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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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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7 07:38
"하나님-사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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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통의 '신인양성일위' 그 자체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과거의 첫 깨달음이 기본 방향을 잘 잡았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의 표현 안에서 더 연구하고 찾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윗 길의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를 말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사람=예수님'입니다(註. 이 글에서 답변자의 '-' 표시는 '빼기'가 아니라 '연결'). 그런데 어떤 때는 사람만을 따로 예수님이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려면 '하나님-사람=예수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사람' 중에 '사람' 부분만을 두고 말씀해야 할 듯합니다. 대단히 오해 소지가 많은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구성하고 있는 신성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 인성만 피조물입니다. 그 인성이 신성과 하나 된 인성이므로 피조물 중에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1960년경 애양원교회에 사경회를 인도하던 백 목사님이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고 설교했다 하여 예배 도중에 애양원교회 장로님들이 벌떡 일어나서 항의를 하고 퇴장을 해 버리는 일대 소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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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제 사람의 영의 거듭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 타락하기 이전이든 타락 후이든 영이 살이 있든 영이 죽어 있든
: : : : 우리 피조된 사람의 영은 오직 사람의 요소만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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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렇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몸도 피조물이고 마음도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영도 피조물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우리의 영이 창조주 하나님은 아닙니다. 영원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영원히 인간입니다. 인간이란 영이 주격에 서고 심신을 다스릴 때 정상적인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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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런데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되면 우리의 영은 거듭나게 됩니다.
: : : : 이 때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 인간 부모로부터 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낳게된다는 것입니다.
: : : : 인간부모로부터 인간 생명요소를 받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요소를
: : : :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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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참으로 귀한 말씀, 참으로 깊은 말씀, 저희나 이런 말씀을 들으면 동질감을 느끼며 우리 외에도 이렇게까지 깊은 곳에 들어 오신 분들이 계셨구나 라고 반가움을 표할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교회라면 '이래서 지방교회는 이단이다'라고 정죄부터 해 놓고 볼 듯합니다. 또한 공회 내에서도 자칭 선지자들은 공회 내부조차 알지 못하고 자기 주관으로 정죄를 하되 공회 이름으로 정죄할 듯합니다. 이 사이트의 1988년에서 1989년의 자료를 살필 기회가 있다면 비록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또한 실제 깨달은 것은 다를지 몰라도 한 눈에 지방교회가 표현하고자 하는 속 마음, 지방교회가 이미 보신 세계를 전하고 싶은 그런 면을 바로 직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희도 아직 지방교회 자료를 충분히 접하지 못해서 그런 감만 가지고 있지 단정까지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처음부터 오랜 세월 견지해 온, 저희가 알고 접하며 저희가 더욱 더 들어 가고자 했던 길을 저희만 들어 가고 있는 줄로 생각했는데 일단 같은 길에 방향을 잡고 동행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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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 것은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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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기부터는 표현에 따라 세계 교회와 역사 교리 앞에 '발전적' 과제를 삼고 살펴야 할 단계입니다. 저희는 저희가 본 것이 있고 지방교회는 지방교회가 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이거나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이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런 언어로 바로 단정하겠는데 신령한 세계를 본 상황에서 이런 둔탁한 땅의 언어로 맞추려니 자칫 다른 것을 보고 같은 것으로 말하거나 또는 같은 것을 봐 놓고도 '빨간색'과 '적색'으로 달리 표현하면서 서로 다른 것을 봤다고 불필요한 논쟁을 할 수 있을 듯하여 일단 지방교회의 설명을 더 많이 들어 봐야 하겠습니다. 비록 세상의 언어라 해도 단정을 좀 미뤄 두고 더 많이 듣게 되면 확인이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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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님의 피로 구속받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살아나고 높여진 사람의 영에
: : : : 하나님의 요소 (성육신되고 죽고 부활하신 생명주는 영)가 더해지고 주입되고 연합되어
: : : :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 : : :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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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에게 다시 주신 중생이라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것이어서 일단 지방교회의 설명을 들어만 보겠습니다. 현재 설명하는 과정은 토씨 하나에 바로 이단으로 정죄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5세 아이가 이모를 고모라고 부르거나 5촌 당숙을 삼촌으로 부른다면 그 자리에서 서로 수정하면 되는데, 지방교회처럼 남 다르게 믿고자 하는 이들은 교계가 사냥총으로 쏘아서 땅바닥에 떨어트려야 그들의 속이 개운한 그런 못된 면이 있어 삼촌과 당숙을 잘못 표현하면 네 애비는 누구냐 근친의 불륜아냐 이런 식으로 달려 가버리니 함께 조심하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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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방교회가 설명하는 중생의 면은 비록 근사치는 있어 보이나 저희는 저희 내부에서 배운 세월을 통해 우리 설교록의 어느 한 부분을 읽고 있는 듯합니다. 한 가지 늘 아쉬운 면이 있다면 지방교회가 중국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지는 바람에 꼭 같은 설명도 중국적이거나 영미적인 면이 있어 저희에게 서툽니다. 마치 저희는 조사님이라 하는데 타 교회는 전도사님이라 하는 그런 차이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교리를 대하며 일반 신학서들을 읽다 보면 영국 미국을 통해 적혀 오는 영어식 표현 때문에 저희에게 첫 인상이 늘 서툰 외국인을 대하는 듯합니다. 이런 표현은 본질이 달라서 다르게 표현 된 것도 있고, 본질은 같으나 표현의 방식이 달라서 다른 것도 있으니, 이 사안이 중하고 깊기 때문에 저희가 실수할까 싶어 조심한다는 우호적 분위기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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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이제 하나님의 요소와 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 : : : 우리의 영은 이제 하나님이면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 : : : 이것은 우리 영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계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 : : : 내 영 자체가 하나님-사람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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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면은 저희가 일단 유보해 놓겠습니다.
: : :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의 내면 구성과 중생 후 우리 속의 영이 신성 하나님과 내면 구성이 같은가. 저희가 드리고 싶은 부분은 적지 않으나 아주 간단했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설명과 사람의 마음은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이 설명조차도 박윤선 목사님을 선두로 하여 교계는 무조건 자기들 식으로 정죄부터 하여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안에 공회의 복음 운동을 태산처럼 막았습니다. 저희는 그 장애에 막히지 않았으나 현재 진행 되는 이런 면을 두고는 또 그런 우스운 논쟁을 상대방에게 쉽게 던질 일은 아닌 듯합니다. 만일 저희의 표현과 지방교회의 표현이 같다면 주저하지 않겠으나 일단 표현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방교회의 표현 결과는 저희와 다릅니다. 그러나 저희 깨달음을 지방교회의 표현과 맞추려 한다면, 저희 표현의 확장형이라 하고 싶습니다. 이 확장이 어떤 때는 본질을 달리 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동일 본질의 활동의 범위만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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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런 거듭난 새로운 존재로 창조된 영 안에 하나님은 내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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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희는 죽었던 영을 살렸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 자체의 창조는 부정합니다. 영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져 있고, 따라서 존재는 있으나 활동이 완전 중단 된 상태로 생각합니다. 이 영을 다시 살려 낸 '것'은 전적 신적 요소며 행위입니다. 이 생명이 주입 되자 죽은 영은 바로 정상화 되었습니다. 그냥 정상화 되었다면 아담의 영과 중생 후 우리의 영이 같다 할 것인데, 그냥 정상화 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영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담의 영은 죽은 즉시 장례를 치르고 치워 버렸고, 중생의 영은 새 재료로 새로 만들어 새로 주셨는가? 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의 1차 창조의 영과 재료는 같고 바로 그 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이 죽어 있었으나 이 영을 살릴 때 살리도록 지극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였고 그 능력을 위해 사활의 대속이 제공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살아 난 우리의 영은 지방교회가 본 듯이 마치 아주 다른 존재처럼 또는 그 영 자체가 신적 요소가 내부의 구성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일 정도의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 자체를 연구하면 하나님 자체가 보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빼고 논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영 자체는 중생 후에도 여전히 과거 그 영을 다시 살려 그 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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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면은 부활 후의 우리의 심신을 오늘의 심신과 비교하면 가장 근접한 또 하나의 비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 후 우리의 몸은 오늘의 몸과 구성 요소가 전혀 다르게 만들어 지지 않으나 그렇다고 오늘 우리 몸과 수평 비교를 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신령해 지고 아무리 위대해 지고 아무리 끝없이 우러러 볼 부활의 영광을 가졌다 해도 오늘 죄 짓고 사는 이 육체의 재생이며 재활용이며 승격이며 고도의 변화이며 신령하게 변화 받은 영광의 몸이지, 생전의 몸과 정체성이나 동일성이나 동질성 자체가 달라 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와 저희가 보는 위치가 좀 다른 듯합니다. 한 시각은 안에서 밖을 봤고 한 시각은 밖에서 안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밖을 보면 본질적 내용이 보이고, 외부에서 내부를 보면 역사적 일체로 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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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하나님-사람이 되었지만 신격에서는 아닙니다.
: : : : 다만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 : : : 결코 창조자나 경배받는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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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앞에서 설명한 내용은 저희가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뒤에 한 말씀을 붙여 놓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어렵겠으나, 그런데 왜 이렇게 뒤에 붙일 말씀을 앞에서 빼놓음으로 형제들에게 오해 소지를 제공하는지, 지방교회의 원래 목적이 궁금합니다. 저희도 그런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단순히 궁금해서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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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낳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 : : : 그리고 사람의 요소도 여전히 사람입니다.
: : : : 두 요소가 합하여 제 3의 요소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 : : : 지방교회에서 사람이 거듭났다는 의미는 결론적으로
: : : :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 낳아졌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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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생의 생명은 아담의 영이 살았을 때 가진 생명과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깊게 본 분들의 자연스런 설명으로 들립니다. '낳았다' 하셨으니 지방교회의 이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이 '낳았다'는 표현이 신령한 세계에 없는 실체를 오늘 타락한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성경이 적었기 때문에 인간 언어에 집착을 하게 되면 오해 소지는 의외로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론'에서도 볼 수 있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한 지방의 한 교회론은 저희도 알고 일반 교회의 원래 원리로는 모두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방교회의 내부 인식과 내부 은혜를 타 교회에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교회는 하나, 이 것은 일반 교회가 아는 상식입니다. 모든 목회자가 이리가 되어 있지만 이리적 목사가 옳다는 데까지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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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것은 첫번 째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 모든 믿는이들도
: : : : 수많은 하나님-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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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희는 이 표현이 중생 된 우리를 만물이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가게 되면 지방교회가 말씀한 그 상태로 무한 근접으로 자라 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중심이 그런 뜻이며 그렇게 봤다면 그런 입장을 이해하고 본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리적으로 저희가 맞다면 지방교회는 오해 소지를 가진 것이 되고, 지방교회의 교리가 정확하다면 저희는 조금 어린 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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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래서 독생자이신 분은 이제 맏아들이 되셨고 그의 수많은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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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수님은 첫 열매시고 우리는 둘째 열매라는 점에서는 그렇게 말씀할 수 있으나 예수님과 우리의 본질적 차이는 우리는 양자라는 점입니다. 모든 면이 같은데 본질의 문제가 있어 우리는 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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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직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신격에서만 그와 같을 수 없으며
: : : : 우리는 지금 혼의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으며 우리 몸의 구속 곧 영화롭게 변형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는 그날에 우리 온 존재가 형상과 모양과 외양에 있어서까지 그리스도와 똑같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 : 오직 신격에서만 그분과 다를 것입니다.
: : : : 주님을 찬양합니다.
: : : : 중생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우리의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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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지막 말씀을 먼저 내놓고, 그 마지막 말씀의 근거와 훗날 소망을 설명하는 과정에 이 글의 첫 말씀이 제시 된다면 훨씬 좋을 듯합니다. 부족한 저희의 입장입니다. 비록 저희가 틀렸든, 지방교회가 좀 서툰 면이 있든, 오늘 일반 교계가 감히 볼려고 생각하지도 못한 산 너머를 가지고 논했고 지방교회 교인들도 워치만 니 목사님이나 조금 보시고 후배들에게 전한 것을 후배들이 그 목격담을 주변에 전하고 있다 보며, 저희도 백영희 목사님이 잠깐 보셨던 것을 저희가 직접 본 듯 설명을 하고 있으나 실제 안개 낀 저 어디를 대략 보기는 해도 눈이 어두워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가진 성경 때문에 이 정도까지만 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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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좋은 교회에 속하고 좋은 교훈을 배웠고 깊은 영의 세계에 살다 간 워치만 니의 세계를 통해 은혜 받고 오늘 남 다르게 믿고 가려는 분들이 주변에 계셔서 늘 반갑습니다. 공회 노선을 피하거나 짐짓 좀 외면 한 듯 하시면 지방교회의 원래에서 멀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 한두 분씩 그렇지 않고 교류에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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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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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저와 친한 분이 지방교회교인이십니다. 그분의 입장입니다.
: : : : 그분은 본인이 부족한점이 많아서, 아래의 글이 지방교회의 대표글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 : : : 제 생각도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봐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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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담의 영은 타락 이전이라할지라도 인성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 : : : 죄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영안에는 신성의 요소가 없었고 오직 창조된 죄없는 순수한 인성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 : : 아담은 생명나무를 취하기 전에 타락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 : : 반면 주 예수님은
: : : :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 안에 잉태되신 분으로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인 분이되셨습니다.
: : : : 주 예수님은
: : : : 하나님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셨고
: : : : 사람의 측면에서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 : : :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아닌 사람도 아닌 어떤 제3의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았습니다.
: : : :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이셨습니다.
: : : : 하나님이면서 사람이고
: : : : 사람이면서 하나님인 그런 존재가 되셨습니다.
: : : : 창조주와 피조물의 연합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 : : : 이 존재는 신격에 있어서도 하나님이셨을 뿐 아니라 완전한 사람으로서 피조물이기도 하셨습니다.
: : : : 이러한 분을 가리켜 "하나님-사람"이라고 합니다.
: : : : 이제 사람의 영의 거듭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 타락하기 이전이든 타락 후이든 영이 살이 있든 영이 죽어 있든 우리 피조된 사람의 영은 오직 사람의 요소만을 갖고 있습니다.
: : : : 그런데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되면 우리의 영은 거듭나게 됩니다.
: : : : 이 때 거듭난 다는 것은 우리 인간 부모로 부터 난 것이 하나님 으로부터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부모로부터 인간 생명요소를 받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요소를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 : : : 이 것은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이며
: : : : 주님의 피로 구속받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살아나고 높여진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요소 (성육신되고 죽고 부활하신 생명주는 영)가 더해지고 주입되고 연합되어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 : : :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입니다.
: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이제 하나님의 요소와 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이제 하나님이면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영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계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 : : : 내 영 자체가 하나님-사람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 : : 이런 거듭난 새로운 존재로 창조된 영 안에 하나님은 내주하고 계십니다.
: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하나님-사람이 되었지만 신격에서는 아닙니다. 다만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결코 창조자나 경배받는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낳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요소도 여전히 사람입니다. 두 요소가 합하여 제 3의 요소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 : : : 지방교회에서 사람이 거듭났다는 의미는 결론적으로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 낳아졌다는 의미입니다.
: : : : 이것은 첫번 째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 모든 믿는이들도 수많은 하나님-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 : : 그래서 독생자이신 분은 이제 맏아들이 되셨고 그의 수많은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신격에서만 그와 같을 수 없으며
: : : : 우리는 지금 혼의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으며 우리 몸의 구속 곧 영화롭게 변형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는 그날에 우리 온 존재가 형상과 모양과 외양에 있어서까지 그리스도와 똑같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 : 오직 신격에서만 그분과 다를 것입니다.
: : : : 주님을 찬양합니다.
: : : : 중생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우리의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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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통의 '신인양성일위' 그 자체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과거의 첫 깨달음이 기본 방향을 잘 잡았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의 표현 안에서 더 연구하고 찾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윗 길의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를 말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사람=예수님'입니다(註. 이 글에서 답변자의 '-' 표시는 '빼기'가 아니라 '연결'). 그런데 어떤 때는 사람만을 따로 예수님이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려면 '하나님-사람=예수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사람' 중에 '사람' 부분만을 두고 말씀해야 할 듯합니다. 대단히 오해 소지가 많은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구성하고 있는 신성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 인성만 피조물입니다. 그 인성이 신성과 하나 된 인성이므로 피조물 중에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1960년경 애양원교회에 사경회를 인도하던 백 목사님이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라고 설교했다 하여 예배 도중에 애양원교회 장로님들이 벌떡 일어나서 항의를 하고 퇴장을 해 버리는 일대 소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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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타락하기 이전이든 타락 후이든 영이 살이 있든 영이 죽어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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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인간부모로부터 인간 생명요소를 받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요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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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하나님의 요소 (성육신되고 죽고 부활하신 생명주는 영)가 더해지고 주입되고 연합되어
: : : :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 : : :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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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에게 다시 주신 중생이라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것이어서 일단 지방교회의 설명을 들어만 보겠습니다. 현재 설명하는 과정은 토씨 하나에 바로 이단으로 정죄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5세 아이가 이모를 고모라고 부르거나 5촌 당숙을 삼촌으로 부른다면 그 자리에서 서로 수정하면 되는데, 지방교회처럼 남 다르게 믿고자 하는 이들은 교계가 사냥총으로 쏘아서 땅바닥에 떨어트려야 그들의 속이 개운한 그런 못된 면이 있어 삼촌과 당숙을 잘못 표현하면 네 애비는 누구냐 근친의 불륜아냐 이런 식으로 달려 가버리니 함께 조심하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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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방교회가 설명하는 중생의 면은 비록 근사치는 있어 보이나 저희는 저희 내부에서 배운 세월을 통해 우리 설교록의 어느 한 부분을 읽고 있는 듯합니다. 한 가지 늘 아쉬운 면이 있다면 지방교회가 중국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지는 바람에 꼭 같은 설명도 중국적이거나 영미적인 면이 있어 저희에게 서툽니다. 마치 저희는 조사님이라 하는데 타 교회는 전도사님이라 하는 그런 차이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 교리를 대하며 일반 신학서들을 읽다 보면 영국 미국을 통해 적혀 오는 영어식 표현 때문에 저희에게 첫 인상이 늘 서툰 외국인을 대하는 듯합니다. 이런 표현은 본질이 달라서 다르게 표현 된 것도 있고, 본질은 같으나 표현의 방식이 달라서 다른 것도 있으니, 이 사안이 중하고 깊기 때문에 저희가 실수할까 싶어 조심한다는 우호적 분위기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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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이제 하나님의 요소와 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 : : : 우리의 영은 이제 하나님이면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 : : : 이것은 우리 영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계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 : : : 내 영 자체가 하나님-사람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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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면은 저희가 일단 유보해 놓겠습니다.
: : :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의 내면 구성과 중생 후 우리 속의 영이 신성 하나님과 내면 구성이 같은가. 저희가 드리고 싶은 부분은 적지 않으나 아주 간단했던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설명과 사람의 마음은 중생 후에도 죄를 짓는다는 이 설명조차도 박윤선 목사님을 선두로 하여 교계는 무조건 자기들 식으로 정죄부터 하여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안에 공회의 복음 운동을 태산처럼 막았습니다. 저희는 그 장애에 막히지 않았으나 현재 진행 되는 이런 면을 두고는 또 그런 우스운 논쟁을 상대방에게 쉽게 던질 일은 아닌 듯합니다. 만일 저희의 표현과 지방교회의 표현이 같다면 주저하지 않겠으나 일단 표현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방교회의 표현 결과는 저희와 다릅니다. 그러나 저희 깨달음을 지방교회의 표현과 맞추려 한다면, 저희 표현의 확장형이라 하고 싶습니다. 이 확장이 어떤 때는 본질을 달리 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동일 본질의 활동의 범위만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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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런 거듭난 새로운 존재로 창조된 영 안에 하나님은 내주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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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희는 죽었던 영을 살렸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 자체의 창조는 부정합니다. 영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 져 있고, 따라서 존재는 있으나 활동이 완전 중단 된 상태로 생각합니다. 이 영을 다시 살려 낸 '것'은 전적 신적 요소며 행위입니다. 이 생명이 주입 되자 죽은 영은 바로 정상화 되었습니다. 그냥 정상화 되었다면 아담의 영과 중생 후 우리의 영이 같다 할 것인데, 그냥 정상화 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영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담의 영은 죽은 즉시 장례를 치르고 치워 버렸고, 중생의 영은 새 재료로 새로 만들어 새로 주셨는가? 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의 1차 창조의 영과 재료는 같고 바로 그 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이 죽어 있었으나 이 영을 살릴 때 살리도록 지극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였고 그 능력을 위해 사활의 대속이 제공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살아 난 우리의 영은 지방교회가 본 듯이 마치 아주 다른 존재처럼 또는 그 영 자체가 신적 요소가 내부의 구성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일 정도의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 자체를 연구하면 하나님 자체가 보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빼고 논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영 자체는 중생 후에도 여전히 과거 그 영을 다시 살려 그 영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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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면은 부활 후의 우리의 심신을 오늘의 심신과 비교하면 가장 근접한 또 하나의 비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 후 우리의 몸은 오늘의 몸과 구성 요소가 전혀 다르게 만들어 지지 않으나 그렇다고 오늘 우리 몸과 수평 비교를 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아무리 신령해 지고 아무리 위대해 지고 아무리 끝없이 우러러 볼 부활의 영광을 가졌다 해도 오늘 죄 짓고 사는 이 육체의 재생이며 재활용이며 승격이며 고도의 변화이며 신령하게 변화 받은 영광의 몸이지, 생전의 몸과 정체성이나 동일성이나 동질성 자체가 달라 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와 저희가 보는 위치가 좀 다른 듯합니다. 한 시각은 안에서 밖을 봤고 한 시각은 밖에서 안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안에서 밖을 보면 본질적 내용이 보이고, 외부에서 내부를 보면 역사적 일체로 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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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하나님-사람이 되었지만 신격에서는 아닙니다.
: : : : 다만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 : : : 결코 창조자나 경배받는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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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앞에서 설명한 내용은 저희가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뒤에 한 말씀을 붙여 놓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어렵겠으나, 그런데 왜 이렇게 뒤에 붙일 말씀을 앞에서 빼놓음으로 형제들에게 오해 소지를 제공하는지, 지방교회의 원래 목적이 궁금합니다. 저희도 그런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단순히 궁금해서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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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낳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 : : : 그리고 사람의 요소도 여전히 사람입니다.
: : : : 두 요소가 합하여 제 3의 요소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 : : : 지방교회에서 사람이 거듭났다는 의미는 결론적으로
: : : :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 낳아졌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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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생의 생명은 아담의 영이 살았을 때 가진 생명과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깊게 본 분들의 자연스런 설명으로 들립니다. '낳았다' 하셨으니 지방교회의 이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이 '낳았다'는 표현이 신령한 세계에 없는 실체를 오늘 타락한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성경이 적었기 때문에 인간 언어에 집착을 하게 되면 오해 소지는 의외로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지방교회의 '한 지방 한 교회론'에서도 볼 수 있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한 지방의 한 교회론은 저희도 알고 일반 교회의 원래 원리로는 모두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방교회의 내부 인식과 내부 은혜를 타 교회에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교회는 하나, 이 것은 일반 교회가 아는 상식입니다. 모든 목회자가 이리가 되어 있지만 이리적 목사가 옳다는 데까지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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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것은 첫번 째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 모든 믿는이들도
: : : : 수많은 하나님-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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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희는 이 표현이 중생 된 우리를 만물이 외부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가게 되면 지방교회가 말씀한 그 상태로 무한 근접으로 자라 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중심이 그런 뜻이며 그렇게 봤다면 그런 입장을 이해하고 본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리적으로 저희가 맞다면 지방교회는 오해 소지를 가진 것이 되고, 지방교회의 교리가 정확하다면 저희는 조금 어린 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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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그래서 독생자이신 분은 이제 맏아들이 되셨고 그의 수많은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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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수님은 첫 열매시고 우리는 둘째 열매라는 점에서는 그렇게 말씀할 수 있으나 예수님과 우리의 본질적 차이는 우리는 양자라는 점입니다. 모든 면이 같은데 본질의 문제가 있어 우리는 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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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오직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신격에서만 그와 같을 수 없으며
: : : : 우리는 지금 혼의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으며 우리 몸의 구속 곧 영화롭게 변형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는 그날에 우리 온 존재가 형상과 모양과 외양에 있어서까지 그리스도와 똑같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 : 오직 신격에서만 그분과 다를 것입니다.
: : : : 주님을 찬양합니다.
: : : : 중생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우리의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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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지막 말씀을 먼저 내놓고, 그 마지막 말씀의 근거와 훗날 소망을 설명하는 과정에 이 글의 첫 말씀이 제시 된다면 훨씬 좋을 듯합니다. 부족한 저희의 입장입니다. 비록 저희가 틀렸든, 지방교회가 좀 서툰 면이 있든, 오늘 일반 교계가 감히 볼려고 생각하지도 못한 산 너머를 가지고 논했고 지방교회 교인들도 워치만 니 목사님이나 조금 보시고 후배들에게 전한 것을 후배들이 그 목격담을 주변에 전하고 있다 보며, 저희도 백영희 목사님이 잠깐 보셨던 것을 저희가 직접 본 듯 설명을 하고 있으나 실제 안개 낀 저 어디를 대략 보기는 해도 눈이 어두워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가진 성경 때문에 이 정도까지만 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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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좋은 교회에 속하고 좋은 교훈을 배웠고 깊은 영의 세계에 살다 간 워치만 니의 세계를 통해 은혜 받고 오늘 남 다르게 믿고 가려는 분들이 주변에 계셔서 늘 반갑습니다. 공회 노선을 피하거나 짐짓 좀 외면 한 듯 하시면 지방교회의 원래에서 멀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 한두 분씩 그렇지 않고 교류에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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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신학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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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저와 친한 분이 지방교회교인이십니다. 그분의 입장입니다.
: : : : 그분은 본인이 부족한점이 많아서, 아래의 글이 지방교회의 대표글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 : : : 제 생각도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봐주시고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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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담의 영은 타락 이전이라할지라도 인성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 : : : 죄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영안에는 신성의 요소가 없었고 오직 창조된 죄없는 순수한 인성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 : : 아담은 생명나무를 취하기 전에 타락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 : : 반면 주 예수님은
: : : :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 안에 잉태되신 분으로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인 분이되셨습니다.
: : : : 주 예수님은
: : : : 하나님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셨고
: : : : 사람의 측면에서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 : : :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합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아닌 사람도 아닌 어떤 제3의 본성을 산출하지는 않았습니다.
: : : :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이셨습니다.
: : : : 하나님이면서 사람이고
: : : : 사람이면서 하나님인 그런 존재가 되셨습니다.
: : : : 창조주와 피조물의 연합체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 : : : 이 존재는 신격에 있어서도 하나님이셨을 뿐 아니라 완전한 사람으로서 피조물이기도 하셨습니다.
: : : : 이러한 분을 가리켜 "하나님-사람"이라고 합니다.
: : : : 이제 사람의 영의 거듭남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 타락하기 이전이든 타락 후이든 영이 살이 있든 영이 죽어 있든 우리 피조된 사람의 영은 오직 사람의 요소만을 갖고 있습니다.
: : : : 그런데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되면 우리의 영은 거듭나게 됩니다.
: : : : 이 때 거듭난 다는 것은 우리 인간 부모로 부터 난 것이 하나님 으로부터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부모로부터 인간 생명요소를 받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요소를 받고 태어나게 됩니다.
: : : : 이 것은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이며
: : : : 주님의 피로 구속받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살아나고 높여진 사람의 영에 하나님의 요소 (성육신되고 죽고 부활하신 생명주는 영)가 더해지고 주입되고 연합되어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 : : :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입니다.
: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이제 하나님의 요소와 사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이제 하나님이면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영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계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 : : : 내 영 자체가 하나님-사람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 : : 이런 거듭난 새로운 존재로 창조된 영 안에 하나님은 내주하고 계십니다.
: : : : 우리의 거듭난 영은 하나님-사람이 되었지만 신격에서는 아닙니다. 다만 생명과 본성에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결코 창조자나 경배받는 하나님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낳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요소도 여전히 사람입니다. 두 요소가 합하여 제 3의 요소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 : : : 지방교회에서 사람이 거듭났다는 의미는 결론적으로 우리 사람의 영이 하나님으로 낳아졌다는 의미입니다.
: : : : 이것은 첫번 째 하나님 사람이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 모든 믿는이들도 수많은 하나님-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 : : 그래서 독생자이신 분은 이제 맏아들이 되셨고 그의 수많은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신격에서만 그와 같을 수 없으며
: : : : 우리는 지금 혼의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으며 우리 몸의 구속 곧 영화롭게 변형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는 그날에 우리 온 존재가 형상과 모양과 외양에 있어서까지 그리스도와 똑같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 : 오직 신격에서만 그분과 다를 것입니다.
: : : : 주님을 찬양합니다.
: : : : 중생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우리의 이해입니다.
중생의 생명적 성격 또는 본질에 대해서
백영희목사님의 말년에 '중생의 생명의 성격 또는 본질'에 관한 교리를 조금 시작하다가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중생의 생명의 성격 또는 본질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시작하시고 가셨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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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목사님의 말년에 '중생의 생명의 성격 또는 본질'에 관한 교리를 조금 시작하다가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중생의 생명의 성격 또는 본질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시작하시고 가셨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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