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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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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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 15:53
(해방 후 좌익의 고형)
백 목사님은 신앙 문제를 두고 제대로 된 고문을 받은 것은 1회뿐이었습니다.
1948년의 일이었고 경찰 내 좌익 분자 15명이 그들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해봤습니다. 당시 좌우 충돌의 상황에 국내 치안 상태는 극히 엉망이었기 때문에 마음껏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5명의 좌익이 마른 장작으로 계속해서 타격했고 동네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고 실제 부고가 나간 곳도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일반인보다 훨씬 건장했기 때문에 그만큼 매도 많이 맞았고 시골 장작이 여러 개 부지러진 정도였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다음에 그들이 떠났으나 그 과정에서 목사님은 주님과 동행의 마음을 잊지 않았고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장기간의 교묘하고 집요한 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순교적 고문을 당한 상황을 볼 때 일반적인 고문과 고형은 쉽게 넘어 설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워치만 니의 경우는 격리 수용 된 상태였고 텃밭에 농사를 지을 정도의 분위기가 제공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에 따라 좀 다르지만 우리 나라처럼 좁은 나라의 박해는 좀 모진 성향이 있습니다.
(평소 고문 고형을 준비)
일단 백 목사님은 믿은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성자와 성녀의 전기를 많이 읽었고 그 중에서도 고문과 고형에 관한 기록들을 많이 접하며 평생 그런 상황을 잊지 않고 마음으로 늘 준비했던 분입니다. 물론 그 동기는 감성적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의 고난에 동참하는 대속의 자세였습니다. 마지막 순교의 모습도 자신이 평생 준비한 그대로였다는 점에서 그 분에게 고문과 고형이 장기간 그리고 집요하게 가해 졌다면 그에게 만사를 미리 알리시고 대비하게 하시고 또 초월하며 살아 가게 하신 주님이 잘 승리하도록 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장단점)
다만, 백 목사님 스스로 인정하듯이 또 주변에서 지켜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백 목사님은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한 분입니다. 후각 시각 감각 청각까지 아주 날카롭습니다. 이런 면은 평소 성경을 깨닫고 교인을 지도하며 시대를 읽을 때는 탁월하게 장점이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타고 난 체질은, 고문과 고형이 집요할 때 일반인보다 고통을 훨씬 크게 느끼게 되고 또 본인의 견딜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줄어 듭니다. 일반인들을 아무렇게나 잡아 놓고 고통을 가한다면 백 목사님의 체질은 가장 쉽게 꺾여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지가 남 다르고 또 지식적으로 자신을 많이 연구한 분이며 이 면에서 그를 따를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고, 순교를 기다리며 그 순교를 위해 가장 값진 모습으로 맞기 위해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을 평생 기다리고 준비해 왔다는 점, 그리고 주님의 특수 은혜가 아주 많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승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사육신의 고문과 고형이 대단했는데 그들이 다 똑똑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모두 예리하고 예민했을 터인데 수양대군에게 큰 소리 치며 죽었다는 기록을 볼 때 유교인 그들은 그런 날을 준비하고 살지는 않았을 터라는 점에서 그들도 이기는 그런 과정을 잘 통과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백영희목사님은 실제 일제식민지 시대 때 일제의 고문과, 6,25전후 북한공산당으로부터
: 실제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이 그 시대에 신앙을 지키려다 실제 일제의 고문과 북한공산당의 고문을
: 받으셨다면 그 고문들들 이겨내셨을까요?
: 워치만니목사님은 몇 십년을 감옥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을
: 지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치만니목사님이 실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고문을
: 당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 일제시대 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다가, 해방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 신앙을 포기한 분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백영희목사님은 기약이 없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북한에서 신앙생활 하시다 잡혀서
: 감옥에 가서 고문을 계속 당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고문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 신앙을 지켜내셨을지 궁금합니다.
:
: 저는 예수님 믿다가 감옥에 간다하면, 도망갈 사람이어서 전혀 이러한 질문을
: 올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백 목사님은 신앙 문제를 두고 제대로 된 고문을 받은 것은 1회뿐이었습니다.
1948년의 일이었고 경찰 내 좌익 분자 15명이 그들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해봤습니다. 당시 좌우 충돌의 상황에 국내 치안 상태는 극히 엉망이었기 때문에 마음껏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5명의 좌익이 마른 장작으로 계속해서 타격했고 동네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고 실제 부고가 나간 곳도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일반인보다 훨씬 건장했기 때문에 그만큼 매도 많이 맞았고 시골 장작이 여러 개 부지러진 정도였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다음에 그들이 떠났으나 그 과정에서 목사님은 주님과 동행의 마음을 잊지 않았고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도 가지지를 않았습니다.
장기간의 교묘하고 집요한 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순교적 고문을 당한 상황을 볼 때 일반적인 고문과 고형은 쉽게 넘어 설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워치만 니의 경우는 격리 수용 된 상태였고 텃밭에 농사를 지을 정도의 분위기가 제공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에 따라 좀 다르지만 우리 나라처럼 좁은 나라의 박해는 좀 모진 성향이 있습니다.
(평소 고문 고형을 준비)
일단 백 목사님은 믿은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성자와 성녀의 전기를 많이 읽었고 그 중에서도 고문과 고형에 관한 기록들을 많이 접하며 평생 그런 상황을 잊지 않고 마음으로 늘 준비했던 분입니다. 물론 그 동기는 감성적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의 고난에 동참하는 대속의 자세였습니다. 마지막 순교의 모습도 자신이 평생 준비한 그대로였다는 점에서 그 분에게 고문과 고형이 장기간 그리고 집요하게 가해 졌다면 그에게 만사를 미리 알리시고 대비하게 하시고 또 초월하며 살아 가게 하신 주님이 잘 승리하도록 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장단점)
다만, 백 목사님 스스로 인정하듯이 또 주변에서 지켜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이 백 목사님은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한 분입니다. 후각 시각 감각 청각까지 아주 날카롭습니다. 이런 면은 평소 성경을 깨닫고 교인을 지도하며 시대를 읽을 때는 탁월하게 장점이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타고 난 체질은, 고문과 고형이 집요할 때 일반인보다 고통을 훨씬 크게 느끼게 되고 또 본인의 견딜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줄어 듭니다. 일반인들을 아무렇게나 잡아 놓고 고통을 가한다면 백 목사님의 체질은 가장 쉽게 꺾여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지가 남 다르고 또 지식적으로 자신을 많이 연구한 분이며 이 면에서 그를 따를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고, 순교를 기다리며 그 순교를 위해 가장 값진 모습으로 맞기 위해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을 평생 기다리고 준비해 왔다는 점, 그리고 주님의 특수 은혜가 아주 많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승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사육신의 고문과 고형이 대단했는데 그들이 다 똑똑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모두 예리하고 예민했을 터인데 수양대군에게 큰 소리 치며 죽었다는 기록을 볼 때 유교인 그들은 그런 날을 준비하고 살지는 않았을 터라는 점에서 그들도 이기는 그런 과정을 잘 통과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
: 백영희목사님은 실제 일제식민지 시대 때 일제의 고문과, 6,25전후 북한공산당으로부터
: 실제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백영희목사님이 그 시대에 신앙을 지키려다 실제 일제의 고문과 북한공산당의 고문을
: 받으셨다면 그 고문들들 이겨내셨을까요?
: 워치만니목사님은 몇 십년을 감옥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을
: 지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치만니목사님이 실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고문을
: 당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 일제시대 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다가, 해방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 신앙을 포기한 분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백영희목사님은 기약이 없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북한에서 신앙생활 하시다 잡혀서
: 감옥에 가서 고문을 계속 당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고문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 신앙을 지켜내셨을지 궁금합니다.
:
: 저는 예수님 믿다가 감옥에 간다하면, 도망갈 사람이어서 전혀 이러한 질문을
: 올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백영희목사님은 실제 고문을 당하셨다면...
백영희목사님은 실제 일제식민지 시대 때 일제의 고문과, 6,25전후 북한공산당으로부터
실제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 그 시대에 신앙을 지키려다 실제 일제의 고문과 북한공산당의 고문을
받으셨다면 그 고문들들 이겨내셨을까요?
워치만니목사님은 몇 십년을 감옥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치만니목사님이 실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고문을
당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제시대 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다가, 해방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신앙을 포기한 분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은 기약이 없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북한에서 신앙생활 하시다 잡혀서
감옥에 가서 고문을 계속 당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고문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켜내셨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예수님 믿다가 감옥에 간다하면, 도망갈 사람이어서 전혀 이러한 질문을
올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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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은 실제 일제식민지 시대 때 일제의 고문과, 6,25전후 북한공산당으로부터
실제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지는 않으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이 그 시대에 신앙을 지키려다 실제 일제의 고문과 북한공산당의 고문을
받으셨다면 그 고문들들 이겨내셨을까요?
워치만니목사님은 몇 십년을 감옥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치만니목사님이 실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고문을
당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제시대 때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다가, 해방이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신앙을 포기한 분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영희목사님은 기약이 없는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북한에서 신앙생활 하시다 잡혀서
감옥에 가서 고문을 계속 당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고문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켜내셨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예수님 믿다가 감옥에 간다하면, 도망갈 사람이어서 전혀 이러한 질문을
올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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