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들이 뭐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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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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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30 18:34
말세가 되니 불신자들이 신학자나 목회자의 이름까지 사용하고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그렇다 해도 상대가 목회자나 신학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상 그 이름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불신자급' 목회자 '불신자급' 신학자라는 이름으로 모든 유혹과 혼란을 모두 벗어 버렸으면 합니다.
세상 청소하고 복지하고 세상의 좌파 진보가 말하는 언행을 신앙이라고 언급하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있다면 불신자가 양가죽을 쓰고 교회의 대문 안에 숨어 있는 교인에게 문을 열라고 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질문에서 축자적 해석과 상황적 해석은 늘 논란이 된 내용입니다만, 우리는 간단히 성경을 축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상황을 앞에 두고 그 내용을 가르칠 때도 있으니 그렇게 알면 될 듯합니다. 성경의 새 예루살렘을 축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현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도시를 대청소를 하고 오래 된 돌을 새 돌로 교체하면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니 이런 표현은 육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옛날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새 예루살렘으로 가르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것이 상황 해석이면 상황 해석이 맞고, 이 것이 축자 해석이면 축자 해석이 맞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은 주신 그 글자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 것이 축자면 축자가 맞고 그 것이 상황이면 상황이 맞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을 통해 오늘 신령한 우리를 가르쳤고, 신령한 이스라엘을 가르치기 위해 육체 이스라엘의 보이는 모습을 놓고 가르치면서 곳곳에 성장한 우리를 위해 직접 가르친 신령한 말씀도 있습니다. 구별에 어려움이 없다고 봅니다.
>> 신학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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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성경의 축자적 해석과 성경의 상황적 해석 문제가 문제입니다. 공회의 해석은 균형적이며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학계에서는 주관적 해석으로 나가다가 사교화로 간다거나 사변적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는 만사를 절충안으로 덮고 가는 무소신 보신적 해석이라고 혹평을 합니다. 물론 축자적 해석에 매달리면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비판하는 분들도 결론을 보면 자기 주관만 옳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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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찬반이나 이견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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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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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식의 설교는 상가 가족들에게 교리 공부를 시키는 시간이 아니어서 성경 해석과 교리적 배경은 최소화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장례식이나 결혼식의 설교 내용은 아쉽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평소의 교훈선에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 :
: :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은 흙으로 만들었으니 그 몸이 마지막까지 사용 된 뒤에는 흙에 묻히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구약에 '보기 좋은 것'은 단순히 그림으로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실체가 좋거나 아니면 소망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약의 표현은 신약 우리에게 그 모양 대신에 그 내용을 직접 가르칩니다.
: :
: : 몸이 매장 되는 것을 복이라 하심은 그 몸이 주님께 평생 잘 사용 되면서 그 최후 마지막까지 잘 사용 된 면을 말합니다. 하나는 평생의 사용, 하나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담은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을 때 가족 묘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열조가 묻힌 곳에 들어 갑니다. 이 때 묘소는 구약이니 가족 묘의 주소와 시설이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심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에 서서 그 신앙으로 달려 갔고 그 신앙으로 끝을 맺었으니 그 묘소에 들어 갔다는 표현은 그 면까지 포함했고, 야곱도 마찬 가지입니다.
: :
: : 구약의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에 많은 왕들이 나오는데 열조의 묘소에 들어 간 왕과 그렇지 못한 왕의 차이는 바로 그들의 생전의 또는 마지막의 신앙에 따라 차이가 났습니다. 르호보암은 비록 흠과 점이 많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다윗이 들어간 열왕의 묘실에 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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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목사님께서 매장되는 복을 말씀한 것은
: : 첫째, 그 어떤 사람이든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으니 흙에 매장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 : 둘째, 요즘 같은 세상에 매장의 장례식은 본인이나 자녀의 생활이 복 된 면이 있어야 하며
: : 세째, 보이는 매장을 통해 생전의 신앙이 우리 신앙의 자랑스런 분들과 함께 하는 면을
: : 강조했다고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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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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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얼마 전 하나님 앞에 서신 송종섭 목사님은 공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이어서 실수도 계셨을 것이나 전체적으로 선한 중심으로 공회와 교회들을 위해 늘 사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송 목사님의 임종을 두고 과거 송 목사님께서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 몇번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전6:3 말씀을 전했습니다.
: : :
: : : 전도서 6:3
: : :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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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매장되는 면을 아주 다행이며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매장이 과거 성경시대는 몰라도 오늘 우리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질문합니다.
세상 청소하고 복지하고 세상의 좌파 진보가 말하는 언행을 신앙이라고 언급하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있다면 불신자가 양가죽을 쓰고 교회의 대문 안에 숨어 있는 교인에게 문을 열라고 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질문에서 축자적 해석과 상황적 해석은 늘 논란이 된 내용입니다만, 우리는 간단히 성경을 축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상황을 앞에 두고 그 내용을 가르칠 때도 있으니 그렇게 알면 될 듯합니다. 성경의 새 예루살렘을 축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현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도시를 대청소를 하고 오래 된 돌을 새 돌로 교체하면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니 이런 표현은 육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옛날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새 예루살렘으로 가르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것이 상황 해석이면 상황 해석이 맞고, 이 것이 축자 해석이면 축자 해석이 맞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은 주신 그 글자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그 것이 축자면 축자가 맞고 그 것이 상황이면 상황이 맞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을 통해 오늘 신령한 우리를 가르쳤고, 신령한 이스라엘을 가르치기 위해 육체 이스라엘의 보이는 모습을 놓고 가르치면서 곳곳에 성장한 우리를 위해 직접 가르친 신령한 말씀도 있습니다. 구별에 어려움이 없다고 봅니다.
>> 신학2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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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성경의 축자적 해석과 성경의 상황적 해석 문제가 문제입니다. 공회의 해석은 균형적이며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학계에서는 주관적 해석으로 나가다가 사교화로 간다거나 사변적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는 만사를 절충안으로 덮고 가는 무소신 보신적 해석이라고 혹평을 합니다. 물론 축자적 해석에 매달리면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비판하는 분들도 결론을 보면 자기 주관만 옳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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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찬반이나 이견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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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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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식의 설교는 상가 가족들에게 교리 공부를 시키는 시간이 아니어서 성경 해석과 교리적 배경은 최소화 하게 됩니다. 따라서 장례식이나 결혼식의 설교 내용은 아쉽거나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평소의 교훈선에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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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은 흙으로 만들었으니 그 몸이 마지막까지 사용 된 뒤에는 흙에 묻히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구약에 '보기 좋은 것'은 단순히 그림으로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이 실체가 좋거나 아니면 소망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약의 표현은 신약 우리에게 그 모양 대신에 그 내용을 직접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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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매장 되는 것을 복이라 하심은 그 몸이 주님께 평생 잘 사용 되면서 그 최후 마지막까지 잘 사용 된 면을 말합니다. 하나는 평생의 사용, 하나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담은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을 때 가족 묘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열조가 묻힌 곳에 들어 갑니다. 이 때 묘소는 구약이니 가족 묘의 주소와 시설이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심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에 서서 그 신앙으로 달려 갔고 그 신앙으로 끝을 맺었으니 그 묘소에 들어 갔다는 표현은 그 면까지 포함했고, 야곱도 마찬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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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의 열왕기상하와 역대상하에 많은 왕들이 나오는데 열조의 묘소에 들어 간 왕과 그렇지 못한 왕의 차이는 바로 그들의 생전의 또는 마지막의 신앙에 따라 차이가 났습니다. 르호보암은 비록 흠과 점이 많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다윗이 들어간 열왕의 묘실에 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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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목사님께서 매장되는 복을 말씀한 것은
: : 첫째, 그 어떤 사람이든 사람은 흙으로 만들었으니 흙에 매장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 : 둘째, 요즘 같은 세상에 매장의 장례식은 본인이나 자녀의 생활이 복 된 면이 있어야 하며
: : 세째, 보이는 매장을 통해 생전의 신앙이 우리 신앙의 자랑스런 분들과 함께 하는 면을
: : 강조했다고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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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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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얼마 전 하나님 앞에 서신 송종섭 목사님은 공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이어서 실수도 계셨을 것이나 전체적으로 선한 중심으로 공회와 교회들을 위해 늘 사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송 목사님의 임종을 두고 과거 송 목사님께서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 몇번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전6:3 말씀을 전했습니다.
: : :
: : : 전도서 6:3
: : :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 : :
: : :
: : : 매장되는 면을 아주 다행이며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매장이 과거 성경시대는 몰라도 오늘 우리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질문합니다.
매장되는 복, 전6:3의 질문
얼마 전 하나님 앞에 서신 송종섭 목사님은 공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이어서 실수도 계셨을 것이나 전체적으로 선한 중심으로 공회와 교회들을 위해 늘 사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송 목사님의 임종을 두고 과거 송 목사님께서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 몇번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전6:3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도서 6: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매장되는 면을 아주 다행이며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매장이 과거 성경시대는 몰라도 오늘 우리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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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나님 앞에 서신 송종섭 목사님은 공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이어서 실수도 계셨을 것이나 전체적으로 선한 중심으로 공회와 교회들을 위해 늘 사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송 목사님의 임종을 두고 과거 송 목사님께서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 몇번 참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전6:3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도서 6: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매장되는 면을 아주 다행이며 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매장이 과거 성경시대는 몰라도 오늘 우리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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