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신 역사 속의 '거창교회'와 '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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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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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20:05
소식 게시판에 소개된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계신 교단의 설립'이라는 석사논문을 살펴봤습니다. 석사논문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사신학의 교수 3명이 검토하고 사인을 했다면 최소한의 사실관계,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은 검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의 43쪽에서 44쪽을 보면 고신교단이 총회측으로부터 1951년에 축출이 되고 연이어 총회측에서는 고신의 대표가 될 5개의 교회들을 찍어서 예배당 명도 소송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부산초량교회(한상동) 부산영도교회(박손혁) 마산문창교회(송상석) 경남거창교회(주남선) 경남진주교회(황철도)를 상대로 먼저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한상동 목사님이 10월 14일에 예배당과 모든 기물을 내어 주고 교회를 떠났고 거창교회도 초량교회의 선례를 따랐다고 적습니다. 이 사실은 남영환의 '한국기독교 교단사 380쪽'을 인용합니다.
제가 찾아 본 바로는 거창교회의 경우는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한 논문의 52쪽에서 1956년 9월의 총회에서 고신 내 박윤선 목사가 법정소송에 대한 시정을 제기할 때 박윤선 목사님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을 '이인재 목사를 비롯하여 김창인 목사 김현봉 목사 이병규 목사 전칠홍 목사 등이라고 합니다. 인용은 역시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이며 403쪽입니다.
56쪽에서는 '1958년 9월, 예배당 소송의 중지를 요청하며 행정보류를 선언한 경기노회가 고신 총회에서 추방 당한 후,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목사 등은 이후 특별한 조직 없이 성경 중심의 신앙운동을 하다가 1960년에 '성경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목표로 개혁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에서' 공의회를 조직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좀 애매해 보입니다.
논문의 43쪽에서 44쪽을 보면 고신교단이 총회측으로부터 1951년에 축출이 되고 연이어 총회측에서는 고신의 대표가 될 5개의 교회들을 찍어서 예배당 명도 소송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부산초량교회(한상동) 부산영도교회(박손혁) 마산문창교회(송상석) 경남거창교회(주남선) 경남진주교회(황철도)를 상대로 먼저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한상동 목사님이 10월 14일에 예배당과 모든 기물을 내어 주고 교회를 떠났고 거창교회도 초량교회의 선례를 따랐다고 적습니다. 이 사실은 남영환의 '한국기독교 교단사 380쪽'을 인용합니다.
제가 찾아 본 바로는 거창교회의 경우는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한 논문의 52쪽에서 1956년 9월의 총회에서 고신 내 박윤선 목사가 법정소송에 대한 시정을 제기할 때 박윤선 목사님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을 '이인재 목사를 비롯하여 김창인 목사 김현봉 목사 이병규 목사 전칠홍 목사 등이라고 합니다. 인용은 역시 남영환 목사님의 교단사이며 403쪽입니다.
56쪽에서는 '1958년 9월, 예배당 소송의 중지를 요청하며 행정보류를 선언한 경기노회가 고신 총회에서 추방 당한 후, 김현봉, 이병규, 백영희 목사 등은 이후 특별한 조직 없이 성경 중심의 신앙운동을 하다가 1960년에 '성경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생활을 목표로 개혁주의와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노선에서' 공의회를 조직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좀 애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