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사용, 자연에 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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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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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07:34
(특별과 일반)
성경을 기록할 때 성경기록용 특별 언어를 만들지 않고, 당시 교인들이 교회와 상관 없이 일반 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가장 평범한 자연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것을 성경과 신앙의 일반성 또는 보편성이라고 합니다.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특별히 역사하시지만 주님은 창조 때와 이후 섭리를 통해 오늘 우리 주변에 널려 놓은 모든 현실의 자연 환경을 그냥 병풍으로만 둘러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일반 환경에 주님의 사랑과 역사와 구워네 필요한 것을 모두 배치 시켜 놓았습니다. 다만 그 것만으로 되지 않을 십자가 대속, 성령의 개별 감화와 감동의 역사, 성경 등은 특별히 주셨습니다. 그렇다 해도 성경을 담는 언어는 이미 있는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찬송의 경우)
찬송은 찬송을 위해 별도의 분야를 만들지 않고, 인간의 자연 세계에서 발생하고 사용하고 있는 곡의 전개와 가사의 배열과 같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성경의 원리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높은 음에서 높은 강조를 하고, 저음에서 마음 깊이 울려 나오는 은혜를 발표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생활 속에서 사용해 온 음악의 표현, 특히 노래의 형태라는 것은 찬송이 피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잘 사용하면 복이 됩니다. 마치 예배당을 건축할 때 불신 사회의 건축법과 건축자재를 전부 피하고 특별히 만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성전조차 그러했으니 오늘 예배당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의 사용과 자연에 융화)
문제는, 타락 전의 자연은 그 전부 그대로가 하나님의 직접 은혜였지만 타락 후의 자연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끊어 졌고 인간의 죄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자연이 주동이 되고 신앙이 자연에게 끌려 가는 피동의 위치가 되면 교회와 신앙은 세상에 빠졌다, 물들었다, 속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자연에 없는 것만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음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신 자연을 우리의 신앙이 주동이 되어 사용하고, 그 자연은 우리 신앙에 붙들려 이용을 당하는 관계가 되면 자연의 은혜입니다.
(찬송과 세상 곡)
기본적으로 유럽은 기독교국이므로 외부적으로는 나라의 나라의 국가처럼 보여도 내용적으로는 그들 나라의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들도 찬송가를 생활 속에 사용하고, 또 교회는 그 나라의 노래들 중에서 찬송 가서를 담을 만한 경우 찬송곡으로 사용했습니다. 찬송가의 작곡과 작사를 하는 분이 은혜 받은 것을 표시하기 위해 곡과 가사를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이미 있는 곡 중에 새로 지은 가사를 얹일 경우 찬송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 자체가 금지 사항은 아닙니다.
>> 신학1 님이 쓰신 내용 <<
:
: 찬송가 중에 The Golden Rule 곡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얼어 붙은 달 그림자 강물 위에 ... '라는 세상 노래로 불립니다. 영국 카나다 등의 국가들의 곡도 찬송곡으로 사용됩니다.
:
: 서구의 기독교 문화 때문에 찬송과 세상노래가 섞이는 과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아주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복 입고 갓을 쓰고 타령식 찬송도 합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요?
성경을 기록할 때 성경기록용 특별 언어를 만들지 않고, 당시 교인들이 교회와 상관 없이 일반 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가장 평범한 자연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것을 성경과 신앙의 일반성 또는 보편성이라고 합니다.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특별히 역사하시지만 주님은 창조 때와 이후 섭리를 통해 오늘 우리 주변에 널려 놓은 모든 현실의 자연 환경을 그냥 병풍으로만 둘러 놓은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일반 환경에 주님의 사랑과 역사와 구워네 필요한 것을 모두 배치 시켜 놓았습니다. 다만 그 것만으로 되지 않을 십자가 대속, 성령의 개별 감화와 감동의 역사, 성경 등은 특별히 주셨습니다. 그렇다 해도 성경을 담는 언어는 이미 있는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찬송의 경우)
찬송은 찬송을 위해 별도의 분야를 만들지 않고, 인간의 자연 세계에서 발생하고 사용하고 있는 곡의 전개와 가사의 배열과 같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성경의 원리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높은 음에서 높은 강조를 하고, 저음에서 마음 깊이 울려 나오는 은혜를 발표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생활 속에서 사용해 온 음악의 표현, 특히 노래의 형태라는 것은 찬송이 피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잘 사용하면 복이 됩니다. 마치 예배당을 건축할 때 불신 사회의 건축법과 건축자재를 전부 피하고 특별히 만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성전조차 그러했으니 오늘 예배당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의 사용과 자연에 융화)
문제는, 타락 전의 자연은 그 전부 그대로가 하나님의 직접 은혜였지만 타락 후의 자연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끊어 졌고 인간의 죄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자연이 주동이 되고 신앙이 자연에게 끌려 가는 피동의 위치가 되면 교회와 신앙은 세상에 빠졌다, 물들었다, 속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자연에 없는 것만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음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신 자연을 우리의 신앙이 주동이 되어 사용하고, 그 자연은 우리 신앙에 붙들려 이용을 당하는 관계가 되면 자연의 은혜입니다.
(찬송과 세상 곡)
기본적으로 유럽은 기독교국이므로 외부적으로는 나라의 나라의 국가처럼 보여도 내용적으로는 그들 나라의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들도 찬송가를 생활 속에 사용하고, 또 교회는 그 나라의 노래들 중에서 찬송 가서를 담을 만한 경우 찬송곡으로 사용했습니다. 찬송가의 작곡과 작사를 하는 분이 은혜 받은 것을 표시하기 위해 곡과 가사를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이미 있는 곡 중에 새로 지은 가사를 얹일 경우 찬송이 될 만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 자체가 금지 사항은 아닙니다.
>> 신학1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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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가 중에 The Golden Rule 곡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얼어 붙은 달 그림자 강물 위에 ... '라는 세상 노래로 불립니다. 영국 카나다 등의 국가들의 곡도 찬송곡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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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의 기독교 문화 때문에 찬송과 세상노래가 섞이는 과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아주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복 입고 갓을 쓰고 타령식 찬송도 합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요?
찬송가와 세상 노래의 융화
찬송가 중에 The Golden Rule 곡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얼어 붙은 달 그림자 강물 위에 ... '라는 세상 노래로 불립니다. 영국 카나다 등의 국가들의 곡도 찬송곡으로 사용됩니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 때문에 찬송과 세상노래가 섞이는 과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아주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복 입고 갓을 쓰고 타령식 찬송도 합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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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중에 The Golden Rule 곡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얼어 붙은 달 그림자 강물 위에 ... '라는 세상 노래로 불립니다. 영국 카나다 등의 국가들의 곡도 찬송곡으로 사용됩니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 때문에 찬송과 세상노래가 섞이는 과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명확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아주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복 입고 갓을 쓰고 타령식 찬송도 합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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