시 보충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한 의인의 의는 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어야 하는데 왜 전체에 해당되는 면을 가지는가?
자기 의로 자기가 구원되고 자기 죄로 자기가 멸망 받는 것이지 남의 죄로 내가 죽고 내 의로 남이 구원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한 사람의 죄와 의가 주변 뿐 아니라 시대 전체의 멸망과 구원에 분명히 관련되어 있는 경우를 명시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일견 모순 같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하나님은 무형'이심이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얼굴이 있고 손이 있고 또 눈이 있다고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래 본 자가 없다고 한 성구가 있으나,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본체가 무형이신데 유형인 우리에게 유형의 예를 들어 무형의 세계를 알려주는 표현이며 방편입니다.
사람의 복과 멸망은 그 사람 자신의 죄와 그 사람 자신의 의에 따라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나라 혹은 그 지방 전체의 흥망이 한 두 사람의 죄나 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있고 이런 사건이 있을 때에는 일단 그 당시에 어느 죄인과 어느 의인 때문에 이스라엘에 구원 역사가 있었으며 또는 멸망받는 역사가 있게 되었는지를 명시한 곳이 많습니다. 그런 죄인과 의인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그 당시 그 죄인과 의인이 누구며 그 숫자가 몇 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있었는지를 계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계산을 할 때 항상 기억해야 될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의는 전체의 죄악 속에 던져져도 그 의로 그 사람은 멸망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가 다른 사람을 살려가고 의를 확장해 가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멸망 받을 다른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게 됩니다. 열 명의 의가 그 곳에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를 전달하고 의를 넓혀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의가 그 범위를 축소해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의가 자라가면 그 의가 자라가는 동안에는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에게 매가 갈 수 있는 기간이 연기됩니다. 그러나 의는 축소되어가고 죄가 자라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매는 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기 의를 바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속한 곳에 멸망이 언제 임하여도 그 의인은 그 멸망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따로 취급하십니다. 그러나 의인의 의가 다른 사람을 살려가는 구원 운동으로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이것이 의인된 사람을 의인으로 만든 '대속의 목적'입니다. 따라서 의가 힘이 있어 의를 키워가면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겠고, 의가 힘이 없어 죄가 늘어가면 죄인들에게는 소망이 없겠습니다.
3.예루살렘에 의를 행하는 한 사람을 찾는다는 '1명의 의'는 '의의 뿌리'를 말합니다.
만일 이 렘5:1에서 한 사람의 의로 예루살렘을 구한다는 말씀이 모든 단체 멸망에 해당된다고 하면, 성경에 모순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또한 이 '한 사람'의 법칙이 그 당시 그 예루살렘에는 해당되고 다른 곳에는 다른 숫자와 다른 기준이 제시된다면,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을 성구들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우선 예레미야 시대에 요구한 '1명'이든, 소돔과 고모라에 요구한 '10명'이든 성경이 요구한 그 곳에는 그 숫자가 더하고 빼지 못할 성경의 명시된 숫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는 이 숫자들이 요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이미 예루살렘에는 '의의 뿌리' '의가 재생할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나라에 의하여 완전히 망할 때에, 유다 나라에는 의인인 예레미야 자신이 있었습니다. 혹시 예레미야 자신 말고 또 한 사람의 의인을 더 요구했다면, 에스겔 선지가 바로 그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두 의인이 최소한 이스라엘에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말한 '한명의 의인'은 2명의 의인 외에 제 3의 의인을 말씀하는 것인가? 모르드개와 같은 의인도, 비록 어리지만 포로잡혀 간 다니엘도 그 친구 3명도 전부가 유다가 멸망하던 그 시대의 의인들입니다. 유다가 완전히 절단나던 때에 유다에 의인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성전까지 완전히 훼파하며 성전 안에 거룩한 물건들을 전부 이방에 넘겼습니다.
유다 나라 전체를 두고 계산할 때에는 역사에 어느 시대에 비겨도 비겨볼 수 있는 이런 많은 의인들이 있었고 또 그들의 호소가 눈물의 선지라는 이름으로까지 전해졌지만, 유다 나라 전체를 볼 때는 더 이상 극심해 가던 죄를 보시고 그들에게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는 백성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충분히 경고했고 때가 되어 정리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시대 모든 선지와 의인들은 자기들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절단 났다고 스스로 겸손했을 것이고 또 그런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옮겨진 후 유다 나라의 다음 소망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의를 행했고, 그 의가 다시 유다 나라를 소생할 수 있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일단은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된 것은, 그 당시에도 있었던 의인들의 의로운 행위보다 그 당시 그 시대 전체가 멸망받을 죄의 행위가 더 극심했습니다. 더 극심해지는 죄로 인하여 그 시대는 시대 전체적으로 더 이상 기다려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그 시대 전체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누적되어 온 유다의 범죄와 유다를 회개 시킬 의, 둘을 놓고 하나님께서 비교하고 그 시대를 하나님께서 없애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 시대 선지와 의인들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 하나님의 일반 백성과 왕들의 강퍅이 더 이상 구원의 소망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전부 멸망시켰던 것입니다.
4.그렇다면, 엘리야 시대의 '7천명'과 그 시대의 완악함을 함께 놓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7천명의 의인이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고 자기 의를 지킬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의 시대적 멸망을 막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갈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전체에는 멸망의 재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10명의 의인이라면 소돔을 구원할 수 있었으니, 7천명이나 되는 의인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7천명이 있었지만 아합 시대에 멸망은 여러 형태로 계속되었으니 우리는 성경에 기록해 주신 그 결과를 가지고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7천명 의인들의 의로 이스라엘이 조금씩이라도 회개가 많아지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기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한 이스라엘 전체의 유례 없는 죄는 하나님의 큰 징계까지가 가해져야 될 죄였습니다. 그러나 전멸재앙으로 그 구원의 여지를 없애는 정도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잇는 그 시대의 의인과 이 7천의 의인들이 있어 이스라엘 전체를 볼 때는 아직까지 회개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엘리야는 그 활동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가는 의인이었으나, 7천의 의인들은 아합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를 더럽히지 않았던 의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은 의인이라도 그 의인을 여러 모양으로 사용하신다고 봐야 할 것 같고,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나가던 이스라엘의 소망은 실은 엘리야 한 사람일 것인데 그 엘리야까지도 자기 하나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이 아합시대의 강퍅이었습니다. 이 정도였다면 전멸재앙으로 구원의 여지가 없도록 재앙이 닥쳐질 만 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심은 엘리야를 잇는 엘리사로 이스라엘에는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구원의 소망이 준비되어 있었고, 동시에 7천의 의인들 중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위해 엘리야처럼 힘있게 의로 활동할 소망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70년대 당시에는 복잡하게 얽힌 국내 정치 현실 때문에 실존하던 남침 위협을 실제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월남 패전 직후였던 1975년, 백영희목사님은 6.25전쟁이 재발된 정도의 다급한 심정으로 한국교회의 회개를 외친 적이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너무 민감한 반응이라고 보았으나 존경하는 종이었기 때문에 그 인식을 소극적으로 받아 들였던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분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에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를 봐서는 청소를 위해서라도 얼마든지 전쟁이 있어야겠으나 깨끗하게 자라나는 어린 주일학생 수천명이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이렇게 커나가고 있으니 이들에게 전쟁 없는 고요한 때를 허락하시고, 이들의 신앙이 전쟁을 감당할 때가 된다면 그때는 이들을 귀하게 순교로 받든지 아니면 이들의 깨끗한 신앙으로 한국교회가 회개하여 전쟁이라는 청소도 필요 없는 그런 때를 소망하도록 전쟁을 막아주시라'는 기도였습니다.
5.다른 예를 참고한다면,
더 강한 의가 더 강한 악한 시대를 만나 그 시대 전체를 구원하지 못했던 때는 종종 많았습니다. 노아의 의도 결코 작은 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 내려오는 초기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체적인 강퍅은 물로 완전히 쓸어버려야 했고, 노아는 역사에 없는 큰 승리자가 되고 나머지는 역사에 비할 바 없는 큰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체 계산은 하나님의 주권 섭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섭리 역사는 그 시대 개개인의 의와 죄를 계산하며, 동시에 그 시대 전체가 의로 나아가는지 죄로 완강해져 가는지를 계산하게 되며, 동시에 그 시대 전체를 두고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로 움직이는지 우리는 과거를 보고 그 시대를 평가하기는 쉽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시대가 어떤 의와 죄로 어떤 전체 멸망과 전체 구원을 계산하시는지, 그리고 마지막 결론은 어떻게 이 시대에 보여질런지가 문제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의라도 바로 지키고 있으면 천인이 네 옆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결코 너에게는 미치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꼭 지켜질 것이며, 내가 힘쓴 의가 점점 전해지는 양이 많아진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연기되며 혹 멈추어지며, 더 나아가 복주시는 시대로 바뀔 수까지도 있겠습니다. 내가 힘이 없어 주저앉던 내가 어떤 시대보다 강한 의로 전하는 데도 그 의의 결실이 자꾸 축소가 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버리시는가 라는 문제로 두려워할 일이고, 요나처럼 니느웨의 멸망을 기어코 봐야겠다는 심보를 혹시 가지게 되면 나는 내 의를 가졌으니 안심해도 되고,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 당하는 구경이나 하자고 될까 심히 두려워할 일입니다.
소돔을 두고 아브라함에 10명까지 의인을 계산한 것은, 롯의 의라면 아내와 딸 둘, 사위 둘, 최소한 거느린 종 몇 명이라도 의인을 만들었어야 하고, 비록 어려도 이렇게 자라가는 의가 있다면 하늘에까지 사무친 소돔의 죄라도 더 기다리며 구원받을 백성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아들, 며느리가 아브라함의 의가 전해져 의인들이 되었고, 심지어 심부름 보낸 노복도 비록 종의 신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맡은 일을 은혜스럽게 완수하는 의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소돔을 두고 아브라함이 찾아보겠다고 하나님께 구한 '10명'의 의미는 어느 곳이던 구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10명'이 아니라 롯의 의와 소돔의 죄악을 두고 하나님께 더 기다려야 할 '의가 자라가고 있는 최소한의 증거'였고, 그러나 아무리 계산해도 롯이 그런 최소한의 의를 만들어 놓지도 못했을 것이라 하나님께 더 이상 소원을 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죄악이 대단했고 그 범위가 온 백성에게 미치고 있었으나 비느하스가 들고 꿰뚫은 한 '의분'은 하나님 앞에 비록 '1명의 의인'이었으나 그 '의의 기세'가 강퍅한 이스라엘 중에서 의를 살려갈 증거로 보셨고 그 의 때문에 전체 멸망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6. 문제는 오늘 우리 시대 우리 형편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믿는 어느 가정을 볼 때, 술에 노름에 엉망진창이 되었을찌라도 그 가정에 어린 아이 하나가 주일학교를 다니고 그 아이 때문에 그 형 하나가 교회를 또 나가게 되고, 그 집 아버지가 말 술을 마시다가 잔 술로 낮아지고 이렇게 나아가면 하나님은 기다리며 그 의의 장성을 지켜봅니다. 목사 가정에 자녀가 예수를 안 믿고 그 목사가 돈만 알게 된다면, 그래도 아직까지 자기 교회 다니는 그 주일학생에 비하면 가정 전체가 의가 많은데 앞에 가정은 지켜보시고 뒷 가정은 멸망재앙으로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습니다. 그 자녀로 내려가며 심해졌습니다. 더 이상 기회를 줘도 죄가 커지지 의가 자랄 여지가 없게 될 때 그 가정의 멸망이 결정되어졌습니다. 반대로 사무엘의 가정은 그 자녀들 역시 엘리 집과 같이 둘 다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신앙은 그 두 자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자녀의 범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고를 다 했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셔서 자녀의 죄가 막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가 그 가정에서 세력을 키워나가지는 못했고 사무엘의 의의 범위가 그 가정 전체에 더 크게 힘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자녀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결과로 볼 때 그 과정이 기록되지 않았으나 엘리는 엘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자녀로 내려가며 악화가 되고 있었고 성화로 돌아설 여지가 없었고 그래서 그 가정을 기다리던 기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사무엘은 반대였음이 그 결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하나님 앞에 붙들고 마지막까지 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눈물로 간구한 종, 천하가 단체 속화로 달려갈 때 단 한번도 그 교계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오직 참된 의인들이 자라도록 주일학교에 모든 소망을 걸고 전부를 다했던 분, 이 시대를 오늘까지 하나님 앞에 그 진노의 날을 연기시켜 왔던 분은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백영희목사님' 한 분이었습니다. 제 눈에 발견되지 않았던 더 위대한 분이 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곳 홈페이지는 이 시대를 큰 범위에서 보며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넓혀 가는 의', '힘을 더해 가는 의'라는 기준에서는 이 시대 의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한 사람의 의를 겨우 붙들고 있는 분들은 주위에서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시대적으로 본다면 소망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주해] 7천명의 의인이 있는데도 멸망? 약간의 변명과 재질문
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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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느끼게 됩니다.
설명해 주신 내용에 약간의 이견(혹은 변명)을 말씀드린다면,
착오나 착각이라기보다는 '멸망이라는 단어'와 '멸망의 시점'에 대한 표현의 차이 내지는 시각의 차이라 사료됩니다.
1. 앞서 드린 질문에서 '멸망'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구원의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리는 '진멸'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극에 달했던 이스라엘의 타락과 그로 인한 나라 전체의 형편,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아서 기근이 극심했고, 시기가 조금 지나서이지만 엘리사 시대에는 두 여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일로 다투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 정도면 멸망이라 생각했던 것이며, 또 멸망의 시점을 말한다면 그 당시에 바로 멸망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범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결국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 나라에 멸망되어 남은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멸망'의 내용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왕하7:13-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왕하17: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렘4: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렘9:12-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애4:10- 처녀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2. '그 7천명으로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를 세워 아합과 아합을 따랐던 이스라엘을 소탕했고 7천인은 그 멸하는 속에 들지 않았다는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이 마지막에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7천명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확답은 저로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롬11:3-4)말씀이 해당이 될는지 혹 모르겠습니다만.
3. 그리고 7천명이라는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그렇게까지 타락이 되어졌다는 것도 저로서는 연구가 좀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죄와 의는 다른 사람에게 분명히 관련이 있는 것이 성경'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 7천명이 복음 역사를 했다면(만약) 그렇게까지 이스라엘이 타락이 되었을지? 그렇게 타락하기까지 7천명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쓰시는 종들이 있는 반면에 보이지 않게 붙들고 쓰시는 종들이 있다는 말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지금의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 믿는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를 통틀어 순교했거나 할 만한 신앙의 사람이 7천명이 될는지?
재 질문을 드리면서도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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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내용분류 : [-성경-주해-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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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며 느끼게 됩니다.
설명해 주신 내용에 약간의 이견(혹은 변명)을 말씀드린다면,
착오나 착각이라기보다는 '멸망이라는 단어'와 '멸망의 시점'에 대한 표현의 차이 내지는 시각의 차이라 사료됩니다.
1. 앞서 드린 질문에서 '멸망'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구원의 여지를 아예 없애 버리는 '진멸'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극에 달했던 이스라엘의 타락과 그로 인한 나라 전체의 형편, 3년 6개월 비가 오지 않아서 기근이 극심했고, 시기가 조금 지나서이지만 엘리사 시대에는 두 여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일로 다투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 정도면 멸망이라 생각했던 것이며, 또 멸망의 시점을 말한다면 그 당시에 바로 멸망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범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결국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 나라에 멸망되어 남은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멸망'의 내용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왕하7:13-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왕하17: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렘4:30-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렘9:12-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타서 지나는 자가 없게 되었느뇨)
(애4:10- 처녀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2. '그 7천명으로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를 세워 아합과 아합을 따랐던 이스라엘을 소탕했고 7천인은 그 멸하는 속에 들지 않았다는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이 마지막에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7천명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확답은 저로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롬11:3-4)말씀이 해당이 될는지 혹 모르겠습니다만.
3. 그리고 7천명이라는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그렇게까지 타락이 되어졌다는 것도 저로서는 연구가 좀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죄와 의는 다른 사람에게 분명히 관련이 있는 것이 성경'이라고 하셨는데, 그러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순교적인 신앙의 사람 7천명이 복음 역사를 했다면(만약) 그렇게까지 이스라엘이 타락이 되었을지? 그렇게 타락하기까지 7천명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하나님께서 대표적으로 쓰시는 종들이 있는 반면에 보이지 않게 붙들고 쓰시는 종들이 있다는 말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지금의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 믿는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를 통틀어 순교했거나 할 만한 신앙의 사람이 7천명이 될는지?
재 질문을 드리면서도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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