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장과 인도의 과정
| 분류 |
|---|
연구부
0
2017.05.14 17:48
1. 생명은
작은 것이 자라 가고, 하나가 둘로 셋으로 늘려 갑니다. 그 과정에서 억지로 늘이거나 합병하지 않습니다. 회사처럼 생명 없는 세상 단체는 억지로 늘려 가고 수단과 힘으로 합병을 해서 키웁니다. 교회는 회사 같은 단체가 아니라 아이가 태어 나서 자라 가며, 결혼을 통해 늘려 가는 생명성을 가졌습니다.
2. 공회는
혼자 믿고, 주변의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함께 다니면서 교회가 자라는 아이처럼 됩니다. 결혼과 진학과 어린 신앙의 이사 때문에 현재 교회로 출석을 할 수 없게 되면 그 곳에 목회자를 파송합니다. 목회자는 평소 미리 마련하지 않고, 목회자가 필요하게 되면 그 때서야 현재 있는 교인 중에 평소 목회자 출발에 가장 가깝게 준비 된 사람을 보냅니다. 모자라는 것은 그 곳에 가서 보충합니다. 그렇게 해서 1교회가 2교회로 3개와 4개로 점점 많아지고 각 교회는 교회가 조금씩 커 나갑니다. 그러다 먼저 출발한 교회가 다시 그런 식이 됩니다.
3. 외부에서 오는 경우
진리를 찾아 오는 분은, 그 분만 오게 하고, 그 주변에 평소 가까운 분들은 원래 다니던 교회를 잘 다니게 합니다. 공회는 믿기 어렵기 때문에 오기도 어렵고 또 와서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공회가 90점이라 치고, 현재 있는 교회가 30점이라 쳐도, 30점 교회에 그대로 있으면 30점은 되는데 90점 교회에 왔다가 돌아 가고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30점 교회가 흔들어 지면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20점 10점으로 내려 가게 됩니다. 공회 교회도 교회지만 그 교회들도 주님의 교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만났을 때 우리 전체의 총점을 놓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도 잘 되어야 하나 멀리 있는 타 교파와 다른 교회들도 한 몸이니 현재 수준을 최소한 유지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현 수준에서 나아 져야 하는데, 단순하게 그리고 쉽게 생각하여 교회를 이동하다가 본인은 뒷걸음 쳐서 손해 보고 남들의 신앙까지 뒷걸음 치게 되면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죄송하게 됩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이 노선을 접하는 순간 이 노선에서 확실하게 살아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현 교회에 잡아 둔다 해도 이미 새로운 세계를 알아 버렸기 때문에 잡아 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현 교회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치 남한에 눈을 뜬 탈북자는 남한으로 가버리는 것이 북한에도 우선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들을 억지로 붙들어 두면 북한 내에서 불만 세력으로 자라 가는데 그 상황은 북한 스스로에게도 좋지를 못합니다.
4. 전체적으로
공회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각자 주신 자기 교회가 있으며 그 교회는 각자의 현실이며 그 현실은 주님이 필요해서 만들어 주셨으므로 자기 현실에 충성하는 것이 무조건 1차 목표입니다. 공회 교회는 공회 노선에서, 타 교회는 그 교회 노선에서 충실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재와 비교해서 더 배워야 하고 더 고쳐야 하는 것을 발견한 상태에서 현재 교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중학교 1학년으로 진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는 교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진학을 하는 것이 됩니다. 아직 실력이나 여러 상황에서 초등학교 4학년 과정도 서툰 학생이 6학년 졸업생이 부러워 중학교 진학에 쏠려 따라 간다면, 막는 것이 옳습니다.
무작정 가출이 아니고, 현실이 싫어서도 아니고, 현재 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호기심에 여행을 나서는 것도 아닌 상황.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을 봤고 그 길에서만 가질 수 있는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 때는 주님의 인도이니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 나서야 할 인도를 받고도 주변 때문에 머뭇거리면 그 곳에도 고통을 주고 자기도 손해가 됩니다.
5. 백 목사님 평생에,
너는 그 곳에 있으면 곤란할 사람이니 이리 와서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 사람은 이진헌 목사님 1명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은 오갈 데가 없으니 거둬 주는 의미였고, 어떤 사람은 이미 과거 소속을 정리를 해 버린 상태에서 목사님이 오라 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상황이 발생해 버린 경우, 목사님이 오라 함으로 그가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해 주는 차원은 있습니다. 먼저 오라 한 경우는 거의 없고 모두가 너무 좋아서 들어 온 것이 1960년대였는데, 교계적으로 탁월한 분들조차 일단 들어 온 다음에 너무 힘이 들어서 후회를 하고 다시 나가는 모습이 1970년대에 발생했고 1979년부터는 주일학교 때문에 교계가 흠모해 마지 않는 상황이 생겨서 대량으로 들어 오려는 상황인데, 백 목사님은 상대방이 참으로 오해할 정도로 냉정히 돌려 세웁니다. 1개 교단 차원에서 단체 가입조차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비록 숫자는 적지만 굉장히 알아 주는 골수 보수 교단들의 경우들이었습니다. 고신의 경우 총회장이 간부들과 합의하고 강력하게 추진을 했으나 목사님은 좋게 사양을 했습니다.
6. 역사적으로
루터와 칼빈의 경우는 천주교 내에서 천주교가 틀렸다고 외친 경우입니다. 그들이 죽이려고 찾으니 피했던 것이니, 죽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목숨을 보존한 것이지, 천주교의 내부에서 개혁하는 것이 힘든다고 무조건 나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고, 그들이 추적을 하자 죽어야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했던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당시를 포함하여 이런 상황이 생길 때 기록으로만 여러 주장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부에서 먼저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더 이상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내부에서 밀어 내고 잘라 낼 때 나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점에서 16세기의 개혁은 부분적으로 미흡했다고 비판하는, 현장을 모르고 믿으면서 그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철없는 학자들도 있지만, 기록에 남기지 못한 그 어떤 연유 때문에 비록 자기 발로 나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 내막적으로는 밀려 나올 때까지는 내부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1천년 천주교를 개혁할 신앙일 것이고, 그 과정에 그렇게 뜨겁게 주님이 동행한 분들은 주님의 인도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었을 듯합니다.
7. 혹시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그 때는 오늘에 비해 신앙이 어린 시기여서 좀 낮은 단계에서 인도를 하셔서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는 내부에서 길러 개척하지 타 교단 교회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
: 그리고 이번 집회 때는 유독 '고신에서 쫓겨났다. 내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을 많이 하는데, 루터나 칼빈은 천주교에서 개혁을 하기 위해 스스로 나왔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개혁가들은 대부분 그런데 왜 쫓겨난 것을 강조하는지요?
작은 것이 자라 가고, 하나가 둘로 셋으로 늘려 갑니다. 그 과정에서 억지로 늘이거나 합병하지 않습니다. 회사처럼 생명 없는 세상 단체는 억지로 늘려 가고 수단과 힘으로 합병을 해서 키웁니다. 교회는 회사 같은 단체가 아니라 아이가 태어 나서 자라 가며, 결혼을 통해 늘려 가는 생명성을 가졌습니다.
2. 공회는
혼자 믿고, 주변의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함께 다니면서 교회가 자라는 아이처럼 됩니다. 결혼과 진학과 어린 신앙의 이사 때문에 현재 교회로 출석을 할 수 없게 되면 그 곳에 목회자를 파송합니다. 목회자는 평소 미리 마련하지 않고, 목회자가 필요하게 되면 그 때서야 현재 있는 교인 중에 평소 목회자 출발에 가장 가깝게 준비 된 사람을 보냅니다. 모자라는 것은 그 곳에 가서 보충합니다. 그렇게 해서 1교회가 2교회로 3개와 4개로 점점 많아지고 각 교회는 교회가 조금씩 커 나갑니다. 그러다 먼저 출발한 교회가 다시 그런 식이 됩니다.
3. 외부에서 오는 경우
진리를 찾아 오는 분은, 그 분만 오게 하고, 그 주변에 평소 가까운 분들은 원래 다니던 교회를 잘 다니게 합니다. 공회는 믿기 어렵기 때문에 오기도 어렵고 또 와서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공회가 90점이라 치고, 현재 있는 교회가 30점이라 쳐도, 30점 교회에 그대로 있으면 30점은 되는데 90점 교회에 왔다가 돌아 가고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30점 교회가 흔들어 지면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20점 10점으로 내려 가게 됩니다. 공회 교회도 교회지만 그 교회들도 주님의 교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만났을 때 우리 전체의 총점을 놓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도 잘 되어야 하나 멀리 있는 타 교파와 다른 교회들도 한 몸이니 현재 수준을 최소한 유지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현 수준에서 나아 져야 하는데, 단순하게 그리고 쉽게 생각하여 교회를 이동하다가 본인은 뒷걸음 쳐서 손해 보고 남들의 신앙까지 뒷걸음 치게 되면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죄송하게 됩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이 노선을 접하는 순간 이 노선에서 확실하게 살아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현 교회에 잡아 둔다 해도 이미 새로운 세계를 알아 버렸기 때문에 잡아 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현 교회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치 남한에 눈을 뜬 탈북자는 남한으로 가버리는 것이 북한에도 우선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들을 억지로 붙들어 두면 북한 내에서 불만 세력으로 자라 가는데 그 상황은 북한 스스로에게도 좋지를 못합니다.
4. 전체적으로
공회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각자 주신 자기 교회가 있으며 그 교회는 각자의 현실이며 그 현실은 주님이 필요해서 만들어 주셨으므로 자기 현실에 충성하는 것이 무조건 1차 목표입니다. 공회 교회는 공회 노선에서, 타 교회는 그 교회 노선에서 충실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재와 비교해서 더 배워야 하고 더 고쳐야 하는 것을 발견한 상태에서 현재 교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중학교 1학년으로 진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는 교회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진학을 하는 것이 됩니다. 아직 실력이나 여러 상황에서 초등학교 4학년 과정도 서툰 학생이 6학년 졸업생이 부러워 중학교 진학에 쏠려 따라 간다면, 막는 것이 옳습니다.
무작정 가출이 아니고, 현실이 싫어서도 아니고, 현재 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호기심에 여행을 나서는 것도 아닌 상황.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을 봤고 그 길에서만 가질 수 있는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 때는 주님의 인도이니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 나서야 할 인도를 받고도 주변 때문에 머뭇거리면 그 곳에도 고통을 주고 자기도 손해가 됩니다.
5. 백 목사님 평생에,
너는 그 곳에 있으면 곤란할 사람이니 이리 와서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한 사람은 이진헌 목사님 1명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은 오갈 데가 없으니 거둬 주는 의미였고, 어떤 사람은 이미 과거 소속을 정리를 해 버린 상태에서 목사님이 오라 하지 않으면 예의가 아닌 상황이 발생해 버린 경우, 목사님이 오라 함으로 그가 저질러 놓은 일을 수습해 주는 차원은 있습니다. 먼저 오라 한 경우는 거의 없고 모두가 너무 좋아서 들어 온 것이 1960년대였는데, 교계적으로 탁월한 분들조차 일단 들어 온 다음에 너무 힘이 들어서 후회를 하고 다시 나가는 모습이 1970년대에 발생했고 1979년부터는 주일학교 때문에 교계가 흠모해 마지 않는 상황이 생겨서 대량으로 들어 오려는 상황인데, 백 목사님은 상대방이 참으로 오해할 정도로 냉정히 돌려 세웁니다. 1개 교단 차원에서 단체 가입조차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비록 숫자는 적지만 굉장히 알아 주는 골수 보수 교단들의 경우들이었습니다. 고신의 경우 총회장이 간부들과 합의하고 강력하게 추진을 했으나 목사님은 좋게 사양을 했습니다.
6. 역사적으로
루터와 칼빈의 경우는 천주교 내에서 천주교가 틀렸다고 외친 경우입니다. 그들이 죽이려고 찾으니 피했던 것이니, 죽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목숨을 보존한 것이지, 천주교의 내부에서 개혁하는 것이 힘든다고 무조건 나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고, 그들이 추적을 하자 죽어야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했던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당시를 포함하여 이런 상황이 생길 때 기록으로만 여러 주장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내부에서 먼저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더 이상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내부에서 밀어 내고 잘라 낼 때 나오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런 점에서 16세기의 개혁은 부분적으로 미흡했다고 비판하는, 현장을 모르고 믿으면서 그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철없는 학자들도 있지만, 기록에 남기지 못한 그 어떤 연유 때문에 비록 자기 발로 나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 내막적으로는 밀려 나올 때까지는 내부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1천년 천주교를 개혁할 신앙일 것이고, 그 과정에 그렇게 뜨겁게 주님이 동행한 분들은 주님의 인도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었을 듯합니다.
7. 혹시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그 때는 오늘에 비해 신앙이 어린 시기여서 좀 낮은 단계에서 인도를 하셔서 그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공회는 내부에서 길러 개척하지 타 교단 교회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
: 그리고 이번 집회 때는 유독 '고신에서 쫓겨났다. 내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을 많이 하는데, 루터나 칼빈은 천주교에서 개혁을 하기 위해 스스로 나왔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개혁가들은 대부분 그런데 왜 쫓겨난 것을 강조하는지요?
공회는 타 교단을 받지 않는다?
공회는 내부에서 길러 개척하지 타 교단 교회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번 집회 때는 유독 '고신에서 쫓겨났다. 내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을 많이 하는데, 루터나 칼빈은 천주교에서 개혁을 하기 위해 스스로 나왔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개혁가들은 대부분 그런데 왜 쫓겨난 것을 강조하는지요?
---------------------------
공회는 내부에서 길러 개척하지 타 교단 교회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번 집회 때는 유독 '고신에서 쫓겨났다. 내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을 많이 하는데, 루터나 칼빈은 천주교에서 개혁을 하기 위해 스스로 나왔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개혁가들은 대부분 그런데 왜 쫓겨난 것을 강조하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