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지공의 법에서 '완전 대속'이 되려면 - 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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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지공의 법에서 '완전 대속'이 되려면 - 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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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속의 넓은 면 - '당사자' 문제
죄 지은 우리를 대속하신 법리의 첫 순서는 '당사자' 문제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A인데, 죄값을 갚는 것은 B라면, 대속이라는 그 갚음이 유효한가? 이 문제는 다시 크게 2 가지 문제로 나눕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다면 재범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는, A가 살인한 것을 B가 처형 받으면 A에게는 석방 되어 사회 속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겠지만 세상 법은 처음부터 무조건 만들면 되지만 하나님의 법은 완전법이어서 만들 수 있다 해도 완전에 속하지 않은 법은 만들지를 않습니다.

둘째는, A를 풀어 놓는 것도 문제지만 A가 풀려 나오면 그 A는 또 살인을 할 사람이고, A를 위해 대신 죽은 B는 이 사회 속에서 남을 살해할 사람이 아니라 목숨 바쳐 다른 사람을 살릴 사람인데 둘을 바꾸어 놓으면 두 사람에게도 불행이고 모든 사람에게도 불행입니다. 따라서 세상 국가와 사회조차 이런 경우를 허용하지 않습니까? 세상보다 더 공의롭고 성결하기 때문에 주님의 법은 지공과 지성이라고 합니다. 풀어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풀어 준 다음까지도 생각해야 하는데 세상마저도 석방 후를 계산한 다음에 처형이나 감형을 적용하나 하나님께서 좌파들처럼 풀어 놓고 나머지는 그냥 지켜 보자고 하실 것인가?


2. 대속의 좁은 면 - '대신한 요소' 문제
소를 죽였으면 소를 해결해야 하고, 노예를 죽였으면 노예를 해결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눈을 쳐싸면 눈을 쳐야 하고, 이를 뺏다면 이를 빼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대응법이라고만 보지만 넓게 보면 대속의 법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당사자' 문제를 두고는 A의 범죄를 B가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였다면 이 당사자 문제를 넘어 선 다음에는 대속의 주님은 무엇으로 어떻게 대속했는지 그 다음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요소가 둘이라면 두 요소에 대한 대속이 필요할 것이고, 셋이면 세 요소에 대하여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물질로 본다면 물질적 대속이 필요하고 마음이 영이라면 영적 대속이 필요할 것입니다. 수학과목의 실패를 국어과목으로 보상한다면 세상식 결과론적 보상이지 내용적 실제적 보상은 되지를 못합니다.

- 몸의 범죄, 몸의 대속
아담의 범죄는 그 육체의 눈이 선악과를 봤고 그 손이 땄고 그 입이 먹었으며 그 몸 전체가 선악과를 삼킨 몸이 되었습니다. 첫 죄 이후 모든 죄도 다 그렇습니다. 몸으로 지은 죄는 몸이 죄의 값을 받아야 하는데 몸은 물질의 궁핍과 공간의 제한과 신경에 통증과 노화와 병환이 그 값입니다. 최종적으로는 마음과 끊어 짐으로 시체가 되고 흙으로 돌아 가서 생전의 모습은 100% 없어 지는 상태가 이 땅 위에서의 1차 죄 값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의 육체가 지은 이 죄를 대신하기 위해 마리아 뱃속에 불편하고 좁은 기간을 다 거쳤고 인생의 출생과 성장 과정의 어려움을 모두 겪었습니다. 굶었고 힘이 들었고 주저 앉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십자가에 처형 받음으로 인간의 죄의 값을 이 땅 위에서 받아야 할 모든 것을 포함하고 그 절정의 표시가 '십자가상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 묘소에 3일간을 뉘어 놓았습니다. 굴로 된 묘실이지만 넓게 보면 흙 속이었습니다. 흙에 묻혔고 3일을 지냈습니다. 몸이 지은 죄의 값을 전부 다 치른 것을 표시함입니다.

- 마음의 범죄, 마음의 대속
아담이 죄를 지을 때 그 눈이 보고 손이 따고 입이 먹을 때, 아담은 잠을 자다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그 손을 잡아 따게 하고 입에 집어 넣고 삼키게 만들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뱀을 통해 분위기만 잡았습니다. 문제는 아담의 마음이 '생각'을 했습니다. 들어 보고 생각을 해 보니 아담에게 유익하다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에게 보게 했고 아담의 눈은 어제 본 선악과나 오늘 본 선악과나 선악과 자체는 꼭 같은데도 눈으로 하여금 보게 한 아담의 마음은 이미 달라 져 있습니다. 어제 볼 때는 독약인데 오늘 다시 보니 먹음직합니다. 다시 보니 먹지 않을 망정 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다시 보니 지혜롭게 만들어 줄 것 같고 그 지혜를 받고 나면 하나님과 같아 질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최종 결정을 한 것은 아담의 마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마음이 지은 범죄의 값을 갚기 위해서는 예수님도 인간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오셨고, 그 마음이 천하의 영광도 봤고 권세를 가지면 좋겠다 하는 세계를 봤고 음식과 유흥과 편함과 죄악의 모든 쾌락을 직접 접하며 살았습니다.그 속에 살았고 접하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그 어떤 것에게도 피동이 되지 않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지은 죄를 대속했습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이 보이는데 먹고 싶지 않도록 만들려면 그 마음에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때리고 싶은 미운 인간이 앞에 얼씬거리는데 미운 생각과 때리고 싶은 죄악의 징벌적 충동이 일어 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옥죄는 과정이 마음의 고생입니다. 이 것이 예수님 33년의 대속의 고형이며 고난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그 몸이 처형 될 때 겉에서는 그 인체의 신경에 가해지는 고통에 인체가 고통스러웠지만 그 인체와 한 존재로 연결 되었던 마음은 그 인체의 고통이 물 건너 불 구경이 아니었고, 말하자면 갓난 자기 아이가 곽란에 발버둥을 치며 온 몸이 부들거리며 죽어갈 때 그 생모가 함께 죽을 정도로 고통을 느끼는 그런 성질, 그 이상이 되어 그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인체는 십자가 상의 운명으로 그 고통이 일단락 되었고 이후는 낡아 짐으로 없어 지는 해체 순서만 남았지만, 그 마음은 영과 함게 낙원이 아니라 음부로 갔고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가야 할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할 바로 그 고통을 대속하기 위해 음부에서 3일 간 고난을 당했습니다.

세상과 영계가 다른 것은 시공의 제한의 유무입니다. 이 땅 위에서 3일은 24시간의 3일이지만, 같은 그 시간의 음부는 3일의 시간적 흐름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이 차이가 없는 무한의 세계입니다. 이 땅 위에서는 예수님의 인체 사망이 3일이었지만, 이 땅 위의 인체의 시공 3일에 해당하는 음부의 3일은 3일이 아니라 영원이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영원이 아니라 시간이 해체 되어 시간의 한계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당할 고난 전부를 그 마음이 다 겪었습니다. 그 마음의 속에 있는 그 영도 그 고난을 함께 겪어야 합니다. 얼굴에 침을 뱉으면 얼굴은 침의 성질과 분량만큼 더러워 지지만, 그 순간 그 사람의 마음은 인격의 참담함을 느낍니다. 이 것이 한 존재의 요소 별 직접과 간접의 차이입니다. 예수님 속의 신성 하나님은 무한과 절대의 하나님이어서 인성인 몸과 마음과 영으로 된 예수님의 고난을 초월해 계셨지만 자기 도장 가는 문서마다 인격자의 인격이 따라 다니는 것처럼, 아이의 고난을 생모는 생생하게 함께 실시간으로 동종 동량 이상으로 느끼는 것처럼,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에 대해 한 존재로서 그런데 인성의 고통을 스스로 더 강하게 느낌으로 동참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이 이 땅 위에서 그 인체의 고난을 인체 이상으로 책임 지고 당하신 그 원리를 영계의 음부로 옮겨 놓는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입고 예수님의 영이 음부에서 3일을 계실 때 우리가 우리 죄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당할 그 고난을 대속하기 위해 대신해야 하는데 그 나라는 영계이니 마음의 고난은 겉 모습이고 실은 영의 고난이 내면이며 본질이며 본무대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체인 몸은 고난을 다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 그 심령은 그 인체의 고난을 그 인체 내에 있으며 함께 당하되 그 인체보다 더 강하게 당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예수님의 마음과 영이 음부에 계실 때 그 마음이 겉에서 당하는 고난을 두고 그 마음 속에 있는 그 영은 더 강하게 당했습니다. 그 나라가 영의 나라이기 때문에 영의 고난에 촛점이 맞춰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렌지 안에 음식을 데우는 원리가 잔자파가 음식을 데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 안에 있는 물을 데우고 음식 안에 있는 물이 뜨거워 짐으로 물 성분과 잇닿아 있는 음식물의 외부가 뜨거워 지는 것인데 우리는 눈으로 볼 때 음식 내의 수분이 보이지 않고 그 수분이 데워 지는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전자렌지는 표시 없이 음식을 데운다고만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의 고난은 이 땅이 물질계이기 때문에 예수님 속의 물질인 심신의 고난에 맞춰 져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예수님의 인체인 몸만 고생을 하고 마음은 그냥 좀 민망한 정도로만 보였지만 실은 그 몸이 1차적으로 직접적으로 고난을 겪을 때 이 땅 위에 주인공인 마음이 제대로 고난을 다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부 3일의 고난은 영계이므로 그 영계의 무제한 고난은 비록 마음이 외부에 있어 마음에게 그 지옥의 고난이 다 들이 붙는다고만 보지만 신령한 눈으로 보면 그 마음 속에 있는 마음의 주인인 영을 향한 것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고차원이며 그 범위가 넓고 그 깊이가 깊기 때문에 인체에 가해 지는 고난보다 마음에 가해 지는 고난이 훨씬 큰 것처럼, 영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므로 영계에서 영에게 가해 지는 그 고난은 이 땅 위에 인체나 마음의 고생과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3일로 표시했으나 시공이 철폐 된 음부에서, 비록 마음이 외부에서 고난의 1차 대상처럼 보이지만 영계의 시공이 철폐 된 무한한 고난이 마음 속에 영을 겨냥해서 무한히 커져 가는 상황을 주님은 우리의 미래 당할 지옥의 모든 고난을 총량 계산하고 미량 세부 계산까지 해서 다 당하셨습니다.

- 영의 범죄, 영의 대속
영은 원래 만들어 질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관계로 영이 스스로 직접 죄를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주인이므로 몸을 맡은 마음을 잘 길러서 어떤 죄든 다 이기게 했어야 합니다. 최근 초등학교 4학년이 벽돌로 이웃집 5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초교 4년생의 어머니는 아이의 나이가 어려서 처벌을 받지 않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웃집의 살해 된 사람에게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고, 또 4학년의 살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차라리 자기가 대신 감옥에 들어 가서 평생 살거나 사형에 처해 진다면 마음의 고통은 덜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더더욱 고통스럽게 자책을 해야 정상적입니다. 영의 책임은 이런 관리 책임입니다.

가릴 것이 없고 시공을 초월한 무한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영, 하나님의 자녀인 영이 자기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마음이 주도를 해서 지은 죄, 그 죄로 인해 주님이 오셔서 당한 세상의 고난, 십자가로 표시 된 음부의 영원한 고통을 생각한다면, 죄로 인해 몸이 당하는 세상의 고생과 그 때 마음이 당하는 고생과 비교할 수 없는, 음부로 표시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바로 이런 부분까지 그대로 다 대속을 해야 합니다.

세상은
물질계입니다. 물질인 심신을 위한 곳이고 영은 한 발 떨어 져 움직이는 곳입니다. 출발이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출발을 하지만 신앙이 자랄수록 몸보다 마음, 마음보다 마음 속에 있는 영이 점점 자라가며 영향력을 확대하여 마침내 이 땅 위에서조차 영이 지배하는 영의 세계가 되는 것이 신앙의 발전입니다.

영계는
영의 세계입니다. 물질계의 심신은 영에게 지배받고 영의 것이 된 것만큼 영계로 옮겨 집니다. 그렇다 해도 어디까지는 영이 중심이며 영의 본격 무대입니다. 영계와 우주의 통일이 주님 재림 이후가 되는데 천년왕국까지 끝나게 되면, 영계는 영이 중심되고 물질계는 심신이 중심되어 움직입니다. 우리가 영계 영물을 지도할 때는 영이 마음을 데리고 주로 활동하며, 변화 된 새 세계인 물질계 우주에 우리가 지도하고 은혜를 베풀 때는 몸을 데리고 마음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우리의 영은 마치 오늘 우리를 지켜 보는 하나님처럼 할 것입니다.


3. 한 걸음씩 살펴 나가는 단계
설교록에 있는 내용은 백영희 목사님 생전에는 진행 중이어서 단정하지 못했으나 1989년 그 분의 사후 적지 않은 세월 속에 대부분 파악이 되고 일단 교리로 확정하여 조직신학을 출간했습니다. '요약'이라는 표현 때문에 모두들 쉽게 생각하고 무슨 노트나 안내서처럼 상대하지만 이 노선의 외형은 그렇게 좀 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직신학은 이 노선 교리서입니다. 토씨 하나까지도 인쇄 과정의 철자 잘못이 아니면 성경적 정확성으로 자신하는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주일학교 예배를 마치고 신발 주머니를 들고 들어 가는 것이 총공회 교리라는 그런 중국 어느 목사님의 교리서처럼 그런 동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또 기분에 따라 오늘은 교리 권위자라 했다가 그 자리에서 기분이 나빠지면 너는 이단이라고 바꾸는 감정적 기준도 아닙니다. 타 교단들처럼 교계의 언론과 대세가 이단이라 하면 슬쩍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쪽에 줄을 섰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그 때는 형편이 그랬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전부를 한 번에 다 걸어 놓을 수 있을 때 교리라고 합니다. 또 어느 시대 어느 교회 어떤 상황에서도 바뀔 수 없을 때를 말합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록 내용은 대부분 그렇게 확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설명하는 이런 부분은 백영희 설교록에서 이미 중요한 내용은 다 형성이 되어 있으나 후학의 정리가 조금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도 최근에는 하나씩 진행 되고 있다는 점에서 백 목사님 당대와 그 후 시대를 비교할 때 비록 거북이 걸음이지만 그래도 생명의 역사가 보인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부분은 처음 표면화 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방향과 원리는 공회적이지만 그 표현과 그 세부 내용까지 전부 그런지를 두고는 늘 살피고 있습니다. 또 다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의 과제가 다음 시간에는 교리로 확정 됩니다. 묘목만 봐서는 수종 확정이 어려우나 조금 지나면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이 노선 학도의 과제 제출'로 봐 주시면 서로 좋겠습니다.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
: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구원의 근거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닌 이상 이 교리는 공통입니다. 그런데 공회의 삼분설은 특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이해도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십자가상에서 죽은 후 3일간 예수님의 마음과 영의 위치에 대한 논의를 두고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습니다.
:
: 설교록에서
: 예수님의 사생애는 우리의 세상 생활을 대속하셨고
: 예수님의 공생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대속하셨다는 취지의 설교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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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3일간 문제를 두고는
: 예수님의 몸은 세상의 여러 고난 중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대속의 고난을 다 받았으나
: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세상에서는 육체의 고난에 동참만 했으나 음부에 가서 고난을 다 받았다는 설명으로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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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1. 제 이해가 맞습니까?
: 질문 2. 마음과 영의 고난을 두고 더 분석하고 비교할 면은 없습니까?
예수님 인성의 '영'이 당한 고난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 구원의 근거이기 때문에 이단이 아닌 이상 이 교리는 공통입니다. 그런데 공회의 삼분설은 특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이해도 특별하다고 생각됩니다. 최근에 십자가상에서 죽은 후 3일간 예수님의 마음과 영의 위치에 대한 논의를 두고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록에서
예수님의 사생애는 우리의 세상 생활을 대속하셨고
예수님의 공생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대속하셨다는 취지의 설교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예수님의 3일간 문제를 두고는
예수님의 몸은 세상의 여러 고난 중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대속의 고난을 다 받았으나
예수님의 마음과 영은 세상에서는 육체의 고난에 동참만 했으나 음부에 가서 고난을 다 받았다는 설명으로 들었습니다.


질문 1. 제 이해가 맞습니까?
질문 2. 마음과 영의 고난을 두고 더 분석하고 비교할 면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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