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대환난의 성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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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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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10:59
1. 교계의 건전한 교리
공회는 꼭 달력적 7년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달력적 7년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희석 시키는 것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상적인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늘 이런 말세의 여러 환란을 생활 속에 준비해 왔고 그렇게 깨어 있는 분들이 성경을 읽고 말을 했던 것, 그리고 그런 경고를 듣고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은 너무 당연한 상식이어서 이런 부분을 두고는 앞 서 외친 분들을 최대한 따라 가고 있으며 이런 문제를 두고는 별도로 연구하고 밝혀야 할 부분은 아니어서 교계의 건전한 교리와 깨달음 차원에서 공회도 함께 하는 정도입니다.
2. 굳이 근거를 말한다면
단9:24~27에서 '이레' 7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루는 24시간적인 하루도 있고, 1년을 하루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1천년을 하루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살펴 볼 상황이 많습니다. 그래서 7일 환란을 7년 환란이라고 깨달은 분들이 늘 그런 날을 준비했고 공회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늘 마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12:14에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는데 3일 반이 됩니다. 7년의 3.5일이면 절반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7년의 환란에 그 중 앞 부분과 뒷 부분으로 나뉘어 환란이 온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숫자가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 숫자에 대한 해석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와 계시록에 주로 나오고, 이사야 등에서 관련 시대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성경 전체를 진지하게 읽고 시대를 읽게 되면 이런 숫자에 대한 해석들은 크게 달라 질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숫자에 대한 해석은 고대 이스라엘과 성경에 기록 된 그 주변의 바벨론 제국이나 그리스나 로마 제국 또 이집트 등의 복잡한 중동 중심의 역사에 직접 관계가 되었고 고고학적으로 맞춰 보면 모두 맞아 떨어 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 숫자나 연대나 고대 역사까지는 별 문제가 없이 맞아 떨어 지는데, 그 맞아 떨어 지는 상황을 놓고 그 역사만 말하는냐 아니면 그 때 그런 역사를 기록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세를 전개하며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는 최종 결론을 두고는, 전자결재를 위해 바코드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 바코드를 막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는 쪽도 있고 또 세계 국가들의 거대 단체화를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고,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숫자로 잠깐 적어 알 듯 모를 듯 만드는 것은 어느 종교나 세상에서도 예언에게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무시하는 쪽도 있고, 심지어 그 숫자들에게 현대 과학적 기준을 엄하게 들이 대면서 모두 헛소리라고 비판하는 쪽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베들레헴, 승천하신 예루살렘 부근, 이 지명은 성경에 확실한데 이 지명을 두고도 위에 설명한 것처럼 모두 복잡합니다. 어떤 단체는 세계 기독교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복음이 시작되고 전파 된 예루살렘에서 한국까지의 여정을 이제는 반대로 돌려서 한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면 예수님이 오시게 되고 재림의 주님을 맞게 된다는 논리까지 나옵니다.
3. 이런 문제를 두고는
질문자나 본 연구소 직원들처럼 이 노선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이론들을 평가하려고 고고학을 배우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배우고, 세상 역사를 배우고 할 만한 어학 실력도 학습력도 없고 또 매일을 살아 갈 신앙의 오늘도 벅차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력조차 없고 오늘 급한 우리의 개인 사명을 생각하면 우리와는 먼 나라 이야기들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두고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조금 참고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전체와 나의 실제 신앙에 맞춰 본 다음에 필요하고 깨달아 지는 것은 그들과 선배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그렇게 빌려 사용하면 되고, 신앙과 성경에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외부에서는 그렇게 말을 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실제로는 무시하면 됩니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라는 것은 성경에도 기독교 역사에도 없는 말입니다. 그냥 모르니까 어느 날을 한 번 정해 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불신 세상까지도 실제 그 날이라고 생각하여 들떠는 정도니, 우리는 성탄절에 행사 한 번을 통해 불신 부모가 평소에 보내 주지 않던 아이들을 그 날에라도 교회에 한 번 앉힙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평생 한 번뿐일 이 기회에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공회는 이런 정신이기 때문에 성탄절 때문에 탈선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그럴 필요가 없게 된 시대에는 성탄절을 달력의 성탄절 정도로 알고 지내는데, 타 교회들은 성탄절을 밑도 끝도 없이 발전을 시켜 주일보다 더 중요한 성탄절을 만들었습니다.
7년 대환란은 그 자체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달력상 7년만이 교리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어떤 경우라 해도 주님 오실 마지막 순간에 오늘 이 세상은 오늘 이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결정으로 완전히 새로 창조 됩니다. 그 과정에 과거 있던 세상은 용광로에 쇠를 녹였다가 다시 만드는 과정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 약간의 준비 기회는 주어 질 것이고, 그리고 최종 순간이 되면 용광로에 집어 넣어 질 터이나 신앙의 준비가 된 사람과 그 생애는 용광로 속에 들어 갔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상관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더 빛이 날 것이고,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그런 생애는 옆에 있기만 해도 불에 타서 죽었던 것처럼 이 땅 위에서 마련한 것은 아낌 없이 다 없어 지고 던져 질 것입니다.
7년의 달력적 기간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교리적으로 단정할 정도는 아닌데 오늘 모든 교회들이 하도 재림을 우습게 알고 성경의 기록적 수치를 무시하는 분위기로 봐서 주님이 일부로 7년과 같은 기간을 들이 대시지 않겠나 하는 짐작까지는 해 볼 수 있습니다.
>> 김성미 님이 쓰신 내용 <<
:
: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라는 찬송가 가사가운데
: 7년 대환난이 나옵니다.
: 이 7년 대환난은 언제오는지 그리고 성경 어디를 근거해서 말씀하는지
: 가르쳐 주십시요
공회는 꼭 달력적 7년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달력적 7년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희석 시키는 것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상적인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늘 이런 말세의 여러 환란을 생활 속에 준비해 왔고 그렇게 깨어 있는 분들이 성경을 읽고 말을 했던 것, 그리고 그런 경고를 듣고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은 너무 당연한 상식이어서 이런 부분을 두고는 앞 서 외친 분들을 최대한 따라 가고 있으며 이런 문제를 두고는 별도로 연구하고 밝혀야 할 부분은 아니어서 교계의 건전한 교리와 깨달음 차원에서 공회도 함께 하는 정도입니다.
2. 굳이 근거를 말한다면
단9:24~27에서 '이레' 7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루는 24시간적인 하루도 있고, 1년을 하루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1천년을 하루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살펴 볼 상황이 많습니다. 그래서 7일 환란을 7년 환란이라고 깨달은 분들이 늘 그런 날을 준비했고 공회도 기본적으로 그렇게 늘 마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12:14에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는데 3일 반이 됩니다. 7년의 3.5일이면 절반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7년의 환란에 그 중 앞 부분과 뒷 부분으로 나뉘어 환란이 온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숫자가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 숫자에 대한 해석은 일치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와 계시록에 주로 나오고, 이사야 등에서 관련 시대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성경 전체를 진지하게 읽고 시대를 읽게 되면 이런 숫자에 대한 해석들은 크게 달라 질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숫자에 대한 해석은 고대 이스라엘과 성경에 기록 된 그 주변의 바벨론 제국이나 그리스나 로마 제국 또 이집트 등의 복잡한 중동 중심의 역사에 직접 관계가 되었고 고고학적으로 맞춰 보면 모두 맞아 떨어 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 숫자나 연대나 고대 역사까지는 별 문제가 없이 맞아 떨어 지는데, 그 맞아 떨어 지는 상황을 놓고 그 역사만 말하는냐 아니면 그 때 그런 역사를 기록하면서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세를 전개하며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느냐는 최종 결론을 두고는, 전자결재를 위해 바코드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 바코드를 막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는 쪽도 있고 또 세계 국가들의 거대 단체화를 막아야 한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고,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숫자로 잠깐 적어 알 듯 모를 듯 만드는 것은 어느 종교나 세상에서도 예언에게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무시하는 쪽도 있고, 심지어 그 숫자들에게 현대 과학적 기준을 엄하게 들이 대면서 모두 헛소리라고 비판하는 쪽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베들레헴, 승천하신 예루살렘 부근, 이 지명은 성경에 확실한데 이 지명을 두고도 위에 설명한 것처럼 모두 복잡합니다. 어떤 단체는 세계 기독교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복음이 시작되고 전파 된 예루살렘에서 한국까지의 여정을 이제는 반대로 돌려서 한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면 예수님이 오시게 되고 재림의 주님을 맞게 된다는 논리까지 나옵니다.
3. 이런 문제를 두고는
질문자나 본 연구소 직원들처럼 이 노선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이론들을 평가하려고 고고학을 배우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배우고, 세상 역사를 배우고 할 만한 어학 실력도 학습력도 없고 또 매일을 살아 갈 신앙의 오늘도 벅차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력조차 없고 오늘 급한 우리의 개인 사명을 생각하면 우리와는 먼 나라 이야기들입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두고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조금 참고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전체와 나의 실제 신앙에 맞춰 본 다음에 필요하고 깨달아 지는 것은 그들과 선배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그렇게 빌려 사용하면 되고, 신앙과 성경에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외부에서는 그렇게 말을 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실제로는 무시하면 됩니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라는 것은 성경에도 기독교 역사에도 없는 말입니다. 그냥 모르니까 어느 날을 한 번 정해 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불신 세상까지도 실제 그 날이라고 생각하여 들떠는 정도니, 우리는 성탄절에 행사 한 번을 통해 불신 부모가 평소에 보내 주지 않던 아이들을 그 날에라도 교회에 한 번 앉힙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평생 한 번뿐일 이 기회에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공회는 이런 정신이기 때문에 성탄절 때문에 탈선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그럴 필요가 없게 된 시대에는 성탄절을 달력의 성탄절 정도로 알고 지내는데, 타 교회들은 성탄절을 밑도 끝도 없이 발전을 시켜 주일보다 더 중요한 성탄절을 만들었습니다.
7년 대환란은 그 자체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달력상 7년만이 교리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어떤 경우라 해도 주님 오실 마지막 순간에 오늘 이 세상은 오늘 이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결정으로 완전히 새로 창조 됩니다. 그 과정에 과거 있던 세상은 용광로에 쇠를 녹였다가 다시 만드는 과정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 약간의 준비 기회는 주어 질 것이고, 그리고 최종 순간이 되면 용광로에 집어 넣어 질 터이나 신앙의 준비가 된 사람과 그 생애는 용광로 속에 들어 갔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상관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더 빛이 날 것이고, 그런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그런 생애는 옆에 있기만 해도 불에 타서 죽었던 것처럼 이 땅 위에서 마련한 것은 아낌 없이 다 없어 지고 던져 질 것입니다.
7년의 달력적 기간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교리적으로 단정할 정도는 아닌데 오늘 모든 교회들이 하도 재림을 우습게 알고 성경의 기록적 수치를 무시하는 분위기로 봐서 주님이 일부로 7년과 같은 기간을 들이 대시지 않겠나 하는 짐작까지는 해 볼 수 있습니다.
>> 김성미 님이 쓰신 내용 <<
:
: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라는 찬송가 가사가운데
: 7년 대환난이 나옵니다.
: 이 7년 대환난은 언제오는지 그리고 성경 어디를 근거해서 말씀하는지
: 가르쳐 주십시요
7년 대환난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라는 찬송가 가사가운데
7년 대환난이 나옵니다.
이 7년 대환난은 언제오는지 그리고 성경 어디를 근거해서 말씀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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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라는 찬송가 가사가운데
7년 대환난이 나옵니다.
이 7년 대환난은 언제오는지 그리고 성경 어디를 근거해서 말씀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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