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10.5. 첫 부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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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0.5. 첫 부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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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 목사님과 일화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82년 10월 3일, 첫 주일날 또는 그 직전 주간에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전신인 서부교회 편집실 시절에 직원을 구한다고 예배 때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4일쯤 당시 3대 재벌에 들어 가던 대우그룹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바로 백 목사님을 뵙기 위해 교회로 가자 수위실에서 구덕산에 있던 꽃마을 기도실로 가셨다 하여 그 곳으로 갔습니다.

2층의 단독 주택이며 구덕산 산정에 있는 마을 중에서 산 쪽의 제일 끝 쪽에 있던 기도실에 혼자 계시던 백 목사님께 합격증을 보여 드리면서 편집실 직원으로 일하고 싶다며 신청을 직접 했습니다. 당시 이민영 실장이 편집실 책임자였기 때문에 편집실이 필요로 하는 직책이나 직원을 선발하게 된 이야기는 이미 들어 두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는 '중간반 반사'를 먼저 거론했습니다.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반사는 자기 생활을 하면서 반사를 하지만 매주 출석 8천 명에 재적 2만 5천여 명에 달하는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매년 졸업생을 1,200여명씩 올려 보내는 중고등부의 반사는 30여명 남녀 선생님 전부가 부부 중심의 유급이었고 1주 내내 심방과 전도만 하는 목회 준비 과정이면서 다른 교회의 전임 전도사와 같습니다. 6백 명 주교 반사와 4백 명 주교 보조반사 중에 최고만 선발하는 상황이어서 모두가 부러워 하는 자리였고 대우도 좋았지만 백 목사님의 후계자인 서영준 목사님 부부가 남녀 반을 지도하던 특별한 그룹이었습니다.

저는 백 목사님 설교에만 집중하여 배우고 연구하고 싶어서 '편집실 직원'에 지원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자 백 목사님은 '목회직'의 장점을 강하게 설명했습니다. 직접 중간반 반사를 하면서 목회를 준비해야 정말 좋은 세계를 알게 된다는 요지였으나, 저는 속으로 주교 반사를 하면서 중간반 반사의 세계를 알고 있었고 주교 반사를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심으로 중간반 반사의 세계는 먼 훗날에 하거나 아니면 그 단계를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교 반사 중에 몇 사람에게는 그런 인식이 있었습니다.


달래 봐도 안 되니까 목사님은 허락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한두 번은 진심으로 그리고 강하게 지도를 하지만 상대방이 자기 고집을 꺾지 않으면 하나님께 맡겨 놓지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를 그 이상 나가지 않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마지막에 강제가 아니라 자원이라야 한다는 기본 원리 때문입니다. 백 목사님의 불신 시절의 경험도 그러했고, 믿은 이후에는 그 성경 체계의 중요한 기본 원리 중 하나가 '자유성'입니다.

'꼭 그렇게 원하면 해라. 그 대신 이 말씀을 가지고 세계 신학을 밟으라'

백 목사님은 편집실 직원으로 허락하는 조건이었고 속에 담아 두었던 깊은 마음을 터뜨렸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백 목사님은 교역자회에 직접 불러 주신 1장짜리 간단한 발표문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깨달았고 칼빈은 정리하여 발표한 사람이며 백 목사님을 통해 공회에 주신 신관 성경관 인관 구원관 말세관을 정리하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라 했는데, 경남 거창의 제 시골의 모교인 창동교회에서 전성수 당시 조사님을 통해 그 감격적인 발표문을 고등학교 때 접했습니다. 그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 목사님의 중간반 반사 권유는 일반적인 권유였고 편집실 자리는 목사님의 내심이 기다리고 있던 본심이며 소망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1983년 5월 집회 직전 주간과 직후 주간에 2회에 걸쳐 미국 유학을 가라 하시고 덧붙인 말씀에서도 '가서 배울 것은 없을 것이나 우리와 같은 그런 교리가 있는지 미국은 세계 신학과 소식이 모이는 곳이니 가서 살펴 봐라. 비교해 봐서 그 쪽이 나으면 가져 와야 하고 비교해 봐서 우리 것이 나으면 우리 것을 지켜 내야 한다. 알고 지키는 것과 모르고 지키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조직신학을 맡겨 주셨습니다.


2. 편집실 직원 시절부터
그 이전에도 이 말씀에 대한 소원은 이미 같았고 직원으로 들어 갈 때와 유학을 거칠 때 그리고 백 목사님 돌아 가실 때까지 늘 백 목사님께 배우면서 '구원 목적적' 교훈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알아 듣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백영희 설교 세계입니다.

1987년 연초에 백 목사님은 서영준 목사님을 모시고 조직신학 작업에 나서라고 직접 지시하면서 '박형룡 조직신학' 전집을 2 질 살 수 있도록 서부교회 십일조에서 지출해 주시면서 세계 신학의 요약은 그 속에 있으니 그 것을 참고해 가며 진행하라 하셨고, 서영준 목사님은 당시 목회를 나가 계셨기 때문에 제가 그 말씀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미리 서 목사님께도 말씀은 평소 하셨을 것이나 구체적 출발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 목사님과 교역자회 때 만나서 향후 방향을 의논했습니다.

박형룡 조직신학 전집을 구체적으로 짚으며 구입까지 해서 주신 상황이라면 공회의 독특한 교리 체계를 그대로 적는 것보다 일단 세계의 정통 신학의 겉 모습이나 기본 체계는 우리가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그 둥치에서 우리는 새 움으로 돋아 난 것이니 교리의 순서와 일반 편제는 그렇게 잡고, 그리고 구원론과 함께 각 분야의 우리 것은 명확히 적는다는 것이 대략 그 날 잡은 방향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15일에 서 목사님은 39세 연세로 돌아 가십니다. 31세의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3. 조직신학의 전체 방향
2004년에 '백영희 조직신학'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1989년 백 목사님의 별세 직후에 바로 발표할 수 있었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길 공회 교훈의 의미를 생각할 때 묵히고 또 묵혀서 신중하게 발표했습니다. 우선, 지도하신 백 목사님이 없는 상황에서 함께 연구하라 하셨지만 실제로는 연구의 책임은 서 목사님이 되고 저는 보조의 위치가 되는 것이 순리인데 서 목사님조차 계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15년을 기다려 조직신학의 1차 작업이면서 향후 전체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의 '조직신학 목록'이며 개요서라는 입장에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3년이 지나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원론적 조직신학'이라는 백영희 교리 체계의 원래 모습으로 발표해도 좋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직신학에 대하여 언급하신 지 35년에 구체적으로 작업을 지시한 지 이미 세월이 30년 지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목회 경험도 어느 정도 쌓였고 또 더 이상 미루면 작업에 필요한 심신이 따라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 백 목사님의 자녀 7 가족 전체가 부친 성함과 함께 그 설교 저작권까지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주력해 온 백 목사님 그대로를 알리는 일을 막아 나섰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소송과 고소는 세상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고 또 우리 법 체계 상으로 봐도 저절로 막힐 것으로 봤습니다. 대법관 출신의 최근 퇴임한 그 분야 전문가의 의견도 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도 그러했습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문에서 2심은 법리를 오해했다고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그러나 문건 제출의 시간을 넘긴 몇 가지 사소한 실수 때문에 대법원은 법원의 심리 기술상으로 결론을 지웠다고 보이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직접 역사는 무엇을 향하는지가 처음부터 문제였습니다.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던 마지막 해의 5월 집회 공석에서 제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조직신학을 맡겼던 일을 말씀했고 그 집회의 전체 흐름은 백영희 신앙 노선인 총공회의 의미와 역사와 필연과 정체성을 성경을 깨닫고 전하는 교리 문제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구원 목적론의 조직신학이 이 노선의 체계라야 할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너희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주님의 사활 대속의 마지막 발걸음을 두고 예루살렘은 환호를 해야 옳습니다. 예루살렘의 지도부가 앞 장을 서야 맞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니 따르는 무리들이 천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관대작들이 자제를 시키자 주님은 너희가 앞 서 소리를 질러야 할 일이며 너희가 잠잠하니 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만일 이들조차 잠잠하다면 돌들이 소리를 질러서라도 구원의 최종 순간을 향해 걸어 가는 만왕의 왕, 우리의 구주의 영광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임을 알렸습니다.

질문에 관련 된 공회사적 배경을 함께 적어 봤습니다.

최근 답변이 좀 늦어 지는 것은, 이 연구소는 단체의 것인데 원고와 대법원이 이영인 개인 것이라고 해 주니 세상 말로는 큰 돈을 벌어 횡재를 한 것이고, 교회 앞에서는 희대의 도둑놈이 되어 버린 꼴입니다. 신앙으로 제 자리를 찾아 가야 할 것이고, 세상에게는 겉 모습 때문에 맞서 싸울 일은 아닐 것이니, 어떻게 운영을 해야 갈 길을 바로 가게 되는 것인지를 놓고 지금 제가 속한 부공3 총공회의 신규 사이트와 기존 사이트의 운영자, 운영 방법 등을 조율하기 위해 당분간 혼선이 좀 예상 됩니다. 앞으로도 가족들의 수 많은 고소를 일일이 받아 보면서 그 결과를 가지고 우리 갈 길을 찾는 것이 이 노선의 방식이니 좀 지켜 봐 주신다면 좋은 모습을 기대할 것으로 생각하며, 어떤 결과와 상관 없이 이 노선의 '구원 목적론적 조직신학'은 올해부터 이미 시작 된 양성원 강의를 통해 교안이 작성되고 있습니다. 이 강의가 끝나게 되면 교안을 중심으로 출간에 나섭니다.


그 때에 백 목사님의 자녀들에 의한 고소가 자녀분들의 소원대로 다 이루어 지면 '이영인 저, 총공회 조직신학'의 이름으로 발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시대를 감당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의 갈 길을 제시할 역사적 조직신학 교리 체계에 '백영희'라는 성함이 빠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상상도 하지 않는 것이 복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기어코 부친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 때는 제 이름을 앞에 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책임은 자녀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져야 할 것이고, 저는 최소한 교만하게 자기를 나타 내려 했다는 문책만은 피할 것으로 봅니다.


>> 신학도 님이 쓰신 내용 <<
:
: 2004년에 발행한 '백영희조직신학'은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그릇에 공회 교리를 담았습니다. 최근 양성원 강의를 통해 '구원론적' 조직신학을 새로 적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원래 백 목사님의 소원이 아니었을까요?
구원론적 조직신학의 진척
2004년에 발행한 '백영희조직신학'은 개혁교회의 전통적인 그릇에 공회 교리를 담았습니다. 최근 양성원 강의를 통해 '구원론적' 조직신학을 새로 적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원래 백 목사님의 소원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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