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자유와 절망, 의의 자유와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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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자유와 절망, 의의 자유와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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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님이 쓰신 내용 <<
:
:
: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
: 예수님의 대속은 주로 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피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들을 씻고,
: 하나님 앞에서 깨끗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아무 문제가 없게 합니다.
: 그리스도으 대속의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지셨습니다.
:
: 그러나
: 우리의 몸은 죄의 몸으로(롬6:6), 나 자신이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 원하지 않은 악을 계속 행하게 됩니다.
: 모든 구원받은 믿는이들에게 아직 이런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
: 롬 8장에 올 때 바울은 생명의 영의 법을 발견합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그리스도
: 예수님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한다고 말합니다.
:
: 피는 용서를 가져오고, 생명은 능력을 가져와 죄와 죽음을 이기게 하고 영향력에서
: 벗어나게 합니다.
: 피를 가지고 싸울 때는 사탄의 참소에 대해 싸워야 하고,
: 생명을 체험하고 누림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초원하여 해방과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
: 우리 믿는이들의 영안에는 부활한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계시며, 우리 또한 부활하신
: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체험을 추구하셔야 합니다.
:
: 이미 주님을 피흘리셨고, 부활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주 예수님, 예수 주님,)
: 구속을 믿으니 더욱 그분의 부활 생명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계속 생명을 누리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 그렇게 될 때 죄로 조성된 우리는 생명으로 조성되며 의로 조성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 지금까지 피를 적용하셨다면,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인 그 영을 추구하고 적용해 보시길
: 권해드립니다.
:
: 롬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 되었다면, 이미 화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
: 우리는 전진해야 하며, 더욱 그분의 생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들의 죽음에서
: 아들의 생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구합니다. 아멘.
:
:
:
:
:
: >> 연구부 님이 쓰신 내용 <<
: :
: : 성경의 자유는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라 의를 향한 자유입니다.
: : 성경의 복은 멸망할 죄인의 죄악의 자유가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의로 자유함을 말합니다.
: :
: :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믿으면
: : 첫째,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 둘째, 감사와 함께 주님께 죄송해야 합니다. 죄송해야 사죄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 : 세째, 감사와 죄송함을 가진 사람은 좌우 발을 가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달려 가면 됩니다.
: :
: :
: : 그런데
: : 구원 받은 우리가 죄사함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에 감사하며 죄송함을 함께 가지고
: : 이제는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의의 자유를 누리고 어떤 현실에서도 그대로 질주하면 되는데
: :
: : 우리가 서툴어서 뛰어 가다가 넘어 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주저 앉기도 합니다.
: : 우리의 영은 완전 중생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죄사함의 은혜로 고치고 배워야 합니다.
: :
: :
: :
: : 질문 내용에서,
: : 믿은 이후에도 우리 모두는 늘 성도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별별 죄를 짓고
: : 그로 인해 우리는 죄송함을 지나 자기가 밉고 원망스럽고 자기로 인해 고통까지 당합니다.
: :
: : 이 순간에
: : 믿는 사람은 늘 기뻐해야 한다 하여 죄를 짓고도 가책도 없이 웃기만 한다면?
: :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믿은 후에도 늘 죄책감에 눌려 울기만 하고 주저만 앉는다면?
: :
: : 둘 다 치우쳤습니다.
: : 뛰어야 합니다.
: : 넘어지면? 다시 일어 서야 합니다.
: : 또 다시 넘어 질 터인데? 넘어 지지 않는 것이 좋으나 넘어 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 : 이 넘어 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 :
: : 우리에게는.
: : 소망을 주셨습니다.
: : 넘어 질 때마다 다음에는 넘어 지지 않을 연구를 하고
: : 실수를 살피고 연구하고 경험으로 삼아 실수하지 않을 날을 바란다면 소망이 됩니다.
: :
: : 넘어 질 때마다
: : 넘어 진 자신의 지난 날을 붙들고, 실수를 연구하시고
: : 넘어 진 자신의 앞날을 향해서는, '소망'을 붙드시면 됩니다.
: :
: :
: : 믿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대할 때의 자세는
: : 학습적 실패, 훈련적 고통, 발전적 손해, 소망적 회개를 가져야 합니다. 대속 때문입니다.
: : 절망적 실패, 심판적 고통, 퇴보적 퇴보는 불신자의 것입니다. 대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 :
: :
: :
: :
: :
: :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 받았는데 늘 죄로 인해 괴롭다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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