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지도 - 신앙과 세상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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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지도 - 신앙과 세상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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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0
1. 세상 생활과 목회
선생님이 현장에서 보게 된 상황은 주님이 선생님을 통해 꼭 알아야 할 것을 알려 주신다고 생각하면서 안내를 드립니다.

목회나 선생님의 교육 현장이나 근본 원리는 같습니다. 질문자께서는 일단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시니 업무를 충성이라 할 만큼 충실하게 하되 근본원리를 파악하면서 학생을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충성이 됩니다. 선생님의 그런 직장 생활에다 만일 신앙을 그대로 덮어 씌우면 목회자의 목회가 됩니다.


2. 공부하는 기본 자세
공부라는 것은 갑자기 다급해 질 무슨 일이 생겼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공부하는 이유를 남 다르게 느끼게 될 때, 그런 돌발적인 사건이나 공부에 대한 근본 인식이 심각하게 다가오면 공부의 방법론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큰 차이는 없고 공부라는 것이 저절로 됩니다.

필요성이라는 것은 김정은 식으로 죽을래 살래 하는 협박이 가장 빠릅니다. 환경이 그렇게 몰아 치는 것보다 본인이 어느 순간에 혼자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하게 느끼게 되면 너무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돌발 상황에서 갑자기 필요성을 느끼는 것보다 나은 것은 학생이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혼자 곰곰히 생각을 해 보며 심각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3. 공부냐, 인식이냐
매일 나가야 하는 진도로 바쁠 시간에 학생들과 공중에 뜬 구름을 잡는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대학병원의 진료 교수가 환자 1명을 붙들고 1시간 정도 대화를 하면서 진료를 본다면 의학적 진료는 5분이면 충분할 것이고 나머지 50여분을 가지고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서 그 환자의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과 특별한 상황을 차분히 설득을 시킨다면 이상적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과 진도를 나가야 하는 바쁜 선생님인데 학생이 결석을 했고 이 상황에서는 학원의 원장님과 학생의 부모님이 질문자께서 진도를 나가지 않고 공부할 1시간 내내 학생들과 평소 할 수 없었던 대화를 한다 해도 오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갑작스런 '사고' 상황 때문에 바쁜 진도를 제쳐 놓고 학생과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학교나 학원은 학생을 받기 전에 부모와 학생을 상대로 '정말 공부를 하려고 보내는 것인가?'를 물어 봤어야 하고, 멋 모르고 왔다면 진도를 나가기 전에 사고방식과 자세를 먼저 바꾸도록 교육을 시켰어야 하며, 속으로는 세뇌교육을 시켜 놓고 시작을 해야 합니다. 1주일을 그렇게 하다가 진도를 나가지 않았다 해도, 만일 1주간의 교육을 통해 하기는 해야 하겠다고 느끼게 했다면 1주간의 진도보다 앞 날의 진도는 훨씬 빠를 것이고, 만일 크게 느낀 점이 있게 만들었다면 1주간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닐 정도의 큰 것을 얻습니다.

우리가 만사 다 그렇지만 교회를 가는 것도, 사경회를 가는 것도, 학교를 가는 것도, 직장을 가는 것도, 오늘도 또 한 번의 출근을 더하는 것도... 인생의 전부가 거의 대부분 그냥 놓여 진 길을 근본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보이는 것만 보고 부지런히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 꼴도, 가정도, 개인도, 우리 주변 모든 것도 알고 보면 다 그만그만 하지 그 이상도 없고 그 이하도 없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 오늘의 10대 학생들에게는 과거 그 어느 시대와 비교해도 가장 불행한 상황입니다. 애써 뭘 해야 할 때도 아니고, 시간만 때우고 지나 간다 해서 굶고 억울하게 매를 맞는 세상도 아닙니다. 타고 난 학습력이나 타고 난 배경이 있으면 어느 정도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 마나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를 악 물어야 할까요? 바로 이런 근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기 때문에 교회도 세상도, 돈 벌이도 학생의 공부도 우리 대부분은 그냥 시계 바늘 돌아 가듯 뜻없이 덧없이 그냥 세월을 허송하는 것입니다.


4. 질문자의 대화는
앞에서 잠깐 살펴 본 여러 상황을 가지고 본다면, 사고가 났지만 대처는 제대로 했다고 보입니다. 답변의 상황을 인식하고 마음을 먹고 말씀을 했으면 더 나은 것이나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렇게 되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 학생에게, 그리고 사실 오늘 모두에게 해야 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기 전에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대화를 통해 심어 놓았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 학생들을 평소 많이 겪어 보며 선생님으로서 쌓여 진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주님이 그 현실에 선생님을 붙들고, 비록 교회는 아니라 해도 실제로는 신앙의 현실에서 필요한 대목에 바른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아주 잘 대처한 것입니다.

특히 '왜 해야 하는지'만 느끼면 모든 것은 해결이 되는데
학생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할 때 그 학생은 솔직히 말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학생의 말에 '왜 해야 하는지 모르니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답했으면 절묘한 정답니다.


5. 절박함이라는 복
절박이라는 것은 보통 역경과 불행이 연상 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을 해 보면 역경과 불행이 닥쳤다는 이 절박이라는 것은 평소 만들어 낼 수 없는 굉장한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복입니다. 이런 경험이 많아 지면 이제는 '급해 봐야 알지'라는 말이 입에서 자주 나옵니다. 차마 매를 들고 칠 수는 없지만 '당해 봐라'는 소리가 입에서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뒤에서 밀어 닥치는 바로의 병거들에 밀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갑자기 홍해 바다로 뛰어 들어야 할 상황입니다. 칼에 죽나 바다에 빠져 죽나, 절박함이 갑자기 눈 앞에 떨어 졌습니다. 불신자는 둘 중에 하나지만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기도했고, 그 기도로 그 절박함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홍해 바다 앞에서 사실 기도할 것도 없이 바로 전 백성이 홍해 바다로 뛰어 들어 갔더라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인도를 확인하는 것은 훨씬 빠르고 간편했을 것입니다. 바다까지 인도한 분은 분명 주님이시고, 뒤에서 닥친 바로의 병거는 이미 그들이 떠나고 피해야 했던 세력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진행 방향은 바다입니다. 그렇다면 울고 불고 기도하고 연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뛰어 바다 위를 걸어 주님께로 가듯이 가면 됩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안전 위주로 결정합니다. 안정을 추구하며 만사를 경영합니다. 그러나 안전과 안정이 없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그 때는 본능으로 움직입니다. 미리 많이 연구해서 그런 상황이 본능화가 되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은 그럴 때, 진리의 명확함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펴 옳으면 덮어 놓고 가는 것이고 가는 행동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주님께 맡겨 버립니다.


6. 절박함이 없는 세상
절박함과는 상관이 없는 상황입니다. 학원을 왔다는 말은 그 집이 잘 살지는 못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학교에서 성적 문제로 개패듯이 패던 시설이면 그 매가 절박함이 되어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지금은 그렇게 해 줄 선생님도 없고 만일 회초리만 들었다 해도 경찰이 개입할지 아니면 학생에게 바로 머리카락을 맡겨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입니다. 북한에서 핵 하나를 던지기 전까지는 이 나라 오늘 우리에게는 '절박'이라는 단어가 실종이 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세뇌교육뿐입니다. 사고를 치고 결석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만일 이 점을 제대로만 생각하고 느끼면 부모도 학원도 강사도 본인도 학교도 우리 사회도 그들의 평생 그들을 접할 모든 사람에게 그들은 그들의 존재 자체만 가지고도 모든 이들에게 복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만죄의 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학생의 문제를 두고 학생의 문제보다 우리는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지를 물어 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선교기와 발전기에는 굶어 죽거나 아니면 잘 살아 볼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절박한 상황이 주어 졌습니다. 왜 교회를 다니느냐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눈 앞에 떨어 진 절박한 생존 문제 때문에, 생존 경쟁 문제 때문에, 또는 일생에 한 번 오는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 모두가 절박함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교회와 우리 사회는 모두 그런 절박함을 해소했고 세계 제일의 사회를 가졌습니다. 이제 죽겠다고 난리를 부리는 것은 부자의 엄살이며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상황에서 밑져야 본전 식으로 던지는 말입니다. 공고만 졸업한 사람이 억대 연봉을 받는 세계 최고의 직장을 다니면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노조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본주에게 착취를 당한다며 파업을 하고 있으니 아는 사람은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고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속에 숨어 있는 좌파들은 좌익의 세상을 만들 목표가 있어서 그런 파업 속에서 죽기살기로 활동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단순 노동자들은 그냥 해 볼 뿐입니다.

이런 절박감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사회에 위치한 오늘 우리의 교회들과 우리의 신앙이 실은 꼭 같은 상황을 만나 세상 속으로 좌초를 해 버렸습니다. 이 곳은 이 노선에서 답변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함께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직업 환경 속에서 세상 학생을 지도하는 것은 사실 다른 신앙 사이트에서 대화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곳은 세상 어떤 상황 하나라도 이렇게 생각하고 대화를 하는 곳입니다.


7. 오늘 우리 전부의 과제: 왜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
질문하신 선생님이나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든 분들은 10대 중반의 학생들이 부모가 주는 돈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핑계를 잡아 결석을 하는 상황을 두고 애가 타고 기가 막힙니다.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보낸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또 방과 후 학원에서 또는 도서관에 간다 해 놓고 거의 다 저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제법 잘한다 해도 어려운 세상에, 공부를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조차 속으로는 긴장하며 그리고 실제 잘 사는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하물며 평범한 것들이 이런 자세를 보인다면...

왜 교회를 다니는지, 우리는 이 번 주일을 빼 먹더라도 혼자 깊이 깊이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녀야 다녀도 다니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사실 결석만 못합니다. 주일을 제대로 범해야 주님도 제대로 매를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글의 결론을 적습니다. 주일을 범하고 술병을 들고 교회에 와서 횡포를 부려 봐야 주님이 매를 들고 어떻게 치는지 알게 되고, 그래야 도망을 가든지 회개를 하든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15장에서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기 전에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 올 때 아버지의 자세를 보니까 나가기 전의 기록은 적을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 듣게 좋게 잘 말하고 타이르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나가서 당해 보기 전에는 해결이 없다고 단정을 했습니다. 둘째가 가는 길은 잘 알지만 부모로서 먼저 밀어 낼 수가 없었고, 그리고 아들이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했을 때 둘째의 인생을 내 줬습니다. 돌아 온 아들은, 내내 잘 있던 첫째보다 나았습니다.


8. 성도며, 선생이 된 분들
교사에 임용 된 사람을 저희들은 너무 불쌍하게 봅니다. 너무 위험하게 봅니다. 이 사회에 모든 좋은 것을 주고 기대했지만 그들은 자기 직업의 편안함과 노후보장만 챙겼습니다. 그러나 학교 밖의 선생님들은 그야 말로 늘 최선을 다합니다. 다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시장 경제에 따라 결과가 매월 바로 닥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사실 하나님이 주신 타락 후 일반적인 생활의 모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땀을 흘려야 합니다. 공무원처럼 임용된 교사처럼이 아니라 학원의 선생님들처럼 또는 시장의 장사들처럼, 또는 일반 사업가들처럼이 타락 후 모습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만 알고 그 상황에서 남보다 나으면 그 것은 크게 말해 타락한 세상 속의 일부일 뿐입니다. 정화조 통에 들어 간 사람이 조금 밑이나 조금 위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믿는 사람입니다. 비록 교회가 아니라 시장에서 또는 직장에서 또는 학원에서 만난 사람이라 해도 우리는 겉 보기는 그 곳의 일반 사람 중에 하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을 주님의 사활로 받아 챙겼으니 우리 속에는 신앙의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진 자기 위치에 충실하되 속으로는 달라야 합니다.

이 학생들이 왜 공부 하는지, 그 이유를 찾고 심각히 인식하고 그리고 나서 공부를 해야 비로소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않은 상태에서 만일 잘 하는 학생이 나온다면 그 것은 무슨 다급한 일을 만난 것입니다. 감당 못할 불행이 닥쳤고 그런 계기를 통해서 새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필요성 문제입니다.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다급한 필요도 없는데 만일 학생다운 학생이 있다면 그 것은 타고 난 것입니다. 불신자라면 부러워 할 일이지 후천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저절로 잘 되는 것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어서 주님이 나중에 찾을 때도 5배를 찾게 될 것이라 오히려 불쌍한 사람입니다. 현재 우리는 우리 주변에 흔한 한 달란트나 두 달란트 수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 학생들에게
한 편으로는 학원의 강사로서 그들이 결석을 한 이런 상황에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물어 봐야 합니다. 생각하게 만들려고 적어도 노력은 해야 합니다. 평소와 다른 상황이니 이런 기회를 활용은 해야 합니다. 왜 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선생님은 속으로 자기의 신앙을 물어 봐야 합니다. 나는 왜 교회를 다니는가? 나는 왜 인생을 사는가? 나는 왜 오늘 출근을 하는가? 학생에게는 교사가 되어 묻고,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묻고 챙기지 않으면 외식입니다. 남만 가르치는 엉뚱한 교사가 됩니다. 학생의 안타까움을 보면서 나의 안타까움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하면서,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 놓을 분은 주님밖에 없으시니 주님께 바로 이 기회를 통해 이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 주시기를 원합니까? 돌려 주셔서 일단 이들이 세상을 좀 낫게 살게 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공부하는 학생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이들을 맡았으니 제가 세상 공부만 시키지만 주님이 저를 통해 이들이 학생이 되게 하시고, 학생보다 나은 신앙을 아는 학생이 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교회에서 전도를 하며 불신자를 만나게 되면 그들이 언제 중생이 되고 언제 교회를 나오게 될지는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마음에 바로 오늘 이 순간이면 좋겠다는 소원과 기대와 실감을 가지고 전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교인에게, 교회에서 전도팀이 불신자에게 그런 자세를 가지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세상 어느 직장에서도 이런 자세를 가지고 물건을 팔고 근무를 하고 질문자처럼 가르치는 것이 항상 기본입니다. 그 생활이 아니면 불신자와 같은 식의 세상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가도 평생의 수고는 모두 헛일입니다.


10. 조심할 것은
교육과 지도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환경에 충실이 됩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세상 생활까지 충성한 것이 됩니다. 간섭까지는 나가면 안 됩니다. 아무리 눈 앞에 뻔히 보여 주신다 해도 개입이 되고 간섭이 되는 것은 주님이 맡기지 않은 선입니다.

해방 된 조국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승만 대통령이 목사급 교육을 받은 신앙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한 없이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교회 이름을 걸고 자유당과 이 대통령의 재선 삼선 사선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해서 안 될 개입이며 세상에 대한 간섭이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한국 교회는 불교 정권 28년을 겪으며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한 편으로 불교 정권 28년간 독재를 해서 못살겠다고 온 나라가 민주화 운동을 한다 해도 교회는 굶어 죽는 것보다는 일단 먹는 것이 하나님의 자연 섭리에는 나은 것이고 북한의 공산당보다는 자본주의 사업가 밑에 기고 사는 것이 낫다고 해야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 해도 교회는 교회 내에서 그렇게 알고 그렇게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것까지 해야지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정권 지지 운동을 하게 된다면 그 것은 교회에 대한 지도나 교육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되어 세상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죄가 됩니다.

교인이 직장을 다닐 때 직장에서 의를 지나치게 하려다가 자기 중심의 악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고, 교인이 직장을 다니면서 교회 생활만 충성하지 직장은 대충대충 땜방 식으로 다니면 불신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덕이 되지 않습니다. 학생을 지도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월급만 받으면 되는 식으로 또는 학원수입만 생각하는 식이 되기 쉽습니다. 가끔 의욕이 지나쳐서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은 선을 넘어 가는 수도 많습니다. 각자 여러 면을 생각하며 조심할 일입니다.


학생에게는, 네 수준에서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사실 공부를 하나마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당장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쁜 일에 빠지지 보람 된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네가 공부에 맞을지 아닐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현재처럼 대충대충 하면 분명히 헛일이다, 그렇다면 1년만 열심히 한 번 해보고 나서 도무지 안된다면 그 때는 네가 부모님을 만나서 공부 외에 진로를 찾아 보자고 말씀을 드려 보면 어떻겠느냐... 이런 저런 대화의 방법은 상황에 따라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 강사 님이 쓰신 내용 <<
: 서울입니다. 중학교 평범한 남학생들입니다. 어떤 때는 아주 성적이 오른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요즘 일반적인 그런 정도의 학생들입니다. 하루는 학원을 오기 싫어서 둘러 대고 친구들끼리 놀았습니다. 부모와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알았고 평소 같으면 제가 화를 낼 일인데 이 번에는 학생에게 '내가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고 학원에 왔냐'고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
:
: 이야기 끝에 '내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저도 모르게 "일단 모르니까, 그거 알아보려고 공부하는 것이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학생들에게는 공부와 돈벌이/사회적 입지 등과 연관시켜서 말하기엔 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학생들의 공부는 훗날 그렇게 될 것이 아니라고 알기에..
:
: 이 아이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혹시 제가 쓸데 없이 너무 많은 힘을 쏟는 건가요?
: 제 위치가 성적을 올리는 직업이니 성적 올리는데만 신경 쓰면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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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어려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 항상 의논 드릴 분이 계신다는 것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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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 상기 글을 읽은 원래 질문자의 양해로 삭제 된 글을 다시 올립니다. - 행정실
: 원글: 14429번, 학원에서 학생 지도, 2016-11-30
:
중학생을 지도하면서
서울입니다. 중학교 평범한 남학생들입니다. 어떤 때는 아주 성적이 오른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요즘 일반적인 그런 정도의 학생들입니다. 하루는 학원을 오기 싫어서 둘러 대고 친구들끼리 놀았습니다. 부모와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알았고 평소 같으면 제가 화를 낼 일인데 이 번에는 학생에게 '내가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고 학원에 왔냐'고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내가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저도 모르게 "일단 모르니까, 그거 알아보려고 공부하는 것이야'라고 말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학생들에게는 공부와 돈벌이/사회적 입지 등과 연관시켜서 말하기엔 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학생들의 공부는 훗날 그렇게 될 것이 아니라고 알기에..

이 아이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혹시 제가 쓸데 없이 너무 많은 힘을 쏟는 건가요?
제 위치가 성적을 올리는 직업이니 성적 올리는데만 신경 쓰면 되는 건가요?

참 어려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의논 드릴 분이 계신다는 것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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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상기 글을 읽은 원래 질문자의 양해로 삭제 된 글을 다시 올립니다. - 행정실
원글: 14429번, 학원에서 학생 지도,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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