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가는 순종,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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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가는 순종,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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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을 바탕에 둔 '자원'도 훌륭한 것이고, 자기책임을 바탕에 둔 '순종'도 훌륭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질문의 요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과 '순종'중 어느 방식을 택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꾸 이런 질문을 드리는 배경은, 원글에서 말씀드린 '순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선뜻 순종하기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순종해놓고 나중에 후회하고 조언자를 원망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하신 것처럼 제가 후회할까봐 두렵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자꾸 그 길로 가는 것 이 좋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씀들을 하시고 독려 내지 독촉을 하십니다. 저로서도 마구 미룰 수는 없는 그런 사안입니다. 그러나 저는 노파심에 조심스레 하나님앞에 지식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려고 하루하루 자기와 싸우며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따지고 들어가기보다 믿음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 급박함과 다급함을 느끼기도 하면서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식과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 조금씩 변화하며 나아가야 할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지,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아마 조심스러워하는 제 자신을 두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시간만 보낸다, 주관이 세다, 복을 걷어 찬다고 표현할 것인데, 그렇다고 덜컥 그 길로 갔다가 조언한 원로를 원망하고 길을 후회할까봐 두렵습니다...


>> 연구부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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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순종의 비교
: 이해가 되어 원하는 마음으로 명쾌하게 나갈 때는 '순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자원'입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자유'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맡기고 따라 갈 때 '순종'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확신이 없으나 따라 나서는 것'을 조금 낮은 의미의 순종으로 보고, 이해가 되고 좋아서 따르는 것을 좋은 순종으로 보는데, 반대입니다. 다만 뒤에 후회하거나 지도한 사람에게 원망할 사람이라면 '자유성'은 물론 '순종'조차 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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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미 아는 것은 '자원함'으로, '자유성'의 원리로 자기가 책임 지고 나가는 것이고
: 자기가 원치 않거나 모르는데도 지도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순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지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이 진로를 두고 교사나 교수의 지도를 받을 때는 나보다는 나을 터이고, 나 스스로는 결정을 할 수 없으니, 이럴 때 순종하는 것인데 이 순종은 약화 된 순종입니다. 나보다는 나을 것이고, 사람은 완전이 없는데, 현재 내게는 최선의 방법이니 순종하고, 그리고 훗날 책임은 내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실제 그렇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위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함부로 나를 남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단 무엇을 하든지 자기에게 주어 진 자기 '자유'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자유'의 참 의미는 판단의 자유와 함께 행동에 대한 자기 책임을 포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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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 주지 않고 우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기계로 기르지 않고 자유성을 가진 하나님의 신격을 본 받은 인격의 존재로 길러 가는 최고난도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질문 내용은 비록 간단히 질문했으나 그 내용은 신앙의 본질에 관련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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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 지혜 있고 복 있는 사람은, 그 길을 먼저 걸어 간 사람을 극진하게 존중합니다.
: 망할 사람에 미련한 사람은, 그 길을 먼저 걸어 간 사람을 잘못 선택하거나 먼저 걸어 간 사람의 경륜을 우습게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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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적으로, 옛날은 전자에 속하고
: 시대적으로, 오늘은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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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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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시험이나 갈림길 등에서의 순종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한 번의 결정이 인생 가는 길의 동과 서를 나누고, 선택 후에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라면 신앙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선뜻 내맡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 : 순종에 대해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순종하는 것과 모르고 순종하는 것. 전자는, 순종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사고방식까지를 바꾸어가며 ‘더 이상 나은 대안이 없으니 순종합니다’ 라는 정신상태를 만들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또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하라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위해 학생이 공부가 자신의 긴 인생을 두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뼈에 저리게 깨닫기까지 탐구하고, 현재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공부가 제일 낫다는 것을 경제학적인 계산을 통해 도출하고, 그래서 누가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기까지 하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순종입니다.
: :
: : 후자는 원로의 조언 등을 듣고 나서, 도저히 왜 이 길로 가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전에 순종해보니 결과가 좋았었다던지(내용 자체는 이해되지 않으나) 하는 이유로 약간은 망설여지지만 우선 나가보자 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부모가 공부를 하라고 하니 이 귀찮고 머리아픈걸 왜 하라고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니 나보단 판단을 잘 할 것이니 한번 해보기나 하자라는 그런 순종입니다.
: :
: :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까?>
: : 전자의 순종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식으로 수많은 결정에 대해 시간을 늦추고 계속 탐구하고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식으로 순종의 지향점을 삼으면 과연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자신이 납득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죽인다 하더라도 순종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나사로가 살아 돌아와 순종하라 이야기해도 나아갈 수 없는 경우입니다.
: : 후자에 대해서는, 우선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순종의 갈림길은 후자의 순종이라고 생각됩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공부의 참 뜻을 알고 공부를 하겠습니까, 어른들이 하도 푸시를 하고 잔소리를 하니, 또 당장 공부하지 않으면 중간고사를 망칠 것 같아 무서우니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라도 공부를 한 학생은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자기가 깨닫고 스스로 한 공부에 비해 그 결과나 효용 측면에서는 ‘이상적’이라고는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 :
: : 최근 갈림길에 놓여 제 주관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기존의 지식과 사고방식까지 바꾸어가며, 그 길로 나서는 것이 확실하기에, 그 길 밖에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고, 나중가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가 되어 단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을 때가 되어 순종하는 것이 바른 순종의 길인지, 확신이 들진 않지만, 우선은 주관에 배치됨이 너무 크지만 그래도 우선 가보자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진짜 순종입니까?
큰 시험이나 갈림길 등에서의 순종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한 번의 결정이 인생 가는 길의 동과 서를 나누고, 선택 후에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라면 신앙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선뜻 내맡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종에 대해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순종하는 것과 모르고 순종하는 것. 전자는, 순종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사고방식까지를 바꾸어가며 ‘더 이상 나은 대안이 없으니 순종합니다’ 라는 정신상태를 만들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또 확신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하라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기 위해 학생이 공부가 자신의 긴 인생을 두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뼈에 저리게 깨닫기까지 탐구하고, 현재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공부가 제일 낫다는 것을 경제학적인 계산을 통해 도출하고, 그래서 누가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기까지 하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순종입니다.

후자는 원로의 조언 등을 듣고 나서, 도저히 왜 이 길로 가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전에 순종해보니 결과가 좋았었다던지(내용 자체는 이해되지 않으나) 하는 이유로 약간은 망설여지지만 우선 나가보자 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부모가 공부를 하라고 하니 이 귀찮고 머리아픈걸 왜 하라고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니 나보단 판단을 잘 할 것이니 한번 해보기나 하자라는 그런 순종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까?>
전자의 순종이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식으로 수많은 결정에 대해 시간을 늦추고 계속 탐구하고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식으로 순종의 지향점을 삼으면 과연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자신이 납득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죽인다 하더라도 순종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나사로가 살아 돌아와 순종하라 이야기해도 나아갈 수 없는 경우입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우선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순종의 갈림길은 후자의 순종이라고 생각됩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공부의 참 뜻을 알고 공부를 하겠습니까, 어른들이 하도 푸시를 하고 잔소리를 하니, 또 당장 공부하지 않으면 중간고사를 망칠 것 같아 무서우니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라도 공부를 한 학생은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자기가 깨닫고 스스로 한 공부에 비해 그 결과나 효용 측면에서는 ‘이상적’이라고는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 갈림길에 놓여 제 주관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기존의 지식과 사고방식까지 바꾸어가며, 그 길로 나서는 것이 확실하기에, 그 길 밖에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고, 나중가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가 되어 단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을 때가 되어 순종하는 것이 바른 순종의 길인지, 확신이 들진 않지만, 우선은 주관에 배치됨이 너무 크지만 그래도 우선 가보자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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