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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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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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0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제목: 교회 기초와 천국 열쇠
원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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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약)

서 론: 본문 설명의 방향
본 론:
1.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목적
2)공과의 중심 내용
3)베드로의 영감 신앙
4)가르치는 도리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그때와 오늘)
(오늘의 영감 신앙)
(신앙양심을 통한 영감 역사)
2.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1)사탄이 된 베드로
2)십자가를 피하면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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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설명)

서 론: 본문 설명의 방향
본문 마16:13-20 말씀에 대한 설교는 많이 있고 그에 대한 설명의 방향도 많이 있지만 대개의 방향은 ‘영감 신앙’이라는 방향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론 신앙, 주관 신앙을 배제하고 자기 내면에서 신앙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영감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 중심이고, 이번 공과 또한 그 중심 내용은 같은 말씀입니다. 논리적 이치는 어렵지 않으나 실제 이대로 살기는 대단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영감 신앙’이라는 그 자체가 신앙의 최고 절정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인데 그 중심 내용은 ‘교회’보다는 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인 ‘영감 신앙’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기초라는 말은 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힘이라는 말이고, 천국 열쇠는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구원의 열쇠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초인간적인, 하나님을 대리하는 위치가 들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원문 설교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본문으로 평소에 배운 말씀과 공과를 바탕으로 하여 간단하게 설명 드립니다.


본 론

1.교회의 기초와 천국 열쇠

1)교회의 목적
교회의 목적은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참사람 건설입니다. 또한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며 그 행위를 온전케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렇게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참된 교회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성도의 삼합이 교회의 내면이고, 하나님을 섬기며, 진리에 순종하는, 구속 받은 성도들의 모인 단체를 외부 모습의 교회라 합니다. 이 교회의 목적이 참사람을 만들고 참사람의 행위를 만드는 것이며, 이렇게 되어진 사람들이 모이면 진정한 교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교회는 지상에 있으나 천국의 모형이고 그 속에는 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공과의 중심 내용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참사람을 건설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이고, 이 교회는 반석 위에 서 있어야 하는데, 그 반석이 베드로이며, 또한 천국 열쇠까지 베드로에게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의 방향은 베드로가 어떻게 해서 교회의 반석이 되었으며 천국 열쇠까지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으로 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지만, 그러나 당시의 베드로는 별사람이 아닌 우리와 꼭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반석이라, 천국 열쇠를 받았다고 한 바로 그 다음 순간에 사탄이라고 크게 책망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낙심하여 옛날 어부생활로 돌아가기도 했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던 베드로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그때는 교회의 반석이라, 천국 열쇠를 네게 준다 하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입장까지 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이번 공과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3)베드로의 영감 신앙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 지방 사람들의 인식을 물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냥 궁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 전 예정된 말씀이며,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며,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의 대답이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세례요한,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지나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한 위대한 인물과 같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영광스런 말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답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지식이었고 인식이었고 관(觀)이었습니다. 완전 오판이었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정확하게 고백했습니다. 이 대답은 그 당시 예수님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잘못된 인식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잘못된 그들의 인식을 완전히 초월한,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듣고 보고 배워 자기 지식이 되어 있고, 그 지식이 자기 양심을 지배하여 있는 상태 그대로 진실하게, 양심을 따라서 고백한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반석)이라, 내가 네 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 열쇠를 네게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가르치는 도리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그때와 오늘)
성경의 구약은 신약을 가르치고, 과거는 현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모든 일들은 오늘의 우리를 가르치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교훈으로, 비유로, 표적과 기사로, 역사적 사실로, 형식 계시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구원의 갈 길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인물과 사건에 오늘의 우리를 대입시켜 이치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변치 않는 구주시니 오늘도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믿는 많은 사람들로 또는 우리로, 당시의 베드로 역시 오늘 우리로 대입해서 이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도 천하에 믿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으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식적으로는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으니 당시와는 비교 못 할 만큼 많이 세밀하고 알고 있으나 실제 인식과 생활의 적용에 들어가면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예수님에 대한 인식, 구주 관은 완전 오판하고 있는 것이 오늘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석가모니나 공자 같은 위대한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고,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과 말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하고 말도 하지만, 실제 그렇게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천지보다 중량 무거운 말씀이며,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말씀이므로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대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참 살아계신 실존의 두려우신, 주권자이신, 심판주이신 하나님으로 믿고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야 하건만, 오늘의 교회나 믿는 사람 대부분은 이 말씀과는 너무도 거리 멀게 인간 중심, 세상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현상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오판하고 있었던 것처럼, 혹 아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부러 모른 체 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 교회도 믿는 사람 거의 대부분도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성경 말씀의 실상에 대해서 오판하고 있고, 혹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위해서, 세상의 무엇을 위해서 인해서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말씀과는 거리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영감 신앙)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오판하고 예수님을 상대하며 그리 살고 있던 그 중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조금도 영향 받지 않고 피동되지 아니하고, 예수님에게 직접 배운 말씀 그대로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영감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님에 대해서 믿었고 고백했으니 그것이 바로 영감 신앙이었고,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의 열쇠가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라는 사람이 아니라 베드로를 그렇게 가르친, 그렇게 고백하게 한, 베드로 속에 역사하신 영감이 교회의 기초이며 천국의 열쇠라는 말씀입니다.

이 이치는 오늘도 변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고독의 걸음이라 합니다. 여론을 살피고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일신의 이해타산을 따지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무엇에 피동되거나 가지고자 하면 주님을 따라갈 수 없고 신앙의 걸음을 걸을 수 없습니다. 온 교회가, 온 교계가, 천하 모든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미혹을 하고 협박을 주더라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피동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배운, 자기 속에 말씀의 지식에 지배 받는 신앙양심 그대로, 그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알려주시는 그대로 모든 것을 인식하고, 그대로 언행심사를 하고, 그대로 모든 사람을 접촉하고 상대하며, 모든 사건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처리하며, 모든 물질을 상대해 나가는 것이 바로 베드로가 가졌던 영감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통한 영감 역사)
영감은 진리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고, 말씀은 이치로서 우리의 눈을 통해, 귀를 통해 지식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며, 우리 마음의 여러 요소 중에서 양심은 가장 옳고 바른 것을 찾는 것이 양심인데, 그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에 내 속에 들어와 내 양심을 지배하면 그 양심은 신앙양심이 되는 것이고, 그 신앙 양심을 통해서 영감은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이 어두운 사람, 양심이 파묻혔거나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은 영감 신앙을 결코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에서 양심을 찾고 북돋우기 기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공과에서 또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을 기르지 않으면 영감을 받을 수 없고, 영감이 아니면 건설구원은 결코 이루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1)사탄이 된 베드로
양심을 통한 영감 신앙의 고백으로 예수님에게 ‘너는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 열쇠를 네게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 대리자의 위치까지 올라갔던 베드로가 그 다음 순간, 예수님께서 장차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그 일을 반대하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고, 그 말씀을 들은 예수님께서 즉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크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조금 전까지 반석으로 교회의 기초로 천국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가 바로 그 다음 순간 사탄이 되었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2)십자가를 피하면 사탄
베드로가 사탄이 된 이유는 십자가를 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할 때 오는 어려움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사탄이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사실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여 죽게 된다는데 제자로서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당연히 분히 여겨 반대하고 막는 것이 제자된 도리로서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의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일이라면 베드로가 한 말은 옳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이며 인간 구원의 구주로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인데,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죽는다 하여 하나님의 일을 피하고 반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막는 원수 사탄이 그 순간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말씀의 지식이 내 마음의 양심을 지배하고, 그 양심을 통해서 인도하시는 영감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며 이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데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부딪히게 되어 있는데, 그때 어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을 피하고 저버리면 바로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구원은 실패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기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까지 희생을 해야만 자기와 이웃의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말은 쉽고, 글도 쉽게 적지만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한 걸음도 걸어갈 수 없는 것이 이 길이라 하겠습니다.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주교반사입니다. 편집부님 공과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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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0절
제목: 교회 기초와 천국 열쇠
요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16:23)


1. 교회는 온전한 행위와 온전한 참 사람 건설된 것이 교회다.
이 교회는 반석 위에만 서 진다고 하시고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하셨다. 또 시몬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다. 시몬에게 교회 기초인 반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외부에서 보는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닮지 아니하고 성경 양심 속에 들려오는 성신의 감동대로 지식하고 이 감동대로 행하는 그 사람에게 교회 기초를 주시고 또 천국에 속한 모든 것을 해결 짓는 열쇠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먼저 양심을 기르고 양심 속에 감동되는 성령의 감동대로 행하는 이것이 자기와 자기 행위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고 또 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열쇠가 되고 세상에서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을 해결 짓는 열쇠가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양심을 기르지 아니하면 영감을 받을 수 없고 영감 받아 행하지 아니하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로 자기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양심과 영감은 자기 구원에 절대 필요한 것이다.

2. 베드로는 이 귀한 보배를 조금 후에 빼앗겼다. 빼앗긴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할려고 할 때에 어려움이 오면 자기와 자기 형편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저 버림으로 빼앗겼던 것이다.
이것을 끝까지 빼앗기지 않고 가지고 사용하여 자기 건설과 하늘의 부요를 다 자기와 자기 이웃의 것으로 삼게 하는 것은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가족이나 그 무엇을 희생하는 경우에 이를지라도 이것들을 희생했으면 했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자 아니하고 그대로 지켜 나가야 자기와 이웃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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