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자유와 절망, 의의 자유와 죄송
| 분류 |
|---|
연구부
0
2016.05.28 13:40
성경의 자유는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라 의를 향한 자유입니다.
성경의 복은 멸망할 죄인의 죄악의 자유가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의로 자유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믿으면
첫째,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감사와 함께 주님께 죄송해야 합니다. 죄송해야 사죄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세째, 감사와 죄송함을 가진 사람은 좌우 발을 가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달려 가면 됩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우리가 죄사함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에 감사하며 죄송함을 함께 가지고
이제는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의의 자유를 누리고 어떤 현실에서도 그대로 질주하면 되는데
우리가 서툴어서 뛰어 가다가 넘어 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주저 앉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은 완전 중생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죄사함의 은혜로 고치고 배워야 합니다.
질문 내용에서,
믿은 이후에도 우리 모두는 늘 성도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별별 죄를 짓고
그로 인해 우리는 죄송함을 지나 자기가 밉고 원망스럽고 자기로 인해 고통까지 당합니다.
이 순간에
믿는 사람은 늘 기뻐해야 한다 하여 죄를 짓고도 가책도 없이 웃기만 한다면?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믿은 후에도 늘 죄책감에 눌려 울기만 하고 주저만 앉는다면?
둘 다 치우쳤습니다.
뛰어야 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 서야 합니다.
또 다시 넘어 질 터인데? 넘어 지지 않는 것이 좋으나 넘어 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넘어 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넘어 질 때마다 다음에는 넘어 지지 않을 연구를 하고
실수를 살피고 연구하고 경험으로 삼아 실수하지 않을 날을 바란다면 소망이 됩니다.
넘어 질 때마다
넘어 진 자신의 지난 날을 붙들고, 실수를 연구하시고
넘어 진 자신의 앞날을 향해서는, '소망'을 붙드시면 됩니다.
믿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대할 때의 자세는
학습적 실패, 훈련적 고통, 발전적 손해, 소망적 회개를 가져야 합니다. 대속 때문입니다.
절망적 실패, 심판적 고통, 퇴보적 퇴보는 불신자의 것입니다. 대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성경의 복은 멸망할 죄인의 죄악의 자유가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의로 자유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을 믿으면
첫째,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감사와 함께 주님께 죄송해야 합니다. 죄송해야 사죄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세째, 감사와 죄송함을 가진 사람은 좌우 발을 가졌습니다. 이제 앞으로 달려 가면 됩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우리가 죄사함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죄사함에 감사하며 죄송함을 함께 가지고
이제는 말씀으로 살 수 있는 의의 자유를 누리고 어떤 현실에서도 그대로 질주하면 되는데
우리가 서툴어서 뛰어 가다가 넘어 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주저 앉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은 완전 중생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죄사함의 은혜로 고치고 배워야 합니다.
질문 내용에서,
믿은 이후에도 우리 모두는 늘 성도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별별 죄를 짓고
그로 인해 우리는 죄송함을 지나 자기가 밉고 원망스럽고 자기로 인해 고통까지 당합니다.
이 순간에
믿는 사람은 늘 기뻐해야 한다 하여 죄를 짓고도 가책도 없이 웃기만 한다면?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믿은 후에도 늘 죄책감에 눌려 울기만 하고 주저만 앉는다면?
둘 다 치우쳤습니다.
뛰어야 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 서야 합니다.
또 다시 넘어 질 터인데? 넘어 지지 않는 것이 좋으나 넘어 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 넘어 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넘어 질 때마다 다음에는 넘어 지지 않을 연구를 하고
실수를 살피고 연구하고 경험으로 삼아 실수하지 않을 날을 바란다면 소망이 됩니다.
넘어 질 때마다
넘어 진 자신의 지난 날을 붙들고, 실수를 연구하시고
넘어 진 자신의 앞날을 향해서는, '소망'을 붙드시면 됩니다.
믿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대할 때의 자세는
학습적 실패, 훈련적 고통, 발전적 손해, 소망적 회개를 가져야 합니다. 대속 때문입니다.
절망적 실패, 심판적 고통, 퇴보적 퇴보는 불신자의 것입니다. 대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 받았는데 늘 죄로 인해 괴롭다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
예수님의 대속으로 모든 죄사함 믿으나 크고 작은 죄로 인해 괴로움을 받는다면, 전혀 자유함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