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휼을 묵상하며

문의답변      


체휼을 묵상하며

분류
연경 1 1
왜 주님은 우리가 긍휼을 넘어 체휼까지 가기를 원하실까?를 묵상해 보는 중..

홍포입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떠올라 묵상해 보았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나사로의 입장에 앉아 나사로가 되는 체휼을 해 보았다면..홍포 입은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뛰어 넘는 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거지 나사로는 홍포 입은 부자의 입장에 앉아 부자의 생활을 체휼했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며 복의 근원이 되어진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의 모습에서.. 나사로는 체휼을 통해서 모든 부요를 소유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나게 하시어..서로 다른 현실 속 입장들을 체휼하여 봄으로..자기에게 주어진 현실과 함께 다른 이의 현실까지 자기 것으로 삼고,확장해 나갈 기회를 제공하여 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기회를 놓쳤으나..
거지 나사로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는 우리를 사람에게로,만물에게로,하나님에게로 광대하게 넓혀 나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생각인지요?
부공3 2018.09.14 04:57  
예. 바로 보셨습니다.

저도 오랜 세월 '긍휼'만 알고 있었습니다. 체휼을 배웠는데 세상의 '긍휼'이 먼저 들어 와서 자리를 잡는 바람에 백 목사님의 체휼은 거의 평생 겉돌다 사라졌고 제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록에서 다시 체휼을 만났고 그 즉시로 긍휼이 앉은 자리에서 긍휼은 문 밖에 서도록 내보내고 체휼을 안방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다른 세상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긍휼은 긍휼의 눈으로 볼 때 대단히 훌륭한 인품이었는데, 체휼을 알고 보니까 긍휼은 자라 가는 아이의 과정으로서는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성인의 시야로 볼 때는 교만을 넘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긍휼은 체휼로 안내하는 임시직으로만 상대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쓰기 문의답변 초기목록
(1) 항목별 검색 주제별 | 가나다별 | test 주제별 정리
(2) 게시판 검색
(3) 통합 검색
번호제목이름날짜
  • 13938
    성도A
    2026.02.23월
  • 13937
    외부교인
    2026.02.20금
  • 13936
    교인
    2026.02.16월
  • 13935
    LA
    2026.02.15일
  • 13934
    재독
    2026.02.14토
  • 13933
    학생
    2026.02.12목
  • 13932
    성도A
    2026.02.11수
  • 13931
    도봉
    2026.02.10화
  • 13930
    교인
    2026.02.10화
  • 13929
    배우는 이
    2026.02.05목
  • 13928
    성도A
    2026.02.04수
  • 13927
    학생
    2026.02.02월
  • 13926
    성도A
    2026.02.02월
  • 13925
    공회교인
    2026.01.23금
  • 13924
    학생
    2026.01.21수
  • 13923
    학생
    2026.01.16금
  • 13922
    반사
    2026.01.16금
  • 13921
    학생
    2026.01.15목
  • 13920
    반사
    2026.01.13화
  • 13919
    성도A
    2026.01.12월
  • 13918
    신학도
    2026.01.12월
  • 13917
    부족한교인
    2026.01.06화
  • 13916
    성도A
    2025.12.26금
  • 13915
    돌아온탕자
    2025.12.23화
  • 13914
    믿는 자
    2025.12.2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