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과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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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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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4 05:36
1. 진리와 영감
내면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영감'으로 표시 되고, 외견상 하나님의 역사 중에 변치 않는 하나의 흐름을 '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성을 가졌으니 단일성의 불변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 관찰과 영감 관찰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를 통해 하나밖에 없는 길이어서 진리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따지고 살피면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영감은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 개별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직접 알 수는 없고 그 드러난 행동을 보고 짐작을 해야 하는데 이는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목회자가 주일 날 아침에 술집에서 취해 있다면 영감의 인도가 아니라고 그 행동을 비판하기가 쉽겠지만, 주일에 앞문을 사용하거나 측문을 이용할 때 이를 두고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2. 열어주신 길
진리는 쉽게 판별할 수 있으니 진리는 그 누구라도 벗어 나서 아니 되는 길과 같고, 영감은 그 길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로 걸어 가는지와 같으니 각 사람에 따라 성령의 인도가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벗어 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때는 그 영감을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인도를 하시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 속단하기 어려우나 길을 벗어 나는 것은 범죄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3. 전선과 전기
진리를 길로 설명하고 영감은 그 길에서 인도하심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전선과 전기로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전기는 전선을 떠나서는 흐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선과 같은 진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전선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구약의 율법주의로 그치는 일이니 전기가 없는 전선과 같습니다. 전기 없는 전선은 그림일 뿐입니다. 그림은 다른 사람의 활동에 불편은 주지 않지만 가정과 도시에 빡빡하게 설치된 전선들과 전기기구들은 우리의 곳곳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선 속에 전기가 정상적으로 흐른다면 에어컨의 시원함과 히터의 따뜻함을 주고, 전등의 밝음과 모든 기계들에게 뜨겁고 힘찬 활동을 줍니다. 한 가정과 한 사회가 힘 있고 밝게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전선을 벗어 난 전기는 화재를 일으키는 누전이 되어 그 사람의 신앙과 인생을 불 살라 버립니다. 전선 속을 흐르는 전기는 현대 문명 생활의 전부입니다. 전선의 용량이 크다면 흐르는 전류도 많아 지게 되어 더 뜨겁고 더 힘 있게 만들겠지만 전선이 있고 전기가 흐른다 해도 그 전선이 극히 가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어 질 것입니다.
4. 소위, 성령운동
진리를 제대로 배우고 파악하는 만큼 전선의 용량이 커집니다. 성령의 역사가 그만큼 활발하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곳은 진리와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전기로 인해 눈에 불꽃이 나타 나고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결과만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선을 잘라 서로 부딫히게 하면 순식간에 열과 빛이 솟구치기 때문에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겠지만 이는 매운 음식을 좋아 하는 사람에게 아주 매운 음식을 먹게 해서 우선은 마음이 아주 만족하게 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될수록 그 사람의 속은 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누전과 방전은 필히 생을 다 불살라 버립니다. 성령운동은 알콜이나 약물 중독자에게 계속해서 알콜이나 약물을 공급함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기 없는 전선으로 온 주택과 사회를 형성해 놓고 막상 전기 공급이 없는 이 차가움과 고통도 또 다른 모순입니다. 성령운동의 잘못을 비판하다가 율법주의로 가는 지식적이며 강의적이며 이론에 그치는 죽은 신앙이 되기도 쉽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공회는 처음부터 진리와 영감을 함께 양면으로 살피며 노력해 왔습니다. 순복음교회나 성결교나 감리교처럼 신앙의 뜨거움을 강조하되 진리와 교리가 약하면 결국은 자타를 불태우고 길을 벗어 나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경계했고, 고신처럼 진리와 교리를 강조하면 그 강조에 붙들려 성령의 순간순간 인도에서 끊어 져 시체처럼 차가워 질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신학의 영감은 성경기록 영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신학의 진리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길입니다.
:
: 공회가 진리와 영감을 별도로 설명하면서도 상호 관계를 조화롭게 만든 것은 특별하게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의 설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리면에서 유명한 것은 교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전선과 전력으로 비유하신 글을 봤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을 부탁합니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궁금합니다.
내면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영감'으로 표시 되고, 외견상 하나님의 역사 중에 변치 않는 하나의 흐름을 '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성을 가졌으니 단일성의 불변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리 관찰과 영감 관찰이 다를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를 통해 하나밖에 없는 길이어서 진리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따지고 살피면 쉽게 구별할 수 있지만, 영감은 각 사람의 마음 속에서 개별적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남의 마음을 직접 알 수는 없고 그 드러난 행동을 보고 짐작을 해야 하는데 이는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목회자가 주일 날 아침에 술집에서 취해 있다면 영감의 인도가 아니라고 그 행동을 비판하기가 쉽겠지만, 주일에 앞문을 사용하거나 측문을 이용할 때 이를 두고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2. 열어주신 길
진리는 쉽게 판별할 수 있으니 진리는 그 누구라도 벗어 나서 아니 되는 길과 같고, 영감은 그 길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로 걸어 가는지와 같으니 각 사람에 따라 성령의 인도가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벗어 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때는 그 영감을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인도를 하시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 속단하기 어려우나 길을 벗어 나는 것은 범죄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3. 전선과 전기
진리를 길로 설명하고 영감은 그 길에서 인도하심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전선과 전기로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전기는 전선을 떠나서는 흐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선과 같은 진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기가 없는 전선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구약의 율법주의로 그치는 일이니 전기가 없는 전선과 같습니다. 전기 없는 전선은 그림일 뿐입니다. 그림은 다른 사람의 활동에 불편은 주지 않지만 가정과 도시에 빡빡하게 설치된 전선들과 전기기구들은 우리의 곳곳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선 속에 전기가 정상적으로 흐른다면 에어컨의 시원함과 히터의 따뜻함을 주고, 전등의 밝음과 모든 기계들에게 뜨겁고 힘찬 활동을 줍니다. 한 가정과 한 사회가 힘 있고 밝게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전선을 벗어 난 전기는 화재를 일으키는 누전이 되어 그 사람의 신앙과 인생을 불 살라 버립니다. 전선 속을 흐르는 전기는 현대 문명 생활의 전부입니다. 전선의 용량이 크다면 흐르는 전류도 많아 지게 되어 더 뜨겁고 더 힘 있게 만들겠지만 전선이 있고 전기가 흐른다 해도 그 전선이 극히 가늘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어 질 것입니다.
4. 소위, 성령운동
진리를 제대로 배우고 파악하는 만큼 전선의 용량이 커집니다. 성령의 역사가 그만큼 활발하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운동을 강조하는 곳은 진리와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전기로 인해 눈에 불꽃이 나타 나고 뜨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결과만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선을 잘라 서로 부딫히게 하면 순식간에 열과 빛이 솟구치기 때문에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겠지만 이는 매운 음식을 좋아 하는 사람에게 아주 매운 음식을 먹게 해서 우선은 마음이 아주 만족하게 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될수록 그 사람의 속은 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누전과 방전은 필히 생을 다 불살라 버립니다. 성령운동은 알콜이나 약물 중독자에게 계속해서 알콜이나 약물을 공급함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기 없는 전선으로 온 주택과 사회를 형성해 놓고 막상 전기 공급이 없는 이 차가움과 고통도 또 다른 모순입니다. 성령운동의 잘못을 비판하다가 율법주의로 가는 지식적이며 강의적이며 이론에 그치는 죽은 신앙이 되기도 쉽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공회는 처음부터 진리와 영감을 함께 양면으로 살피며 노력해 왔습니다. 순복음교회나 성결교나 감리교처럼 신앙의 뜨거움을 강조하되 진리와 교리가 약하면 결국은 자타를 불태우고 길을 벗어 나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경계했고, 고신처럼 진리와 교리를 강조하면 그 강조에 붙들려 성령의 순간순간 인도에서 끊어 져 시체처럼 차가워 질 수 있음을 경계했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신학의 영감은 성경기록 영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신학의 진리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길입니다.
:
: 공회가 진리와 영감을 별도로 설명하면서도 상호 관계를 조화롭게 만든 것은 특별하게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의 설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리면에서 유명한 것은 교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전선과 전력으로 비유하신 글을 봤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을 부탁합니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영감과 진리, 공회의 현황
신학의 영감은 성경기록 영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신학의 진리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길입니다.
공회가 진리와 영감을 별도로 설명하면서도 상호 관계를 조화롭게 만든 것은 특별하게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의 설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리면에서 유명한 것은 교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전선과 전력으로 비유하신 글을 봤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을 부탁합니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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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영감은 성경기록 영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신학의 진리는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길입니다.
공회가 진리와 영감을 별도로 설명하면서도 상호 관계를 조화롭게 만든 것은 특별하게 보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의 설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진리면에서 유명한 것은 교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전선과 전력으로 비유하신 글을 봤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을 부탁합니다.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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